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수천 건씩 일어나는 몰카범죄,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공감신문 시사공감] 지난 5월 1일, 여성 커뮤니티 사이트 ‘워마드’ 게시판에는 누드 크로키 수업의 모델로 선 한 남성의 나체사진이 올라왔다. 해당 글은 이튿날 바로 삭제되기는 했지만, 사건은 일파만파 퍼지면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그로부터 열흘 뒤, 경찰은 몰카(몰래카메라)를 촬영해 유출한 사건의 가해자로 동료모델인 A씨를 지목했다. 당시 A씨는 휴게시간 중 모델들이 함께 쓰는 휴게 공간 문제로 인해 피해자 B씨와 갈등이 있어 이 같은 범죄를 저질렀다 자백한 것으로 전해진다. 

홍대 누드크로키 사건의 피의자 A씨

지난 12일, 경찰은 A씨가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휴대전화를 분실했다’고 거짓진술을 한 점, 휴대전화를 한강에 버린 점 등으로 볼 때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고,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일명 ‘홍대 누드크로키 사건’이라고 불리는 이 사건으로 다시 몰카범죄가 뜨거운 조명을 받고 있다. 이례적으로 몰카의 피해자가 남성이었다는 점과 수사속도가 유난히 빨랐다는 점 등으로 사건은 남녀 혐오갈등으로까지 번지는 모양새다. 

오늘의 시사공감, 몰카에 관한 이야기다. [max pixel/CC0 public domain]

그래서 오늘 시사공감에서는 타인의 사생활을 몰래 촬영해 유포하는 ‘몰카범죄’에 관한 이야기를 다뤄볼까 한다. 누구나 몰카 걱정 없이 개인의 사생활을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 해마다 수천 건의 몰카가
한 20년 전인가, ‘이경규의 몰래카메라’라는 TV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끌 때만 하더라도, 몰카는 유쾌하고 즐거운 단어로 받아들여졌다. 

당시 미성년이었던 기자 본인만 하더라도 그렇다. 뜻밖의 횡재를 하거나, 황당한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면 친구들끼리 ‘이거 몰카지?’라는 농담을 주고받았던 기억이 난다. 

지난해 경찰에 압수된 불법 카메라들.

하지만 지금은? 대표적인 성범죄 중 하나로 인식되는 게 더 먼저다. 뭐 이유야 간단하다. 몰카범죄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고, 그에 따른 피해자들도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대검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성폭력범죄 가운데 가장 증가세가 가파른 범죄는 바로 몰카범죄였다. 

전체 성폭력범죄에서 ‘카메라 등 이용촬영’ 범죄가 차지하는 비율은 2007년 3.9%(564건)에 불과했지만 2014년 24.1%(6735건), 2015년 24.9%(7730건), 2016년 17.9%(5249건) 등으로 나타났다. 10년 사이 무려 10배 이상 치솟은 것이다. 

이는 경찰청 통계를 봐도 마찬가지. 2011년 1535건이었던 몰카범죄는 2015년 7615건으로 4배 가까이 급증한 것으로 집계됐다. 당시 큰 논란을 빚었던 워터파크 몰카 사건 등으로 경찰 수사력이 집중돼 검거율이 높아지면서 2016년에는 5170건으로 내려앉긴 했지만, 결코 적다고 할 수는 없는 수준이다. 

경찰의 몰카범죄 검거율은 95%에 이른다. [경찰청]

검거율도 점차 개선돼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2011년 87.6% 수준이었던 몰카범죄 검거율은 2013년 91.0%로 90%대를 넘어선 데 이어 2015년에는 97.6%, 2016년 94.6% 등으로 높아졌다. 

그러나 높은 검거율에도 여성들의 불안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분위기다. 그 이유는 왜일까. 원인을 제대로 짚어보면 깊어지는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도 찾게 될 것이다. 

