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강란희 칼럼] “시대의 고비마다 역사는 대가를 요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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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신문 강란희 칼럼] “시대의 고비마다 역사는 대가를 요구하고….”
  • 강란희 칼럼니스트
  • 승인 2019.10.21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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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고 그름에는 중도는 없어”

“침묵…. 침묵은 호구(虎口)다.

[공감신문] 강란희 칼럼니스트= 세상이 시끄럽다. 두 동강이 난 이 땅에 또 두 동강이 난 듯 서로가 다양하고 시끄러운 소리를 내고 있다. 한쪽에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국 물러가라.”라며 소리를 지르더니 이번엔 “국민의 명령. 국정대전환 촉구 국민 보고대회”라며 “공수처 불가”를 부르짖는다.

제9차 서초동 촛불문화제. 사진=강란희 칼럼니스트.
제9차 서초동 촛불문화제. 사진=강란희 칼럼니스트.

또 한쪽에는 서초동 촛불이 여의도 국회 앞으로 옮겨 지면서 여기서도“국민의 명령. 고위공직처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 등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등을 국회 통과”를 외치며 “검찰개혁 사법개혁 언론개혁 공수처 설치” 등을 부르짖고 있다. 

참 바람직한 것이 성싶다. 자신의 소리를 내는 것은 좋은 것이다. 침묵하지 않는 자만이 자유의 열매를 맛볼 수 있는 자격이 있다. 물론 침묵하는 자들은 자격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다시 말하면 이것(소리나 외침)은 진실에 바탕이 되어야 하고 국민에게 납득(納得)이 가능해야 한다. 개인의 소리는 상대방에게 이해가 가능해야 하고 단체의 소리는 국민에게 이해와 설득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의 역사를 잠깐 뒤돌아보자. 우리는 침묵하지 않았기에 그 지긋지긋 한 일제의 치하에서 독립도 할 수 있었고 군부독재에서도 벗어 날 수 있었으며 전쟁 없는 평화로운 이 땅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누군가가 자유와 정의를 위해서 외치고 평화를 위해서 흘린 피의 대가로 현재 우리는 자유와 평화를 누리며 살고 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소중한 자유와 평화가 그냥 얻어진 것 인양 생각하는 무리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대는 이 나라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서 뭣을 했소. 악랄한 총칼과 최루탄에 맞서며 항거는 해봤소. 총칼을 들고 군대나 전쟁터에 나가 봤소.”라며 흥분하는 한 시민은 소리를 높인다.

일찍이 영국의 역사학자이자 비평가인 토머스 칼라일은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다(Speech is silver, silence is gold).”라고 말했다. 물론 이 뜻은 가짜뉴스 등을 통해서 남에게 상처 주는 말은 하지 말고 남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라 는 뜻인 것은 잘 안다. 

하지만 우리의 역사 속을 한 번 더 들여다보면 침묵으로 이루어진 것이 어디 있었던가? 침묵은 복종을 의미해 왔다. 나라를 빼앗기고 자유를 잃었으며 전쟁의 공포와 인권을 유린당하고 개 되지나 다름없는 삶의 경험을 우리는 해 왔다.

이런 사정으로 일각에서는 “침묵은 금(金)이 아니라 호구(虎口)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진실과 소통하는 것은 황금이다. “침묵은 자신의 주관을 버리는 것입니다.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고 표출해야 합니다. (중략) 침묵은 자신의 억울함을 해소할 수가 없습니다.” 

“중도는 없다.”

사람이 살다 보면 “모든 화근(禍根)은 입에서 시작된다.”라고 말한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그것을 머리로 생각하고 가슴으로 느낀 다음 입으로 뱉어내는 것이 가장 이상적일 것입니다.”라고 말하면서, “그래서 우리는 어느 편에서도 말할 수가 없어서 이같이 침묵(중도)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침묵하는 사람들을 흔히 우리는 중도라고 이야기한다. 그게 맞는 말일까? “중도가 어딨습니까?” “일의 옳고 그름에 중도가 어디 있습니까? 오직 옳고 그름만 있을 뿐이지요. 애매모호 함은 방관이지요. 그건 좀…. (이하생략)”라며 시민들은 직언한다.

우리는 100년 전의 3.1운동부터 최근의 촛불혁명까지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어 왔다. 그 과정에서 작금의 대한민국은 자유와 정의를 수호하고 민주주의를 싹트게 한 것은 대다수 행동하는 사람들의 외침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보수든 진보든 찬성이든 반대든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무슨 소리라도 내야 한다는 말이다.

