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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신문 지해수 칼럼] 로미오와 줄리엣의 열정 찾기

[공감신문] 2002년 여름을 기억한다. 당시 전 세계인들은 그 어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광경을 눈으로 실감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대한민국 대표팀의 16강 진출, 8강 진출, 거기에 4강이라니! 후반에 강한 우리 대표 팀의 특성(?)이, 경기를 더욱 쫄깃하게 했다. 그리고 사실, 난 몇 년 동안 축구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 월드컵 독일과의 경기를 통해, 2002년 월드컵 이탈리아 전만큼- 아니 그보다 훨씬 더 큰 감격을 받았다.

그렇다. 전 세계가 1%의 가능성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16강 진출? 아니, 독일과의 경기에서 우리가 패배할 확률은 99%일 거라고. 과연 1%의 가능성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더라면 우리에게 이런 기적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나는 주로 혼자 하는 운동을 즐긴다. 수영이나 등산, 자전거도 혼자서 즐기고 웨이트 트레이닝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한번씩, 스스로 약속을 거는 게 있다. 이를 테면 수영을 할 때, ‘마지막 다섯 바퀴는 하얗게 불태우기’ 이런 것이다. 수영 선수가 될 것도 아니고, 누구와 시합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내 기록이 어떠하든(아무도 내 기록을 재고 있지 않으며 나 스스로도 그렇다) 젖 먹던 힘까지 내며 온몸을 휘젓는다.

일본 만화 <내일의 죠>에서. ‘하얗게 불태웠어’라는 유행어는 사실 이 만화에서 나온 명대사다.

사실 이건 연습이다. 최선을 다하는 연습. 나는 대부분의 일상에서 최선을 다하는 경험을 하지 못한다. 성실히 하거나 열심히 할 순 있지만, 최선을 다하는 경우는 드물다. 아니, 그런 ‘기회’가 드문 것인지도 모르겠다.

글을 쓸 때에 노력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글은 ‘최선’보다 ‘정성’을 다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요리와 비슷하다. <냉장고를 부탁해>같은 프로그램에서 쉐프들이 한정된 시간과 재료를 가지고 최선을 다할 수는 있겠지만, 대부분 손님에게 음식을 대접할 때는 ‘정성껏’한다. 그런 차이다.

시험장에 늦을 뻔한 누군가가 지각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여 뛸 수는 있다, 하지만 정성껏 하지는 않는다. 대신 평소 달리기 실력이 나올 수 있다. 15분 안에 요리를 만드는 쉐프들에게 정성이 없는 게 아니다. 정성은 평소에 연습하는 것이다.

이처럼 찬찬히 따져보면, ‘최선을 다하는’, ‘최선을 다 해볼’ 기회란 흔치 않다. 분명 최선을 다해야하는 일이 생길 것이고, 그것들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일일 확률이 크다. 거기에 젖먹던 힘까지 끄집어내는 것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최선을 다해본 사람은, 다음에도 최선을 다할 수 있을 확률이 크다. 머릿속으로 효율성과 가능성을 계산하여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사람은 이후에도 그럴 가능성이 더 높다. 이걸 가장 잘 연습할 수 있을 때는 언제일까. 바로 잃을 게 없을 때. 10대, 20대 어린 나이에 이런 경험들을 미리 해보아야 한다. 그 대상과 목표가 꼭 대단할 필요는 없다.

어른들은 잊었을지도 모른다. 이루어지지 못할 첫사랑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아주 어렴풋하고 미숙했던 자신을 말이다. ‘연예인 쫓아다니면 밥이 나오냐. 들어가서 공부나 해라.’라고 말하겠지만, 그들이 따라다니던 첫사랑과 연예인 둘 다- 이루어지지 못하는 환상의 존재들이었다. 어른들은 청소년들에게 ‘쓸데없는 짓거리’라 말한다. 그러나 청소년들과 청년들은 여기에 상처 받지 말고, 그런 어른들의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 그런 ‘순수의 시대’가 다 지나갔으니 얼마나 안타까운가.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중에서

어른들은 ‘잃을 게 많아서’ 그런다. 그들 대부분은 가정을 꾸리고 있으며, 사회적인 위치와 책임질 것들이 많다. 일구어 놓은 인맥, 자산, 가치관들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니 어떤 것에 ‘최선을 다하기’가 망설여질 수밖에. 자신이 가진 사랑하고 소중한 것들을 위하여, 효율적으로 계산하게 된다. 밥 굶어도 무대에 서면 좋아, 하던 배우도 아기가 태어나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녀에게도 하고 싶은 건 무턱대고 해버리던 찬란했던 청춘이 있었을 텐데...

그런데 중요한 건 어른들이 이런 효율성을, 청소년들에게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점이다.

