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뉴스
HOME 칼럼공감 정세음 칼럼
[공감신문 정세음 칼럼] 그날의 바다와 오늘의 바다 - 멕시코, 아쿠말

[공감신문] 한순간이었다.

바위에서 미끄러져 바다에 빠져버린 건. 당시 여덟 살이었던 나는 고모와 언니를 따라 부산의 어느 바닷가에서 바위에 붙어있던 다슬기를 잡고 있었다. 옆구리에 다슬기가 반쯤 담긴 반찬통을 끼고서 그들을 놓칠세라 쪼르르 쫓아다녔다. 해변을 따라 늘어선 바위들을 습격하여 숨어있던 다슬기를 잡아내는 일은 꽤나 흥미로웠다. 아쉽게도 마지막 남은 바위로 가려면 바다 쪽으로 더 들어가야 했는데, 당시 나에겐 조금 위험해 보였다.

고모는 나에게 해변에서 기다리라고 했지만, 이미 호기심과 모험심에 심취한 나는 고집을 부려 그들을 따라나섰다. 바위에 달라붙어 있는 이끼들이 물에 푹 젖어있었고, 나는 발을 내디딜 때마다 약간씩 휘청거렸다.

무서웠다. 그러나 나를 다시 돌려보낼까 봐 입을 꾹 다물고 바위의 끝 쪽에 다다랐다. 조심조심, 다리를 쭈그리고 앉아 다슬기를 반찬통에 집어넣었다. 그새 파도가 거세졌고 고모는 나와 언니에게 그만 돌아가자고 말했다. 나는 집에 가서 다슬기 국을 먹을 생각에 들뜨며 일어섰고, 그 순간 중심을 잃고 바위에서 떨어졌다.

첨벙, 머리부터 바다에 빠졌다. 나의 흔적을 지우려는 듯 파도가 내 위를 덮쳤다. 입속으로 짜디짠 바닷물이 계속해서 밀려들어왔고, 시야에 보이는 건 뿌연 바닷물과 거뭇한 바위의 밑동이 전부였다. 발악했다. 살고 싶었으니까. 지금까지 죽음에 대해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던 꼬마는 그제야 본능적으로 죽음을 알게 되었다.

바로 그때, 내 몸이 수면 위에 떠올랐다. 고모가 내 발목을 잡아 들어 올린 덕분이었다. 나는 거꾸로인 상태로 눈을 끔뻑거렸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일까. 슬슬 정신이 돌아오니 갑자기 온몸이 쓰라렸다. 내 무릎과 다리는 바위에 쓸려서 생긴 상처에서 나온 피로 물들어 있었다. 나는 울음을 터뜨렸고, 바닷물에 섞인 피가 계속해서 흘러내렸다.

그날의 바다가 나에게 남긴 것은 잠수 공포증이었다. 서 있는 상태에서 물이 가슴께 차오르기만 해도 불안에 시달렸고, 머리가 잠기는 날엔 발작이라도 할 것처럼 온몸이 떨렸다. 잠수는 그날의 바다를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그날의 바다는 죽음을 떠올리게 했다.

그래서 S가 아쿠말에 가자고 했을 때, 선뜻 나서지 못했다. 아쿠말은 바다거북과 수영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바다거북뿐만 아니라 다양한 해양 생물을 볼 수 있는데, 그러려면 잠수를 해야만 했다.

물론 그 이후 기초 수영을 배웠지만 아쿠말은 한계가 없는 바다였고, 내가 가라앉는다고 해도 누군가 구해줄 수 있는지조차 확실하지 않았다. 게다가 수영은 너무 오랜만이었다. 그래도 용기를 내볼까? S는 이미 바다거북과 수영할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차마 거절하지 못한 나는-자신이 없었지만-가겠다고 말했다.

다음 날, 아쿠말에 도착한 나와 S는 스노클링 장비를 대여했다. 이제 진짜 들어가는 거다. 정말로? 나는 기껏 장비까지 빌려놓고 해변 앞에서 쭈뼛거렸다. S는 뒤돌아서 그런 나를 어리둥절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못 하겠어….” 나의 말에 S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말했다.

