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교양공감] 실력으로 어떤 분야의 정점을 찍은 인물, 아니면, 실력은 차치하고 사람들로부터 가장 폭 넓은 사랑과 지지를 받았던 인물들. 보통 그런 이들에게 ‘한 시대를 풍미했던’, ‘희대의’ 등의 타이틀이 붙는다.

‘경쟁’이 핵심이고 골자인, 알파이자 오메가인 스포츠 계에서 이런 인물들이 특히나 두드러져 나타난다. 다양한 스포츠 종목들에는 저마다 단 한 사람(혹은 한 팀)이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런 최고의 인물들 중에서도 아주 특별한 누군가는 자의건, 타의건 그 분야의 경쟁자와 후배들에게까지 지대한 영향력을 미친다. ‘슈퍼스타’, 전설이 되는 것이다.

최고 중의 최고, '레전드'라는 칭호는 아무에게나 거저로 주어지지 않는다. [pxhere/creative commons cc0]

아무에게나 ‘최고’, ‘전설’ 등의 타이틀이 붙진 않는다. 최고 중의 최고를 거머쥔 승자에게만 선사되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어느 종목에서건 ‘레전드’ 반열에 오르기란 쉽지 않다. 오늘은 바로 그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 급이라 불릴만한 인물들, 각 분야의 ‘황제’들을 영접해보는 시간이다.

경쟁자들에게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을 느껴지게 하고, 후대의 기라성 같은 스타플레이어들에게 조차 존경받는 인물들. 자타가 ‘당대 최고’임을 자부했던 추억의 스포츠 슈퍼스타들을 소개한다.

 

※ 이번 포스트는 말 그대로 과거 우리를 뜨겁게 달구고 흥분시켰던 이들을 추억하고, 경배하기 위해 작성됐다. 뛰어난 선수들 간 실력의 우열을 가리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한 포스트가 아님을 미리 밝혀둔다. 이는 절대적 리스트가 아니다. 또한 각자의 주관적 평가는 납득할 수 있지만 인격적 모독 등은 삭제될 수 있음을 일러둔다.

※ 여러분의 스포츠 슈퍼스타는 누가 있는가? 여러분이 무엇에 열광하고, TV앞에 앉아 누구의 승리를 함께 기뻐했는지 그 추억을 공유해주시길 바란다.

 

■ 농구의 ‘완전체’, 마이클 조던

'농구 황제'라 하면 바로 떠오르는 이름, 마이클 조던. [photo by mccarmona23 on flickr]

이름: Michael Jeffrey Jordan

국적: 미국

종목: 농구

활동시기: 1980년대 중반 (2003년 은퇴)

별칭: 농구 황제, 에어(Air)

마이클 조던이라는 이름은 농구공 한 번쯤 만져본 사람이라면, 아니지, 그가 최종적으로 은퇴한 2003년 이후 출생자들이라도 최소한 이름만큼은 알 수 있을 만큼 유명세를 떨친 초(超) 슈퍼스타다.

만약 이번 포스트를 읽는 분들 중 나이가 많이 어린 친구들이라면 나중에 부모님- 아니, 할아버지 할머니께 ‘알고 계시는 외국인 운동선수’가 누가 있는지를 물어보시라. 아마 굉장히 높은 확률로 그의 이름이 나올 것이 틀림없다. 어쨌든 그의 유명세는 가히 ‘범지구적’이라 말할 수 있고, 그만큼 마이클 조던은 과장 조금 보태 ‘농구 그 자체’를 대표하는 인물이라 봐도 손색없다.

남다른 체공시간으로 '에어(Air)'라는 별명을 얻기도 한 조던의 덩크 모습. [photo by cliff1066 on flickr]

조던이 그런 명성을 얻게 된 계기는 1990년대 초부터 전성기를 맞아 그야말로 ‘신들린 활약’을 펼쳤기 때문이다. 그는 슈팅가드와 포워드 포지션을 맡으면서 압도적인 피지컬을 무기로 활용하는 돌파력을 선보였다. 거기에다가 더 무서운 건, 어떤 상황에서건 슛 성공률이 높았다는 점이다. 특히나 그의 페이드어웨이 슛은 예측할 수 없는 각도, 점프력, 정확성 등 모든 측면에서 보는 이의 혀를 내두르게 만들었다.

