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박지나 칼럼] 콘돔의 아이러니, 성인용품과 의료기기의 다리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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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신문 박지나 칼럼] 콘돔의 아이러니, 성인용품과 의료기기의 다리 사이
  • 박지나 칼럼
  • 승인 2018.09.2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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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임신을 소재로 해 사회 논란까지 번진 영화 ‘제니 주노’ 中

[공감신문] 텐가, 바나나몰, 새티스파이어, 사가미, 우머나이저. 나름대로 유명한 어덜트 기업과 브랜드 이름은 귀에 익숙한 편이지만 직접 오프라인 매장을 찾는 건 아직 겁이 난다. 성인용품은 무리다. 심지어 콘돔도 어렵다.

이 나이 먹고도 콘돔 하나 사기가 껄끄럽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앞에 콘돔 박스를 내려놓기 곤란하다. 바코드 찍기를 기다리는 순간이 떨린다. 나는야 전형적인 한국 사람. 뭔가 극적인 변화가 오지 않는 한 평생가도 고쳐지지 않을 거 같다.

의외로 많다. 해외에서 자유로이 쓰이는 성인용품은 둘째 치고, 콘돔 하나 사기 쑥스러워하는 이들이 아직도 꽤 된다. 닳고 닳은 우리도 이 정돈데, 풋풋한 사랑을 시작한 새싹들은 오죽할까?

그대들은 알고 있는지? 콘돔은 일반적인 성인용품이 아니란 것을. 콘돔이란 가장 간편히 쓸 수 있는 피임 도구이자 성병 예방 장치다. 따라서 나이 제한도 없다. 많은 이들이 콘돔도 연령 제한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물론 우리나라 나라님들의 생각은 좀 달랐나 보더라. 2000년대 초반까지 청소년의 콘돔 구매를 ‘탈선’이라 표현했다. 대학생의 혼전 성관계를 ‘문란’이라 말했다. 그것이 만든 결과야 뭐, 다음과 같다.

청소년 낙태율 OECD 국가 중 최상위 수준, 피임 상식 최하위 여기에 콘돔 사용률, 피임약 복용율도 다시 떨어지는 추세란다. 아! 벤자민 버튼의 시계는 대한민국에도 있었구나.

지난 십 수년간 늘어난 건 어째 우리 집 뒷골목의 모텔뿐인 거 같다. 슬픈 얘기다, 이거.

한 시사 주간지가 청소년과 함께 편의점·할인점·슈퍼마켓·약국 등에서 콘돔을 구매하는 실험을 했다. 대부분의 매장이 청소년에게 콘돔을 팔지 않았다. 역정을 내는 곳도 있었다.

실상 청소년은 콘돔 구매 시도 자체를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경제적 문제도 있지만, 결정적 이유는 사회적 시선과 보수적 분위기다. 이런 상황에서 지하철 자판기 콘돔을 이용하긴 더 어렵다.

결국 비닐봉지, 랩 등으로 피임을 시도하는 경우까지 있다! 믿겨지는지? 전후 세대 얘기 아니다. 즈믄둥이가 태어난 지 18년이나 지난 현재,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얘기다!

2015년에 나온 청소년건강행태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청소년의 절반 이상이 피임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임신을 경험한 학교 밖 청소년의 경우 80%에 가까운 숫자가 임신중절수술을 받았다. 미국 10대 청소년의 피임 실천율이 90%에 달하는 것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안타까운 결과다.
 

‘세계 에이즈의 날’ 건강한 성문화 확립을 위한 학교 행사 <사진 제공=바나나몰>

논란이 됐던 ‘쾌락 통제법’, 그리고 이어지는 모순의 시대

여자 친구와 성관계를 하게 된 만 18세 김군은 ‘피임의 중요성’에 대해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다. 아직 고등학생 신분인 그는 사람 많은 지하철 콘돔 자판기나 편의점 콘돔 구매는 실행에 옮길 자신이 없다.

인터넷을 선택했다. 인터넷 쇼핑의 장점은 얼굴을 보이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 있다. 성인용품 등 사회적으로 민감한 분야에 있는 물건을 구매할 때 더욱 빛난다. 바나나몰, 텐가 등 성인용품 기업의 쇼핑몰은 힘들겠지만, 전 연령이 이용하는 옥션, 11번가 등 종합 쇼핑몰이라면 구매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결론만 말하면, 김군을 거사를 치렀다. 하지만 콘돔을 사용하진 못했다. 콘돔 구매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이른바 ‘쾌락 통제법’이라 불리는 고시가 화제였다. 여성가족부 고시 제2013-51호의 얘기다. 청소년유해물질을 명시하는 이 고시는 청소년의 심신을 심각하게 손상시킬 우려가 있는 물건을 유해 물질로 지정해 보호한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콘돔은 의료기기로 분류된다. 성인용품과는 약간 다른 포지션에 있다. 성병을 예방하고 성생활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용품으로 분류돼있다. 앞서 말했듯 이런 이유로 연령 제한도 없다.