10대는 열정을 불태우기 좋은 나이다. 아니, 타오르는 나이다. 이화학당 다니던 유관순 열사도 10대 나이에 앞장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일제 법정에 서야했던 그녀는 끝까지 곧은 신념을 유지하여 ‘법정모독죄’까지 받을 정도였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나오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나이도 상당히 어렸다. 줄리엣의 나이는 만 14세였다고 한다. 영화 <타이타닉>에 나오는 잭과 로즈도 불과 성인이 된지 얼마 안 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니 그들이 그렇게 짧은 시간동안, 목숨을 걸만큼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10대들에겐 열정을 불태울 만한 것들이 필요하다. 그들은 불이기에, 장작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어른들의 바람대로 ‘공부’가 된다면 좋겠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다. 10대에 예체능을 선택했던 이들은, 살면서 입시할 때 가장 열정적이었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과연 ‘대학’에 가기 위하여 그랬을까? 그것도 맞지만 그 땐 어디에도 붙기 좋은 불이라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밤새 데생을 할 수 있었고, 토마토만 먹으며 무용 연습을 할 수 있었겠지.

우리가 알고 있는 몇몇 위인이라 불리는 인물들이 ‘그 나이’에 그런 곡을 쓸 수 있었던 것 역시, 천재성과 더불어 예술혼을 불사르기에 좋은 시기였기 때문일지도.

그러나 요즘 10대들은 너무 ‘어른스럽다’. 철들었다는 것과 다른 맥락이다. 그들은 아주 효율적으로 생각해서 최선을 다하는 연습을 하지 못하는 분위기에 놓여있다. 이미 너무 많은 것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티끌 모아봤자 티끌’, ‘인생은 월세 아니면 전세’. 흙수저나 플라스틱 수저가 부자가 되는 길은 연예인이 되어 빵- 뜨거나 ‘횡재’를 하는 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비트코인이나 주식에 관심 있음은 물론이요, 얼마 전엔 10대 사이에서 스포츠 내기 도박을 했더라는 기사도 보았었다. 누가 이들에게 이런 것들을 가르친 걸까? 그게 누구건- 중요한건 ‘도박’이 아니다. 인생의 어느 목표를 갖는 일이 도박보다 ‘모호’하다 여기는 그 마음. 어쩌다 그걸 배웠느냐는 것이다.

작년이었던가, 손석희 앵커 은퇴 후 계획을 묻는 인터뷰에서 그는 ‘서울에 공기 청정 카페를 열고 싶다’고 대답을 했었다. 이 짧은 클립이 SNS에서 화제가 됐었는데, 거기에 달린 베스트 댓글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아마도 고등학생으로 추정되는 여학생의 댓글. ‘문과의 결론은 어차피 카페 사장. 다 스킵(skip)하고 카페나 차리자.’였다. ‘저희는 내일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는 말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어느 중년의 은퇴 계획을, 열정을 태워본 적 없는 청소년은 이렇게 받아들이고 있던 것이다.

나는 이런 친구들을 심지어 요새 꽤나 자주 접하게 된다. 열 살 즈음 어린 친구들은 나에게 ‘돈을 벌고 싶지 않으세요?’하고 묻는다. 그럼 나는, ‘내가 돈이 없어 보이니?’한다. 그건 아니랬다. 그럼 왜 그걸 묻느냐고 했더니, ‘돈을 벌수 있는 데 벌려고 안하는 것 같아서요.’랬다. 자신들이 ‘나’였다면 무조건 블로그를 했을 거란다. 신문에 칼럼을 쓰지 않고, 블로그로 광고 수입을 벌었을 거라구. 유명한 사람들하고 친하면서 그들을 통해서 당연히 뭘 했을 거란다. 글쎄? 나는 블로그 흥미 없고- 그냥 친구들과 잘 지내는 게 좋은데.

그럼 너희는 돈 벌어서 뭐할 거냐고 물었다. 여행 다니고- 쇼핑하고- 뻔한 답이 나온다. 근데 이들의 초점은, 수고를 덜고 쉽게 돈 버는 방법을 왜 놓치고 있냐는 것이다. 이들은 살면서 최선을 다해본 적이 있을까? 아니, 앞으로 그럴 일이 생길까?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해서 돈을 버는 심정을 알게 될까.

우리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나이를 지닌 이들에게, 로미오와 줄리엣의 열정을 찾아주어야 한다. 잃어버릴 것이 생기기 전에, 최선을 다한 첫사랑이 깨어지는 이별의 경험을- 노력이 결과를 내지 못하는 좌절감을- 자신을 하얗게 태워버린 짜릿한 해방감을- 성취감을- 맛보게 해야 한다. 사실 ‘순수의 시대’에 이것을 배우는 게 가장 중요하다.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중에서

그들의 ‘순수의 시대’에 무력한 먹구름을 들이밀지 말자. 청춘들에게 막연하게 힘내라, 고 말하는 것만큼 위험하다. 오늘 현실은 좌절에 가까울 수 있다. 그들에게 거짓말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과연 항상 오늘만 같을까. 우리 1%의 가능성을 가지고 독일도 이겼는데, 그것도 골을 두 번이나 넣고. 세계 최정상 급 독일 골도 다 막고!

언젠가 그들이 힘을 가질 때에- 지금과는 또 다른 세상과 위치 속에서, 최선을 다해야하는 일들이 생길 거다. 그때를 위하여- 줄리엣처럼 죽은 듯이 잠이 든 열정을, 그 불씨를 깨워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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