슈즈 '에어조던' 시리즈가 마이클 조던을 위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걸 잘 모르는 분들도 있다던데… [Air Jordan 웹사이트 캡쳐]

우월한 피지컬과 스킬 뿐 아니라 멘탈까지 그는 철저한 ‘스포츠맨’이었다. 조던은 승부에 대한 매우 강한 집착을 지닌 것으로 유명한데, 이런 승부욕으로 인해 다소간의 신경전을 벌인 일도 많았으며 동료 플레이어들에게 바라는 것이 많아 호된 질책을 자주 했다는 이야기도 알려져 있다. 이밖에도 다른 선수가 걸어오는 도발에 눈을 감고 자유투를 성공시켰다는 일명 ‘Welcome to NBA’ 에피소드도 유명하며, 비(非) 시즌 중에는 자신의 타고난 승부욕을 ‘도박’을 통해 불태웠던 일화 등도 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은 잠시 야구로 외도했던 기간을 제외하고 농구선수로 활약하던 기간 동안만 소속팀에 6개의 NBA 챔피언 타이틀을 선사했으며, 개인적으로도 10여 차례의 득점왕 수상, 정규 시즌 MVP 5회 등의 빼어난 성과를 올렸다. 조던이 이런 성과를 올릴 수 있었던 까닭은 그의 타고난 피지컬과 천재성, 그를 뒷받침하는 피나는 노력과 더불어 승부욕과 제왕적 기질까지 지닌 ‘완전체’였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 알리, 보마예! 무하마드 알리

무하마드 알리, 복싱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이라도 이름 쯤은 들어보셨을 만큼 유명한 슈퍼스타다. [photo by cliff on flickr]

이름: Muhammad Ali (개명 전:Cassius Marcellus Clay, Jr.)

국적: 미국

종목: 복싱

활동시기: 1960년대~1980년대 초 (1981년 은퇴)

별칭: 영원한 챔피언, The Greatest

전 세계 복싱 역사상 최고의 스타를 꼽으라면 누굴 떠올리겠는가? 조 프레이저, 토마스 헌즈, 슈거 레이 로빈슨, 마이크 타이슨, 조지 포먼, 아니면 현역으로 생생하게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는 매니 파퀴아오, 플로이드 메이웨더 등 기라성 같은 인물들의 이름이 줄줄이 나올 것이다. 복싱 자체가 유구한 역사를 지닌 스포츠인데다 두 선수 간 1대1 대결이기 때문에 그만큼 스타 선수들도 많은 것. 그리고 그 기나긴 역사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무하마드 알리가 있다.

1950년대 인종차별이 심했던 미국에서 가난한 집안의 흑인 소년이었던 그는 우연한 기회에 복싱을 접하고, 12세부터 아마추어 복서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훗날 별이 되리라는 것을 미리 예고라도 하듯, 그는 아마추어 시절에만 100승 5패라는 기록을 남겼다. 이어 1960년에 열린 로마 올림픽에는 헤비급으로 출전, 금메달을 획득하기까지 한다. 그때부터 알리는 프로로 전향하고, 훗날 전설로 회자될 역사들을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쓰러진 소니 리스턴을 내려다보고 있는 알리. [뉴욕타임즈 캡쳐]

1964년 알리는 WBA와 WBC의 헤비급 통합 챔피언인 소니 리스턴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는데, 당시 소니는 복싱 역사상 최고의 강타자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인물이었다. 때문에 알리가 그를 이길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허나 이때, 알리는 자신감 있게 ‘안 맞으면 그만’이라는 식의 발언을 남긴다. 그게 바로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겠다(Float Like a butterfly, and sting like a bee)”는 말이다. 그리고 알리는 자신의 발언을 실제로 실현시켜 6라운드 동안 맹공을 퍼붓고, 결국 기권을 받아내 승리했다.