“사실 어느 곳에서 무엇을 외치든 우리는 ‘극(극좌, 극우)’으로 분류되는 층만 빼고 나면 서로가 합리적 절충이 가능하다고 봐요. 그것은 당연하며 자유와 평화 그리고 국민이 먹고사는 일까지 대단히 중요한 일들이지요. 하지만 어느 쪽으로 든 치우치지 않겠다며 중간의 입장을 표방하는 사람들은 (중략) 까놓고 이야기하면 아마 그들은 센 쪽으로 붙어 그냥 그렇게 살겠다는 것이 아닐는지요.”

“(전략) 좀 더 엄밀히 이야기하면 중도란 없어야 하지요. 중도를 지키며 침묵하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누가 더 세(강)나?’며 관망하는 사람들이라고요. 예를 들면 일신이 편하고 간섭을 받거나 하기도 싫고(중략) 그냥 무난함을 추구하는 사람들이지요.”

국민의 이야기를 다시 풀어 보면 “중도는 갈대와 같다.”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도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볼 수가 있다.

2019.10.19. 광화문 보수 집회. 사진=연합뉴스
2019.10.19. 광화문 보수 집회. 사진=연합뉴스

결국, 자기의 생각이나 소리도 없이 센 쪽으로 묻어가거나 따라가다가는 그쪽에서도 외면받는 신세 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실컷 소리 내고 후회는 하지 말자.”라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이야기다. 더불어 광화문의 보수 집회든 국회/서초동의 촛불문화제든 소신대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말이다.

“사람이 사는 동안 적어도 억울함은 없어야.”

“왜? 가진 것이 없는 자, 순진한 자, 침묵하는 자만 혹독한 수사를 받아야 하고 압수수색을 받아야 합니까? 반면 떠들고 시끄럽고 가진 자들은 왜? 수사나 압수수색은 미온적입니까? 아니 왜 하지도 않는 것입니까?” 

작금의 우리나라 실태를 적나 하게 보여주는 국민의 소리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한민국 서초동 검찰은 기준도 메뉴얼도 없이 엿장수 맘대로 수사하고 기소하는 등이라며 국민은 소리 높여 적폐라고 규정하고 청산의 소리를 높인다. 게다가 서초동의 다수법조인들도 이에 동의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토기 몰이 수사는 물론이고 한 사람을 잡겠다고 집중적으로 수사하고 기소하기 위해 엄청난 국고를 들여가며 80회에 가까운 압수수색과 당장에 어떻게 될 수도 있는 중증환자를 수차례나 수사를 하는가? 하면 온 가족을 사지로 몰아넣는 파렴치를 스스럼없이 행하는 것을 보면 (중략) 사람인가? 싶을 정보라니까요.”

“(전략) 지금 와서 보면 10년 전 강금원 회장을 보는 듯해서 불길하기 짝이 없어요. 더구나 모 종편 채널에 초대 인으로 출연한 몇 사람이 서로 주고받는 이야기를 듣고 경악을 금치 못했어요. ‘뇌종양 등이 있어도 감옥에서 생활하는 데 지장이 없다.’라는 등 (중략) 꼭 악마 같았어요. 사람을 죽인 죄인도 인권은 보호 해 주면서 어찌…. (이하생략)” 

그냥 있는 그대로 보자면 한쪽은 그동안 누리고 누려온 “기득권”을 놓치기 싫어서 외치고 있고 또 다른 한쪽은 “공정한 세상”을 원한다며 외치고 있는 성싶어 보인다.

각설하고 언 듯 보면 두 동강이 난 한반도에 다시 두 동강이 나 있는 것처럼 보인다. 불안하고 초조하다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이것이 정치권과 검찰과 언론 때문이라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어서 더 걱정되는 것 또한 부인할 수도 없다.

하지만 이 또한 지나가는 과정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이라는 말이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이 또한 봉합되고 새로운 제도하에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것이다. 담에 맞이하게 될 세상은 적어도 억울한 사람이 없이 같이 어우러져 사는 세상이 되리라는 것에 무게가 실린다는 이야기다.

“드러나는 적폐들의 민낯”

“(전략) 반드시 청산하고 갈 것이 있어요. 일련의 사건 사고 들을 보세요. 장관 한 명 임명했더니 구석구석에서 적폐들의 민낯이 솟아나고 있잖아요. 음지에서 나온 각종 적폐는 반드시 소탕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촛불을 들었고 오늘도 또 촛불을 들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정권에서도 볼 수 없었던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검찰이 휘두르는 칼에 특정한 가족이 끝도 없이 아직도 난도질당하고 있다. 이런 광경을 두 눈과 두 귀로 보고 듣는 국민은 좌우를 막론하고 “너무 무자비하다.”란 말을 하는 것을 쉽게 목격할 수가 있다.

