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교양공감] 여름 내 길었던 해가 저물어간다. 8월 하고도 중순을 넘겼고, 이제 곧 있으면 말일이 다가온다. 기록적인 폭염도 누그러졌고, ‘역대 최장’이라던 열대야도 기세가 한풀 꺾였다. 갑작스럽게 찾아왔던 여름이, 갈 때가 되니 슬그머니 물러나고 있다.
올 여름은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한다 싶을 정도로 더웠다. 가히 ‘특별 재난’ 수준에 가까웠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이번 여름 동안 자꾸만 안으로, 에어컨이 있는 실내로만 파고들었다. 워낙 덥다보니 바깥활동을 통 안 했던 게다.
우리가 ‘안 한’ 것들은 비단 바깥활동 뿐이 아니다. 숨만 쉬어도 뜨거운 열기가 입 안으로 훅훅 들어오던 계절 동안 우리는 참 많은 것들을 놓고 있었다. 차분히, 가만히 앉아 사색에 잠기기도 더웠다. 사시사철 멋 내기 바쁘던 이들도 무조건 짧은 옷, 얇은 옷으로 열기를 식히는 게 우선이었다. 밀린 집안일도 더위를 핑계 삼아 미루기 일쑤였고, 강아지 산책조차 ‘얘들도 더울 거야’라며 빈도를 줄였다.
그리고 이제, 기온이 천천히 선선해져가면서 그런 활동들을 다시금 해볼 수 있을법한 날씨로 접어들고 있다. 그래선지 사람들의 모습도 몇 주쯤 전보단 활기를 띈다. 지난 여름동안 우리가 놓고 있었던 것들, 포기했던 것들, 핑계를 대며 차일피일 미뤄왔던 것들. 이제 그것들을 다시 끄집어낼 때가 오고 있다.
가을이 오길 기다리며 에디터는 몇 가지 ‘to do List’를 끄적여 봤다. 9월이 오고, 지금보다 조금 더 선선한 가을이 오면 이 리스트를 하나씩 지워가며 소소한 행복을 느껴볼 참이다. 가을은 참 짧은데, 그 짧은 가을을 본격적으로 즐겨보려고. 그렇게 한 줄, 두 줄을 지워나가다 보면 여름 내 달궈졌던 정수리가 천천히 식어갈 것이고, 어느새 겨울도 훌쩍 다가올 것이다.
■ 시집 읽기
‘독서의 계절’이란 꼬리표가 달려있듯, 가을은 책 읽기에 딱 적당한 계절이다. 짙푸른 창공은 시리도록 깨끗하고, 지평선 아래의 대지에서는 황금빛 곡물이 익어간다. 그런 풍경을 눈 앞에 두고 어찌 감상에 젖어들지 않을 수가 있을까. 우중충하거나, 아니면 지글지글한 태양도 열기를 거두니, 가만히 앉아 책이나 읽기 딱 좋은 날씨란 말씀.
교양공감 팀은 지난 4월, 봄에 어울리는 시를 몇 편 꼽아 소개해드렸었다. 분홍빛으로 물들어가는 4월의 어느 느즈막한 오후엔가 본 풍경에 도취돼, 오글거리는 감상을 포스트로 잔뜩 풀어놓았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엔 멋 좀 부리겠다고 ‘시시때때로 詩 ’란 부제목까지 달아뒀었는데 말이지.
헌데 여름엔 ‘시(詩) 고 뭐고’, 그런 감상에 젖어들 겨를이 없었다. ‘더워서’란 핑계로 책장을 펼쳐들지 않았던 게 벌써 몇 개월이나 지났는지 모른다. 책장에 들어찬 책 위에는 뽀얀 먼지가 쌓여있더라.
그래도 이제 가을이 돌아오면, 또다시 지난 4월의 그 때처럼 어느 날 멋진 풍경을 보고 자극을 받을 게 틀림없다. 가을 역시 봄 못지않게 아름다우니까. 그땐 또 ‘가을에 어울리는 시’를 여러분께 들려드리겠다. 그러기 위해, 가을이 오면 에디터는 몇 권의 시집을 더 읽어볼 요량이다.
■ 자전거 타기
에디터는 봄부터 초여름까지,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했었다. 미세먼지가 덜한 날은 꽤 상쾌하고 좋더라. 아침 출근길, 걸음을 보채는 분주한 사람들의 모습과 시끄러운 빵빵 소리가 어우러지면서 새로운 활력을 얻기까지 했다. 헌데 그런 즐거운 자전거 라이딩도 7월 중순으로 접어들면서 거짓말처럼 ‘딱!’ 끊겼다. 하기야, 누가 그 날씨에 자전거로 출근을 하겠나.
오랜만에 자전거에서 내려와 보니 대중교통 출근이 얼마나 스트레스였는지를 새삼 깨달았다. 무더위에 사람들이 올라타고, 또 타고, 또 타고… 밀치는 사람, 내리는 사람이 한데 어우러지며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가 연출됐다. 그럴 때마다 ‘아, 자전거로 출근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바깥 날씨에 잠시 걷다보면 또 그런 생각이 쏙 들어가더라.
요즘은 또 제법 시원한 바람이 뜨문뜨문 불어온다. 아침과 저녁, 출퇴근 시간은 그런대로 기온이 쾌적하달까? 요즘은 ‘낮에만 여름’이고, 아침저녁은 초가을 날씨나 다름없는 듯 싶다.
그래서 서서히 다시 시작해볼까 한다, 자전거 출퇴근. 양희은 선생님의 ‘가을아침’처럼 청량한 노랠 들으며, 너무 빠르지 않게 페달을 밟으면 꽤 해방감이 들 것만 같다. 버스나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것 보단 훨씬 즐거울 테고.