1960년대~1970년대 미국의 복싱 황금기 가운데에 있던 그의 통산 전적을 살펴보면 56승(37KO) 5패로, 거의 20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앞서도 언급된 조지 포먼, 조 프레이저 등과도 맞붙었고 그 때마다 명경기를 만들어냈다. 한편 알리의 파이팅 스타일은 인파이트, 아웃복싱 등으로 명확히 구분되지 않았는데, 그는 상황에 따라 적절한 전략을 펼치며 순식간에 수많은 펀치를 쏟아내 상대를 쓰러트리기도 하고, 로프를 이용해 상대의 펀치를 이리저리 회피하며 지치게 만드는 등 탁월한 기교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런 기교에 특유의 쇼맨쉽까지 갖추고 있었으니 관객들이 열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때문에 그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장내에는 “알리, 저 놈 죽여 버려!(Ali, Bomaye!)”라는 아프리카어(링갈라어) 구호가 울려 퍼졌다.

무하마드 알리는 지난 2016년 타계해 많은 복싱 팬들을 안타깝게 했다. [wikimedia]

주목할 것은 그의 체급이 ‘헤비급’이라는 점이다. ‘알리 스텝’ 등 빠르고 경쾌한 움직임, 가드가 아닌 회피에 집중하는 전략, 빠른 주먹으로 무수히 쏟아내는 펀치 등. 이런 동작은 사실 움직임이 묵직한 헤비급에서 쉽사리 보기 어려운데, 그는 191cm의 큰 키로 이런 폭발적인 동작을 보여주며 관객들을 열광시켰다.

이밖에도 그는 2016년 타계 이전까지 흑인 인권을 위해 늘 적극적으로 나섰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당시 베트남전 징병 거부를 이유로 챔피언 자격을 박탈당하며 옥살이까지 했지만 “베트콩들은 흑인이라는 이유로 우릴 무시한 적이 없는데, 그들에게 왜 총부리를 겨눠야 하냐”는 발언을 남기기도 했다.

 

■ 축구 황제, 브라질의 국보 펠레

축구선수 중 '황제'라는 타이틀이 붙는 유일한 인물이 아닐까 싶은 레전드 오브 레전드, 펠레. [wikimedia]

이름: Edson Arantes do Nascimento

국적: 브라질

종목: 축구

활동시기: 1950년대~1970년대 (1977년 은퇴)

별칭: 펠레(자체가 애칭이다), 축구 황제

에드송 아란치스 두 나시멘투, 어린 시절 그가 '빌레'를 '펠레'로 발음한 것으로 인해 놀림받았다가 그것이 그대로 별명처럼 굳어졌다고 한다. [360soccer 캡쳐]

최근의 평가는 어떨지 몰라도, 브라질은 불과 몇 년 전까지 축구계에서 ‘부인할 수 없는 세계 최강’으로 손꼽히는 나라였다. 때문에 브라질은 FIFA 월드컵에서 ‘영원한 우승후보’로 불렸었다. 하기사, 브라질 국민들 자체가 축구에 엄청난 열정을 갖고 있으니 어찌 보면 그런 실력도 당연하지 않겠나 싶다. 그리고 그런 ‘축구의 나라’에서 가장 큰 존경과 사랑을 받는 축구 영웅이 바로 ‘펠레’다. 에드송 아란치스 두 나시멘투, 그의 어린 시절 별명이 바로 펠레였다.

유년시절의 펠레는 상당히 어려운 생활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아버지는 세미프로 축구선수였으나 수입이 적은데다 부상으로 제대로 활약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의 가정은 빈민에 가까울 만큼 힘겨웠다고. 펠레의 아버지는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꿈을 이루지 못하고, 대신 그의 아들이 세계적인 축구 선수로 자라나기를 바랐다. 그래서 그에게 축구 기술과 마음가짐 등을 전수했고, 펠레는 동네에서 축구를 하면서 자라다가 산투스 FC의 유소년 팀에 입단하게 됐다.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한 것은 이 시기인 셈.

