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아니 뉴욕시장의 리더십…범죄의 도시에 기초질서 확립

[공감신문=조병수 프리랜서] 1992년 봄에 처음으로 미국 땅을 밟아 보는 날, 뉴욕의 존 에프 케네디 공항에 내려서 뉴저지 주(州)쪽으로 향하는데, 아기자기한 녹색공간을 예상하던 것과는 거리의 모습이 전혀 달랐다. 지저분한 콘크리트와 철근들의 잔해, 여기저기 낙서투성이의 건물들과 다리를 건너가며 본 도시의 풍경들이 조금은 어지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다음날 아침, 뉴저지와 뉴욕의 맨해튼을 오가는 버스를 타고 같이 출근하던 선배가 ‘양복저고리 윗주머니에 20불짜리를 넣고 다니라’고 귀띔을 해주었다. ‘길을 가다가 누군가가 칼이나 흉기로 위협하면 절대 손을 움직이지 말고 고개 짓으로 그 윗주머니를 가리키라’는 것이었다. 

만약 지갑을 꺼낸다고 손을 안으로 넣어도 칼침을 맞을 수 있고, 또 백 불짜리 같이 금액이 크면 후환을 없애려는 차원에서 당할 수 있으니, 적당히 20불 정도를 목숨 값으로 늘 넣고 다니라는 조언이니, 정말 으스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길을 걸을 때는 괜히 한 눈 팔며 두리번거리지 말고, 앞만 보고 걸으라’고도 했다. ‘괜스레 눈이라도 잘못 마주치면 시비 걸릴 수도 있다’는 말에 잔뜩 주눅이 들었다. 그날 오후에 부임인사 차 맨해튼 46가 파크애비뉴에 있는 사무실에서 32번가 브로드웨이까지 혼자서 다녀올 때는, 정말 고개도 제대로 못 돌리고 도로표지판만 쳐다보면서 걸었다. 잔뜩 긴장해서 얼어붙은 표정으로 앞만 보고 걸어가는 그 동양인의 모습이 참으로 가관이었을 것이다. 

그 시절 맨해튼 시가지에서는 빨간 신호등에 차를 세우면, 영락없이 어디선가 사람이 나타나서 앞 유리창에 세제 같은 것을 뿌리고 고무 달린 막대기로 한두 번 닦아 내렸다. 그때 ‘25센트짜리 동전 한 두 개를 주지 않으면 큰 봉변을 당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차에 늘 동전을 비치하고 다녔다. 언젠가 한번은 길을 잘못 들어서 시가지 외곽의 한적한 곳으로 들어서자 말자, 어디선가 큰 덩치가 불쑥 뛰어들며 유리창에 거품을 뿌리는 바람에 등골에 식은 땀이 나는 경험도 했다. 

그리고 위험한 지역의 대명사로 불리던 할렘(Harlem)가가 있는 센트럴파크 북쪽으로는 웬만해서는 잘 다니지를 않았다. 한번은 야근을 하고 퇴근하다가 맨해튼 외곽의 자동차전용도로 (FDR Drive)가 통제되는 바람에 부득이 할렘지역을 지나는 큰 길을 따라 올라가게 되었는데, 같이 타고 있던 동료들이 모두 제대로 숨도 못 쉬고 앉아있는 가운데 운전대를 꽉 움켜쥐고 앞만 보고 빠져 나온 적이 있다. 

뉴욕에서의 이런 으스스한 경험들도, 1994년 1월 루돌프 줄리아니 시장이 취임하면서는 옛이야기가 되었다. 도로변 건물이나 지하철, 틈 있는 곳마다 스프레이로 휘갈겨진 낙서들을 깨끗이 지워나갔고, 경범죄 단속에 집중하면서 자신의 검사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뉴욕시의 심각한 범죄문제를 깨끗이 해결한 덕택에, 6년 후에 다시 가본 2000년대의 뉴욕에서는 차에 동전을 비치하거나 양복 윗주머니에 20불짜리를 넣고 다니던 일은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뉴욕의 범죄율을 낮추고 안전한 도시로 만든 줄리아니 시장이 그당시 착안했던 것이 '깨진 유리창의 법칙(Broken Window Theory)’이라고 한다. 깨어진 유리창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을 경우 그 무관심으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도덕적 해이를 가져다 주고, 이것이 전파되어 무법천지가 되어서 모든 유리창이 깨어지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이 범죄심리이론은, 사소한 무질서를 방치하면 큰 문제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뉴욕 시 교통국에서 악명 높던 지하철 범죄를 줄이기 위해 이 이론을 접목시켜서, 지하철의 낙서 지우기와 무임승차단속을 시작하여 성과를 보였다. 뉴욕시장에 취임한 줄리아니가 이 정책을 확대 발전시켜서, 무관용(zero-tolerance)원칙으로 도시 전반의 낙서 지우기와 쓰레기 무단투척, 무임승차 등 기초질서를 위반하는 경범죄 단속에 집중하여, 도시 전체를 바꾸어 놓는 큰 성과를 구현하였다고 한다. 

   

줄리아니 시장은 『리더십(Leadership)』이라는 그의 자서전에서, ‘신호대기 중인 차에 접근하여 원치도 않는 세차를 강요하며 협박에 가까운 대가를 강요하던 최소 180명 이상 수 천명이 넘는 걸레부대들에게도 거리 한복판에 뛰어드는 교통규칙위반을 이유로 티켓을 발부하고 전과를 조회하여 범법자들을 체포하는 등으로 문제를 개선했고, 뉴욕 시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이 시장재임 8년만에 67%까지 급격히 줄었다’고 밝히고 있다. 

고속성장과 산업화의 후유증인지는 몰라도 날이 갈수록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험악해지는 사건들과 무질서한 사회상들로 얼룩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이론에 근거한 기초질서의 확립에 집중하여 각종 난폭 사건들을 줄이고, 질서 있는 건전한 사회의 기틀을 마련해나가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 줄리아니 시장이 2001년 9월11일 월드트레이드센터 테러사태 직후 대 혼란의 뉴욕을 강력한 리더십으로 수습하고 있을 때,. 맨해튼 팬스테이션 역 부근의 중국식당에서 식사를 하던 시민들이, 때마침 그곳에 식사하러 들린 시장을 보고 박수를 치며 환호하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심각한 위기상황이었지만 그리 요란한 행차도 아니었고, 보통의 식당에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시민들도 환호하며 반기는 모습들은, 극동에서 온 한 이방인에게는 제법 부러운 장면이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사전에 예방하지 못한 책임, 또는 도의적 책임으로라도 벌써 그만 두거나, 그렇지 않을 경우 엄청 시달려야 하는 우리나라 상황들에 익숙하던 터에, 도리어 사태의 수습에 수고한다고 시민들로부터 격려의 박수를 받고 있는 그 광경은 정말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해주었다.

2011년 9월 11일 테러참사 당일 로버트 줄리아니 뉴욕시장이 그라운드제로를 방문하고 있다.

저작권자 © 공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