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전스 송영희 대표

엔비전스 송영희 대표 / 사진 = 강현욱 사진기자

[공감신문 라메드] 캄캄한 어둠 속,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는 빛을 찾아 더듬더듬 걸어나갔다. 예상할 수 없는 앞길이 두려웠다. 막연하고 모호한 불안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 냄새, 그리고 발끝에서 전해오는 느낌에 집중해보니 조금씩 검은 안개가 걷히는 듯했다. 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19살, 송영희 대표는 시력을 잃기 시작한 후 가고 싶던 미술대학 진학도 포기해야 했다. 송 대표는 피아노 조율사로 일하던 중 한국에서 3개월간 진행된 <어둠 속의 대화> 전시를 접하고 이를 지속 가능한 사회적 기업으로 이어가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시각장애를 가진 직원들을 고용해 지금의 ‘엔비전스’라는 기업을 설립했다.

어둠 속의 대화

서울시 종로구 계동, ‘디스페이스’ 공간에서 진행 중인 <어둠 속의 대화> 전시는 1988년 독일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100% 어둠 속 세상이라는 이색적인 소재는 사람들에게 신선함을 주었고, 자기내면을 돌아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전시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29년간 유럽, 아시아, 미국 등 전 세계 160여 지역에서 1,000만 명 이상이 경험한 국제적인 전시 프로젝트로 자리 잡았다. 2007년, 한국에 처음 3개월 단기로 전시가 진행되었을 때 송 대표는 이 전시에 대한 매력에 빠져 잠을 못 이룰 정도였다고 말했다.

“2010년에 서울 신촌에서 개관했어요. 3차까지 진행하다가 협소한 관람 장소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잠시 폐막을 했고요. 2013년부터는 중학교 교과서에 전시가 소개되면서 학생들이 단체로 찾아오는 일이 많아졌는데, 전시 특성상 8명만 들어갈 수 있어서 한계가 있었죠. 그래서 투자자를 찾던 중에 (주)네이버에서 긍정적인 반응이 왔고, 네이버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으로 탈바꿈했어요. 그 후 북촌 한옥마을이 있는 종로구 계동으로 전시장을 옮겼는데, 아무리 많은 단체 관람객이 와도 한옥마을을 구경하며 관람 순서를 기다릴 수 있게 되었죠.”

사진 = 강현욱 사진기자

100분이라는 전시체험 시간 동안 풍경과 사물, 자신의 모습 등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것이 어둠 속에 감춰진다. 서투른 걸음으로 걸어나가면서 우리는 타인이나 사물이 아닌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고 발견하는 과정을 겪게 된다.

“한 번은 조주사(술을 만드는 사람)분들이 와서 전시체험을 했어요. 전시장 안에서 소량의 와인을 드렸던 적이 있는데, 레드와인과 화이트와인을 구별하지 못 하시더라고요. 우리는 미각이나 후각을 이용해서 어떤 음식인지 인지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눈으로 이미 결정짓는 거죠.”

장애인 자회사형 표준사업장, 엔비전스

장애인 자회사형 표준사업장이란 장애인 의무고용사업주(모회사)가 자회사를 설립할 경우 자회사가 고용한 장애인을 모회사가 고용한 것으로 간주해 고용률에 산입하고 부담금을 감면해주는 제도다. 엔비전스의 직원은 현재 38명이며 이 중 30% 이상이 시각장애인 근로자다.

“작년부터 주5일 근무제에서 주4일 근무제로 바꿨어요. 그러면서 생겨난 빈자리는 새로 고용한 인원으로 보충할 계획이에요. ‘네이버’라는 든든한 지원군이 생긴 뒤에 끊임없이 의견을 공유하고 있고, 전시운영뿐만 아니라 장애인을 위한 다양한 사업도 발전시키고 있죠.”

엔비전스에도 일반적인 회사에서 사용하는 내부 인트라넷망이 있다. 조금 특별한 점은 시각장애인 직원들을 위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것. 결재할 문서를 음성으로 올릴 수 있다. 현재 네이버 개발자들과 함께 진행 중인 사업은 장애인을 위한 웹접근성이다. 예를 들면 애플리케이션 화면에서 ‘플레이 버튼’이 어디에 있는지를 음성으로 알려주는 스크린 리더 방식을 더 발전시킬 계획이다.

송 대표는 장애인도 함께 일할 수 있는 기업, 또 그런 사회가 만들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나는 몸이 불편하니까 일을 할 수 없어’라는 생각을 가지지 못하도록 직원들에게 새로운 프로젝트를 부여하고 책을 읽고 에세이를 쓰는 등 자기계발을 위한 도전들을 제안하기도 한다.

