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지해수 칼럼니스트=지난 주말 할로윈 파티가 있었다. 나는 한 파티에서 DJ로 음악을 틀기도 스케줄이 잡혀있었고, 그에 맞는 코스프레를 하고 싶었다. 무엇으로 도전을 할까 몇 주 전부터 고민이었다. 해보고 싶은 건 너무 많았지만, 모자를 쓸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제약이었다. 음악을 믹싱하려면 헤드폰을 껴야하기 때문. 가장 하고 싶었던 ‘배민 라이더’를 포기했던 것도 그 이유다. 압구정 한복판 라운지에서 다들 나만 주목할 것 같은 이 기막힌 아이디어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해적’으로 코스튬을 차렸다.

모자를 쓰지 않고도 코스프레를 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느낌이 별로 살지 않는 것 같았다. 특히 특정 직업군이나 ‘시대적 배경’의 인물은 더욱 그러했다. 올해 봄, 뉴욕 여행에서 나는 화려한 레이스 장갑을 끼고 나간 적이 있었다. 그 날은 여행 마지막 날이었고 911 추모공원에 갔다가 좋은 곳에서 식사를 할 예정이었다. 예전 유럽의 귀족들은 장갑으로 손을 가렸다고 들었었다. 그런 느낌을 주고 싶어 새틴 드레스에 장갑을 꼈었는데, 현지에선 반응이 나쁘지 않았었다. 

맞다. 나는 사실 할로윈이 아니더라도 할로윈처럼 입을 때도 있다. 평소에는 주말을 입고 주말엔 파티를 입는다. 하지만 나는 머리에 특정 신분을 드러내는 장신구를 쓰지 않았던 거다. 머리 꼭대기에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는 장신구를 착용한다는 게 이만큼 대단한 거구나, 싶었다. 

영화 ‘이집트 왕자’ 중에서
영화 ‘이집트 왕자’ 중에서

사실 나는 한 때 수녀가 되길 꿈꾼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성당에 잠시 다녔었는데, 그 기억이 매우 따뜻했다.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한 교회에 오래 다녔었고 그 교회엔 친구도 많았었다. 아무도 모르는 성당에서 나는 조금 주눅이 들어있었던 것 같다. 어릴 적부터 엄마와 따로 살았던 나는, 같은 성당 동갑 아이의 어머니가 미사포를 쓰시고 기도하는 모습이 너무 천사처럼 아름다워 반해버렸었다. 그 아이 말로는 어머니는 집에서도 저렇게 미사포를 쓰시고 늘 기도하신다고 했다. 성호를 긋는 어머니의 모습도 무지 우아해보였다. 

나는 틈만 나면 낮에 성당에 몰래(?) 찾아갔다. 아기 예수를 안고 계신 성모마리아 상 앞에서, 그 따뜻한 미소를 보며 나도 저렇게 안아달라고 눈빛으로 얘기했다. ‘동정녀 마리아’라는 뜻의 모르던 내가, 교회에서 배운 거-성당에서 배운 거- 가리지 않고 그녀에게 기도했다. 그런 나를 따뜻하게 보듬어주시던 분들이 수녀님들이셨다. 수녀님들은 온화하셨고, (대부분 친구들의 엄마이셨던)교회 집사님들보다 더 나를 예뻐해 주셨었다. 

할머니에게 나도 미사포를 사달라고 조르다가, 나중에는 저렇게 따뜻한 어른이 되어서 나처럼 외로운 아이들을 마음으로 품어줘야지... 라는 생각을 하며 수녀님이 되고자 생각했던 거다. 그리고 수녀님의 옷도 너무 예뻐 보였다. 머리도 길어 보이고 그냥 다 예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수녀님이 안 되면 꼭 미사포라도 써야지, 싶었다. 왠지 천사 같은 미사포를 쓰면 예수님이 머리를 쓰담쓰담 해주시며 축복해주실 것 같아서였다.

이렇게 헤어 장신구는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 사람의 인상에 대단한 영향을 주는 것이다. 그렇기에 시대적 인물들에게 이러한 헤어 장신구가 많은 것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그 사람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살피지 않더라도, 단번에 신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스로도 자신의 신분을 자주 인지하게 된다. 왕관을 쓴 자가 그 무게에 눈두덩이가 내려앉아 피곤해도, ‘아, 나는 왕족이구나’ 매순간 알아차리게 된다는 거다.

