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동사거리 개천가를 가득 메운 고소한 냄새

사진 = 강현욱 사진기자

[공감신문 라메드] 줄 서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저리로 피하거나 귀를 막는 시늉을 한다. 찌는 듯이 더운 날, 기계 뚜껑을 열자 “펑~”하고 귀청을 울리는 소리와 함께 주변은 뜨거운 열기로 후끈해진다. 고소한 냄새가 경동사거리 개천가를 가득 메운다. 흔히 볼 수 없는 풍경이 되어버린 뻥튀기 할아버지를 드디어 찾았다!

“뻥이야! 어어이!!”

이곳 경동사거리 개천가에서 40년 가까이 뻥튀기 장사를 하고 있는 박 할아버지는 신호를 듣고도 깜짝 놀라게 되는 ‘뻥’ 소리를 하루에도 수백 번씩 듣는다. 그래서인지 할아버지는 한 번 말해서는 도무지 알아듣지 못하고 재차 물어온다. 수십 년 동안 귓가에 대포 같은 소리를 들어 왔으니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5월, 해가 중천에 뜨기 전인데도 뻥 가게가 자리한 이곳은 한여름처럼 후끈후끈하다. 도로와 바로 인접한 곳이라 지나가는 자동차와 아스팔트의 열기가 대단하다. 얼굴이 점점 벌게지고 목 뒤로 땀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린다. 할아버지는 날이 뜨거워 김이 덜 보인다고 오히려 촬영을 걱정한다.

다가올 진짜 여름이 걱정되어 여름에도 장사를 하는지 물었다. 어리석은 질문이었다. 생계를 이어가는데, 여름 한낮 더위가 무에 그리 대수겠는가. 개천다리에서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다며 할아버지는 여유로운 웃음을 짓는다.

경동시장 유명인사, 박정수(76세) 뻥튀기 할아버지 / 사진 = 강현욱 사진기자

개천가 노천 뻥 카페

한번 튀기는데 6000원, 세 번 튀기는데 1만5000원. 기름에 튀겨 정체불명의 양념을 뿌린 후 질소 충전한 과대 포장 과자에 비하면 압력으로 곡식을 튀긴 건강한 뻥튀기가 가성비 좋은 식품이라 하겠다. 박 할아버지네 뻥 가게에도 다양한 곡물과 체소가 착한 먹거리로 재탄생한다.

쌀, 보리, 누룽지, 가래떡, 인절미, 율무 등은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좋아하는 주전부리로, 우엉, 둥굴레, 연근 등은 건강을 챙기는 웰빙족의 차 재료로 튀겨진다. 별별 재료들이 즉석사진처럼 10분만 기다리면 고소하고 달콤하게 튀어나온다.

강원도까지 가서 혈압과 위장병에 좋다는 둥굴레를 직접 채취해 뻥 튀기러 온 아저씨, 손주들 간식거리라며 음식점에서 잔뜩 가져온 누룽지를 뻥 튀기러 온 아주머니, 안쪽에 자리 잡고 앉아 본인의 아들도 방송국 PD라며 할아버지에게 훈수를 두고 있는 현미를 튀기러 온 할머니, 뻥 가게를 들른 모든 사람이 소중한 이에게 소박한 먹거리와 몸에 좋은 간식을 먹이려는 착한 마음들이다.

순서를 기다리는 아저씨, 아주머니,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이야기꽃을 피우다 보면 이곳은 어느새 개천의 노천카페가 된다. 세 번이나 누룽지를 튀긴 아주머니는 한참을 있다가 가셨다. 여러 번 누룽지 튀김을 건네주어 맛보았는데 이거 참 맛이 좋다. 구수한 뻥튀기가 주는 따뜻한 소통은 시골 장터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개인주의로 냉담한 도시도 얼마든지 따뜻해질 수 있다.

사진 = 강현욱 사진기자
사진 = 강현욱 사진기자

할아버지네 뻥 가게는 이른 아침 7시 즈음 개장해서 밤 9시에 문을 닫는다. 동네 단골도 많지만, 지방에서도 소문을 듣고 올라온다고 한다. 평소에는 2~3시간씩 기다려야 할 정도로 줄이 죽 늘어서 있다.

할아버지네 뻥튀기가 다른 곳과 다른 점은 아주 단순하다. 딱딱하지 않고, 맛있다고(웃음). 적절한 수분과 양, 그리고 기술이 결합하여 먹기 딱 좋은 뻥 과자가 탄생한다. 박 할아버지는 내용물을 태우지 않으려면 쌀을 조금 넣으라고 팁을 살짝 공개해 주었다.

“조금만 넣어야 해, 많이 넣으면 타! 뭐든 욕심내면 안 돼”

둥굴레를 튀기러 온 아저씨는 박 할아버지처럼 뻥 장사 하는 분들의 뒤를 이을 젊은이가 없을 거라며 걱정한다.

사진 = 강현욱 사진기자

박 할아버지와 예쁜 아주머니

박 할아버지의 전직이 궁금했다.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뻥 장수하기 전에 용두동에서 연탄배달을 했다. 당시 1000원씩 받고 배달 일을 하다가 도시가스가 들어오면서 일이 점차 줄자, 뻥튀기 사업을 시작했다. 처음엔 많이 태우고 기계도 망가뜨리는 등 시행착오가 많았다고 한다.

지금은 자식들이 다 장성해 손자들이 6명이나 되는데, 뻥 장사해서 자식들 공부도 시키고 결혼까지 다 보냈다며 뿌듯해한다. 이제 손주까지 봤으니, 자식들 사는 청주로 내려가 여생을 좀 편히 사시면 좋을 텐데, 박 할아버지는 일을 놓을 생각이 없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뻥 장사를 계속하며 이곳 용두동에서 예쁜 할머니와 재미나게 살 예정이라고.

