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시사공감] 유영철·김대두·이춘재, 대한민국 역대 최악의 살인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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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신문 시사공감] 유영철·김대두·이춘재, 대한민국 역대 최악의 살인마들
  • 권지혜 기자
  • 승인 2019.11.05 17: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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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패스, 대한민국 최초 연쇄살인마, 화성연쇄살인사건 진범 등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흉악범들의 삶에 대하여

[공감신문] 권지혜 기자=최근 오랫동안 미제였던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 밝혀졌다. 진범의 이름은 이춘재로, ‘청주 처제 살인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과학기술이 발전해 용의자로 특정됐다.

이 씨는 다른 흉악범들과 달리 뚜렷한 범행 동기를 찾기 어렵던 가운데, 어린 시절 성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진술했다. 이에 경찰 수사팀은 자백의 신빙성을 검증하기 위해 개인적인 경험 등과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흉악범들의 성장 환경과 범행동기는 범죄심리학의 학술 자료가 돼 다른 범죄의 예방과 빠른 해결을 돕는다. 때문에 사람들은 단순한 의문과 궁금증을 넘어 복합적인 이유로 흉악범들의 인생에 관심을 가지곤 한다.

같은 사람이지만 도무지 같은 사람 같지 않은 흉악범들, 그들은 어떤 삶을 살았으며 왜 살인을 저질렀을까? 오늘 시사공감에서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뇌리에 이름을 새긴 역대 살인마들에 대해 알아본다.

흔히 알려진 유영철의 젊은 시절 사진과 지난달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공개한 최근 사진 / SBS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 캡쳐

‘사이코패스’ 유영철

유영철은 ‘사이코패스’라는 개념을 우리나라에 알린 인물이다.

사이코패스는 사회적 인격장애자를 가리킨다. 사이코패스는 범행을 저지를 때 빼고는 평범한 사람과 같이 사회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유 씨는 1970년 생으로, 그의 아버지는 월남전 참전 후 음주·노름·폭력을 일삼다 유 씨가 7살 때 이혼했다. 유 씨는 18살 때 이웃 누나의 방에서 23만원과 기타를 훔쳤다가 소년원에 입소한다. 그는 경찰이 되기를 희망해 응시했으나 색맹으로 좌절됐고, 이후 경찰을 사칭하며 금품을 갈취해 생계를 유지한다.

1991년, 유 씨는 21살의 나이로 결혼해 아들까지 두지만 그 후로도 계속 특수 절도 및 성폭력을 행하며 20대의 대부분을 교도소에서 보낸다. 결국 2002년 부인으로부터 이혼을 통보 받자, 감방 안에서 십자가를 부러뜨리며 ‘신은 없다’고 믿게 된다. 본인의 진술에 따르면 이것이 교회 주변 거주자들을 무차별 살인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그는 막연한 복수심을 품고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20여명의 부유층 노인과 여성들을 살해한다. 자신은 5명의 여성을 더 살해했다고 주장했으나 확인된 바 없다.

유 씨는 직접 만든 망치나 칼 들을 이용해 살해했으며, 증거 인멸을 위해 불을 지르고, 시체를 토막 내 야산에 묻고, 피해자 신원 파악을 막기 위해 지문을 도려내는 등 잔혹성을 보였다.

유 씨는 2004년 7월 18일 경찰에 체포됐다. 2010년 법무부는 사형을 검토했으나 외교마찰 우려 등으로 인해 무산됐다.

유 씨는 지난 2014년 12월 10일 재소자 물품 구매 업체를 통해 성인물을 몰래 들여보는가 하면 소지품을 검사하는 교도관의 멱살을 잡으며 “나는 이미 끝난 사람이다. 건들지 마라"라고 폭언과 함께 난동을 멈추지 않아 국민의 공분을 산 바 있다.

2008년 개봉한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는 ‘유영철 연쇄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다.

김대두의 현장검증 진행 중인 모습과 재판을 받는 모습

‘대한민국 최초 연쇄살인마’ 김대두

김대두는 대한민국 최초의 연쇄살인마다. 그는 유영철이 나타나기 전까지 우리나라에서 30년 동안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살인범이었다.

김 씨는 1949년 생으로, 전라남도 영암의 농촌마을에서 3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불구하고 장남을 도시의 명문 중학교에 보내려 했지만 김 씨는 공부에 뜻이 없었다.

김 씨는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집의 농사일을 돕다가 17살에 “큰 돈을 벌겠다”며 출가한다. 그 후 김 씨는 5년간 직공, 막노동, 머슴살이 등을 하며 전라도 각지를 떠돈다.

1972년, 김 씨는 결국 다시 고향에 내려가 5만원을 얻어 서울에 보증금 1만원에 월 3000짜리 전세방을 얻어놓고 하릴없이 지낸다. 그는 신체 허약으로 군을 면제 받은 후 1973년~1975년까지 두 번의 폭력으로 징역을 산다.

출소 후 전과자가 된 그는 취직에 실패할뿐더러 친척과 친구들로부터도 외면 받게 되자 사회에 불만을 품고 교도소 동기 김해운과 살인을 저지르기 시작한다. 김 씨는 1975년 8월 12일부터 1975년 10월 7일까지 17명을 살해하는데, 그 수법은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기존의 강도 살인자들과 달리 김 씨는 중상류층이 아닌 가난한 집을 습격해 일가족을 몰살하고 푼돈을 들고 나오는 식의 행태를 보였다. 그가 죽인 사람은 생후 3개월된 아기부터 노부부까지 연령대와 성별도 제각각이었다.