“직원 입장에서는 ‘회사 업무가 아닌데 왜 시킬까’하고 생각할 수 있어요. 도움만 받으면 해낼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죠. 하지만 저는 직원들이 낯선 환경에서 새롭게 도전하면서 자립했으면 해요. 회사가 발전하는 것은 회사의 성장일 뿐이고, 저는 직원 개개인 모두가 성장하길 바라요.”

사진 = 강현욱 사진기자

실명한 채로 성인이 되었다

아예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은 전체의 5%에서 10%뿐이라고 한다. 송 대표는 지금 한쪽은 시력이 완전히 떨어진 상태이고, 다른 한쪽은 대낮에 사람 형체 정도를 구분할 수 있는 상태다.

“고등학교 3학년 말, 눈이 점점 보이지 않게 되면서 처음 찾았던 곳이 ‘저시력협회’였어요. 그곳에서 ‘한울타리’라는 시각장애인 극단에서 스텝으로 일했죠. 사람을 만나고 몸을 움직이다 보니 위축됐던 생각들이 펴지기 시작했어요. 이어 피아노 조율사, 일상을 노래하는 밴드 활동까지 쉬지 않고 계속 새로운 일에 도전했어요.”

시력이 나빠지니 제일 먼저 가족 모임에 참석하기가 꺼려졌고, 부모님도 자신의 더듬거리는 모습을 친척들에게 보이기 싫어하셨다. 같이 어울려 다니던 친구들과의 만남도 자연스럽게 뜸해졌다. 하지만 방안에만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친구들을 다시 만났어요. 친구들이 매번 시력 테스트를 하더라고요. 계단을 먼저 내려가서는 제가 계단을 내려오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든지, 식당에 있는 메뉴판을 던져주며 주문할 음식을 골라보라든지. 지금 생각해보면 친구들은 ‘쟤가 오늘은 앞이 얼마큼 안 보이나?’ 궁금했던 것 같아요. ‘이렇게 점점 시력이 나빠지는구나’하고 본인들도 깨달으면서요.”

장애인에 관한 사회적 제도

‘장애등급제’ ‘부양 의무제’에 대한 논란이 많다. 모호한 복지수혜 기준 때문에 끊임없이 비난의 도마에 오르고 있다. 장애인 등급이 높게 부여된 사람은 복지수혜가 가능하지만, 몸이 많이 불편하더라도 등급이 낮으면 그 대상에서 제외된다.

사진 = 강현욱 사진기자

부양의무제도 비슷한 맥락이다. 수급 대상자의 부모나 자녀에게 재산이 있거나 일할 능력이 있으면 기초생활수급자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들의 삶은 이렇듯 ‘몸’으로 평가되고 사회적 관계에서도 열외다.

“폐지 찬성에 목소리가 높아지는 만큼 단기간에 제도 개선이 되면 좋겠죠. 하지만, 무엇이든지 단계가 있잖아요. 제도 개선을 검토하는 과정부터 꼼꼼히 거쳤으면 좋겠어요. 병원에서 처음 시각장애인 진단을 받을 때가 생각나네요. 그때는 지금보다 시력이 더 좋았어요. 그런데 검진을 마친 의사가 제게 ‘몇 년이 지나 실명할 테니 준비하라’고 말하면서 이렇게 묻더라고요. ‘몇 급 드릴까요?’”

송 대표의 말에 따르면, 병원에서 시각장애등급을 매길 때 의사도 짐작만 할 뿐이지 정확한 등급은 알 수 없다고 한다. 더욱 깊이 있고 정확한 가이드라인 마련이 필요하다. 송 대표와 긴 이야기를 마치고 점자가 찍혀있는 벽을 만져보았다. 한 글자씩 더듬어보니 눈으로 읽을 때보다 글을 더욱 곱씹는 느낌이 들었다. 주변 소리와 묘하게 섞여서 누가 나 대신 글을 읽어주는 것 같기도 했다.

정성스럽고 차분하게 말을 이어가던 송 대표도 천천히 벽을 짚으며 문밖으로 걸어나갔다. 돌이켜보면, 두려운 감정이란 내가 지금 무엇을 걱정하는지를 구체화했을 때 사라졌다. 걱정으로 시작했던 어둠 속 여정은 오히려 나 자신과 가장 가까이 마주할 수 있는 평온한 순간들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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