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라메드] 유준상·깔끼단 부부의 ‘색’다른 로맨스
상태바
[공감신문 라메드] 유준상·깔끼단 부부의 ‘색’다른 로맨스
  • 임준 기자
  • 승인 2018.10.24 11: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삼례읍과 예르가체프는 다르지 않았다

 

사진 = 정종갑 사진기자

[공감신문 라메드] 사랑에는 인종도 국경도 없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인종이란 벽이 엄연히 있고, 국경이란 울타리가 떡하니 가로막혀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어렵사리 그것을 넘어도 언어와 문화가 사랑을 가로막는다. 언어와 문화를 극복해도 개인이라는 서로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에서 사랑은 멈춰 선다. 한없는 배려와 내려놓음이 필요한 고비가 찾아온다.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에는 남편 유준상(34세)과 아내 깔끼단(24세)이 살고 있다. 준상은 삼례읍 토박이고 깔끼단은 에티오피아 예르가체프에서 온 아프리카 여성이다. 부부는 결혼 4년 차, 한국이라는 전혀 알 수 없었던 나라로 건너온 깔끼단은 남편 준상과 딸 유그래(4세)를 낳고 한국에 적응하며 살고 있었다.

삼례와 예르가체프라는 동네에 대해

시를 쓰고 싶었던 문학청년 유준상. 그는 뇌종양 수술을 받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됐다. 남들이 가지 않는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고 친구와 의기투합한 곳이 아프리카였다. 북부에서 남부까지 종단하며 아프리카에 대한 여행기를 전자책으로 묶자는 꿈을 안고 시작된 여정이었다. 처음에는 좋았다. 여행하면서 책도 쓰고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다.

하지만 케냐에서 예기치 않게 짐을 도난당하면서 준상의 계획은 전면수정에 들어갔다. 종단의 꿈은 무산되고 에티오피아의 숙소에 머무르게 됐다. 준상은 그 숙소에서 커피를 파는 직원이었던 지금의 아내, 깔끼단을 만난다. 준상은 깔끼단에게 호감을 가지고 데이트 신청을 했지만, 그녀의 마음을 열기는 쉽지 않았다.

한국보다 어려운 삶이고 주변 환경도 좋다고 할 수 없는 예르가체프. 에티오피아 최대의 커피 생산지이지만 한국의 읍내보다 작은 동네인 이곳. 예르가체프 사람들은 하루에 세 번씩 프라이팬에 커피 생두를 볶는다. 밥보다 커피를 더 좋아하고 인간적인 정을 나누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순박한 사람들. 그곳에서 준상은 한국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는 인간적인 온기와 공동체의 삶을 생각했다.

태어나서 쭉 살아온 삼례와 아프리카의 이곳이 참 닮아있다고 생각한 준상. 그는 깔끼단과에 대한 사랑을 통해 예르가체프에서 새로운 삶을 발견했다. 그렇다면, 예르가체프를 떠나 한국의 삼례로 시집온 깔끼단의 마음은 어떨까. 깔끼단 역시 고향인 예르가체프와 삼례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유준상, 깔끼단 부부 / 사진 = 정종갑 사진기자

물론 고향이 가지는 평안함과 따뜻함에 비교할 수 없겠지만, 깔끼단은 삼례가 정이 있는 좋은 곳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에티오피아에는 남자가 없니?” “외국 사람을 어떻게 믿고 결혼하니?” “아직 결혼하기엔 이른 나이야!” 준상과 결혼하겠다고 말한 스무살의 깔끼단을 부모는 염려스러워 했다.

준상과 깔끼단은 인종과 국경, 언어와 문화를 뛰어넘어 두 곳이 무척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주변의 시선은 그렇지 않았다. 걱정과 우려가 넘치고 서로의 집안이 서로를 받아들이기에는 편견과 따가운 시선이 지뢰처럼 놓여 있었다. 그런 가운데 준상과 깔끼단 사이에 새 생명이 잉태되었다. 딸인 유그래였다.