"축구는 잘 모르지만 펠레는 안다." -마이클 조던 / "오늘에서야 펠레가 나보다 위대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하마드 알리 [sokkaa 캡쳐]

유소년팀을 거쳐 그는 1956년 프로 무대에서 활약을 시작했고, 그 다음 해에는 라이벌 아르헨티나와의 A매치에 데뷔, 이후 1958년에는 월드컵 대표팀에 선발된다. 이것이 불과 17세의 나이 때다. 펠레는 당시 1958년 스웨덴 월드컵을 휩쓸다시피 했는데, 그는 이 월드컵 무대의 4강전에서 프랑스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올렸다. 이후 개최국인 스웨덴과의 결승전에서도 멀티 골을 득점했다. 펠레는 이 월드컵에서만 총 4경기에 출전해 6골의 득점을 올려 전체 득점 2위를 기록했으며, 다시 말하지만 이는 그가 불과 17세였던 해의 일이다. 결국 스웨덴 월드컵은 브라질의 무시무시한 신인 펠레의 등장을 알린 무대가 돼 버렸다.

이렇게 한번 터져버린 기량은 그를 점차 ‘월드 클래스’ 공격수로 만들어갔다. 펠레는 17년 동안 산투스 FC에서 폭발적인 득점실력을 뽐내면서 소속팀의 황금시대를 만들어갔고, 소속팀을 리그 우승으로 견인했다. 또한 다음 월드컵인 1962년 칠레 월드컵과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1970년 멕시코 월드컵 무대에서도 기량 하락 없이 맹활약을 펼쳤다. 그의 국가대표 기록은 1957년부터 1971년까지 총 91경기 77골이고, 산투스 FC의 리그 우승 5회를 주도했으며, 도합 세 번의 월드컵 우승을 경험했다. 현재까지도 그는 숱한 축구 스타들에게 ‘가장 존경하는 선수’로 추앙받고 있으며, 역대 올스타, 베스트 11 등에 꼬박꼬박 ‘최고의 공격수’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 60억 분의 1의 사나이, 표도르

'얼음 주먹', '마지막 황제'라 불린 종합격투기 선수 표도르 에밀리아넨코. [MMA fight 캡쳐]

이름: Fedor Vladimirovich Emelianenko

국적: 러시아

종목: 종합격투기

활동시기: 2000년대 초~

별칭: 마지막 황제, 얼음 주먹, 60억 분의 1의 사나이

당연히 그러셔야겠지… 안 그랬다간… [MBC 화제집중 방송 장면]

아직 최종적으로 은퇴했다 볼 수 없는 관계로 이 ‘추억의 스포츠 슈퍼스타’ 반열에 이름을 올리기엔 조금 이른 감도 있으나, 한때 종합격투기 판에서 빼어난 기량으로 ‘황제’라 불렸던 인물인 만큼 이번 포스트에 함께 소개해볼까 한다. 혹자는 에밀리아넨코 표도르에 대해 이번 포스트 내용과 다른 평가를 내릴 수도 있겠으나 2000년대 초중반 종합격투기에서 그가 지녔던 위상이 대단했다는 것 만큼은 쉽사리 부인할 수 없을 터다.

원래 유도와 삼보 선수로 활약했던 에밀리아넨코 표도르는 2000년 일본 격투기 무대 Rings에서 종합격투기 선수로 데뷔한다. 이때 데뷔전에서 승리를 거둔 그는 이후 내리 3연승을 올렸으나, 아직까지는 이렇다할 지명도를 얻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2002년 PRIDE로 무대를 옮긴 뒤부터는 히스 헤링, 노게이라 등 이름난 격투기 스타들을 차례로 무너뜨려가면서 차근차근 명성을 쌓으면서 황제 등극의 발판을 다져왔다.

