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가, 가수, 작가 등 다양한 활동 속에 자전적 소설 <엄마, 울지마> 집필

사업가, 가수, 작가 등 다방면의 활동을 보이고 있는 황선복 씨 / 사진 = 정종갑 사진기자

[공감신문 라메드] 누구나 엄마가 있다. 엄마는 삶의 원천이며, 언제나 그리운 품이 아닐까? 하지만 세상의 모든 엄마가 자녀에게 다 똑같지는 않다. 어떤 엄마는 항상 웃는 모습으로 기억되고, 어떤 엄마는 화가 나 있거나, 울고 있는 모습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작가 황선복이 그리는 엄마는 슬픈 역사를 가진 분이다. 그가 책으로 남긴 <엄마, 울지마>는 그런 슬픔 속에서 성장하며 살아야 했던 한 남자의 기록이다.

그리운 엄마, 잔인한 현실

황선복 작가는 경기도 이천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어린 선복 앞에 놓인 인생은 불편한 환경이었다. 아버지는 이미 결혼해서 자녀가 있었고, 엄마는 그런 집에 본인도 모르게 두 번째 부인이 되었다. 그리고 아래로 동생들이 태어났고, 어린 선복은 그런 동생들을 추스르며 살아야 했다.

그리고 항상 웃음기 없이, 울고 있는 엄마를 봐야 했다. 그리고 9살 때, 엄마가 집을 나갔다. 그리움이 사무칠 수밖에 없는 삶의 시작이었다. 한창 부모의 사랑, 특히 엄마의 애정을 받고 자라야 할 나이에 막막한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가 있는 집으로 왔지만, 배다른 형제들과 큰엄마와 불편한 생활을 해나가야 했다.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하고, 산에서 나무를 해오는 등,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학교에서는 밝고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좋아하는 건강하고 명랑한 학생이었던 선복. 가정 형편이 어렵지만, 이미자의 가요를 부르면서 아픔을 달래며 지냈다. 어린 선복은 학교 선생님들마저도 감탄하게 하는 구성진 목소리를 가졌다고 한다.

하지만 학교도 다니기 어렵고,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고 선복은 결심한다. 집을 나와 서울로 상경한 선복은 수십 가지의 일을 경험하며 밑바닥 인생을 살면서 먹고 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면서도 질긴 생명력으로 스물다섯 살에 안정된 직장을 가지게 됐다. 그리고 엄마를 찾아야겠다고 결심한다. 결국, 청주로 내려가 며칠간의 수소문 끝에 엄마를 만나게 된다. 그 마음이야 생각만큼 똑같지 않겠지만, 엄마라는 그리움은 힘든 인생을 버텨온 버팀목이 아니었을까?

사진 = 정종갑 사진기자

엄마가 살아오면서 미처 자식에게 이야기하지 못한 사정이 얼마나 많았을까? 하지만 그만큼 힘들게 어린 시절의 혼란을 이겨내며 살아왔을 선복의 인생 또한 말 못 할 사연이 넘칠 것이다. 두 사람의 재회가 가진 삶이 반드시 해피엔딩만은 아니겠지만, 이제 성인이 된 선복에게는 감정을 일단락하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홀로 걸어온 시절, 입지적전인 인생

황선복 작가는 신뢰와 신용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한다. 생활이 안정된 후 헤어졌던 동생들을 찾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고, 고향의 아버지와 큰아빠 그리고 배다른 형제들에게도 베푸는 삶을 살고 있다. 황 작가는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과정까지 마치고 대학에 진학한다. 대학을 마치고 대학원에서 정책대학원 과정을 수료했다. 황 작가의 배움에 대한 의지는 지금도 크다. 특히 음악을 전문적으로 공부하고자 하는 뜻이 있다.

황 작가는 수액 공병을 모아 재활용하는 사업을 시작하며, 병원 운영 환경을 알게 된다. 재활용이라는 개념이 사회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을 때, 황 작가는 의료폐기물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영역을 넓혀갔다. 그 결과 사업은 크게 번창했다.

환경 개선 사업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 받은 황선복 작가 / 사진 = 정종갑 사진기자

이후 황 작가는 환경문제에 대해 더 깊은 관심을 같게 됐다. 그 결과 환경부 장관 표창을 받기도 했다. 그러다 2015년, 황 작가는 가수로 데뷔한다. 평생을 꿈꿔온 일 중 하나였다. 방송과 공연 요청이 많고, 최근에는 해외 공연스케줄도 잡혀있다. 황 작가의 사무실 한편에는 노래연습과 녹음을 할 수 있는 방이 따로 있다.

어린 시절, 그리운 엄마의 이름을 부르던 어린 선복은 이제 성장한 자녀를 둔, 그리고 사업체를 이끄는 기성세대가 되었다. 그에게는 불러야 할 노래도 많고, 해야 할 사업 구상도 꽤 구체적으로 잡혀 있다. 작가 황선복은 이제 제3의 인생을 시작하고 있었다.

사진 = 정종갑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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