영화 ‘이집트 왕자’ 중에서
영화 ‘이집트 왕자’ 중에서

과거 사람들에게는 날 때부터 정해진 신분이 존재했다. 절대 거역할 수 없는 것이었다. 사실상 지금은 신분이나 계급사회가 아닌데도, 우린 과거에서 온 ‘신분상승’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물론 우리가 생각하는 사회의 보이지 않는 신분과 계급은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 정통 신분사회에서는 ‘신분상승’이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떤 삶이었을까? 한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의지를 꺾어버린다는 것에서, 신분제도에 당연히 반대하지만 한편으로 또 누군가들은 오히려 마음이 편했을 지도 모르겠다. ‘희망고문’이 없는 삶이기에 그러하다.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이 있는데, 진짜 요즘은 많이들 난다. 용이 몇 마리 없기에 그런 것일 뿐, 용 중에서도 개천 출신들이 꽤 된다는 얘기다. (다만 유행이나 산업의 흐름별로 그 용들이 어느 분야에 많은 지가 다른 것 같다)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며 존엄하다는 시민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어릴 적부터 많은 것들을 장래희망에 적어서 낼 수 있었다. 모태신앙이었던 내가 수녀가 된다고 해도 뭐라 할 사람이 없었고, 반에서 키가 손꼽히게 작은 내가 ‘커서’ 미스코리아 나갈 거예요 해도- 사람들은 귀여워해주었다. 

다만 우리는 어른이 되어가며, 꿈보다 짊어져야할 무게와 책임감을 더 많이 가지게 된다. 60세, 70세에도 장래희망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난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70세의 유튜버를 꿈꾸는 분들도 분명 이제는 많으실 거라 생각한다. 오히려 젊은 사람들은 진짜 ‘어른’으로 살아야하기에, 현실의 책임감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한다. 우리 모두는 보이지 않는 감투를 쓰고 있는 것이다. 그게 우리의 신분이다.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한 투명감투다. 옆에 똑같은 감투 쓴 사람 사는 것 같이(아니 실은 더 잘) 살아야한다는 감투다. 

이미 이러한 투명감투를 짊어진 우리를, 스스로 불쌍히 여기고 싶은 생각일랑 없다. 약해빠진 소리나 하려고 이런 글을 쓰는 게 아니다. 냉정하게- 세상은 계속 그러할 것이고, 계급을 나누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동물들의 세계는 더욱 심한 약육강식이며, 인간들은 청동기 시대부터 계급을 나누어 낮은 계급 사람들은 화덕 가까이에도 오지 못하고 저 멀리서 오들오들 떨며 자야했다. 가운데 화덕을 두면 다 같이 따뜻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이 세상에는 질서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설국열차>처럼 말이다. 

영화 '설국열차' 중에서
영화 '설국열차' 중에서

다만 우리 스스로, 조금 더 여러 개의 감투를 쓰자는 거다. 매일, 매순간을 하나의 직업인으로서 살지 말자는 거다. 은퇴하신 분들이 종종 상실감으로 인해 우울증에 잘 걸리신다고 들었다. 이를테면 수십 년을 기자로 살다가 은퇴했는데, 이제 사람들은 자신을 ‘김 기자’라고 불러주지 않는 것이다. 나의 아빠의 친구 분들은 서로를 ‘-대표’, ‘-회장’이라고 곧 잘 부르시는 것 같았다. 실제로 하시는 일에서 그런 직함이기도 하지만, 나는 친구를 왜 그렇게 부르는 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건 그냥 아빠 세대들만의 문화이니 난 다 알 수 없겠지- 하지만 그 사람에게도 본인 자신의 인격이 있음을 자꾸 상기시켜주어야 한다는 거다. 

집에서는 누구 엄마, 누구 아빠, 회사에서는 누구 님... 이런 것 말고 ‘그 사람’ 자체로 말이다.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여러 개의 자유로운 헤어 장신구가 필요하다. 나의 인격을 드러낼 수 있는 멋진 장신구들 말이다. 조금 더 자유분방하게 사고하고, 하고 싶은 것들을 해내게 하는 힘을 주는 장신구! 또 다른 ‘나’를 만나게 할 힘을 주는, 부적이 되어줄 것이다. 

사실 또 다른 나를 만난다는 것은 내가 몰랐던 나를 경험하는 일이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여행은 진짜 그 여행일 지도. 당신이 가진 자유를 늘려가는 일, 여러 개의 장신구를 채워나가는 건- 인생의 재미를 축적하는 또 다른 재테크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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