 

■ 때 아닌 남녀 혐오갈등? 
다시 홍대 누드크로키 사건으로 돌아가야겠다. 서두해서 잠시 얘기했듯, 이 사건은 피해자가 남성이라는 점에서 시작부터 세간의 큰 이목을 끌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간 몰카 피해자들 대부분은 여성이거나 여성들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몰카사진이 최초 유포된 곳이 남성혐오 사이트로 알려진 워마드였다는 점도 논란의 불을 지피는 데 한몫했겠지만 말이다. 

몰카로 검거된 인원 가운데 남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무려 98%나 된다.

실제 통계를 봐도 그렇다. 지난해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몰카로 검거된 1만6201명 가운데 남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무려 98%(1만5662명)에 달한다. 

그뿐일까. 몰카 피해사례 2만6654건 가운데 여성이 피해자인 경우는 84%에 해당하는 2만2402건에 달한다. 반대로 남성이 피해자인 사례는 600건으로 2.3%였으며, 영상 화질 문제 등으로 성별이 확인되지 않는 불상은 13.7%(3652건)였다. 

문제가 된 지점은 유난히 빠른 수사속도와 가해자를 대하는 경찰과 언론의 태도였다. 피해자가 남성이었기 때문에 수사속도가 빨랐다는 논란이 첫 번째, 그간 가벼운 처벌로 일관했던 수사당국이 유독 여성 가해자에게만 엄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게 두 번째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쳐화면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서 무려 36만 명의 지지를 얻고 있는 <여성도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성별 관계없는 국가의 보호를 요청합니다.>라는 제목의 글 역시 이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피해자가 여성이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고 피해자가 남성이기 때문에 재빠른 수사를 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여성과 남성 둘 다 동등한 대한민국의 국민이기 때문이죠. 성별을 기반으로 다르게 수사가 이뤄진다면, 그런 사회에서 과연 남성이라 해서 안전할까요?”

“누구나 범죄를 저질렀다면 벌을 받고 누구나 피해자가 됐다면 국가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그런 대한민국을 절실히 바랍니다”

경찰 측은 억울하다는 항변을 내놓고 있다. 성별의 차이는 수사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는다며 모든 수사는 ‘신속 진행’을 원칙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것. 95%에 달하는 검거율이 이를 뒷받침한다는 게 경찰의 입장이다. 다만 이번 사건의 경우, 범행현장과 용의선상에 있는 인물이 특정됐기 때문에 빠르게 피의자를 찾을 수 있었다는 것. 

홍대 누드크로키 사건의 피의자 A씨가 이례적으로 포토라인에까지 서게 되면서 여성계의 반발을 샀다.

하지만 그 동안엔 걸려도 솜방망이 처분에 끝나는 것으로만 알려졌던 몰카범죄에서 피의자가 이례적으로 포토라인에까지 서게 된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숱한 남성 피의자들은 경범죄로 간주하더니, 여성 피의자에게만 유독 날선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반발도 나온다. 

이처럼 논란이 가열되는 것은 그간 성범죄, 특히 몰카범죄에 관대했던 사법당국의 태도에 있다. 몰카 피해를 신고하더라도 범죄에 대한 처벌이 미약해 몰카범죄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몰카범죄에 대한 사법부의 판결은 가볍기 그지없다. [pixabay/CC0 creative commons]

실제 대법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불법촬영으로 성폭력범죄특례법을 위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피의자 가운데 약 90%는 가벼운 처벌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1심에서 집행유예·선고유예·벌금형 등으로 풀려난 비율은 2014년 90%, 2015년 89%, 2015년 87%, 2016년 86% 등이었다. 

결국 오늘날의 갈등은 남녀 혐오가 아니라, 그 동안 우리 사회가 보여준 관대하고 미온적인 태도에서 불거진 것이 아닐까. 

 

■ 희망은 있을까 

문재인 대통령은 몰카와 데이트폭력도 중대 위법으로 다뤄야 한다고 역설했다.