사랑, 갈등 그리고 책임

준상은 에티오피아에 정착해서 평생 시를 쓰면서 살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뇌종양 수술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한국에서 정기적인 점검이 필요했고, 준상의 부모님은 외아들을 이국의 땅으로 보내고 싶어 하지 않았다. 결국, 준상의 끈질긴 설득으로 준상의 부모님은 결혼을 승낙했지만, 준상·깔끼단 부부가 한국에서 살아야 한다는 조건을 내세웠다.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예르가체프'에서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으로 시집을 온 깔끼단 씨 / 사진 = 정종갑 사진기자

그 후 딸인 그래의 탄생으로 행복은 안착된 듯 보였다. 하지만, 낯선 이국땅에서 갓 스물을 넘긴 나이에 엄마가 된 깔끼단에게 한국 생활은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읍내 대형마트 정육코너에서 일하는 남편은 마트 종료 시간인 밤 11시가 넘어서야 집에 돌아왔고, 깔끼단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휘몰아치는 날을 육아와 살림의 고단함 속에 묻어가야 했다.

서로 고단한 일상을 버텨가야 하다 보니 준상과 깔끼단 사이에 싸움이 늘고 화가 나 있을 때가 많아졌다. 이해의 문제 이전에 열정과 현실 사이에서 뭔가 틀어진 느낌을 견디기 어려웠다. 그러는 사이에 그래는 커갔고 집의 냉랭한 분위기는 그래의 웃음과 목소리로 채워졌다. 그래에 의해서 부부는 다시 미소를 찾기 시작했고 ‘사랑’보다 더 무거운 ‘책임’의 열정을 배워나갔다.

젊은 시절, 준상은 시가 생활과 분리된 대단한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다. 생활 속에 시가 있다는 것을. 깔끼단 역시 생활 속에서 새로운 의미들을 찾고 있다. 그 가운데 에티오피아 원두로 커피를 내려 마을 사람들에게 대접하는 것 역시 소소한 의미이자 즐거움이다.

그리스인 조르바와 유라시아 횡단 여행

준상은 문학도답게 딸 그래의 미래를 이야기했다.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살기를 원한다는 말을 했다. 지금은 가장으로 틀에 짜인 삶을 살고 있지만, 여전히 본인도 그러한 삶을 동경하고 있다고 했다. 깔끼단 역시 남편의 생각을 존중했다.

앞으로 5년이면 그래가 초등학생이 되고 그러면 그래와 함께 세계여행도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준상과 깔끼단은 미리 유라시아 대륙횡단 계획을 세우고 있다. 5년 전 준상이 그랬듯이. 당시 준상은 아프리카에서 길을 잃었지만 대신 인생의 행복을 찾았다. 그 되찾은 행복에는 딸 그래가 있다.

사진 = 정종갑 사진기자

아는 길은 누구나 갈 수 있다. 하지만 준상과 깔끼단이 걸어온 길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길이었다. 그래서 두렵고 낯설지만, 더 큰 용기로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여행이라고 칭하기에는 다소 가볍고 순례라고 칭하기에는 너무 무겁다. 그냥 삶 그 자체였다.

그 삶 속에서 준상·깔끼단 가족은 자유로운 조르바처럼, 구름을 몰고 가는 바람처럼, 삶의 여정을 해쳐갈 것이다. 그 가운데 준상은 시를 쓸 것이고 깔끼단은 생두가 볶아지는 프라이팬을 보며 미소를 지을 것이다. 예르가체프의 순박한 사람들이 생두를 볶으며 피어오르는 구수한 내음처럼 그들의 삶도 모락모락 진한 향기를 퍼트릴 것이다. 그래에게 있어서 아빠, 엄마는 세상 누구보다 더 뜨겁고 멋지게 사랑했다. 세상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넘은 부모의 모습처럼 그래의 삶도 그렇게 펼쳐졌으면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