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죽음은 인간에게 어떤 의미일까.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죽음을 인식할 수 없다. 고로 세상의 모든 종 중에서, 인간만이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존재이다. 그렇다.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몇 십 년 후에, 또는 당장 오늘. 사람들은 죽음을 새로운 시작으로 보기도 하고, 완전한 끝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어떻게 죽음을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현재 삶의 태도가 달라진다. 우리는 어떤 태도로 죽음을 준비해야 할까.

트랜스 휴머니스트들은 죽음을 치료할 수 있는 질병으로 취급하고, 거부들은 부활을 꿈꾸며 자신의 몸을 냉동 시키는데 아낌없이 돈을 지불한다. 영혼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미처 세상을 떠나지 못한 채 육체 안에 갇혀 꽝꽝 얼어버릴 것이다.

하지만 아직 인간들은 죽음을 정복하지 못했고, 신체 냉동 보존 또한 피부에 와닿지 않는 일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 걱정하며 신께서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정말 죽은 자들이 사는 곳이 있을까. 있다면, 어떤 곳일까. 아니 정말로 구천을 떠도는 영이 있단 말인가.

우리들은 명절이나 기일이 되면 제사를 지낸다(그 외 몇 차례 더 지내는 경우도 있지만). 과일, 고기, 전, 국, 떡 등을 그릇에 담뿍 담고, 올바른 위치에 따라 올려놓는다. 절을 하고, 추억하고, 제삿밥을 먹는다. 이처럼 멕시코인들도 죽은 이들을 위한 날이 있다.

멕시코인들은 ‘죽은 자들의 날’이 되면 망자들이 가족과 친구들을 보기 위해 세상으로 내려온다고 믿는다. 멕시코 원주민들이 죽음의 신에게 제의를 올리던 오랜 전통에서 비롯되었는데, 매년 10월 말일엔 제단을 꾸미고, 11월 1일엔 죽은 아이들을-11월 2일엔 죽은 어른들을 위해 기도를 올린다.

일부 지역에서는 해골 복장을 하고 가족이나 친구의 묘를 찾는데, 마리골드 꽃과 촛불로 무덤을 장식하고 ‘죽은 이들과 함께’ 밤을 보낸다. 호스텔 직원이 어떤 이들은 무덤에서 꺼낸 뼈를 닦는다고 말했다.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는데, 생각해보면 죽음이 친숙한 이들에겐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지 싶다(아직도 진실 여부를 모른다).

10월 31일. 나는 쁠라야 델 까르멘에서 죽은 자들의 날을 맞이했다. 여행자들이 몰리는 관광지였기에, 죽은 자들의 날이 되자 한층 더 떠들썩해졌다. 저녁 즈음 큰 대로에 나가보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물결치고 있었다. 해골 분장을 한 사람들, 인형탈을 쓴 사람들, 마법사 복장을 한 사람들, 심지어 붕대로 뚤뚤 감은 꼬마도 있었다. 꼬마는 작은 바스켓을 들고 사람들에게 사탕을 달라고 하는 대신 나눠주었는데, 나 또한 아이에게 오렌지 맛 사탕을 받았다.

10월 31일은 미국의 할로윈 데이이기도 했다. 할로윈 데이는 (죽은 자들의 날과 비슷하게) 켈트족이 죽음의 신에게 제의를 올리며 망자들을 달래고 악령을 내쫓던 전통 축제 ‘사윈’에서 내려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람들은 할로윈 데이가 되면 악령이나 귀신 분장을 하는데, 이는 악령들이 자신들과 같은 악령이라고 착각하여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죽은 자들의 날과 할로윈 데이의 만남. 죽음을 주제로 해 언뜻 비슷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선 차이가 있다. 죽은 자들의 날은 사람들이 기다렸던 망자들을 환영하고 만남을 즐기지만, 할로윈 데이는 망자들이 산 자들을 해코지할까 무서운 사람들이 그들처럼 변장한다. 죽음을 사랑하거나, 두려워하거나-우리는 각자 다른 시선으로 죽음을 바라본다. 나는 어쩐지 멕시코인들의 시선이 마음에 들었다. 죽음은 완전한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다. 우리가 그렇게 믿는다면 말이다.

11월 1일이 되면,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열릴 것이다. 망자들은 자신을 잊지 않은 가족과 친구들의 품으로 돌아가 함께 음식을 먹고 노래를 부를 테다. 대로에 있는 가게들 앞엔 크거나 간소한 제단들이 장식되어 있었다. 커다란 해골 인형들, 맥주병에 꽂아 넣은 마리골드 다발, 술, 과일, 액자에 끼워 넣은 망자의 사진. 곳곳에 놓인 초들이 제단을 환히 밝혀주었다.

나는 제단을 보고 또 보았다. 그리고 누군지 모를 망자에게 길을 잘 찾아올 수 있기를 바란다고, 나지막이 속삭였다.

저작권자 © 공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