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is Pasteur(1822-1895)

[공감신문] 파스퇴르하면 파스퇴르 우유를 제일 먼저 떠올리게 한다. 파스퇴리제이션(pasteurization)은 저온살균법이나 저온멸균을 의미하며 동사로는 파스퇴라이즈(pasteurize)를 쓰는데 이는 파스퇴르의 이름을 붙여 그의 공헌을 영원히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저온살균법이란 58˚C로 1~2시간 가열하고 이것을 반복함으로써 무균상태에 가깝게 하는 살균법이다. 이 살균법은 우유와 같이 고온에서 변화 또는 파괴되는 비타민 당류 단백질 등을 포함하는 제품의 살균에 널리 쓰이고 있는데 당시 파스퇴르의 저온살균법은 와인의 보존 방식을 획기적으로 변혁시켜 프랑스 와인산업도 크게 일으켰다.

다양한 파스퇴르 우유 제품

파스퇴르는 이 저온 살균 특허(US patent No. 135,245, 1873년)로 큰 부자가 될f 기회가 있었지만 그는 위대한 발견을 사회에 기꺼이 돌렸다. 파스퇴르는 다른 사람을 도와야 할 책임이 자기에게 있다고 믿고 있었다.

파스퇴르의 특허 135,245

파스퇴르는 하나님과 영원에 대한 절대 신앙을 갖고 있었다고 그의 전기를 쓴 그의 사위가 기록했다. “내가 자연을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나는 더욱 더 깜짝 놀랄 창조자의 손길 앞에 서게 된다”는 그의 고백을 들은 영국 외과의사 파겟(Dr. Stephen Paget)은 파스퇴르의 영적인 삶이 과학자로서의 경탄할 만한 삶에 결코 뒤지지 않는 한사람 이었다고 평하였다.

1860-61년에 파스퇴르는 생명의 자연발생설을 뒤집는 실험을 진행했다. 자연발생설에 도전한 학자는 17세기 중반의 이탈리아 기생충학자이며 의사인 프란체스코 레디(1626-1697)였다. 그는 기생충이 자연발생하지 않는다는 실험을 여러 번 하였으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연발생설을 주장한 이후로 생물이 자연적으로 생겨날 수 있다는 당시의 사상을 확실히 깨지는 못하고 일부 곤충은 자연발생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는 현미경 이전 시대였기에 기생충 알이나 유충을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파스퇴르는 1861년 “자연발생설 비판”이란 논문을 통하여 생명의 자연발생설을 완전히 부정했다.

파스퇴르의 자연발생설 비판 책

파스퇴르는 플라스크(flask: 목이 길고 몸은 둥글게 만든 화학 실험용 유리병)를 이용하여 가열하지 않고 공기를 쏘인 뒤 미생물을 제어하는 실험을 하였는데 이를 백조의 목처럼 생겼다 하여 ‘백조목 플라스크 실험’이라고 보통 부르고 있다.

1. 플라스크 안에 넣은 유기물(고기즙)을 가열, 멸균한다.

2. 멸균하면서 플라스크의 주둥이를 늘여서 미생물의 침투를 막기 위해 병 주둥이를 S자로 백조의 목처럼 늘린다. 백조목의 중간 지점에 끓인 물방울을 삽입한다.

3. 이 백조목 플라스크를 방치해도 미생물의 증식을 찾아볼 수 없다.

4. 플라스크의 목을 부러뜨리거나, 늘어난 병 주둥이에 멸균한 유기물 용액을 침투시켜 플라스크 안으로 들여보냈을 때는 미생물의 증식을 관찰할 수 있다.

이러한 실험 결과는 특히 당시 다윈의 진화론(1859년 종의 기원 초판 발간)의 광풍이 몰아치던 시기에 외부와의 접촉이 없는 상태에서 무생물로부터 미생물이 증식되지 않았다는 명백히 자연발생설을 부정하는 실험이었다. 생물은 결코 우연히 생겨나지 않는다는 진화론에 대한 반론으로 파스퇴르의 위대한 업적이다. 

