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의 세계를 믿거나 예술품에 압도되거나...어디선가 들어봤던 증후군들에 얽힌 이야기들

[공감신문] 고진경 기자=증후군은 공통성이 있는 일련의 병적 징후에 대한 총칭이다. 일관성 있는 증세에도 불구하고 인과관계가 확실치 않은 것들을 말한다. 영어로는 ‘신드롬’(Syndrome)이라고 부른다.

증후군의 증세들은 대개 심하고 반복적이며 만성화된다. 나아가 신체적·심리적·사회적 활동에 장애를 일으키기도 하는데, 이 경우 정신의학적 질환으로 간주돼 치료를 요한다.

최근에는 신조어 또는 유행어 형태로 쓰이기도 한다. 인터넷에서 웹 서핑을 할 때 검색 목적을 망각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인터넷 미아 증후군’이 대표적인 예다.

인터넷을 검색하려던 순간 단어나 문장을 까먹는 바람에 “아 그 뭐였더라”와 같은 생각을 검색창에 그대로 옮기는 웃지 못 할 상황에 처하는 것이다. ‘그그’ 두 글자만 쳐도 “그그그그그그그그그뭐냐”가 자동 완성되는 것을 보면 이 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네이버 검색창에 '그그'를 치면 "그그그그그그그그그뭐냐"라고 자동 완성 되는 것이 인터넷 미아 증후군의 대표적인 사례다.

유행어처럼 쓰이는 증후군을 소개할 때 또 빼놓을 수 없는 것 하나가 ‘명절증후군’이다. 이는 명절 때 받는 스트레스로 정신적 또는 육체적 증상을 겪는 것을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두통, 어지러움, 위장장애, 소화불량이나 피로, 우울, 호흡곤란 등의 증상이 있다.

명절증후군은 다 함께 명절을 쇠는 우리나라 특유의 전통과 문화 때문에 생겨난 고유의 증후군이라 할 수 있겠다. 그 대상은 대부분 주부였지만 최근에는 남편이나 미취업자, 미혼자 등으로 그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유행어처럼 불리는 증후군은 당사자나 주변 사람들이 겪는 고통이 상대적으로 가볍다. 반면 정신의학적 질환으로 분류되는 증후군은 종종 심각한 고통과 결과를 초래한다. 오늘 교양공감은 어디선가 들어봤던 증후군에 얽힌, 어쩌면 무거울 수도 있는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 허구의 세계를 믿는 ‘리플리 증후군’

리플리 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처지에 대한 불만으로 상습적으로 거짓말을 일삼으며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기도 한다. [freepik]

리플리 증후군은 상습적으로 거짓된 말과 행동을 일삼은 반사회적 인격 장애다. 이 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은 현실 세계를 부정하고 자신이 꾸며낸 허구의 세계만을 믿는다. 또 자신이 한 거짓말을 진실로 알기 때문에 거짓말이 탄로날까봐 불안해하지 않는다.

‘리플리’라는 이름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범죄 소설 <재능 있는 리플리 씨>에서 유래됐다. 소설의 주인공 톰 리플리는 친구이자 재벌의 아들인 디키 그린리프를 살해하고 거짓말을 꾸며 그린리프의 인생을 가로챈다. 부유하고 풍족한 삶을 살고 싶은 열망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부정한 것이다.

리플리 증후군은 이처럼 충족되지 않은 욕구나 열등감으로부터 생겨난다. 자신의 처지에 대한 불만으로 상습적으로 거짓말을 일삼다 진실처럼 믿게 되고,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학력을 위조하거나 도용하는 사례가 많이 일어났다. 능력보다 학벌이 중요시되는 사회적 병폐로 인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인터넷이나 SNS 상으로 타인을 사칭하는 사이버 리플리 증후군도 대두되고 있다.

리플리 증후군은 자신의 의지를 벗어난 행동이라는 점에서 절도나 사기, 심각하게는 살인 등 큰 범죄로도 이어질 수 있다.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일삼으면서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주의하는 것이 좋겠다.

