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는 다른 것이 아니고 틀린 것도 아니에요. 특히 장애인은 친구가 정말 많아야 해요” - 고정욱 작가

고정욱 작가 / 사진 = 정종갑 사진기자

[공감신문 라메드] <까칠한 재석이> 시리즈와 <가방 들어주는 아이>, 최근 <들림아, 할 수 있어!>까지 수많은 저서를 통해 어린이들의 작은 거인이 된 동화작가 고정욱.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책을 쓴 사람 중 한 명인 그는, 현재 통산 500권을 향해 퇴보 없는 전진 중이다. 유쾌하고 따뜻했던 고정욱 작가와의 대화.

엄마 등에 업혀 학교 가는 아이

이른 아침 용인의 한 초등학교. 넓은 강당은 어느새 하나 둘 어린아이들로 채워지더니 금세 들썩이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작은 몸집에 휠체어를 탄 고정욱 작가가 있었다. 그는 지체장애 1급으로 다리를 가눌 수 없지만, 초등학생 200명과 자유롭게 소통하는데 불편함이 없었다.

현재 누구보다 왕성하게 집필활동을 하는 고정욱 작가는 매년 300회 이상의 강연을 소화하는 베테랑 강연자이기도 하다. 마냥 웃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그 내공이 보통이 아니다. 그의 말 한마디에 아이들은 까르르 웃었다가, 반대로 차분하게 집중하기도 했다. 오늘 강연 주제는 ‘다름의 동행’.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바탕으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내용으로 꾸며졌다.

“세 살 때 제가 갑자기 똑바로 서지 못하고 심하게 아파서 어머니가 절 안고 병원에 갔는데 의사 선생님께서 그러더래요. ‘이 아이는 앞으로 혼자서 설 수도, 걸을 수도 없다’고요. 옆집 어른은 위로는커녕 ‘그런 애는 키워봐야 소용이 없다’고 손가락질했고요. 당시 엄청난 충격을 받은 어머니는 저를 데리고 다리 위에서 뛰어내릴 생각까지 하셨다고 해요. 하지만 그러지 않았고, 매일 저를 업고 학교에 등·하교하셨어요. 그때 만약 어머니가 나쁜 선택을 하셨다면 지금의 저는 이렇게 강연을 할 수도 없었겠죠. 날 이렇게 잘 키워준 우리 엄마에게 박수와 함성을!(웃음)”

고정욱 작가 초청 강연 (경기도 용인시 보라초등학교) / 사진 = 정종갑 사진기자

지금이야 주변사람들까지 웃게 만들 만큼 행복한 에너지가 넘치는 고 작가지만, 어린 시절 사진 속 그는 무표정 일색이다. 특히 친구들이 학교에 입학할 무렵 우울함이 더욱 심했다고. 더욱이 어릴 때부터 엄청난 독서량을 자랑했던 그의 학구열을 본 어머니는 아들이 장애 때문에 배움을 포기하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

이에 주저 없이 ‘업혀’라고 말씀하셨다고. 실제로 고 작가의 어머니는 하루도 빠짐없이 아들을 업고 500미터 넘게 떨어진 학교를 오갔다. 초등학교에 가서 그가 가장 처음 배운 것은 한글. 이미 초등학교 국어책을 집에서 다 읽은 고 작가에게 ㄱ(기역) ㄴ(니은) ㄷ(디귿)은 그야말로 애들 장난이었다. 이에 학교에서도 그의 총명함을 높이 샀고 학창시절 늘 좋은 성적을 유지하며 의사의 꿈을 키웠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의대 진학을 포기해야만 했다. “장애인은 의사가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제가 대학 갈 때만 해도 차별과 편견이 심할 뿐만 아니라, 사회의 장애 기반 시설이 매우 빈약한 상태였어요. 의대나 공대에서는 장애인을 단 한 곳도 받아주지 않았죠. 그래서 성균관대 국문과에 진학했고 199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글을 쓰고 있어요. 특히 장애인에 대해 알릴 수 있는 동화를 쓰죠. 요즘은 공공시설 어느 곳이든 장애인에 대한 접근성이 보장되어있어요. 이렇게 되기까지 저를 비롯한 많은 장애인 학부모들, 관계자들의 힘이 컸다고 생각해요.”

최근 출간한 <들림아, 할 수 있어!> 역시 발달장애와 지적장애를 가진 들림 양의 실화를 바탕으로 집필했다. 그 역시 장애인이다 보니 장애에 관련해 항상 오감을 열어놓고 있는데, 마침 들림 양이 장애를 딛고 서울대 음대에 진학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그녀의 이야기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아이들에게 힘을 줄 수 있고, 비장애인들이 가진 편견을 깰 수 있겠다는 생각에 펜을 잡게 됐다. 출간된 책을 보고 그녀 역시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 고 작가는 “오는 6월 24일에 대학로 이음센터에서 출판기념회와 들림 양의 피아노 연주회가 열린다”며 “많은 분이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장애인의 친구가 되세요

한 시간의 강연이 끝난 후 고 작가는 200명의 학생에게 일일이 사인을 해줬다. 사인과 덧붙여 “장애인의 친구가 되세요”라고 적는 것이 보였다. 이는 그가 아이들에게 항상 강조하는 것이자, 책과 강연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라고 한다. 그가 생각하는 장애인복지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 장애인과 함께 놀고, 먹고, 공부하는 것이 곧 장애인복지라는 것. 실제로 그 역시 학창시절 많은 친구의 도움이 있었기에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진 = 정종갑 사진기자

“좋은 친구가 있으면 혼자일 때 하지 못했을 법한 일들을 많이 경험할 수 있어요. 특히 장애인은 친구가 정말 많아야 해요. ‘장애는 다른 것이 아니고 틀린 것도 아니다. 나도 언젠가는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글을 통해 알리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아이들과 직접 스킨십하면서 전달하면 더욱 마음에 와닿게 되죠. 장애에 대한 편견이 없는 아이로 키우는 것 또한 작가로서의 소명이 아닌가 합니다.”

고정욱 작가는 워낙 많은 강연을 다니다보니 가끔은 아이들에게 당혹스러운 질문을 받기도 한다. 예를 들면 “선생님의 아이가 장애인과 결혼한다고 하면 어떻게 하시겠느냐” 같은 질문들이다. 실제로 딸이 있는 그는, 이런 질문을 받을 때 등골이 오싹해진다. 이럴 땐 그냥 솔직하게 “반대할 것 같다”고 말한다. 세상이 너무 각박하고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너희가 힘들지 않은 세상으로 만들어줘야만 내가 찬성할 수 있다”는 말을 꼭 덧붙인다.

“저의 좌우명은 ‘들이대’에요. 세계 최고의 대학은 들이대 아니겠어요(웃음)? 세상에는 엄청나게 많은 기회가 있는데 대부분 그것을 모르고 살아요. 특히 장애인은 더욱 그렇죠. 들이대는 아무도 이길 수 없어요. 저는 그렇게 살아서 여기까지 왔어요. 지금의 아내도 처음 만난 날 결혼하자고 들이댔죠. 이것이 제 삶의 신조이고 젊은이와 독자들에게도 해주고 싶은 말이에요.”

삶은 생방송이고 연습이 없다. 자신의 삶을 최고로 만들어서 자신에게 선물하자는 것이 고 작가의 말이다. 나에게 선물하는 성공적인 하루. 그것이 쌓이면 곧 성공한 삶이 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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