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교양공감]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될 채비를 하고 있다. 오늘은 비가 내려 우산을 쓰고 출근을 했는데, 회사에 도착하니 양말이 축축하게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요 며칠은 에어컨도 없는 사무실에서 무더위에 할딱댔었는데, 오랜만의 비 소식 덕분에 오늘은 다행히 열기가 한소끔 가신 듯 싶다.

쏟아져 내리는 여름의 비는 보는 것 만으로도(물론 실제로도 기온이 조금 낮아지긴 하지만) 시원하다. 다른 여느 계절의 비는 찔끔찔끔 내려서 복장 터지게 만드는데, 유난히 여름은 굵은 빗발이 쏴- 하고 내리퍼붓는다.

여름철 퍼붓는 장대비를 볼 때면 '참 시워-언하게 내린다'는 생각이 든다. [Photo by Geetanjal Khanna on Unsplash]

그래, 여름에 내리는 비는 참, 속 시원하다. 마치 누군가에게 속내를 솔직하게 터놓는 것처럼. 그래서 지켜보고 있자면 감상에 젖어들고, 빗물 묻은 창문도 특별하게 보일 만큼 상념에 잠길 때도 있다. 마음 속 깊은 저 밑에 감춰뒀던 기억 속의 옛 일, 지나가 버린 과거의 선택, 흘러간 사랑 등이 차 오른 빗물을 타고 둥둥 떠다닌다.

우리, 따악 오늘 하루만 궁상 좀 '본격적으로' 떨어보자. 누가누가 더 후회하나. [Photo by Geetanjal Khanna on Unsplash]

저 비를 창가에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고 있으면, 왜 나는 여름비처럼 솔직하지 못했나 싶다. 떠나가는 뒷모습을 왜 그냥 보고만 있었는지, 몇 해가 지나가도 여전히 너를 그리워 할 거라고, 그러니 가지 말라고 말하지 못했나 싶다. 아니면 아직 기회가 있을 때, 지금보단 그리 멀어지지 않은 그때 진작 너에게 돌아갈 걸. 그것도 아니다. 그냥 애초에 있을 때 잘할 걸. 없어지고 난 지금 이렇게 후회하지 말고, 조금 더 최선을 다해볼 걸.

교양공감 팀과 함께 창가에 들이치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지나간 사랑에 대한 후회의 감정을 쏟아내 보자. 퍼붓는 폭우를 들여다보면서 저 비처럼 스스로의 감정에 솔직해져보시길. 후회든 뭐든 훌훌 시원하게 털어버릴 수 있을지 모르니까. 이번에 소개해드릴 노래들은 다 솔직하고 담백하다. 이것저것 재고 따지고, 자존심을 내세우던 우리의 지질하고 후회스러운 과거와는 다르게.

■ Come Back To Bed

늘 같이 있던 공간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져 있을 때도 후회가 불쑥 찾아든다. 사랑하는 연인과 다툴 때는, 자존심 때문에 차마 사과하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텅빈 방, 차갑게 식어버린 침대에 몸을 누일 때는 그리움과 후회, 외로움이 고갤 든다. 가사 중 ‘98 and 6 degrees’는 화씨 98.6도, 사람의 체온을 의미한다. John은 함께 있어 따뜻했을 침대가 너무 차갑다면서, 후회하는 감정을 온도로 표현해냈다.