후보시절부터 리벤지포르노·몰카 근절을 주장해왔던 문재인 대통령은 얼마 전 몰카범죄와 데이트폭력도 중대 위법으로 다뤄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수사당국의 수사관행이 조금 느슨하고, 단속하더라도 처벌이 강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니까 그런 문제가 일상화되다시피 했다. 수사기관들이 조금 더 중대한 위법으로 다루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문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이 있었던 15일, 청와대는 몰카범죄 발생 뒤 동영상·사진 등 관련 게시물의 삭제가 늦어지면서 피해자가 지속적인 고통을 당한다고 보고, 범죄 게시물을 신속히 삭제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지난 4월 30일,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가운데)이 디지털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 현판식에 참석한 모습 [여성가족부]

여성가족부는 지난달 30일부터 ‘디지털 성범죄피해자 지원센터’를 운영 중이다. ‘정부가 지워드립니다’라는 슬로건 아래 운영되는 이 센터는 피해자들에게 삭제 지원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 동안은 피해자가 일일이 증거를 수집해 사이트별로 삭제요청을 하거나 신고를 해야 했지만, 센터가 이를 대신해준다는 것이다. 

운영 첫날부터 지난 11일까지 피해를 접수한 이들은 146명에 달한다. 피해신고가 접수되면 센터는 상담을 통해 피해상황을 우선 파악하고, 증거를 수집해 동영상 유통사이트에 삭제를 요청하는 것은 물론, 방통심의위원회에 심의를 요청한다. 

아울러 경찰 신고를 위한 채증과 이를 위한 법률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고, 삭제 지원 이후에는 일정기간 사후모니터링도 실시한다. 

경찰도 몰카범죄 대응을 강화한다고 밝혔다.

경찰 역시 몰카범죄 대응을 강화하기로 했다. 경찰청은 ‘여성 대상 악성범죄 집중단속 100일 계획’을 세우고, 경찰력을 최대한 동원해 악성범죄 단속에 나선다고 밝혔다. 또 오는 21일부터 한 달간 지자체와 합동으로 지하철역, 물놀이시설 등 다중이용시설의 몰카 설치여부를 일제히 점검할 방침이다. 

국회에서는 몰카범죄 처벌강화에 대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은 특정 개인임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의 신체 또는 행위를 촬영한 자가 영상물을 유포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형으로만’ 처벌토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 몰카,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 

화장실만 가도 몰카를 조심하라는데, 도대체 여기서 뭘 더 어떻게 조심해야 되나 싶은 생각이 든다. [pixabay/CC0 creative commons]

오늘 시사공감을 쓰기에 앞서, 기자의 주변에 있는 여성 동료들이나 친구들에게 몰카에 대해 물어봤더니 모두 한 번쯤은 몰카에 대한 걱정을 해본 경험이 있다고 대답하더라. 특히 인적이 드문 공중화장실을 찾을 때면 불안감이 더욱 심해진다고. 

실제 지하철역에 설치된 여자화장실을 찾으면 몰카 피해를 조심하라는 내용의 경고문이 붙어있는 걸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경고문을 보고 몰카라는 게 피해자가 조심한다고 없어지는 것이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도 공통된 대답이었다. 

이렇듯 사소하게는 화장실에 붙은 경고문에서부터 크게는 재판부의 판결까지. 그간 우리 사회는 몰카에 대해 가해자가 명백한 ‘범죄’가 아닌, 피해자가 조심하면 피해갈 수 있는 일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싶다.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우선시 되는 사회가 되기를. [pixabay/CC0 creative commons]

하지만 피해자들이 떠안아야 하는 고통의 무게는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님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다소 늦은 감은 없지 않으나, 이제부터라도 몰카범죄를 중범죄로 여기는 분위기가 조성되길 바란다. 신속한 수사와 강력한 처벌, 충분한 피해지원 등 삼박자가 고루 갖춰진다면, 머지않아 누구라도 자신의 사생활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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