당시 엄청난 활약을 보였던 미르코 크로캅도 표도르와의 경기에서 압도적으로 패배했다. [MMA mania 캡쳐]

표도르의 주 무기는 체중을 실은 원투 펀치에서 이어지는 테이크다운, 그리고 파운딩이었다. 또한 삼보와 유도를 했던 경력을 살린 그래플링 기술, 서브미션 등에도 능숙했으니 그야말로 ‘이렇다 할 약점이 없는’ 종합격투기 선수였던 셈이다. 이런 무결점의 파이터의 면모를 줄곧 보여주며 차츰 부상하다가 결국 2005년, 입식 타격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미르코 크로캅과의 매치가 성사되고, 난타전 끝에 판정단 만장일치(3:0) 판정승을 거두면서 ‘인류 최강’이라는 의미의 ‘60억 분의 1의 사나이’라는 칭호를 얻게 된다.

지금은 어째 흑역사와 함께 굴욕 신세를 겪고 있는 듯도 싶다. [루리웹 캡쳐]

이후로도 한동안 최강의 위용을 지니던 그도 시간이 지나며 서서히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몇 차례의 은퇴의사를 밝힌 적도 있었으나 결국은 은퇴를 번복하고 링에 올랐다. 비록 과거만은 못하지만 간간히 경기 소식이 전해지기도 하는데, 그의 최고 전성기 모습을 지켜본 팬들이라면 다소 아쉬울 수도 있는 기량하락을 보여주고 있다.

 

■ 황제를 위하여

야구 역사에 길이길이 기억될 슈퍼스타, '메이저 리그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 불리는 베이브 루스. [baseball hall of fame 캡쳐]

마이클 조던, 무하마드 알리, 펠레 등… 이들은 모두 자신의 분야에서 왕, 황제라 불릴 만큼 압도적인 기량을 뽐냈었다. 전성기때 그들의 활약은 그야말로 ‘전설적’이어서, 그들과 동시대를 살지 않았던 이들에게까지 구전으로, 남은 기록으로 회자되고 현재까지 추앙받는다.

하지만 아무리 최절정의 실력을 지니고 있어도, 그들 역시 인간인지라 결코 시간을 피할 수 없다. 이는 신체능력을 극도로 발휘해야 하는 스포츠에서 더욱 두드러지며, 아무리 노력하고 연습량을 늘려도 ‘세월’을 피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번에 소개한 ‘격투기 황제’ 표도르 역시 그런 기량하락을 겪고 있고,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도 슬럼프와 부상 등을 겪으면서 ‘이제는 은퇴를 바라봐야 할 때’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클래스는 영원하다지만, 세월은 모두에게 공평하다. [pixabay/cc0 creative commons]

지금 이 순간에도 정상에서 내려오는 이들이 있다. 그런 ‘한때의 황제’들은 어느덧 뒷사람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어릴 적 그 황제의 등을 지켜보며 자라난 슈퍼스타들은 이제 그 자리의 주인이 된다. 세대가 교체되는 것이다.

우리가 열광하는 것은 그저 일시적인 성과나 반짝 스타가 아니다. 부단한 노력과 천재성으로 진정한 정점에 선 자들. 우리는 그들에게 환호하고 감동한다. [pxhere/creative commons cc0]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왕좌에서 내려오는 이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을 기억한다. 그들을 추억하고, 그들이 가장 반짝였던 순간에 대해 회고한다. 어째서일까? 우리는 무엇에 그렇게도 열광을 했었나? 빼어난 성적? 결코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손바닥이 아플 정도로 박수를 보내고, 혀를 내둘렀던 것은 그들의 천재성과 독보적인 노력의 성과다. 그것들은 그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감탄과 감동을 자아낸다.

[photo by sharat ganapati on flickr]

우리를 열광시키고, 감동시키고, 우리에게 가슴 벅찬 승리의 환희를 느껴지게 했던 모든 한때의 황제들에게 경애를 표한다. 애정을 담아서, 황제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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