함께 노닥거리던 침대에, 혼자 덩그러니 누우면 세상 혼자인 듯한 고독감이 밀려든다. [Photo by Alexander Possingham on Unsplash]

John Mayer이 연인에게 무언가 속상한 말을 뱉었는가보다. 그는 '아침에 화가 났을 수도 있겠다'면서, 자신이 했던 말을 취소하겠다고 말한다. 그저 차가운 침대에 혼자만 내버려두지 말라면서, 침대로 돌아와 주기를 바란다. 그는 네 사랑에 대해 내가 죄책감을 갖게 만들지 말아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어쨌거나 ‘잘못했다’는 말을 하진 않는다. 우리가 연인과 다투고 난 뒤 쉽사리 사과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한 모양새다. 후회할 거면서 자존심 세우기는…

 

■ Where Did My Baby Go

John Legend의 이 곡은 제목만 놓고 보자면 마치 “연인이 실종됐어요”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가사를 뒤적여보면 내가 사랑하는 그녀가 어디로 가버렸는지 모르겠다고, 너무 그립다고 솔직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놓고 있다. 그는 불러봐도 답 없는 그녀를 찾기 위해 “혹시 그녀를 만나면 꼭 말해주세요, 너무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고”라 부탁한다.

톰은 썸머의 음악 취향(링고 스타를 좋아한다)을 대놓고 비웃는다. 가벼이 지나칠 수 있는 장면이지만 영화를 다시 보면 눈에 확 들어오더라. [500일의 썸머 영화 장면]

그리움을 토로한 뒤 그는 자신의 잘못을 되짚는다. 너무 오랫동안 그녀를 무시했고, 그래서 인사도 없이 그녀가 떠나버린 뒤에도 알아채지 못했노라고, 자기가 잠든 깊은 밤 조용히 떠난 것 같다고. 살면서 우리는 온갖 실수들을 한다. 하지만 그것들이 실수인지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다.

흔히 영화 ‘500일의 썸머’를 “곱씹을수록 다른 감상을 전해준다”고들 평가한다. 영화를 처음 보면 어느 날 훌쩍 떠나버린 썸머(주이 디샤넬)가 ‘나쁜X’처럼 느껴지고, 두 번째 보면 톰(조셉 고든 레빗)이 썸머의 취향을 무시하는 무신경하고 둔한 놈이라 느껴진다. 아마 John Legend도 무신경하게, 둔하게 연인에게 상처를 준 일이 있었을 것이다. 그때의 후회스러운 감정이 곡 속에 절절히 녹아들어 있다.

■ 잘할 걸

현세대 최고의 싱어송라이터 중 한 명인 장범준이 직접 작사와 작곡을 맡은 노래들은 늘 솔직하다. 속내를 감추지도 않고, 핑계를 대거나 기교를 부리지도 않는다. 버스커버스커 2집 수록곡인 ‘잘할 걸’ 역시 마찬가지다. 고요하고 어두운 밤, 지금은 닿을 수 없는 ‘그대’를 생각한다는 그는 “조금만 더 잘할 걸, 조금만 더 참을 걸 그랬다”고 노래한다.

곡은 후회에서 단념의 정서로 전개된다. 그는 이미 떠난 그대에게 이것 하나만 ‘제발, 부디’ 기억해주길 당부한다. 그대가 그때 외워두었던 내 모습을 잊지 말아달라고.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된다면 나는 그때 그 모습 그대로 있겠는 뜻이 담겨있는 것만 같이 들려온다.

"계산 없이 사랑하고, 그녀와 함께인 것에 감사하며 사시오"라는 말은 결국 '있을 때 잘해'로 치환된다. [이프 온리 영화 장면]

그 애는 내 걸음이 조금만 더 느렸으면, 하고 바랐을 것이다. 비싼 선물을 사주겠다며 밤이 늦도록 일하기보단, 같이 퇴근하면서 잠깐이라도 서로를 더 들여다볼 시간이 있기를 바랐을 것이고. 조금만 더 천천히 걸을 걸, 시간을 내서라도 손 한 번만 더 잡으러 갈 걸. 아니, 그냥, 잘할 걸. 노래는 그런 후회를 담고 있다. 잘할 걸, 조금만 더 참을 걸 그랬지 하고. 그러나 그런 늦은 후회는 공허한 메아리밖에 되질 않는다.

