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팔 이바노프 전격 경질, 후임 대통령 행정실장에 40대 바이노 기용

[공감신문 김송현 기자] 구소련 이래 러시아의 권력 변동은 예측이 불가능하다. 모스크바의 정책 결정은 소수의 실로비키(siloviki)에 의해 결정돼 왔다. 실로비키는 구소련의 국가보안위원회(KGB),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등 정보기관과 군, 경찰 출신의 인사를 말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도 실로비키 출신이다.

현재로선 2018년 5월에 임기가 끝나는 푸틴 대통령의 후계로 메드베데프 총리가 가장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푸틴은 메드베데프의 후계자 가능성을 한껏 낮춰버렸다.

안톤 바이노 신임 대통령 행정실장. /AP=연합뉴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세르게이 이바노프 대통령 행정실장(비서실장)을 전격 경질했다고 크렘린궁 공보실이 밝혔다. 신임 행정실장엔 이바노프 밑에서 부실장직을 수행해온 안톤 바이노가 승진 임명됐다.

푸틴의 이번 인사를 놓고 서방에서는 2018년 대선을 겨냥해 후계구도를 짜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하고 있다.

물러난 이바노프는 푸틴과 함께 상트페테르부르크(레닌그라드) 출신에다 레닌대(현 상트페테르부르크대) 출신이다. 동향에 동창인 셈이다. 게다가 KGB에서 함께 일했으며, 수십년을 푸틴과 동고동락 동지이자, 충성스러운 부하였다. 실로비키 출신의 이바노프는 러시아 국방장관도 역임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17년전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푸틴이 러시아 총리에 올랐을 때 3명의 기자가 “누구의 얘기를 가장 잘 듣느냐, 누굴 가장 믿느냐”고 물었을 때, 푸틴은 “이바노프”라고 즉답했다고 한다.

63세인 이바노프는 푸틴에게 한 살 아래다. 이바노프는 오랫동안 푸틴을 보좌해왔으며, 러시아의 대외정책을 직접 간여해왔다. 2014년 크림 반도 합병을 주도했으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강경노선, 미국 및 서유럽과의 대치도 이바노프가 주도한 것으로 서방세계에서는 보고 있다.

하지만 이바노프는 2008년 대선에서 그보다 아래 나이의 메드베데프 총리에게 후계자리에서 밀려났다.

러시아 헌법에는 4년 임기의 대통령을 2번에 한해 연임(중임)할수 있게 돼 있는데, 푸틴은 누군가에 대통령 자리를 물려주고 자신은 총리로 내려갔다가 4년후에 다시 대통령에 나갈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때 가장 믿는 사람에 4년을 맡겨야 하는데, 그 사람은 이바노프가 아닌 메드베데프였다. 여기서 이바노프는 첫 좌절을 겪었다.

20012년 푸틴이 다시 대통령이 됐을 때 이바노프는 푸틴에게 충성을 다하며 2018년을 기약했지만, 푸틴은 새로운 충복을 찾았다. 나이가 많은 것도 약점이었을 것이다. 결국 이바노프는 권력 핵심에서 밀려나게 됐다.

푸틴이 고른 충복은 바이노였다. 나이 44세. 바이노는 널리 알려진 인물은 이나다. 외교관 전문 양성 학교인 외무부 산하 모스크바국립국제관계대학(MGIMO)를 졸업하고 외교부에서 일하다 지난 2002년 대통령 의전실쪽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2012년부터 대통령행정실 부실장직을 수행해 왔다. 따라서 실로비키 출신도 아니다.

세르게이 이바노프 전 대통령 행정실장. /연합뉴스

바이노는 물러나는 이바노프가 직접 푸틴 대통령에게 추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바노프는 자연보호·환경·교통 문제 담당 대통령 특별대표라는 한직으로 밀려났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전임 및 신임 행정실장과 만난 자리에서 이바노프가 스스로 실장직에서 물러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소개했다.

푸틴의 이번 인사는 세대교체를 통해 러시아의 권력 구조를 재편하기 위한 수순으로 파악된다. 노년층을 이너서클에서 배제시키고, 덜 도전적인 젊은 인물로 그 자리를 메워 푸틴이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로도 해석된다.

푸틴은 4년후 물러날 것도 염두에 두었다는 평가다. 현재로선 대통령을 한번 역임한 메드베데프 총리가 1순위다. 하지만 최근 모스크바에선 메드베데프 경질론이 제기되고 있다. 메드베데프 총리는 지난 2014년 2월 소치에서 열린 동계 올림픽 개막식에서 졸고 있는 모습이 포착돼 지탄을 받은 바 있고, 그 전 해엔 애플사의 스마트폰을 들고 웃고 있는 모습의 사진이 공개돼 비판을 사기도 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푸틴 대통령이 오는 9월 총선 이후 메드베데프 총리를 해임하고 경제 전문가인 알렉세이 쿠드린 전(前) 재무장관을 신임 총리로 임명하는 대대적 개각을 단행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각에선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와 국제 유가 하락으로 초래된 러시아 경제 위기에 대한 불만이 메드베데프 총리에게로 향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따라서 대통령궁 비서실장 역할을 하는 바이노가 다크호스로 부상하고 있다. 푸틴은 러시아의 절대권력을 쥐고 있기 때문에 후계자도 스스로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

푸틴은 현재 여러 난관을 수습해야 할 입장이다. 우선 9월 중순 총선을 치러야 한다. 게다가 경제위기를 해결해야 하고,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서방의 경제제제를 돌파해야 한다. 푸틴은 앞으로 몇 년간 충성 테스트와 사태수습능력 등을 감안한후 차기 대통령을 낙점할 것으로 관측된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 /타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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