김 씨는 검거 후 모든 죄를 인정했으며, 현장검증 때 껌을 씹으며 히죽대는 모습으로 국민을 경악에 빠트렸다. 김 씨와 공범은 모두 1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공범은 한 건만 가담했고 나머지는 김 씨의 반 강요에 의했던 것을 참작해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김씨는 1976년 12월 28일 처형됐다.

김 씨는 사형 직전 “사회가 전과자들을 좀 더 따뜻이 대해주셔서 갱생의 길을 넓게 열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같은 사람들도 출소하기 전 꿈을 갖는데 나와서 냉대를 받게 되면 자포자기 심리로 다시 범죄에 빠져들게 됩니다. 교도소에서도 초범자와 재범자는 분리 수용해 죄를 배워나가는 일이 없도록 해주십시오”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춘재의 고등학교 졸업사진

‘화성연쇄살인사건 진범’ 이춘재

이춘재는 영화 ‘살인의 추억’의 모티브가 된 미제사건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진범으로, 지난 10월 1일 자백을 하면서 30년만에 세상에 알려졌다.

이 씨는 1994년 청주에서 처제를 강간 후 살해해 무기징역을 살던 중, DNA 분석기술 발달로 올해 용의자로 특정됐다.

이 씨의 어린시절 주변인들을 하나같이 그를 "착하고 조용했던 아이"라고 기억했다. 동창들 역시 "매우 착하고 인사성도 밝은 아이였다"라고 했으며, 가족들조차 “조용하고 내성적인 사람이었으며 그런 낌새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내의 증언은 달랐다. 청주 처제 살인사건 당시 재판기록에 따르면 이 씨는 두 살배기 아들을 폭행하고 아내도 하혈을 할 정도로 폭행했다. 그에게는 심한 성도착증도 있었으며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아내가 집을 나가자 동서에게 “아내와 이혼은 하겠지만 다른 남자와 결혼도 하지 못하도록 문신을 새기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씨는 교도소에 수감된 후에는 1급 모범수로 지내며 위계질서에 순응했다. 심지어 수감자들에게 괴롭힘을 받으며 혼자 “살인 사건을 여러 번 저질렀다”고 중얼대기도 했다. 주변인들은 그를 두고 "착한데 한번 화나면 무섭다"라고 했으나, 사실 그는 ‘강약약강’의 대표적 인물이었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이씨의 '강약약강'적 태도는 다른 연쇄살인범들에게서 잘 나타나는 특징이다. 이 때문에 일반 살인에서 피해자가 여성인 비율에 비해 연쇄 살인에서 피해자가 여성인 비율은 10배 정도 높다"고 말했다.

이 씨는 살인 15건과 강간·강간미수 30여건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화성 9차례를 포함해 6건의 살인 범행을 더 저질렀다는 것이다.

흉악범의 경우 불우한 어린시절이 범행동기가 되는 경우가 많으나 이 씨는 이와 관련해 확인된 바가 없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특별히 트라우마나 동기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고 비뚤어진 성 관념이 문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가운데 이 씨는 조사 과정에서 “초등학생 때 같은 동네에 살았던 누나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털어놨다. 경찰은 어린 시절에 겪었던 강압적인 성경험이 왜곡된 성적 지향을 형성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형민 범죄조사연구실장은 “연쇄살인범들이 일관되게 보이는 특징 중 하나가 가치관이 형성되는 시기에 왜곡된 성적 욕구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6월 14일 이뤄진 사형제도에 대한 국민여론 조사 결과. 찬성이 과반수로, 흉악범죄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를 짐작할 수 있다. / 리얼미터 제공

살인은 끔찍한 범죄다. 누구도 타의에 의해 죽고 싶지는 않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살인으로부터 자유로운 사회가 될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서는 범죄에 대한 처벌이 너무 약하다는 여론이 꾸준히 일고 있고, 이는 확실히 개선돼야 할 부분이다. 범죄율을 낮추기 위한 방법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 또한 처벌 강화다.

하지만 극악무도한 연쇄살인은 처벌 강화로 예방하기 어렵다. 흉악범들은 '사회에서 배제될까 봐'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사회에서 배제됐다'고 생각해 범행을 저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선천적인 사이코패스들은 어릴 때부터 방화나 동물 살해 등의 이상 행동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 외 흉악범들은 오히려 어린시절에 ‘착한 아이’ 또는 ‘내성적인 아이’였던 경우가 많다.

아이는 자라나 어른이 된다. 어떤 사랑과 관심은 아이를 ‘힘들어도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고 싶은 사람’으로, 어떤 무관심과 배제는 아이를 ‘사람들을 파괴하고 싶은 사람’으로 만든다.

어떤 사회도 범죄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또 인격장애자들의 '별다른 동기 없이 쾌락만을 위한 범행'을 예방하는 것은 아직 인력 밖의 일이다.

하지만 인력으로 가능한 것도 있다. 소외 당하는 아이를 한 명이라도 더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될수록 범죄율은 낮아질 것이다.

그렇게 ‘소외’를 심각한 사회문제로 받아들여서, 처벌 강화보다 더 효과적으로 범죄율이 낮아지는 사회가 오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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