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영역 개방의 정당성 의문…기업질서 교란 우려도

[공감신문 김인영 기자] 금융위원회가 3일 사모펀드의 기업 직접대출을 허용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금융위가 이날 발표한 ‘회사채시장 인프라 개선 및 기업자금조달 지원방안’에 따르면 정부는 자금난에 허덕이는 저신용기업들을 지원하기 위해 사모펀드가 기업에 직접 대출해 줄 수 있도록 대출형 사모펀드 제도를 도입키로 했다.

대출형 사모펀드는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집해 지분투자가 아닌 대출과 채권 형식으로 운용해 수익을 내는 모델이다. 전문투자형 사모펀드인 헤지펀드는 운용재산의 100%까지,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는 최대 50%의 여유재산을 기업에 대출할 수 있게 된다.

정부는 투자자 손실을 막기 위해 중위험 기업 등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갖춘 기관투자자에 한해 대출형 사모펀드를 허용한다는 방침이다.

 

사모펀드(private fund)는 개인 또는 기관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모아 운영하는 펀드로, 기업에 자본(지분) 참여하거나 기업이 발행한 유가증권을 사고파는 운용전략을 하도록 규정되어 왔다. 기업에 직접적으로 대출하는 것은 은행의 역할이다. 사모펀드는 비은행의 영역에서 자유롭게 자금을 운영했지만, 은행의 대부 역할은 규제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금융위가 이 대출 영역을 사모펀드에게 열어주겠다는 것은 회사채 시장의 위험성을 인지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정부가 할수 있는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겠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해 민간 자본을 끌어들여 목마른 회사의 자금난을 해소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금융위는 일단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으로 하여금 향후 2년간 이들 기업이 발행한 BBB~A 등급 회사채 미매각분을 최대 5,000억원까지 인수토록 했다. 아울러 신용보증기금으로 하여금 2018년까지 1조4,000억원 규모의 신 유동화보증(P-CBO) 프로그램을 운용하도록 했다. 정부가 국책은행을 동원해 소화할수 있는 회사채 시장의 규모가 4조원정도가 될 것으로 추산했다.

하지만 최근 조선·해운·철강등 산업에서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브렉시트에 따른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가속화하면서 신용등급 AA 이상의 우량 회사채만 시장에서 소화되고, A등급 이하 회사채는 매각되지 않는 사태가 빚어졌다. 저신용 회사채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정부의 여력이 모자랄 것으로 보이자, 정부는 이의 해소수단으로 사모펀드의 규제영역을 풀겠다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사모펀드에게 기업대출을 허용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사모펀드의 역사는 1980년대 미국에서 기업사냥이 성행할 때 LBO(leverage buy-out) 펀드에서 시작됐다. 블룸버그 통신은 LBO 회사가 비난을 받자 사모펀드(PEF)로 브랜드를 바꿔 새출발을 했다고 규정한 바있다. 국내 사모펀드는 미국의 역사적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대로 자금모집과 운용형태만 도입돼 형성됐다.

LBO방식은 이렇다.

「A펀드가 B회사를 인수하기 위해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려 B회사의 지분에 참여한다. A펀드는 인수한 B회사의 경영진을 교체하고, 자산을 매각한 다음 주식시장에 상장해 수익을 얻는다. 예컨대 펀드자체자금 200억에 은행차입금 900억원으로 1,100억원을 조성해 B사를 인수해 상장해서 1,300억원의 상장자금을 조달한다면 이자(50억)와 원금을 돌려주더라도 150억원의 차익을 얻을수 있다.」

우리나라에선 이런 LBO 방식을 적용하기 어렵다. 기업들이 보수적이기도 하고, LBO 방식에 대한 사회적 여론이 좋지 않다. 기업들은 지분을 내놓기 보다는 대출을 원한다. 회사가 빚더미에 올라 있어도 오너는 대출을 얻어 회사를 살리려 하지, 지분을 내놓으려 하지 않는 것이 우리나라 기업풍토다.

 

따라서 사모펀드에게 기업대출을 하용할 경우 수요는 있을수도 있다. 기업주들이 지분을 매각해 경영권을 내놓기보다, 일단 대출을 얻어 경영권을 유지하길 선호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일부 사모펀드는 편법으로 기업에 대출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융위가 일부 편법적으로 해오는 사모펀드의 대출을 양성화하는 차원에서 이를 허용할 경우 자칫 기업 질서를 교란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첫째로, 사모펀드가 은행 고유영역인 대출을 하도록 허용하는 것이 올바른지에 대한 명쾌한 해석이 있어야 한다. 법률 개정이 필요한 사항인지도 보아야 한다. 다른 나라에서 선례를 찾기 어려운 방식을 적용할 정도로 회사채 시장이 다급한가. 재벌들이 계열사를 지원하기 위해 편법적으로 사모펀드를 활용할 가능성도 있다. 내부자금 거래로 이용될 소지도 있다.

둘째, 기업 부도를 가속화할 가능성을 배제할수 없다. 사모펀드가 지분참여를 한 회사가 부도 위기에 처하면 지배구조를 바꾸더라도 살아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비해 대출을 해줬다가 부도위기에 처할 경우 사모펀드는 다른 채권자보다 먼저 자금을 회수하기 때문에 대출을 받은 기업은 회생의 기회를 갖지 못한채 급속하게 파산할 가능성이 있다.

셋째, 사모펀드가 기업인수를 목적으로 대출을 할 경우, 기업신용 평가를 도외시할 가능성이 있다. 사모펀드의 충당금을 어떻게 쌓아야 하는지도 숙제다.

사모펀드는 경제용어의 외피를 입어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채(私債)나 다름없다. 따라서 사모펀드의 대출 허용은 사채시장을 키우는 결과만 초래할수 있다. 큰 돈주들이 모여서 펀드를 만들어 기업에 대출해주는 것을 시장 정상화라고 표현하기 어렵다.

금융위 관계자는 "회사채시장이 그간 양적으로 커졌지만 대기업, 저위험 채권에 편중돼 다양한 기업들의 자금조달 수단으로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이번 대책을 통해 지금보다 많은 기업이 회사채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PEF의 사채시장화까지 허용해서 회사채 시장을 강화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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