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주 칼럼니스트

[공감신문=한용주 칼럼니스트] 저금리와 통화팽창은 투자와 소비를 자극한다. 저금리가 잠재된 미래의 수요를 현재의 유효수요로 앞당기는 효과가 있지만 공급 또한 늘리는 효과가 있다.

지난 8년간 세계 각국들은 금리를 낮추고 돈을 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경제성장 속도가 느려지는 것은 만성적인 수요부진 때문이다. 과거에 비해 인구증가 폭이 줄었고 일자리 창출도 어려워졌다. 이것은 통화정책으로 풀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이다. 시대가 바뀐 것이다.

장기간 반복해온 통화팽창 정책이 결과적으로 공급과잉을 전 방위적으로 확산되어 버렸다. 만성적인 공급과잉으로 기업들의 수익은 줄어들고 저금리로 연명하는 좀비기업들이 크게 늘었다. 수익이 있는 곳에 투자가 이루어지기 마련인데 공급과잉 때문에 투자를 해봐야 손실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아 기업들이 투자를 꺼리고 있다.

따라서 중앙은행에서 돈을 아무리 풀어도 투자로 이어지지 않고 금융권에 맴돌거나 투기세력화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있을 뿐이다. 이런 현상을 유동성 함정이라고 부른다. 세계는 지금 여전히 돈을 풀어 총 유동성은 늘어나지만 실물경제에서 돈의 유동성은 오히려 감소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자산정보업체인 웰스엑스(Wealth-X)의 집계에 따르면 전 세계 부호들의 현금 보유 규모가 지난 6년 이래 최고치에 달했다고 한다. 전 세계 억만장자 2천473명이 보유한 현금이 지난해 현재 1조7천억 달러가 넘으며, 이는 그들의 전체 자산 가운데 22.2% 이상을 차지한다고 분석했다.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는 투자자들이 현금 보유비중을 높이고 있다.

투자손실도 실질 유동성을 감소시키는 요인이 된다. 공급과잉에 따른 투자손실이 발생한 대표적인 사례가 원자재와 에너지 분야이다. 지난 1~2년간 에너지를 비롯한 원자재 분야에서 투자손실이 크게 발생했다.

미국 셰일가스 유전. 석유 공급과잉을 유발하여 국제유가 폭락을 불러왔다

일본은 통화팽창 정책의 효과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실험실의 리트머스 시험지 같은 곳이다. 올해 초 일본은 마이너스 기준금리 시행 이후 개인금고 판매가 크게 늘었다. 개인이 돈을 은행에 맡겨두지 않고 인출하여 개인금고에 보관하면 은행이 대출해줄 돈이 줄어든다. 돈이 유통되지 않아 통화승수가 발생하지 않는다. 마이너스 금리가 오히려 통화량을 줄이는 긴축효과를 유발하고 있는 셈이다. 실질 유동성이 줄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 듣지도 보지도 못한 마이너스 금리까지 동원하는 극단적인 처방으로 세계 자산가격이 떠 받혀져 왔지만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 저금리와 통화팽창 정책은 약발이 다해가고 있으며 부채에 의존하여 성장하는 정책이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지금 세계는 돈을 풀어도 실질 통화량이 줄어드는 이상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게 되면 긴축효과가 발생하면서 자산가격에 타격을 줄 수 있다. 미국은 에너지 산업의 구조조정이 마무리되었기 때문에 경제성장이 좀 더 빨라질 수 있다. 따라서 금리인상도 좀 더 빨라질 수 있고 기준금리가 약 2%까지 상승할 수 있다. 

금리인상이 치명적인 이유는 수요공백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소폭의 금리인상일 경우 금리인상이 경제주체에 큰 부담을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소폭의 금리인상이라도 수요공백을 유발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미 미래의 잠재수요가 앞당겨져서 소진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세계경제는 지금 과도한 부채와 공급과잉으로 가격거품 붕괴를 피할 수 없다. 문제는 붕괴 시기일 뿐이다. 지난해 12월 미국의 첫 기준금리 인상 이후 미국 연준(FRB)은 추가적인 금리인상을 미루어 왔다. 미국의 두 번째 기준금리 인상이 가격거품 붕괴를 촉발하는 출발선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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