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역시 자유시장경제의 논리에서 빠져나가질 못한다”

지예 칼럼니스트

 

[공감신문 지예 칼럼니스트] 슈퍼카 전시장을 방불케하는 주차장을 가진 누군가는, 매일 그의 영양 상태를 체크하는 전문가의 식사를 먹느라 때론 좋아하는 육류를 먹지 못한다. 그리고 밤에는 그렇게 관리한 보람을 느끼려는 듯, 개츠비 부럽지않은 현란한 파티를 즐긴다. 하지만 어느 대륙의 누군가는 마실 물이 없어서 저멀리 우물에 물을 길러 가다가 낯선 이들로부터 성폭행을 당한다. 근데 이런 일은 그 마을에서 너무도 비일비재하며, 심지어 이것을 터놓고 이야기 할 사람도 없다.

 

 

(영화 <그레이트 뷰티> 중에서)

 

누군가는 매일 매일 바쁘다. 썸남이 여럿이니 그들을 일주일에 한번씩만 만나주더라도 자기 관리할 시간이 부족하다. 그러나 사랑받는 여자가 되기 위해 자기 관리 역시 필수이니, 하루가 턱없이 짧을 수 밖에. 고급스러운 음식이 땡길 때는 지갑이 여유로운 그 남자의 자랑을 들으며 그 음식을 즐기면 되고, 장르 영화가 땡길 때는 박식한 남자와 영화를 본 후 그의 설명을 들으면 되고, 불타는 금요일을 보내고 싶을 때는 어디가도 안 꿀리는 비주얼을 가진 그 남자와 만나 사람 많은 곳에 가서 보란듯이 한잔하고 침대로 향하면 된다. 연락을 안하려고 안하는 건 아닌데, 항상 누군가와 있다보니 저절로 연락이 잘 안되게 되고 알아서 밀당이 된다. 누군가는 이렇게 큰 어장을 가지고 사는데.... 누군가는? 썸남은커녕 연락오는 남자도 없다. 심지어 걔 친구들도 남자가 없다. 누군가 메시지 하나를 보내면 칼 답장이다. 무매력이 뚝뚝 흐른다.

 

(조금의 오차는 있겠지만) 세상의 반은 남자고 반은 여자다. 심지어 짚신도 짝이 있다. 근데 가만히 보면 있는 애들은 계속 있고, 없는 애들은 계속 없다. 이것은 왜 그런 걸까? 돈이 돈을 벌고, 인기가 인기를 버는 걸까?

 

응, 그렇다. 인기가 인기를 버는 게 맞다. 이건 사실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지 않은가? 왜 우리는 '개성'을 추구하면서 옷 가게에 가면 "요즘 뭐가 제일 잘 나가요?"라고 묻는가? 내 눈에 이쁘면 상대방 눈에도 이쁘다. 그것을 착용한 내 모습이 이쁠 거라는 거다. 남들이 이쁘다고 하는 것을 누구나 가지고 싶어 한다. 그게 인간의 본능이다. 심지어 우리는 늘 경쟁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심지어 다같이 짜장면을 먹을 때도 서비스로 나온 만두를 짜장면 깊숙이 꽁쳐놓고 먹는다. 근데 옷이라고 안 그러겠는가? 이성은? 더욱 그러하다.

 

흔히들 남자들의 본능을 이야기할 때 사냥에 비유하곤 한다. 여자를 사랑하는 방식이 사냥에 가깝다는 것이다. 저 여자를 흔히들 하는 표현으로 '자빠뜨리는데에 성공하면' 사냥에 성공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후엔? 다른 사냥감을 찾아 나선다. 심지어 그 사냥감이 다른 맹수의 것일 경우 남자의 승부욕을 자극하는 데 충분하다. 얼마 전, 인터넷 어느 '부부 실태'에 관한 기사에 댓글을 보고 헛웃음을 지었던 적이 있었다. '여자는 남의 것 훔쳐먹는 게 최고'. 이렇게 쓰여 있었다. 심지어 거기에 많은 좋아요가 눌린 것이다! 그 말에 누군가들은 엄청 공감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몰래 '무언가'를 한다는 짜릿함과, '네 남자'보다 내가 더 우월하지? 라는 만족감, 그리고 사냥감을 빼앗았다는 성취감이 더욱 빠져들게 했을 것이다.

 

그런데 꼭 단순히 이것 때문만이 아니라 다른 이유에서도 남자 있는 여자들이 더욱 끌리는 거다. 왜냐하면 남자들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린다, 이 여자가 남자를 사랑할 줄 아는 여자라는 것을!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반려견을 키우는 A와 반려견을 안 키우는 B가 지나간다. 주인과 함께 산책하던 강아지는 지나가던 A를 본능적으로 가서 애교를 부린다. B에게는 별 관심이 없다. 강아지는 A에게서 익숙한 냄새를 맡는다. 그리고 강아지는 알고 있다. A는 나같은 아이를 예뻐해줄 사람이야! 라고.