우리는 또 여기에 동승(同乘)한 언론의 민낯 또한 접하면서 분노와 절망감을 맛봐야 했다. 게다가 정치권은 차치하고라도 압색영장을 찐빵처럼 찍어낸 사법부의 민낯 또한 드러난 것을 보고 말았다. 이에 사법 적폐를 외치는 국민의 촛불이 향후 정국에 대한 귀추도 주목되기도 한다. 하여튼 공정하지 못하고 진실하지 못하는 언론 적폐들이 휘두르는 펜에는 정의가 사라지고 무자비한 가짜뉴스와 인권탄압만이 보여서 이 또한 국민의 심판대에 오를 전망이다.

국회를 비롯한 정치 권력도 마찬가지다. 오직 자신과 자신의 가족만을 생각하며 “나만 아니면 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정치 권력을 가진 이상 개혁은 필연적인성싶다. 특히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국회를 자신들 처벌의 방어 은신처로 삼고 있다는데 더 분노한다. 특히 이들에게 불체포 특권 등을 회수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말이다. “국회의원은 불체포 특권을 없애서 회기 중이든 아니든 언제든 체포/구속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사정으로 이들의 정치 권력이나 정치검찰의 칼날 그리고 언론의 무자비한 펜의 힘으로 대다수 가진 것이 없는 자들은 그냥 속수무책으로 당해 왔다는 말을 하고 있다.

“이제 한계에 왔습니다. 그래서 광장에서 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침묵하지 마라.’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중도를 포기하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너와 나의 삶이 되고 우리 곁에서 부정부패를 청산하고 개인의 삶을 기름지게 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2019.10.16. 부마민주항쟁 40주년 기념식. 이날 부마민주항쟁은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었다. 사진=청와대
2019.10.16. 부마민주항쟁 40주년 기념식. 이날 부마민주항쟁은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었다. 사진=청와대

“시대의 고비마다 역사는 대가를 요구”

어쨌든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목소리가 필요하다. 찬반 의견은 치열하게 다퉈야 하고 이상적인 조율로 다수가 충족하는 좋고 옳은 결론을 도출해내야 한다. 물론 가짜뉴스가 아닌 진실의 바탕에서 말이다.

어둠을 밝히는 것이 개혁이라면 침묵은 금이 아니라 이제 스스로 자신의 소리를 내야 한다. 결국, 민주주의와 온전한 자유는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누가 가져다주는 것도 아니다. 시대의 고비 고비마다 역사는 대가를 요구했고 다수의 국민은 대가를 치르며 쟁취했으며 지금도 외치고 소리를 내고 대가를 치르고 있다. 

한편으로 시대의 요구를 거스르는 개혁의 거부자는 아직도 지난날의 영광인지 뭔지를 쫓으며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쓸데없는 힘을 낭비한다. “결코, 이들은 지키지 못할 것입니다. 결국 (이들은) 스스로가 가둔 어둠 속에서 몸부림치며 사악한 자로 남아 명예롭지 못하고 그 끝은 파탄을 맞을 것입니다.” 이 말은 일명 태극기 집회에 자주 나간다는 한 노인의 일침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 시대의 양대 산맥이 주장하는 여러 이야기를 다양하게 분석해 볼 수가 있다는 말이다. 한쪽의 기득권 세력들은 현재의 기득권을 지킴으로서 자신은 물론 자손 대대로 부귀와 영화를 대물림할 생각일 것이고 또 다른 한쪽은 현재의 기득권을 회수함으로써 정치 경제 사법 국방 검찰 등에서 그들(기득권층)과 같은 잣대를 요구하며 공정한 사람 사는 세상을 후손들에게 물려 주자는 주장이다. 

“자유가 필요할 때 침묵하고 외면한 자, 평화가 절실할 때 이를 저주하고 군(軍)을 외면한 자는 민주와 자유와 평화를 누릴 자격이 없다.”라며 부르짖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또 한 “침묵은 자랑이 아닙니다.”라며 말을 하는가? 하면 그들에게 “틈만 나면 흥얼거리고 춤이 나오면 춤을 춰라. 그래야 민주도 자유도 평화도 쟁취할 수 있다. 그래야 사람답게 사는 것이다.”라는 밀을 그들에게 들려주고 싶단다.

따라서 국민은 국민 위에서 군림하는 정치 권력과 검찰 권력 그리고 사법부와 언론 권력 등으로부터 해방이다. 이로써 쓸데없는 수사에 국고를 탕진하거나 수십억 원의 혈세로 인력을 쏟아부으며 단서나 증거 없는 수사로 인권을 짓밟는 등의 권력으로부터 해방을 이 땅의 가지지 못한 자들의 바람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느낀다는 말이다. 

그래서 오늘도 국민은 이렇게 외치고 있다. “이제 침묵은 미덕이 아닙니다. 오히려 호구가 될 뿐이지요. 우리는 진실과 정도를 찾아서 불의에 대해서는 끊임없는 소리를 내야 합니다. 적어도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는 동안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있어서는 안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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