 

■ 예술작품에 압도되는 ‘스탕달 증후군’

스탕달은 레니가 그린 <베아트리체첸치>를 보고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호흡이 어려워지는 증상을 경험했다.

<적과 흑>의 저자인 프랑스의 스탕달은 1817년 이탈리아 피렌체의 산타크로체 성당에서 레니의 작품 <베아트리체첸치>를 감상한다. 감상을 마치고 계단을 내려오던 그는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무릎에 힘이 빠지며 호흡곤란이 와 고통스러워한다. 그는 한 달간이나 이 같은 증상에 시달린다. 스탕달은 후에 그의 책에서 “내 생명이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걷는 동안 픽 쓰러질 것만 같았다”고 회고한다.

스탕달 증후군이 유래한 일화다. 이 증후군은 감수성이 뛰어난 사람이 예술품을 보고 순간적으로 정신적 충동이나 흥분을 느끼는 현상을 일컫는다.

감수성이 극도로 예민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이 증후군은 불안감, 심장 두근거림, 어지럼증, 졸도 등의 증상을 유발한다. 이탈리아 피렌체의 예술품을 본 사람들에게서 종종 나타났다고 해서 피렌체 증후군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뛰어난 작품을 마주한 뒤 자신의 작품이 부족하다고 느껴 자괴감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자신이 결코 뛰어넘을 수 없을 것 같은 막막함에 자아를 상실하고 정서적 혼란을 겪는 것이다.

 

■ 현실을 로그아웃, ‘리셋 증후군’

리셋 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은 현실에서 일어난 일을 가상세계와 혼동해 쉽게 되돌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freepik]

리셋 증후군은 청소년들에게서 많이 나타난다. 컴퓨터에 문제가 생겼을 때 리셋버튼으로 시스템을 초기화시키는 것처럼 현실의 어려움을 회피하려는 현상을 가리킨다.

이 증후군은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를 혼동시키기 때문에 심각한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 1990년대 일본의 고베 시에서 발생한 초등학생 토막살인 사건이 바로 리셋 증후군으로 인한 참사다.

사건의 범인은 열네 살의 중학생이었는데, 심각한 컴퓨터 게임 중독자였다. 범인은 게임이니 아이가 다시 살아날 거라는 반응을 보여 사람들을 경악케 했다.

이처럼 리셋 증후군을 보이는 범죄자들은 심각한 범죄행위를 게임의 일환으로 착각한다. 죽음과 남에게 피해를 입혔다는 죄책감마저 리셋 시켜버리는 것이다.

리셋 증후군은 오프라인에서의 갈등 해결 능력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친구들과 사이가 틀어지면 화해하는 대신 로그아웃을 하듯이 관계를 끊어버리는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현실과 가상을 구분할 수 있도록 주위에서 끊임없이 객관화를 해줘야 한다.

 

■ 배우자의 불륜을 의심하는 ‘오셀로 증후군’

뚜렷한 증거나 이유가 없는데도 배우자의 불륜이 의심된다면 오셀로 증후군일 확률이 높다. [freepik]

오셀로 증후군은 명확한 증거 없이 배우자의 불륜을 의심하고 이 때문에 자신이 피해를 입고 있다고 생각하는 증상이다.

의처증이나 의부증으로 잘 알려져 있는 이 증후군은 비이성적으로 생각한다는 측면에서 부정망상이라고도 불린다.

주인공 오셀로가 음모와 질투에 휘말려 갖은 망상에 시달리다 아내를 죽이는 셰익스피어의 작품 <오셀로>에서 유래했다.

이 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은 까다롭고 지나치게 꼼꼼한 성격인 경우가 많다. 상대에게 저의가 숨어있다고 판단해 끊임없이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는 편집증적인 성격도 오셀로 증후군의 큰 요인이다.

배우자에게 열등감이 있어나 자존감이 낮아도 이런 망상에 휘말리기 쉽다. 증상은 망상에서 끝나지 않고 배우자의 정조를 의심할 만한 물적 증거를 찾는 데에까지 나아갈 수 있다.

정신의학적 질환으로 분류되는 오셀로 증후군은 약물과 상담을 통해 치료가 가능하니 방치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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