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창덕궁에도 어김없이 봄이 왔다. 3월 하순의 관람지에는 봄소식을 알리는 보춘화(봄을 제일 먼저 알리는 꽃)인 생강나무의 노란 꽃이 살짝 내리는 봄비와 잘 어울려 지나치는 관람객들을 방긋 미소로 유혹한다.

관람지 봄소식 알리는 후원 관람지 밤나무와 생강나무의 노란 꽃 [궁궐길라잡이 성주경]

년 6월 13일 수요일에는 지방의회 의원 및 지방자치 단체의 장을 선출하는 전국 동시 지방 선거가 실시된다. 대통령을 비롯한 나라의 리더들은 국가의 대사가 있을 때면 현충원을 찾아 참배한다. 조선에서는 국가의 중차대한 일이 있을 경우 왕과 대신들이 사직과 종묘 그리고 선원전을 찾아 제사 형식의 참배를 드렸다.

개방된 문 사이로 내부가 텅 빈 선원전 전경

영조 임금은 어려서 매우 영특하였던 세자에게 사랑을 듬뿍 주었다. 하지만, 세자가 질병이 생겨 천성을 잃어버리고 세자의 본분을 지키지 않았다. 이에 세자를 폐하기로 결심하고 선왕이신 숙종의 어진이 모셔진 창덕궁 선원전(璿源殿)에 세자의 일을 알리고 재가를 받고자 전배하러 경희궁을 출궁했다.

영조는 선원전에 들어가는 경우 기분이 좋은 날에는 만안문을 기분이 안 좋으면 경화문으로 들어가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왕이 경화문으로 납시었다는 소식에 세자빈 혜경궁 홍씨는 불길한 예감을 어찌할 수 없었다. 1762년(영조38년) 무더운 여름 양력 7월경에 영조 임금은 선원전에서 선왕에게 무언의 소통으로 재가를 받은 후에 정성왕후 혼전(신주를 모셔두고 제사를 올리던 곳)으로 사용하고 있었던 창경궁 문정전(=휘령전)으로 나아가 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인 ‘임오화변’(壬午禍變)을 일으켰다.

유교에서는 인간의 죽음을 육체와 혼백의 분리로 해석해 산릉에서는 육신에게, 종묘에서는 혼백에 대해 제사를 드린다. 왕이 죽으면 육체는 시신이 되어 재궁(梓宮,관)에 담아 산릉에 묻고, 하늘과 땅으로 흩어지는 혼백을 위해 신주(神主,위패)를 만들어 종묘에 모신다. 종묘 제향에서는 향을 살라 하늘로 올라간 혼을 부르고 술을 땅에 부어 땅으로 흩어진 백을 부른다. 흔히 쓰이는 너무 놀라 '죽을 뻔하였다'는 뜻의 혼비백산(魂飛魄散)은 여기서 유래된 말이다.

선원전(璿源殿)은 생전에 그려둔 초상화인 어진을 모신 “진전(眞殿)”이라고도 하며, 선원의 의미는 ‘왕실의 족보’를 뜻한다. 선원전은 궁궐 안에 태조와 현왕의 4대조의 어진을 모셔놓고 초하루와 보름, 생신이나 기일 등 수시로 왕의 인격에 대해 차례를 모시는 왕실의 사당이다. 종묘는 역대 왕과 왕비들의 위패를 모셔놓고 일 년에 다섯 차례 제사를 모시는 국가의 사당(祠堂)이다.

창덕궁에는 1920년 이후로 신선원전과 구선원전 두 개의 선원전이 있다. 구 선원전이 원래의 선원전이다. 선원전은 조선 초 경복궁에 왕과 왕비의 진영과 선원록을 동시에 봉안하도록 지은 건물에서부터 시작됐다. 경복궁 내의 선원전은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 버렸다. 지금의 선원전은 숙종 때 경덕궁의 경화당을 옮겨 지은 춘휘전 건물을 선원전으로 개명하고 숙종의 어진을 봉안한 후로 이곳에 숙종․영조․정조․순조․익종․헌종의 어진을 모셨었다.

고종 5년 1867년에는 경복궁에 선원전이 새롭게 중건됐고 광무 1년 1897년에는 경운궁에 감실 7실 규모의 선원전이 창건됐다. 광무 1년경에는 창덕, 경복, 경운 3궁궐에 선원전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인 1921년에 창덕궁 후원 대보단 자리에 신선원전을 짓고 어진들을 옮겨 원래의 선원전은 빈 건물만 남게 되어 현재에 이르게 된다. 신선원전에 보관하던 왕의 어진은 한국전쟁 당시 부산으로 옮겨 창고에 보관하였다 불이 나서 대부분 타버렸다.

어진이 없는 후원 쪽 신선원전 내부 감실 모습

우리나라 만원권 화폐에는 운보 김기창 화백이 왕실 가족을 모델로 삼아 그린 세종의 표준영정이 들어가 있다. 즉, 세종의 실제 얼굴, 어진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현재 남아 있는 임금님의 실제 얼굴 모습은 태조, 영조, 조선 후기 몇 분 왕들뿐이다.

현재의 선원전 건물은 최근 수리 과정을 거쳐 지붕 용마루에 깨끗한 양성 바름이 되어 있으며 전면에 차례를 준비하기 위한 내찰당과 진설청이 있다. 계단이 앞뒤로 6개가 설치돼있는 점도 특이하다. 차례를 지내는 신성한 곳이기에 엄숙하고 단순하게 보이도록 단청을 처리한 점도 주의해 볼 만하다. 

궁궐 관람객들의 주요 관람 동선에서 벗어나 서 궐내각사의 한적한 위치에 있어 관심을 갖지 않으면 쉬이 찾아볼 수 없는 전각이지만 궁궐영역에서 차지하는 역할의 비중이 매우 큰 전각이다. 개인적인 일이나 나라의 일을 결정하기 전에 선왕을 찾아뵙고 인간적인 내면의 갈등을 추스리고 다스릴 수 있는 공간이자, 선왕에게 차례를 올리고 무언의 대화로 소통하고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였다.

선원전의 이름을 일제에 의해 옮겨 세워진 신선원전에 견주어 구선원전이라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본래의 위상에 맞게 선원전으로 하여야 하며 텅 비어 있는 내부의 시설을 시급히 복원하여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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