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 한화케미칼등 4개사 신청…선진국 합병 선례서 배워야

[공감신문 김송현 기자] 기업 사업재편을 지원하는 '기업활력제고특별법'(일명 ‘원샷법’)이 시행되면서 해당 기업들의 승인심사 신청이 이뤄지고 있다.

신청 첫날인 16일에만 한화케미칼 등 4개 기업이 신청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한화케미칼은 이날 오후 세종청사 산업부 민원실에서 기업활력법 관련 산업재편 승인 심사를 신청했다. 다른 3개 기업도 민원실을 찾아 신청 절차를 마쳤지만, 업체 이름을 공개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기업 인수·합병(M&A)와 같은 민감한 사안에서 해당기업의 이름이 드러나면 치명적이기 때문에 회사명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타당하다.

 

사업재편을 신청한 한화케미칼은 울산 석유화학 산업단지 내 염소·가성소다(CA) 공장을 떼내(분사) 화학업체 유니드에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CA 공장은 소금물을 전기 분해해 염소와 가성소다를 생산하는 공정을 처리한다. 염소는 주로 PVC(폴리염화비닐) 원료로, 가성소다는 세제 원료 및 각종 수처리에 각각 사용된다. 유니드는 이번에 인수한 생산설비를 개조해 가성칼륨을 생산할 계획이다. 가성칼륨은 비누·유리 원료 또는 반도체 세정 등에 광범위하게 쓰인다.

이 분야는 공급과잉으로 구조조정 필요성이 제기되는 업종으로, 이 법안에 의해 민간업계에서 자발적인 사업재편이 이뤄지고 있다는데서 의미를 갖는다. 한화케미칼측은 "가성소다 분야의 공급과잉을 해소하고 회사의 주력 부문인 PVC쪽을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기업활력법 신청을 결정했다"며 "정부 심사를 통과하면 법인세 등에서 금융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산업부 관계자는 "기업활력법이 벤치마킹한 일본 산업경쟁력법의 경우 연 평균 40.4건의 사업재편계획을 승인했다"며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를 고려하면 연간 10~13건의 사업재편 승인이 적당하다고 볼 때 첫날 4건의 신청이 이뤄졌다는 점은 무척 고무적"이라고 밝혔다.

한화케미칼 관계자(오른쪽)가 16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 민원실에 기업활력법 관련 산업재편 승인 심사를 신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에서는 우리보다 2년 앞서 2014년 산업경쟁력법(산경법)을 만들어 기업들의 구조조정을 지원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자료에 따르면 일본은 산경법 이전 관련 법인 산업활력법(1999~2008년), 산업혁신법(2009~2013년) 등을 통해 지금까지 690건의 사업재편을 지원했다. 연평균 40.4건의 사업재편계획이 승인된 셈이다.

2003년부터 2013년까지 승인된 기업 488개사 중 231개사가 신규채용 목표를 세웠다. 이 가운데 170개사가 7만71명을 새롭게 채용했다. 생산성 지표도 크게 향상된 것으로 집계됐다. 유형자산회전율(매출액/유형자산)은 이전보다 88.4%(자료를 공개한 54개 기업 평균)가 올랐고, 자본이익률(당기순이익/자기자본)은 37.0%(53개 기업 평균) 상승했다. 종업원 1인당 부가가치율(부가가치액/종업원 수)도 78개 기업 평균이 이전보다 74.0%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일본 미쓰비시중공업과 히타치의 경우, 지난 2014년 1월 양사의 화력발전 부문을 분할한 뒤 통합해 신설 법인 미쓰비시히타치파워시스템즈를 설립했다. 신흥국의 인프라 수요 확대에 대응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통합법인은 해외시장 판로를 통합해 글로벌 수요망을 확대했다. 가스터빈 라인업이 확대되면서 생산원가는 떨어졌고 생산량도 늘었다. 통합법인은 지멘스, GE에 이어 세계 3위 수준으로 규모가 커졌으며, 이제 세계 1위 인프라 기업으로 도약을 시도하고 있다.

 

우리 산업계는 많은 업종에서 공급과잉에 시달리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중국의 과다 설비이지만, 국내 업계의 과당 경쟁도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원인이다.

