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조선소 노조, 장기불황에 대처해 합리적 판단을 해야할 때

[공감신문 김인영 기자] 조선업계가 구조조정에 휘말려 있다. 비조선 부문에서 돈되는 사업은 매각하고, 부동산도 팔고, 무엇보다도 직원들을 대량을 잘라내고 있다. 산처럼 짓누르는 부채 압박을 줄이고, 원가를 맞추기 위해서다. 수주 물량이 절벽처럼 급감하는데 어쩔수 없는 일이다. 그나마 대우조선해양·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은 낫다. 정부은행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자금을 대줘 연명하고, 주요 언론의 뉴스를 타고 있어 정부나 채권단이 시장원칙대로 처리하지도 못한다. 관료들은 국가경쟁력 운운하며 대형기업을 살려야 한다고 논리를 펴면고 있다.

하지만 중소 조선소들은 아무도 거덜떠보지도 않는다. 이름없는 중소조선사, 뉴스에도 잘 나오지 않는 남해안 벨트의 조선사들은 국책은행의 문턱을 넘어보지도 못하고 죽어가고 있다. 이들에겐 그야말로 시장경제가 적용되고 있다. 부도나면 파산시키고, 직원들은 어느날 갑자기 회사를 그만둬야 한다. 누구에게 하소연할수도 없다. 언론들도 거덜떠보지 않는다.

 

경남 통영시 도남동 소재 신아에스비(신아SB)라는 중소조선업체는 법원에 의해 청산절차가 진행중이다.

이 회사의 노동조합은 지난 3일 해산했다. 금속노조 경남지부 신아에스비지회 조합원들은 마지막 총회를 열어 투표로 해산을 의결했다.

이 회사 노조원은 가장 많을때 1,000여명에 달했다. 전체 직원도 협력업체를 포함하면 한창때는 4,000여명이나 됐다. 그러나 마지막 총회에 참석한 노조원은 50여명 뿐이었다.

노조가 해산을 한 것은 일터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청산절차가 진행중인 신아에스비는 곧 사라진다. 조선불황에 따른 경영난을 견디지 못한 이 회사는 2014년 4월 창원지법에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법원과 회사는 물론, 노조도 어떻게든 회사를 살려보려 했다.

여러 차례 매각시도를 했지만 모두 물거품이었다. 이 회사를 사려는 원매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법원은 해당 업체들을 인수합병 시장에 내놓았지만 번번이 매각이 불발했다. 조선불황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선뜻 거액을 들여 인수하려는 업체가 나서지 않은 것이다. 법원 관계자들은 "불황기여서 매각가를 아무리 낮춰도 조선업체를 사겠다는 기업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결국은 지난해 파산신청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파산절차에 들어가면 직원들은 정리된 자산 가운데 법으로 정한 일정액의 밀린 임금을 받는 게 고작이다. 하소연할 데도 없다. 노조가 설 자리도 당연히 없어졌다.

경남 통영의 신아에스비 /연합뉴스

이 회사는 몇년전만 해도 직원들로 북적거렸지만, 지금 야드는 텅 비어있다. 직원들이 들락거렸던 조선소 주변 식당에는 파리만 날린다. 신아에스비는 1946년 소규모 목제 어선을 건조하는 조선소로 시작, 사명을 신아조선, ㈜신아, SLS조선 등으로 바꾸면서 70년 가까이 버텼다. 중형 탱커가 주력 상품이던 신아에스비는 2008년 세계금융위기 전 조선호황기때는 수주잔량(CGT) 기준으로 한때 세계 16위까지 올랐다. 2009년에는 6억 달러 수출탑까지 받았다.

그러나 글로벌 경기위기 이후 선박 수주가 끊기며 경영난을 겪었다. 그 다음 순서는 뻔하다. 법정관리, 그리고 청산이다. 채권단은 빌려준 돈을 회수하기 급급하다. 채권단에게 직원 고용보장은 소귀에 경읽기나 다름없다. 올초 노조원들이 천막농성을 벌였지만, 소용없는 일이다.