자연발생설 부정 실험
파스퇴르가 실험한 백조목 플라스크

당시 실험에 사용했던 플라스크 안의 고기즙에는 160년이 지난 지금도 미생물이 생기지 않고 있음이 파스퇴르 박물관에 증거로 남아있다. 이 박물관의 지하에는 파스퇴르의 무덤도 있는데 지하실 천장에는 네 천사의 그림과 함께 과학, 자비, 신앙, 희망의 네 글자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파스퇴르 박물관
박물관 지하의 파스퇴르 무덤

1865년에는 누에가 병에 걸리는 질병을 연구해 병균(germs)을 찾아내서 전염되지 않은 누에와 뽕나무를 골라서 프랑스 실크산업이 혁신을 이루게 되는 계기를 만들었는데, 이는 현대의학 기초가 되는 세균이론의 근거가 되었다.

실험실의 파스퇴르 모습

1881년 5월 5일 파스퇴르는 양, 염소, 소에게 탄저병 백신 주사를 놓고, 26일 후인 31일에는 강한 탄저균이 있는 용액을 주사했다. 동시에 백신을 맞지 않은 양, 염소, 소에도 강한 탄저균 배양액을 주사했다. 6월 2일 백신 접종을 받은 동물들은 건강하게 살았지만 백신을 맞지 않은 동물들은 죽거나 죽어가고 있음을 많은 사람들에게 실험으로 보여 주었다. 탄저병 예방 접종의 효과를 직접 대중에게 보여주고 그 가치를 증명했다.

목장에서 탄저병 백신의 효능을 실험하는 파스퇴르

1885년 파스퇴르는 광견병에 걸린 개에게 물린 9세된 소년에게 광견병 백신을 투여해 살린 후 수 만명의 생명을 살렸다. 그동안 동물에만 실험하던 파스퇴르는 의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워낙 급한 처지에 있던 소년 부모의 간청으로 백신을 투여한 후 광견병 예방과 치료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것이다. 당시 의학 공동체의 비판과 반대를 무릅쓰고 파스퇴르는 세균 병원론, 백신 등을 발명했다.

광견병 백신을 맞고 있는 소년
기념 우표

프랑스 정부는 파스퇴르 연구소를 만들어 초대소장에 파스퇴르를 임명했다. 지금도 프랑스 파스퇴르 연구소는 국가 지원금과 기부금 그리고 산업계로부터의 로열티 수입과 자체 수익으로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파스퇴르 연구소가 정부와 성남시의 후원으로 2009년에 판교에 이전 개소하였으나 최근에 운영난을 겪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들려온다. 프랑스 파스퇴르 연구소 소속 연구진 중에서 8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파스퇴르 연구소도 분발하여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많은 지원과 후원이 지속되기를 바란다.

프랑스 파스퇴르 연구소
한국 파스퇴르 연구소

파스퇴르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으며 나이가 들면서 그의 신앙은 더 깊어만 갔다. 신앙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면 “많은 것들을 알면 알수록, 나는 브레타뉴 농부의 신앙으로 다가 갑니다(하나님 앞에 더욱 겸손해 집니다). 그러나 만약에 내가 모든 것을 알았다면, 나는 한 브레타뉴 농부 아내의 신앙을 가졌을 것입니다(하나님이 이세상을 지었다는 것을 훨씬 단순히 믿었을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이 말은 그가 과학을 깊이 연구할수록 하나님을 더 단순히 믿었을 것이라는 뜻이다.

“준비된 사람에게만 행운이 온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 미생물의 아버지 파스퇴르는 그의 성공 비결이 끈기라고 말하며 영감은 오랜 시간 준비해온 사람에게만 찾아온다고 말했다. 영감을 얻기 위해 또 인류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특허권도 주장하지 않고 오랜 시간 말씀과 기도로 살아간 그의 삶을 요약해주는 파스퇴르의 성공비결을 우리는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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