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부작용, 개선돼야 할 부분 짚어보기

[공감신문 시사공감] 지난해 문을 연 청와대 사이트 내 국민청원 게시판이 연일 뜨거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국민청원 게시판은 국민의 목소리를 더 가까이에서 듣겠다는 취지에서 지난해 8월 문을 열었다.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슬로건 아래 280일째 운영 중인 이 게시판에는 현재까지 19만2000건이 넘는 다양한 청원들이 올라와 있다. 

현재까지 게시된 청원 글만 19만2000개를 넘어서는 상황 [청와대 홈페이지]

30일간 20만 명 이상의 국민들이 동의한 청원은 정부 및 청와대 관계자가 답변을 하도록 돼 있는데, 약 9개월 동안 답변이 내려진 청원은 벌써 29개에 달한다. 기준 인원수를 달성하고 청와대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 글도 아직 7개나 남아있는 상태다. 

하루 평균 게시되는 글의 숫자만 700개에 달할 정도로 많은 국민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행정부와 국민 사이 직접적인 소통창구로서의 역할은 물론, 최근에는 여론과 민심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역할도 톡톡히 해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하자. [pixabay/CC0 creative commons]

하지만 뜨거운 관심만큼이나 부작용도 만만찮게 발생되고 있는 상황. 오늘 시사공감에서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다시 한 번 더 깊게 들여다보고 어떤 부분을 어떻게 개선해나가야 할지 함께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 사형을 청원한다고?
먼저 가장 최근 논란이 됐던 두 연예인에 대한 사형 청원을 짚고 넘어갈까 한다. 

사건은 가수 겸 배우 수지가 본인의 SNS에 유명 유튜버의 성추행 사건과 관련한 청원에 동의하는 ‘인증샷’을 올리면서부터 시작됐다. 이후 해당 청원의 참여 수는 급격하게 불어난 것은 물론이고, 청원에서 지목한 A스튜디오에 대한 개인정보가 온라인상을 떠돌기도 했다. 

사형청원이라니(...) 솔직히 좀 끔찍하다 [청와대 홈페이지]

그러나 A스튜디오는 해당 사건과 무관한 업체임이 밝혀지면서 논란은 가열됐다. 청원을 올린 이도 문제지만, 사실 확인이 제대로 되지도 않은 청원 글에 섣불리 지지를 표한 것은 공인으로써 무책임한 행동이었다는 것이다. 

수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던 그때,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연예인 수지의 사형을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게재됐다. 

청원 작성자는 “사건과 전혀 관계가 없는 스튜디오가 수지의 섣부른 행동으로 여론몰이의 희생양이 돼 폐업 위기에 처했다”며 “수지를 사형이란 엄벌에 처해 돼지들에게 사회 정의의 본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해당 글은 곧바로 삭제처리가 됐다. 

그로부터 며칠 뒤, 이번에는 가수 이홍기의 사형을 청원한다는 글이 게재돼 또 다시 논란이 불거졌다. 여성혐오, 5·18광주민주화운동 비하 등의 논란을 일으킨 바 있는 BJ의 인터넷방송을 이홍기가 시청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부 여성들이 반발을 하고 나선 것이다. 

논란이 되는 BJ의 인터넷방송을 본 게 사형 요구의 이유란다(...) [pxhere/CC0 public domain]

이 글도 마찬가지로 삭제가 되긴 했지만, 이 두 가지 사형 청원을 계기로 국민청원 게시판 폐지론마저 불거지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국민청원 게시판에 이처럼 ‘얼토당토 않는’ 글이 올라오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개인 간의 갈등을 해소해달라는 내용의 글은 이미 그 수를 헤아리기도 어려울 정도. 아이돌그룹 간의 투표 문제를 조사해달라거나, 게임회사가 이벤트 운영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는 글도 심심찮게 올라오는 형편이다. 

현재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무분별한 청원을 방지하기 위해 시스템 개편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줄을 잇고 있다. 

 

■ ‘삼권분립’ 훼손 지적도 

삼권분립 훼손에 대한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 2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정현식 판사에 대한 특별감사를 요구하는 글이 게재됐다. 이 글은 3일 만에 답변 기준 20만 명을 넘어 같은 달 20일 청와대의 답변이 발표됐다. 

답변자로 나선 정혜승 청와대 뉴미디어비서관은 “청와대가 판사를 파면하거나 감사할 권한은 없다”며 “법관이 재판 내용으로 인사 불이익을 받을 우려가 있다면 사법부의 독립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 비서관은 이후 법원행정처에 전화를 걸어 해당 청원의 내용을 전달했는데 바로 이 대목에서 삼권분립 훼손 지적이 제기됐다. 단순히 내용 전달에만 뜻이 있었다 하더라도, 받아들이는 사법부의 입장에서는 압력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헌법 제106조 1항은 ‘법관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않고는 파면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관은 직무집행에 있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한 경우에만 파면될 수 있으며, 법관의 판결에 일부 오류가 있다 하더라도 파면사유가 되지 않는다. 