낯가리는 고양이들 중에서도 강아지처럼 애교가 많다하여 불리는 '개냥이'같은 아이들이 있다. 걔네가 모두한테 그러는 게 아니다. 특히 버려진 길냥이들은 사람에 대한 적대심과 낯가림이 엄청나다. 그런데 그런 아이들이 지나가던 낯선 이에게 가서 애교를 부리는 경우가 있다. 그건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들 말로는 '간택'받은 거라고 한단다. 고양이가 '내가 너 찜했어. 네가 날 키우렴!'라고 찜하는 거란다. 영특한 고양이들은 본능적으로 아는 거다. '그는 날 이뻐해줄 사람이야. 우린 평생 갈 수 있어.' 라고. 심지어 그렇게 간택 당한 사람 중에서는 정말로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영화 <슈렉> 중에서)

 

강아지, 고양이도 이러한데 인간이라고 다를까? 심지어 인간의 뇌는 저 사람과 사랑에 빠질 지 안 빠질 지 4초만에 안다고 한다. 사실 우리는 첫 인상에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것이다. 남자를 많이 안아줄 수 있는 여자 역시 눈빛으로 알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랑을 줄 수 있고, 사랑을 받아 본 여자만이 가지는 촉촉하지만 농후한 어떤 눈빛을, 남자들은 안다는 거다! 남자들은 표현이 여자들보다 비교적 직접적이지 않을 뿐, 사랑받고 싶어하는 존재들이다. 그리고 남자들은 사랑받아야 한다! 그들은 어른이 되며 여자의 모성애를 그리워하며 살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그러니 여자들은 가슴으로 그 남자들을 안아주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못하는 여자들도 있다, 익숙지 않아서, 해보지 않아서. 남자들은 본능으로 그걸 알아내버리는데! 그러니 있는 애들은 계-속 있고 없는 애들은 계-속 없는 거다. 신체의 성별이 여자라고 여자가 아닌거고, 남자라고 남자가 아닌거다. 풍기는 아우라가 정말 있단 말이지!

 

물론 사람마다 시기를 타는 경우도 있다. 있을 때는 엄청 막 폭풍처럼 있다가, 또 없을 때는 땅이 쩍쩍 갈라지는 가뭄처럼 없다. 그것 역시 그 사람에게 그러한 풍기는 분위기가 없기 때문에 아무도 안 달라 붙는 것이다. 난 늘 사랑이 넘친다고 볼이 발그레질 자신이 있다고 얼굴이 써붙이고 다녀야 남자가 붙지! 물론 붙이고 싶다고 붙여지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한마디로 사랑스러워지라는 뜻이다. 사랑스러워져야 사랑하고 싶어 진다. 사랑스러워지는 방법은 사랑을 많이 하는 수밖에 없다. 살이 찌려면 음식을 사랑하고 음식을 즐기고 음식을 많이 먹어야되듯이, 신에게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기도하고 찬양하고 그에게 자꾸 말을 걸고 그가 뜻하는대로 해야되듯이, 사랑스러워지려면 사랑을 많이 하는 수 밖에 없다. 그러려면 용기있고 과감해져야겠지?

(영화 <500일의 썸머> 중에서)

 

아이러니한 것은 연애와 경제가 따로 부익부 빈익빈이 아니라는 '현실'이다. 20대들이 '오포세대' (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내집마련을 포기한 세대)라는 건 너무도 잘 알고 있겠지... 돈이 빈(貧)하니 연애도 빈해진다는 거다. 하지만 반대로 영국 어느 대학의 경제학 교수 논문에 따르면, 일주일에 4번이상 성관계를 가지는 사람이 평균보다 5%의 높은 연봉을 받는다고 밝혔단다! 이에 한 전문가는 "자긍심과 자신감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성적 호감을 느끼게 하고 직장에서도 더 많은 기회를 얻게 해 준다"며 "왕성한 성생활과 높은 임금 모두 높은 자긍심과 자신감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주장. 그러나 어떤 이는 "고임금을 받는 사람들이 데이트 시장에서도 더 인기가 높을 것"이라며 "이 같은 결과는 높은 임금 자체가 섹스 기회를 더 확대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추측했다고 한다. 음, 뭐 닭이 먼져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 같다. 하지만 어쨌든 한 쪽이라고 빈보단 부유한 것이 낫지 않을까, 하니 비논리적으로 생각해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연애 역시 자유시장경제의 논리에서 빠져나가질 못한다. 내 독자분들은 경쟁에서 지지 말고 다들 부자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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