■ 손 편지 쓰기
사계절 중 봄에 우린 제법 감성적으로 변한다. 날씨가 풀리면서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몸이 녹진해지기도 하고, 무채색으로 삭막했던 풍경에도 꽃과 풀로 색이 입혀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감수성을 자극하는 계절로는 또 가을을 빼놓을 수 없다.
초가을엔 몰라도, 어느 정도 가을이 원숙해지면 산과 들의 나뭇잎이 그을린 듯 익어간다. 나뭇잎이 노랗고 빨갛게 물들어가다가, 이내 하나 둘씩 팔랑거리며 떨어져내린다.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린 괜스레 쓸쓸함을 느끼고, 옷깃을 여민다. 괜히 지나간 옛 사랑이 떠오르고…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며 메마른 눈물 한 방울을 떨군ㄷㅏ…☆
아무튼, 가을은 참 공감각적으로 우리 감수성을 자극한다. 그래서 연필을 꺼내들고 편지를 끄적거리게 만들기도 한다. 왜, 김광석의 노래 중에 ‘책을 접어놓으며 창문을 열어- 흐린 가을 하늘에에- 편지를 써’ 하는 곡도 있지 않나. 이해인 수녀님의 작품 중엔 ‘가을편지’라는 시(詩)도 있다.
‘가을’과 ‘편지’라는 단어는 그 궁합이 꽤나 잘 맞는다. 그래서 참 많은 분들이 두 단어를 붙여놓는 것일 테다. 가을이 오면, 에디터는 구석에서 뒹구는 연필을 정성껏 깎아, 사각사각거리면서 편지를 써내려갈 것이다. 여러분께도 권해보고 싶다. 누구에게 쓰건 좋다. 정 편지를 쓸 상대가 없다면, 자기 자신에게 편지 한 장 보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 옷 갈아입기
흔히 ‘멋쟁이들은 계절을 안 탄다’고들 한다. 그들은 날씨가 추워도 얇은 옷을 입고, 날씨가 더워도 두꺼운 옷을 마다하지 않는다. 오직 ‘멋’ 하나만을 위해서. 그런 말에 비춰보면 에디터는 결코 ‘멋쟁이’가 될 수 없겠지 싶다.
패션에 그리 큰 관심이 없는 에디터는 체크 셔츠나 맨투맨 등을 선호한다. 일단 고민 없이 편하게 입을 수 있기도 하고, 특유의 포근한 느낌도 좋아하고, 특히 셔츠의 경우엔 필요할 때 벗어서 담요처럼 활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체크 셔츠도, 맨투맨도 지난 여름과 같은 계절엔 입을 수가 없다. 쪄죽기 딱 좋거든. 그래서 여름 내내 반팔 티셔츠에 청바지만을 고수했었다. 날씨가 너무 푹푹 찌니까,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 아마 위에 언급한 그 ‘멋쟁이’들도 올 여름은 쉽지 않았을 걸?!
이제 곧 있으면, 다시 셔츠와 맨투맨, 얇은 외투의 계절이 돌아온다. ‘자주 입는 옷’ 수납함의 반팔 티, 얇은 바지를 ‘잘 안 입는 옷’ 수납함으로 옮겨야 할 때가 오는 것이다. 그 덕에 주말에 해야 할 집안일이 하나 늘어나겠지만, 그래도 지겨웠던 여름옷을 훌훌 벗어버릴 수 있다는 점은 꽤나 기대된다.
■ 손님 맞을 준비를 합시다
말은 이렇게 했어도, 아직까지는 여름 기운이 완전히 걷히지 않았다. 자전거 퇴근? 죽진 않겠지만, 파김치가 될 것이 뻔하다. 또 ‘가을 옷’이 시기상조란 건 바보가 아닌 이상 다들 인지하고 계실 터. 그럼 ‘시집 읽기’나 ‘손 편지 쓰기’는 가능하지 않냐고? 아이참, 아직 가을 아니지 않나. 아직 마음의 준비(?)도 안 됐단 말이야.
어쨌든 여름은 아직 8월 끄트머리에 늘어붙어있고, 아직까진 가을이 오길 기다리고 있는 처지. 오매불망 가을의 도래를 기다리고만 있기보다는, 이제부터 슬슬 가을맞이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만약 벌써부터 ‘에어컨 없이도 버틸 만 한데?’라 생각하시는 분들이라면, 에어컨을 봉인하기 전에 필터 청소를 한 번 해두자. 미리 청소 한 번 해두면 내년 여름에 에어컨을 켰을 때 요상한 냄새가 날 확률도 줄어들 게다.
또, 위에 언급한 것처럼 가을이 오면 우리도 옷을 갈아입게 된다. 부쩍 쌀쌀해진 어느 날 부랴부랴 가을 옷을 찾기보단, 요즈음 해서 옷장 정리를 미리미리 해두는 게 낫지 않겠나 싶다.
어째 ‘가을 맞이 준비’라는 게 대부분 청소 아닌가 싶겠지만, 계절이 바뀔 때는 집안 대청소를 한 번쯤 해두는 것도 나쁘진 않다. 또, 여름 내 에어컨을 켜고 끄며 전전긍긍했을 여러분은 아마 제대로 환기도 못하셨을 거잖아! 창문 열면 찬바람 빠져나갈까봐!
그러니 오늘 저녁엔 에어컨 말고 선풍기에 의지해보자. 고 녀석들, 그래도 제법 시원하다. 오랜만에 창문 활짝 열어젖힌 채 환기도 좀 시키고. 그러고서 잠시 저녁 산책을 다녀와 보는 것도 좋겠다. 이제 밤바람이 제법 시원해서 그럭저럭 버틸만할 테니까. 아마 오늘 저녁엔, 가을이란 손님이 다가오고 있음을 조금 실감하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