법관의 판결에 일부 오류가 있다 해도 파면사유가 될 수는 없다. [pxhere/CC0 public domain]

법원 안팎에서는 청원을 전달한 것 자체가 사법부 독립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김태규 울산지법 부장판사는 지난 8일, 법원 내부통신망 ‘코트넷’에 “행정부의 부적절한 처분에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는 제목의 글을 게시하기도. 

김 부장판사는 해당 글에서 “국회의원의 급여를 최저시급으로 책정해 달라는 청원은 27만 명이나 서명했지만, 삼권분립을 이유로 국회에 알리지 않았는데 23만 명이나 서명한 판사 파면 청원은 굳이 그 내용을 통지했다”며 “외부로부터 사법권 침해가 이뤄진다면 행정부가 될 공산이 크다.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김 부장판사의 글에 동의한 이들은 현재 8명에 이른다. 추가로 대표판사 4명 이상이 동의하면 김 부장판사의 주장은 전국법관대표회의 안건으로 상정될 수 있다. 

 

■ 목적은 오직 이슈화뿐? 
당초 취지와는 달리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여론몰이의 장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만 청와대의 답변이 나오는데, 정작 답변 동영상의 조회수는 10만도 넘기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청와대 답변 동영상 조회수는 3만1695회에 불과하다. [청와대 유튜브]

61만 명 이상이 동의를 표하면서 역대 최다를 기록한 ‘김보름, 박지우 자격박탈 및 빙상연맹 처벌’ 청원만 보더라도 그렇다. 해당 청원에 대한 답변은 지난 3월 6일에 업로드 됐지만, 조회수는 3만1600회 수준에 그친다. 

모든 국민이 청와대의 답변을 유튜브 동영상으로만 접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상당한 괴리감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논란이 되는 사항을 이슈화시켜 더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것 자체는 오히려 좋은 일이다. 하지만 청원의 목적이 문제해결이 아닌 오직 이슈화에만 있다면 더 큰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의 시스템 허점과도 맞닿아 있는 부분이다. 

이론적으로는, 마음만 먹으면 특정 집단에 의한 여론조작도 얼마든지 가능한 시스템이다. [pixabay/CC0 creative commons]

현재 국민청원 게시판은 네이버나 트위터, 페이스북 등의 아이디만 가지고 있으면 누구나 활동이 가능하도록 돼 있다. 당초 카카오톡까지 총 4개의 소셜계정으로 참여할 수 있었으나, 일부 비정상적인 로그인 정황이 발견되면서 지난 3월부터 카카오톡 로그인을 중단시켰다. 

사실상 1인 3투표제로, 이론적으로만 따지면 6~7만 명만 참여해도 답변 기준선을 넘길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트위터의 경우, 이메일 주소만 있으면 아이디를 무제한으로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조직적인 중복청원이 이뤄지고 있다는 정황도 포착된 바 있다. 지난해 9월 30일 올라온 ‘낙태죄 폐지’ 청원은 청원 만료 하루 전날인 10월 29일에만 15만 명이 동의를 하면서 답변 기준선을 넘겼다. 이 과정에서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중복 청원을 했다’는 인증글이 대거 올라왔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 하나씩 개선해나가야 할 차례 

더 많은 순기능이 있다는 거, 여러분도 다 아시죠~? [pxhere/CC0 public domain]

오늘 시사공감에서는 이렇듯 국민청원 게시판의 부작용들에 대해 짚어봤다. 물론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순기능이 있음을 여러분도 다 알고 계실 줄로 믿는다. 9개월 간 국민청원 게시판을 통해 모인 여론이 이끌어낸 몇 가지 사회적 변화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또 국민소통공간을 자처하는 국민청원 게시판이 시끄러운 건, 어찌 보면 또 당연한 일이다. 여러 의견이 모여 하나의 결론을 도출해내는 과정에서 어떻게 잡음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떤 이는 그러더라. 민주주의란 게 원래 이렇게 시끄러운 거라고. 

하지만 잘못된 사실이나 일시적인 여론몰이에 의해 애꿎은 피해자들이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점, 청와대가 해결하지 못하는(혹은 해결해선 안 되는) 청원까지 무분별하게 게재되는 점 등은 분명히 고쳐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부작용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들이 마련된다면 더 건강한 소통창구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pixabay/CC0 creative commons]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실명확인제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날로 커지고 있다. 청원법 5조 4항에서는 ‘청원인의 성명·주소 등이 불분명하거나 청원 내용이 불명확한 때’ 청원을 수리하지 않도록 규정돼 있는데, 정작 국민청원 게시판이 이를 지키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실명인증을 도입하고 허위 글 게재에 따른 법적 책임경고 문구를 삽입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청원에 대한 책임을 좀 더 무겁게 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긍정적인 기능은 더욱 강화하고 부작용은 최소한으로 줄인다면, 국민청원 게시판은 더욱 건강한 소통창구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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