여성가족부 고시 제2013-51호는 모순을 만드는데 일조했다. 해당 고시는 기능성 콘돔을 죄다 청소년유해물질로 지정해버렸다! 세상은 유기체처럼 움직인다. 톱니바퀴와 같다. 하나의 오류만 생겨도 죄다 꼬여버린다.

일반형 콘돔 외 콘돔을 청소년유해물질로 지정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청소년은 콘돔 전문 쇼핑몰을 이용할 수 없다. 해당 업체가 일반 콘돔만 판매하고 있을 리가 만무하니, 성인인증 없이는 구매가 불가능하다.

둘째, 종합 온라인 쇼핑몰 사용도 불가능하다. 국내 쇼핑몰 기업은 콘돔을 ‘성인인증 필수 요소’로 해놨다. 시스템적 문제다. 하루에도 수 만개의 상품이 올라오는 종합 쇼핑몰이 일반형 콘돔은 구매 가능으로, 그 외 모든 콘돔은 구매 불가 등으로 나누는 건 굉장히 어렵다. 기능성 콘돔을 일반형이라 속여 판매할 경우도 문제다.

셋째, 포털 사이트에서 콘돔과 피임 관련 정보를 검색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국내를 대표하는 거대 포털 사이트는 ‘콘돔’이라는 단어를 성인인증 요소로 해놨다. 하긴 포털 입장에서는 당연하다. 일반형 콘돔은 괜찮은데, 나머지 모든 콘돔은 안 된다니. “야, 그냥 다 19금 걸어!”

결정적인 건 따로 있다. 이건 위에서 말한 세 가지보다 크다. 바로 사회의 편견, 부정적인 인식의 조장이다. 여성 가족부가 제2013-51호를 발표하고 그에 대한 논란이 잇따르자 발표한 답변엔 이런 내용이 있었다. “청소년이 쾌락을 느끼고 자극을 느낄 우려가 있다”

대부분의 사회 구성원은 법과 질서에 민감하다. 여성가족부의 고시와 ‘청소년이 쾌락을 느낄 문제’는 인상에 깊이 각인됐다. 그리고 그것은 기존에 깔려있던 보수성과 결합해, 지금과 같은 모순의 시대를 낳았다.

 

소중한 것을 더 소중하게 해주는 게 우리의 역할이 아닐까? <사진 제공=바나나몰>

강요되는 현대판 천동설, “그래도 할 놈은 한다”

희미한 기억이 하나 있다. 고교 시절, 친하게 지내던 녀석이 내게 이런 말을 하더라. “남자친구와 팬티로 피임을 했는데 어쩌지?” 지금도 궁금하다. 팬티로 피임을 했다는 게 도대체 무슨 소린지, 정말 모르겠다. 그래서 난 이 일화를 ‘희미한 기억’이라 부른다.

나는 이렇게 답했던 거 같다. “그럼 하지마”. 물론 변하는 건 없었다. 그녀는 일주일 뒤 같은 얘기로 한 번 더 고민 상담을 해왔고, 그 다음달에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흘렀다. 세대도, 시대도 변했다. 내 학창 시절엔 성관계 경험자가 극히 적었던 거 같은데, 지금 나오는 통계는 다르다. 이건 우리만의 얘기가 아니다. 전세계적으로 그렇다. 그저 강제한다고 막기 어렵다.

시대가 변했는데 시스템이 따라가지 못한다. 현실 속 청소년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신의 선택에 의해 이성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사회가 원하는 청소년의 그림은 다르다.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쉽게 인정하지 않는 경직된 사회는 우리의 청소년을 병들게 하고 있다.

옳고 그름을 논하기에 앞서, 현재를 인지하고 이것이 낳을 문제를 어떤 식으로 예방하는 것이 그들에게 도움이 될까? 앞선 시대를 살아간 우리가, 청소년을 위해 할 일은 아마 그런 일이리라.

“학생은 학생다워야지!” 고귀하신 어르신의 이상은 높은데, 그것 때문에 현실이 시궁창이다. 문란을 조장하자는 게 아니다. 할머님이 내게 남겨준 말 하나를 소개하고 싶다. 무슨 상황이 됐든, 어차피 할 놈은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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