■ When I Was Your Man

앞서 소개한 버스커버스커의 ‘잘할 걸’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후회하는 노래, Bruno Mars의 이 곡 ‘When I Was Your Man’은 팬들 사이에서도 가사가 이미 진작 ‘애절함 보스’라 평가되고 있다. 특히 이 곡은 그저 떠나간 연인을 떠올리며 후회하는 상황이 아닌, 다른 사랑을 하고 있는 옛 연인이 행복하게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는 상황인지라 한층 더 짠하다.

그 사람이 하고싶단 걸 함께 해주는 것. 어려운 일도 아닌데 왜 그땐 못했을까. [Photo by Alvin Mahmudov on Unsplash]

그는 꽃다발을 안겨줬어야 하는데, 손을 잡아줬어야 하는데, 너무 어리고 바보같아서 깨닫지 못했다면서 후회한다. 그리고 그런 후회들은 눈을 감을 때마다 떠올라 그를 괴롭힌다. 춤추는 걸 그렇게도 좋아했던 그녀를 왜 이곳저곳 파티에 데려가지 않았었느냐고 스스로를 질책한다.

이별 뒤에는 이별 시계가 흘러가게 마련이다. 그 시간들은 뜯어진 두 사람 사이를 다시 봉합할 수 있는 일종의 골든타임인 셈이다. 하지만 그 시간조차 지나고 나면, 상대방은 또 다시 새로운 사랑을 싹틔우고 말 것이다. 그땐 돌이킬 수도 없다. 이 노래의 말미에는 그녀에게 있어 흘러가버린 옛 사랑이 된 Bruno Mars가, 연인의 새로운 상대에게 자신이 못했던 것들을 대신 해주길 부탁한다. ‘내가 너의 남자였을 때(When I Was your Man)’ 진작 해줬어야 하는 모든 일들을.

■ 후회는 이제 그만

이번에 소개해드린 곡들을 들으며 깊은 후회감에 빠지셨을 분들이 있을 게다. 누군가는 공연히 감상적인 기분이 돼서, 옛 사랑에 대한 그리움으로 눈물을 쏟으셨을지도 모르겠다.

궁상 다 떨었으면 이제 다시 고개를 들어야지.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이다. [Photo by Greg Raines on Unsplash]

그리고 그런 분들 중 대부분은 아마 돌아갈 수 있는 타이밍을 한참이나 놓치셨으리라. 대개 후회는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치밀어 오르니까. 시간을 놓치고, 영영 연인으로 돌아갈 수 없을 때가 돼서야 자기의 잘못을 돌아보는 법이니까.

안타깝고 속상하시겠지만, 조금은 아프게 들릴 수 있겠지만 어쩔 수 없다. 오래된 반창고는 떼내야 하는 법이다. 따끔해도 그건 어쩔 수 없다. 인생에는 ‘되감기 버튼’이 없다. 이미 여러분이 타인에게 남겨버린 상처를 돌이킬 수는 없다.

반창고를 떼내면, 그 자리에 또 새 살이 돋겠지. [Photo by Brian Patrick Tagalog on Unsplash]

그래도 괜찮다. 어떤 연애를 했건 시간이 지나고 나면 후회가 남게 마련이다. 아마 여러분은 그때 당시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을 것이고, 그때는 알지 못했던 것들을 지금이라도 깨달은 것이니 그나마 다행이다. 이제는 그만 후회하시길 바란다. 옛 연인에게 질척대지 말고, 앞으로 여러분에게 다가올 새로운 사랑에게 좀 더 최선을 다해 보자. 장담컨대 분명 또 한번 사랑이 여러분에게 찾아올 테고, 그땐 좀 더 노력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되감기 버튼이 없는 인생은 계속해서 흘러만 갈 뿐, 아마 무수히 오랜 시간이 지나더라도, 우리는 절대로 시간을 되돌릴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살아가야 한다. 훗날 조금이라도 ‘덜’ 후회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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