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정책과 국민 인식개선이 함께 나아가야 할 때

[공감신문 시사공감] ‘무병장수(無病長壽)’는 전 인류의 가장 오래된 꿈이다. 병 없이,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에 대한 열망은 의학·과학의 눈부신 발전을 가져다줬다. 그리고 현재 우리는 바야흐로 ‘장수의 시대’를 맞이했다.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긴 했지만 무병장수의 꿈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전까지는 ‘장수’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다면 최근에는 ‘무병’에 더 무게가 실리고 있다. 물론 장수보다 힘든 것이 무병이란 것쯤은, 독자 여러분도 익히 잘 알고 계시리라 짐작된다. 

최근에는 오래 사는 것보다 아프지 않는 것으로 초점이 옮겨진 듯하다. [pxhere/CC0 public domain]

나이가 들수록 걱정되는 질환은 하나 둘씩 늘어가기 마련이다. 흡연·음주를 하지 않는다거나, 꾸준히 운동하고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등의 기본건강수칙만 지키더라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던 때와는 많은 것들이 달라지기 때문. 

걱정되는 질병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노년기에 접어든 이들에게는 ‘치매’가 가장 먼저 꼽힌다. 그 원인과 치료방법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도 그렇지만, 나의 질병이 나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까지 힘들게 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일 테다. 

고령화 사회가 시작되고 노인들이 많아지면서 치매환자 수도 꾸준히 늘어가고 있다. 지난해 기준 국내 치매환자 수는 72만 명을 돌파했다. 이 숫자는 2050년이 되면 271만 명까지 증가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는 상황이다. 

치매가 중요한 사회문제 중 하나로 대두된 것은 꽤 오래된 일이다. 그러나 막상 지금 당장 당사자가 된다고 상상하면 누구라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아니겠지, 라고 생각하기에 이미 치매는 우리 근거리의 일이 된 듯하다. 

오늘 시사공감은 치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pexels/CC0 License]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했던가. 오늘 시사공감 포스트에서는 치매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자 한다. 치매를 이길 수야 없겠지만, 미리 대비해둔다면 막연한 불안감은 떨칠 수 있지 않을까. 

 

■ 치매와의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중앙치매센터가 발간한 ‘국제치매정책 동향 2017’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치매환자 수는 72만4000명에 달한다. 국내 65세 이상 노인인구 708명 중 13.8%는 치매환자인 셈이다. 2010년 조사 당시 47만5000명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치매환자 수는 7년 만에 52%나 급증했다. 

2015~2050년 연령대별 치매환자수 증가추이 [중앙치매센터]

치매환자 수는 노인인구가 불어남에 따라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다. 중앙치매센터는 2020년에는 84만 명, 2030년 127만2000명, 2040년 196만4000명 등으로 늘어나다가 2050년에는 271만 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치매관리비용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치매관리비는 치매환자의 치료와 돌봄을 위해 지출되는 ‘직접비용’과 치매조호자의 노동시간 손실률이나 돌봄부담으로 인한 건강관리 비용의 증가와 같은 ‘간접비용’을 모두 아우르는 개념이다. 

어떤 중증질환이 안 그렇겠냐만, 특히 치매는 환자의 입원이 잦고 대다수가 장기입원을 택하기 때문에 의료비 증가가 더욱 가파른 편이다. 

지난해 감사원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총 치매진료비는 2012년 1조5190억원에서 2016년 2조7061억원으로 4년 만에 1.68배 늘었다. 이 기간 1인당 평균 진료비는 366만2000원에서 437만8000원으로 1.2배 확대됐다. 

국내 치매관리비용(경상가) 및 치매환자 증가추이 [중앙치매센터]

국내 총 치매관리비용은 2015년 13조2000억원에서 2020년 18조8000억원, 2030년 34조3000억원, 2030년 34조3000억원, 2040년 63조9000억원, 2050년 106조5000억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치매 유병률은 75세와 85세를 기점으로 급격히 증가하는 모습을 보인다. 65~69세와 70~74세 노인의 치매 유병률은 각각 2.2%, 2.7%로 비교적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이 비율은 75~79세에서 9.9%로 급격히 뛰어 올라 80~84세는 19.6%, 85세 이상에서는 45.1%로 치솟았다. 

 

■ 치매는 국가책임, 맞나요? 

지난해 6월 문재인 대통령이 ‘치매, 이제 국가가 책임지겠습니다’ 행사에서 참석자와 대화를 하고 있다.

지난해 문재인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치매 국가책임제’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치매 의료비의 90%를 건강보험으로 보장하는 내용을 골자로 둔 정책이다. 

문 대통령은 그간 오롯이 환자가족의 몫이었던 경제적, 정서적 부담을 지역사회의 인프라와 국가, 사회가 나눠지겠다는 치매관리 패러다임의 변화를 예고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하반기부터 국민건강보험과 노인장기요양보험의 보장성 강화, 치매안심센터 설치를 통한 맞춤형 치매관리서비스 제공, 치매안심요양병원 지정을 통한 치매전문치료서비스 강화 등의 다양한 치매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정부는 올해를 ‘치매국가책임제’ 시행의 원년으로 삼아, 정책을 차질 없이 시행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특히 당초 47개소에 불과했던 치매안심센터를 전국 252개 모든 보건소에 설치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은 치매환자와 그 가족들의 호응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보건복지부의 치매안심센터 홍보자료

치매안심센터는 치매 예방부터 교육, 조기검진, 치료를 위한 의료기관 연계, 돌봄까지 관련 의료·복지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기관이다. 의사와 간호사는 물론이고 사회복지사, 정신보건 전문요원 등 20명 내외의 전문 관리 인력이 배치될 예정이다. 