사진 = 강현욱 사진기자

마침, 자전거 타고 지나가는 예쁜 아주머니가 반갑게 아는 척을 한다. 박 할아버지와 같은 살림을 사는 할머니란다. 나이 차가 많이 나 보인다는 말에 할아버지는 기분 좋게 너털웃음을 짓는다.

“그럼 젊어야지! 늙으면 돼야?” 스물다섯 할배와 열일곱 할매는 그렇게 만났다. 두 분의 러브스토리가 궁금했지만, 할아버지가 방심해 손님들의 귀한 간식이 타버릴까 염려되어 그 이야기는 나중에 듣기로 했다.

무엇이든 마법처럼 크고 푸짐하게 변신시켜주는 뻥 장수 박정수 할아버지의 인생은 절대 뻥스럽지 않고 소박하며 진실하다. 수줍지만 환하게 웃으며 포즈를 취하는 박 할아버지는 청계천 근처 경동 사거리 개천다리에 가면 만날 수 있다. 당신도 고소한 뻥튀기 한 줌이 주는 행복을 느낄 수 있을지도.

사진 = 강현욱 사진기자

뻥튀기 기계의 유래

뻥튀기 기계가 우리나라로 유입된 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뻥튀기 기계는 1901년 알렉산더앤더슨 박사에 의해 미국 미네소타에서 발명되어 몇 년 후 만국박람회에 출품되었다. 이후 기계는 일본으로 건너가 ‘폰가시(ポン菓子)’ 등의 이름으로 불리다가 일제 강점기 조선에 들어왔는데, 당시 센베이 과자의 유행이 그 증거라는 기록이 있다.

또 다른 유래는 6.25 전쟁 이후 버려진 포탄 탄피에 곡식을 넣어 익혀 먹다 우연히 뻥튀기로 발전했다는 설도 있지만, 사실 어느 쪽도 확실하진 않다.

대서양을 넘어 아프리카까지

우리나라는 뻥튀기 종주국은 아니지만, 지금은 아프리카, 중동, 남미에까지 수출할 정도로 뻥튀기 붐을 일으키고 있다. 실제로 이라크 특전사 대원들이 뻥튀기 만드는 법을 배워 아프리카 난민 지역 등에서 뻥튀기 대민 지원을 하기도 했다. 비교적 간단한 공정과 재료로 푸짐한 먹거리와 구경거리를 제공하니, 현지인들에게 인기폭발이었다고.

뻥튀기 기계 공장인 신학식품종합기계 / 사진 = 강현욱 사진기자

대한민국 뻥튀기 기계 대표공장 ‘신학식품종합기계’

신응철 대표(56세)는 3대째 이어져 내려오는 ‘신학식품종합기계’ 뻥튀기 공장을 운영 중이다. 본 공장에는 고대 유물처럼 녹이 슨 초기 모델부터 커다란 메이크업 박스를 연상시키는 무소음 신형 기계까지 다양한 뻥튀기 기계가 즐비하다.

뻥튀기 기계 안에 곡물 재료를 넣고 밀봉한 후 열을 가하면 공간 안에 있는 재료는 순식간에 200도가 훨씬 넘는 고온·고압을 받게 된다. 그리고 뚜껑을 열면 단단한 재료가 터지면서 ‘펑’하는 소리와 함께 몇 배의 사이즈로 커진다.

이러한 원리를 만들기 위해 뻥튀기 기계는 매우 정교하고 치밀한 과정을 거쳐 재가공 된다. 이때 기계 사이의 간극과 합이 매우 중요하다. 조금이라도 틈 사이가 맞지 않으면 압력이 새어나가 뻥튀기가 타버린다고.

신 대표는 뻥튀기와 서민 경제가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말한다. 경기가 불황이면 싸고 푸짐한 뻥튀기 매출이 오르게 되는데, 이때 공장 매출도 동반 상승한다는 것이다. 신 대표의 고객들은 대부분 힘들게 살아가는 뻥튀기 장수들이다. 그래서 뻥튀기 기곗값을 한 번에 지불하지 못하는 형편이 어려운 뻥튀기 장수들에게는 할부로 판매하기도 했다.

그러다 기곗값을 떼인 적도 많다고. 신 대표도 17세에 서울로 무작정 상경해 힘든 시절을 살았던 만큼 그들의 고충을 이해하지만, 이로 인해 미수금이 늘어나자 한때는 공장이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고, 꾸준히 신제품을 연구하고 개발하는데 온 힘을 쏟았다. 그렇게 노력한 덕분에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 지금은 명실상부 업계의 튼튼한 기둥으로서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신학식품종합기계, 신응철 대표(56세) / 사진 = 강현욱 사진기자

국내의 독보적인 뻥튀기 제조 공장인 신학식품종합기계는 이제 한국을 넘어 중동과 동남아에서도 수출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앞으로는 신 대표의 아들 신규태(30) 씨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뻥튀기 기계 공장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신규태 씨는 전직 운동선수였으나, 지금은 가업을 계승하기 위해 일을 배우고 있는 3년 차 견습생이다.

사실을 부풀리거나 거짓으로 속이는 것을 ‘뻥튀기기’ 또는 ‘뻥’이라고 한다. 하지만, 에디터가 만난 뻥의 현장은 소소한 일상을 더 큰 행복으로 키워주는 값진 삶의 터전이었다. 지금 자신이 하는 일에 긍지를 가지고 지금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그들이 있어 대한민국 뻥튀기의 미래는 기대해 볼 만하다.

사진 = 강현욱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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