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기시대는 모계 사회…"신화 연구, 성차별 불식시키는 데 기여할 것"

[공감신문=조희원 칼럼니스트] 20여년 전 '단군할머니론'이 제기된 바 있다. 이러한 주장은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곧 묻혀 버렸다. 그러나 단군왕검은 실제로 여성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사의 시대구분에 의하면, 신석기시대는 기원전 8,000년경부터 시작되었고 청동기시대는 기원전 2,000년경부터 기원전 1,500년경 사이에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시대구분 방식으로 보면 단군신화의 실제 시기인 기원전 2,333년은 청동기시대가 아닌 신석기시대 말기에 해당된다.

신석기시대는 모계 중심의 질서가 공고히 유지되던 시기였기 때문에 고조선의 지도자인 단군왕검은 남성이 아닌 여성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단군왕검은 고조선을 지배하던 당시 통치자의 칭호로서 단군은 종교지도자를, 왕검은 정치지도자를 뜻한다. 단군은 몽골어 텐그리(Tengri)의 음차표기이며 이는 '하늘 또는 천지신명과 인간과의 교류를 가능하게 해 주는 사람'을 말한다.

고대시대에는 여성 사제들이 영적인 힘을 발휘해 병든 사람을 낫게 하고 가뭄에는 비를 내려달라고 제사를 지냈으며 사람들의 미래를 예언해 주기도 했다.

이러한 여성 사제를 호남지방에서는 무당의 사투리인 ‘당골’이라고 불렀는데, 단군의 어원은 당골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또한 현재까지 남아있는 무당의 계보 이름은 대체로 모계를 따르고 있고, 무당의 전신이 종교적 영매였음을 감안해 본다면 당시에 여성지도자가 존재했을 가능성은 매우 크다.

동양의 고대신화에서 여성지도자가 신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서기'는 태양의 여신인 아마테라스 오미카미, 달의 여신인 츠쿠요미 노미코토 등의 여성이 일본 건국의 주역임을 보여준다.

 

정부 표준 단군 영정. 서울 종로구 사직동 단군성전에 봉안돼 있다.

우리 고구려 건국신화에서 유화부인은 주몽에게 천마를 골라주며 새로운 나라를 세울 수 있는 힘을 실어주고 오곡의 종자를 전해 농사를 시작할 수 있게 돕는 등 고구려를 세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 고구려의 시조신으로 모셔질 정도다.

민족의 종교관과 세계관이 담겨져 있는 한국의 건국신화는 고조선의 건국 사실을 전하는 단군신화로 알려져 있다.

단군신화는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전승되어 기록으로 남겨진 것이다. 특히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의 건국이념은 민족의 수난을 극복하는 정신적 지주로서의 역할을 했고 우리 민족의 평화수호 정신의 근거로서 계승되었다.

일연의 '삼국유사'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단군신화가 담겨 있다.

“옛날 옛적 하늘의 신이었던 환인의 아들 환웅은 인간 세상에 관심이 많아 천부인 세 개와 풍백, 우사, 운사 그리고 삼천 명의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 신단수로 내려왔다. 환웅은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곰과 호랑이에게 쑥과 마늘을 주며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말라고 당부했다. 호랑이는 이를 견디지 못했지만 곰은 이겨내어 삼칠일 만에 여자가 되어 환웅과 혼인해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바로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고조선을 세운 단군왕검이다.”

 

오랜 세월 구전되어 내려오던 단군신화는 고려 후기에 '삼국유사'에 기록되었다. 사실적 연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집필 연대가 늦어진 단군신화는 재해석될 필요가 있다.

단군신화는 남성 중심적인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유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고려의 시각에서 집필되었기 때문에 객관적 내용이 아닌, 당시의 사회상과 집필자의 시각이 많이 반영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단군신화의 사실적 연대는 모계 중심의 사회질서가 공고히 유지되던 신석기시대가 분명함에도, 집필 연대인 고려 후기의 사회상을 반영해 단군왕검을 여성이 아닌 남성으로 표현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과거와는 달리 많은 부분에서 양성평등을 이루었다. 하지만 여성들은 여전히 남성적 가치 안에서 유리천장이라는 장애물로 인해 성차별을 겪고 있다.

따라서 신화의 기록으로 남아있는 고대국가의 정치지도자가 여성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학문적인 연구를 하는 것도 현재 한국사회에 만연한 성차별을 불식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이다. /조희원<정치학박사·경희대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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