센터 내에는 치매단기쉼터와 치매카페 등을 조성해 환자와 가족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한편, 상담이나 사례관리 내역은 치매노인 등록관리 시스템을 통해 유기적이고 연속적으로 관리하기로 했다. 

정부는 또 장기요양서비스 대상자의 범위를 넓혔다. 기존 1~5등급의 장기요양 인정등급 체계에 ‘인지지원 등급’을 신설, 신체기능이 양호한 경증 치매인에게도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왼쪽)은 지난해 9월 서울의 한 치매 지원센터를 방문해 치매 예방 교육프로그램을 참관했다. [보건복지부]

이와 함께 치매 위험에 노출된 75세 이상의 독거노인 등에는 전국 350여 개의 노인복지관에서 치매예방 프로그램이 제공된다. 국가건강검진에서는 인지기능 검사가 함께 실시된다. 

치매가족 휴가제, 치매노인 실종예방사업, 치매노인 공공후견제도, 치매안심마을 조성, 치매파트너즈 양성 등의 사업을 통해 치매 친화적 환경조성에도 힘쓰기로 했다. 또 치매연구 개발 사업을 실시하고 이와 관련한 중·장기 연구사업에 대한 지원도 넓혀간다는 계획이다. 

 

■ 해외에서는 
영국, 프랑스, 호주, 일본 등의 치매 선진국들은 국가치매관리계획의 일환으로 치매전문병동 혹은 치매전문케어 유닛의 구축·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일본은 2012년 오렌지플랜 이라는 이름으로 치매를 위한 국가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pixabay/CC0 creative commons]

우리나라보다 한 발 앞서 고령화 사회를 맞이한 일본은 1990년대부터 치매 대책을 수립해, 2012년에는 ‘오렌지 플랜’이라는 이름으로 ‘치매를 위한 국가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치매 대책을 국가 전략 중 하나로 삼은 것이다. 이후 2015년에는 ‘신(新) 오렌지 플랜’을 내놓기도. 

일본은 주무부처인 후생노동성을 비롯해 내각관방, 내각부, 경찰청, 금융기관청, 소비자청 등 11개 부처가 치매관련 공조체제를 구축했다. 정부 차원의 분야별 연결체계를 갖추고 치매환자를 위한 사회안전망을 촘촘히 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우리나라의 치매 국가책임제가 보건복지부만의 소관인 것과는 대비되는 대목이다. 

일본의 오렌지플랜은 병원·시설 이용중심에서 벗어나 가능한 재택중심 서비스를 지향점으로 삼고 있다. 이를 위해 거주지에서의 의료, 개호 돌봄 등 일상생활을 지원하는 서비스를 포괄적으로 제공한다. 

일본은 또 2017년까지 전국에 치매전문병원 500여개소를 확충하는 한편, 치매 관련 의사 4000명, 치매 요양사는 600만 명 확대하는 등 관리망을 더욱 공고히 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영국은 치매의 조기진단에 중점을 둔 정책을 시행 중이다. [photo by florianplg on Flickr]

영국은 2012년 ‘치매와의 전쟁’을 국가 보건 프로젝트로 수립, 치매 진단 및 조호서비스 개선, 치매친화적 지역사회 조성, 연구 촉진 등을 목표로 두고 정책을 시행 중에 있다.  

영국 정부는 특히 치매의 조기진단의 중요성에 초점을 맞추고 치매 진단율 제고 정책을 다양하게 시행 중이다. 가령 진료소 수입의 일부를 치매 진단율 평가결과에 따라 지급한다거나, 검진 사각지대에 놓인 농어촌 노인, 독거노인 등에는 찾아가는 진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식이다. 

치매관련 연구지원 자금은 2012~2015년 사이 2배가량으로 늘렸다. 주요 연구 인프라구축과 치매연구 활동에 영국 정부가 투자한 자금은 연간 6000만 파운드(약 864억6900만원)에 달한다. 

치매환자를 위한 정책은 나라별로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지만, 대부분 조기진단과 치매친화적 사회조성에 방점을 찍고 있다. [PublicDomainPictures/CC0 public domain]

호주는 일반의가 가족의 알츠하이머 병력 등을 포함해 치매 위험 요인이 있는 환자들에 대한 조기진단을 할 수 있도록 장려하고 있다. 독일 정부 역시 치매대부(Demenzpaten)라 불리는 치매환자 지원 인력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 

 

■ 격리가 아닌 돌봄이 필요한 때 

누구나 노인이 되고, 누구도 치매의 위험에서 안전하다 할 수 없을 것이다. [Max pixel/CC0 public domain]

누구나 나이가 들고 노인이 된다. 그리고 우리 중 누구도 치매의 위험에서 벗어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국가의 치매 관련 정책이 더욱 확대되어야 함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사회가 치매 환자를 바라보는 눈 또한 바뀌어야 할 것이다. 

일본이나 영국 등의 치매 선진국들에서는 이미 치매 친화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노력을 다각도로 기울이고 있다. 치매에 걸린 환자가 따로 격리되는 것이 아닌 지역사회 내에서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해, 환자와 그 가족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것이다. 

마음 놓고 나이 들어갈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지길 바라겠다.

정부가 내놓은 ‘치매 국가책임제’도 앞서 선진국들의 노선을 함께 한다. 이제 막 발을 뗀 정책인 만큼 다소 부족함이 있을 순 있겠으나, 국민들의 관심이 박수에서만 끝나지는 않기를 바란다. 

정부의 정책과 국민들의 인식이 함께 앞으로 나아갈 때, 마음 놓고 나이 들어갈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질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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