피의사실공표 심의위원회 구성과 위법한 공표행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 등 검토해야

[공감신문] 김대환 기자=피의자의 인권보호를 위해 수사공보에 관한 법률 제정과 피의사실 공표의 예외적 허용 기준을 명시하는 입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18일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수사기관의 피의사실공표 관행 방지를 위한 정책토론회’(더불어민주당 조응천 국회의원 주최, 대한변호사협회 주관)가 열렸다.

피의사실공표란 피의자가 범죄와 관련해 의심이나 혐의를 받는 내용을 불특정 다수에게 알리는 것을 뜻한다.

지난 1953년 제정 이래 개정 없이 지금까지 유지돼 온 형법 제126조 피의사실공표죄에 따르면 검찰이나 경찰이 수사 과정에서 알게 된 피의 사실을 공판 청구 전에 공개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 정지에 처한다.

하지만 현재 수사기관의 피의사실 공표는 관행처럼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의사실 공표죄가 사실상 사문화됐다는 것이다.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집계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피의사실 공표로 접수된 347건 가운데 재판에 넘겨진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법무부 훈령인 '인권보호를 위한 수사공보준칙'은 기소 전에는 혐의사실과 수사상황 등 수사 내용 일체를 공개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기소 전이라도 ▲인권을 침해하거나 언론의 중대한 오보·추측성 보도를 방지할 필요가 있는 경우 ▲범죄로 인한 피해의 급속한 확산이 우려되는 경우 ▲국민들의 협조가 필수적인 경우 등에는 수사사건 내용을 공개할 수 있도록 예외를 두고 있다.

수사 기관은 이런 예외 규정을 이용해 필요할 때는 피의사실을 흘려 피의자를 압박하고 불리할 때는 반대로 언론을 피하는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김상겸 동국대학교 법학과 교수 / 김대환 기자

이날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김상겸 동국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피의사실은 중대한 공익상 이유가 있을 때 예외적으로 알리고, 이 예외는 법률로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피의사실 공표의 예외적 허용 기준을 명시하는 입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상겸 교수는 “공인의 경우 사회적으로 형성된 인격 혹은 명예에 대해서는 국민의 알 권리가 우선할 수 있다. 중범죄의 경우 경각심 제고 차원에서 피의사실공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피의사실과 관련이 없는 민감한 개인정보와 사생활에 관한 사항은 엄격하게 제한해야한다. 이를 위반하는 경우 처벌을 강화하는 등 그 내용을 정비·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행 수사공보준칙은 법률적 근거가 없다는 문제와 위반자에 대한 처벌이 미흡해 실효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다"며 "수사공보에 관한 법률(가칭)을 제정해 현행 수사공보준칙의 미비점을 보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승영 경찰청 수사기획과 총경 / 김대환 기자

이날 토론회에서 토론자로 참석한 윤승영 경찰청 수사기획과 총경은 “수사공보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거나, 형법 상 피의사실공표죄를 개정해 예외규정을 신설하는 방안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말했다.

윤승영 총경은 “인권보호 측면에서 요건과 정차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상세히 정하고 있는 훈령의 내용을 가다듬어 법제화하는 방안이 가장 현실적이고 실효적이 방법”이라고 밝혔다.

윤 총경은 “피의사실공표죄의 제정 취지가 여론 재판의 관행을 방지해 피의자의 인권을 보호하려는 것이었다”며 “현재 피의사실공표죄가 인권을 보호하는 장치로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기 때문에 책임 있는 관계기관·단체의 능동적인 참여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 토론자로 참석한 김지미 대한변호사협회 사법인권소위원회 변호사는 피의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피의사실 공표 심의위원회 구성 ▲위법한 공표 행위로 피해를 입은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 등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지미 대한변호사협회 사법인권소위원회 변호사 / 김대환 기자

김지미 변호사는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일정 범죄는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할 수 있고 신상공개 여부에 대해서는 신상공개 심의위원회에서 결정하게 돼 있다”며 “피의사실 공표에 대해서도 보다 신중한 경정을 위해 이와 같은 위원회를 구성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피의사실공표는 통상적으로 언론을 통해 보도가 되고 나면 유·무죄를 예단할 수 있고 이를 통한 여론이 형성된다면 여론재판이 돼 피해자의 이익에 심각한 침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후 이어진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방어권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고, 혹시 무죄가 선고된다하더라도 한번 형성된 여론은 그 진위여부와 관계없이 확대 재생산되기 때문에 원상회복이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수사를 담당하는 공무원의 경감심을 높이고 회복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위법한 공표행위로 피해를 입은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의 도입을 검토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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