“도망치지 마. 이겨낼 수 있다니까. 정말이야. 계속 도망치면 기회조차 없어.” 그냥 하는 소리는 아닌 듯했다. 생각해보면 S는 언제나 부딪히며 이겨내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정말로 이길 수 있다고? 다른 건 몰라도, 바다를?

“너 겁쟁이구나. 안 그런 줄 알았는데.” S의 말이 내 속을 박박 긁었다. 나 겁쟁이 아니거든. 말은 못 하고 괜히 발로 모래를 푹푹 팠다. 자존심이 상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의 말에 반박하고 싶어도 딱히 할 말이 없었던 것도 맞다. 그래서 결국 “바다에 들어가겠다”라고 한 것도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었다. 나 겁쟁이 아니거든!

솔직히 말은 그렇게 했어도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장비를 착용하고 성큼성큼 바다에 들어갔다. 지면에서 발을 떼고 팔을 저으며 부드럽게 앞으로 나아갔다. 계속 나아가는 것만이 내가 하는 일의 전부였다. 수면 위로 올라가지 않았기에 육지에서 얼마만큼 떨어졌는지도 알 수 없었다.

꽤 멀리 왔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편안했다. 여유가 생기자, 그제야 수면 아래의 세계를 바라볼 수 있었다. 소라, 가자미, 해초, 각양각색의 물고기들이 눈 안에 들어왔다. 그들은 저만의 방식대로 살아가고 있었다. 지금까지 무서워서 들어가 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세계를, 드디어 보았다.

나는 바다 생물을 관찰하는 데에 심취해 있었다. S와 함께 출발했지만 그가 어디 있는지 찾아보려 하지도 않았다(분명 내 근처에 있겠지 하고). 바다거북은 어디에 있을까? 장비 대여점 직원은 운이 안 좋으면 바다거북을 못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과연, 많은 생물들을 보았지만 아직 바다거북은 보지 못했다. 나는 오랜 수영에 살짝 지쳐서 잠시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육지는 생각보다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다. 내가 정말 이 먼 곳까지 헤엄쳐 온 건지 믿기지 않았고, 이상한 쾌감까지 일었다. 나 해냈잖아? 다급히 S를 찾았다.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그의 빨간색 수영복이 언뜻 보였는데, S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힘차게 헤엄치고 있었다. 순간 무서워져, 얼른 수면 아래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상했다. 내 온몸이 바다에 잠겨 있는데 믿을 수 없을 만큼 편안했으니까. 지금 상태라면, 계속, 어쩌면 누구보다도 멀리, 나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애초에 바다에서 태어난 것처럼, 여기가 고향인 것처럼, 나는 자유로이 팔다리를 움직였다. 흐물거리는 해초들, 떼지어 재빠르게 이동하는 물고기들, 가만히 자리를 지키는 소라들을 지나쳤다. 내 운은 여기까지인가 바다거북을 보는 덴 실패했구나, 하는데 사람들이 어느 한곳을 향해 헤엄치기 시작했다.

바다거북!

갈색 무늬가 섞인 등딱지를 가진 바다거북이 보였는데, 그는 근엄한 표정으로 아주 낮게 유영했다. 네 다리가 우아하게 움직였다. 바다거북의 목적지는 어디일까. 사람들은 바다거북의 길을 방해하지 않고 거리를 둔 채 그를 지켜보았다. 나는 바다거북의 뒤를 얼마간 따랐는데, 생각보다 그의 속도가 빨랐기에 벌써 거리가 벌어져 버렸다. 일부는 계속해서 바다거북을 따라갔고, 나는 곧 그만두었다.

아주 잠시 동안이었지만 바다거북과의 수영은 오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극복? 자신감? 성취? 용기? 평화? 그와 비슷한 모든 감정들.

그날의 바다가 죽음의 공포를 남겼다면, 오늘의 바다는 죽음의 공포를 한 번쯤 물리칠 수 있었던 총체적인 힘을 나에게 주었다. 오늘이 지나면 또다시 잠수 공포증에 시달릴지도 모르지만,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이다. 나는 언젠가 바다에 뛰어들 것이며, 머뭇거리게 될 때엔 오늘을 기억할 것이다.

빠른 듯 느린 듯, 바다를 가로질러가는 바다거북은 어느새 사라져버렸다.

<저작권자 © 공감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지식·공익·나눔 | 교양공감
여백
여백
시사공감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