 

경남 해안에는 신아에스비 이외에도 많은 중견조선소들이 법정관리 또는 파산의 기로에 서 있다. 조선경기가 호황일 때 대거 증설을 한 업체들이 많다. 조선호황이 오래갈줄 알았다. 아니, 영원할줄 알았다.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에 선박 블록을 공급하는 가야중공업과 계열회사인 동일조선·삼화조선(이상 통영시) 3사는 지난해 6월 창원지법에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법원은 지난해와 올해 3개 회사를 묶어 매각하려 했지만 인수자가 없어 실패했다.

또다른 협력업체인 장한(거제시) 역시 지난해 9월 창원지법에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조선기자재 생산업체인 삼양플랜트(함안군)·대아기업(통영시)은 올해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이들 기업은 대형조선소에 납품을 하는 업체들로 연간 매출액이 수십~수백억원에 달한다. 법원은 이들 업체를 시장에 내놓았지만 사는 사람이 없어 번번이 매각에 실패했다.

 

정부는 최근 12조원이나 되는 천문학적 재원을 마련해 조선산업 구조조정을 단행한다고 발표했다. 내용을 뜯어보면 조선·해운산업을 지원하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조선·해운산업을 지원하다 부실을 키워온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자본을 확충해주는 게 골자다. 은행 살리기가 주목적이다. 그것도 대우조선을 비롯해 대형조선소에 몇조원씩 펑펑 지원하다 생긴 부실이다. 그나마 중소조선소를 지원하다 물린 금액에 대한 보전은 논의의 대상이 아니다. 지원한 것이 별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제 남은 것은 대형3사다. 그나마 정부, 즉 국책은행이 도와줬기 때문에 지금까지 수면 위에 떠있다. 대마불사(大馬不死)의 원칙이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신아에스비처럼 중소조선소였으면 이들 회사에 공적자금성 국책은행의 지원이 있었을까. 청와대 서별관회의의 주제에 올랐을까. 어쨌든 큰 회사이기에 정부는 살리려고 무던히도 애썼고, 지금은 더 지원해 살려놓을지, 합칠지, 파산시킬지를 고민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3사의 노조들은 회사를 상대로 구조조정에 반대하고, 궁극적으로는 채권단과 정부와의 투쟁을 벌이고 있다. 대우조선 노조는 조합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파업을 결정했고, 현대중공업 노조도 쟁의발생신고등 파업을 위한 단계를 밟아나가고 있다. 노조가 없는 삼성중공업에서도 노동자협의회가 회사측의 구조조정안을 놓고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다 법정관리에 들어간 STX조선해양에서도 노조가 파업을 결의했다.

STX조선해양 /연합뉴스

대형3사와 STX조선 노조의 공통된 요구는 구조조정안을 수정하자는 얘기다. 구조조정의 핵심은 직원 자르는 것이고, 노조로선 당연히 반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 대형사 노조 또는 근로자대표들은 현실을 인식해야 한다. 조선불황 초기인 2008년엔 신아에스비 같은 중소업계에서 시작되었다가, 그후 성동조선·STX조선등 비교적 덩치가 큰 회사고 번졌고, 지금은 대형사로 옮겨붙었다. 현재의 불황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 5년은 간다고 보아야 한다. 그때까지 살아남는 게 중요하다. 회사가 사라지면 노조도 없어진다.

그나마 대형 조선3사는 국책은행과 금융권의 지원을 받아 자금을 굴려왔다. 올들어 수주는 거의 절벽이다. 일본 조선업계를 보라. 그들은 어려울 때 임금을 줄이더라도 되도록 많은 근로자를 채용하도록 구조조정에 협조했다.

노조가 파업을 결의하면 이젠 채권단이나 회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불법 파업에 대한 법적 조치를 하면 된다. 그나마 영업이익이 날때는 무리한 요구라도 들어주었고, 파업을 중단시켜 일을 하도록 유도했다. 일감이 넘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일거리가 없다. 파업하면 임금 안주면 된다. 법을 어기면 법대로 처리하면 된다. 노동시장이 악화됐다. 조선소 노조는 영악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더 많은 노조원들에게 실직의 아픔을 줄수 있다. 노조 자체가 없어질수도 있다. 길게 보면, 대마불사는 없다.

저작권자 © 공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