KB투자증권이 발표한 과잉공급 예상업종은 전체 82개 업종 가운데 24개 업종이다. KB투자증권은 "전체 업종 가운데 30~35%가 과잉공급으로 분류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업종별로는 조선, 철강, 해운, 건설업 등이 과잉공급 업종에 포함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KOSPI 200종목 중에서 매출액영업이익률 기준에 따른 과잉공급 예상 기업은 93개로 추정된다. 즉 국내 블루칩 기업의 절반 가까이가 공급 과잉을 해소하지 않을 경우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이다.

 

기업활력법은 부실 기업이 아니라, 정상 기업의 자율적 사업재편을 돕는 법이다. 생산과잉 업종에서 국내 기업끼리 제살깎아먹기 경쟁을 하다가 부실이 발생하기 앞서 선제적으로 M&A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도록 지원하자는 취지다. 사업 재편 심사를 받은 기업에 대해 정부가 상법·세법·공정거래법 등 관련 절차와 규제를 간소화해주고 세제·자금·연구개발(R&D)·고용안정 등을 한 번에 지원하게 된다. 정부는 범부처 합동으로 2조5,000억원 규모의 사업재편 지원자금(산업은행)과 2,000억원 규모의 우대보증 프로그램(신용보증기금)을 신설하기로 했다. 세제 혜택도 돌아간다. 이렇게 정부가 좋은 조건으로 지원하기 때뭄에 기업들로선 사업 재편의 좋은 기회를 갖게 된다.

 

문제는 우리 기업인들이 M&A에 대한 관습적 사고를 버려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적 기업풍토에서 M&A란 기업인수를 의미한다. 합병이란 개념은 자리잡기 힘들다. 오너 의식 때문이다. ‘내것이냐, 남의 것이냐’가 기업 M&A의 주된 관심사다. 두 회사의 사업을 떼내 합병해서 공동 경영하는데는 관심이 없다.

첫날 승인심사를 낸 한화케미칼의 경우를 보더라도, 매각하는 회사와 인수하는 회사가 분명하게 그어져 있다. 합병이 아닌 인수의 개념이다. 앞서 일본에서 이뤄진 미쓰비시중공업과 히타치의 화력발전 부분 통합은 합병의 케이스다. 우리나라에 비해 일본 재계는 합병에 익숙하다. 닛산자동차가 지난 5월에 연비 조작으로 경영난에 빠진 미쓰비시자동차의 지분 34%를 인수했다. 미쓰비시의 구주주가 66%의 지분을 쥐고 있는 상태에서 닛산은 미쓰비시에 신규자금을 지원하며 라인을 살리겠다고 덤벼들었다.

미국에선 다우케미칼과 듀폰이 합병해 다우듀폰의 합병법인이 탄생했다. 글로벌 공급과잉에 대처하기 위한 미국 1. 2위기업의 합병은 특별법의 뒷받침 없이 자율적으로 이뤄진 사업재편이다. 합병 회사는 비용 절감 등을 통해 독일 바스프와의 경쟁을 벌이고 있다.

기업활력제고특별법 시행으로 정부는 기업들의 사업재편을 위한 자리를 깔아줬다. 다음은 기업 몫이다. 과거처럼 정부가 나서 반도체와 자동차 산업을 강제로 합병하던 빅딜은 불가능하다. 경기가 살아나길 기다리며 버티느냐, 동종업계간 합병을 서둘러 함께 사느냐의 선택이 남아있다.

 

<표>기업활력법 과잉공급 업종 판단기준

지 표 기 준
매출액영업이익률 최근 3년 평균이 과거 10년 평균보다 15% 이상 감소
보조지표 아래 5개 지표 중 2개 이상 만족



 
가동률 해당 업종의 과거 10년 평균보다 최근 3년 평균이 악화된 정도가 제조업 또는 서비스업 전체의 악화 정도보다 더 큰 상태
재고율
고용 대비
서비스업생산지수
가격·비용 변화율 최근 3년의 가격평균변화율이 비용평균변화율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상태
업종별 지표 전문기관ㆍ업종단체 등에서 활용되는 업종 고유지표가 현저히 악화
지속성기준 수요회복이 예상되지 않거나 수요변화에 쉽게 대응하기 어려워 과잉공급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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