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임직원·채권자의 희생 동반…해운업 재탄생 계기 돼야

[공감신문 김인영 기자] 대주주나 채권은행보다 법원의 판단과 행동이 빨랐다. 응급환자를 앞에 두고 대주주는 채권은행에 돈을 대라고 했고, 채권은행은 대주주가 운영자금을 더 내라고 했다. 환자는 죽어가는데, 양측은 3개월째 힘겨루기를 했다. 물론 책임은 대주주가 져야 한다. 대주주가 한진해운을 살릴수 없다면 법정관리로 갈 수밖에 없다. 조양호 회장은 그룹에서 4,000억원을 마련할 터이니, 은행들이 나머지 3,000억원을 내라고 했다. 은행들은 예전같지 않다. 산업은행은 대우조선에 수조원을 지원해 줬다. STX조선에도 그랬다. 그 일 때문에 국회 청문회가 열릴 예정이다. 정부가 시켜서 한 일인데, 책임은 은행이 져야 한다. 한진해운 사태엔 금융당국이 나서지도 않았다. 그런데 은행이 앞장서 돈을 대줄 필요가 없다. 국내 해운·항만업계가 한진해운을 살리라고 청원을 넣었고, 국내 1위 해운업계를 죽여서야 하는가라는 여론이 있었다. 그럼에도 은행들은 내코가 석자였다. 조양호 회장도 설마 했을 것이다. 대마불사라고 했다. 수조원씩 펑펑 지원하던 정부인데, 버티면 주겠지 생각했을수도 있다. 하지만 분위가 바뀌었다. 정부는 아무런 개입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자주 모이던 청와대 서별관에서 한진해운 대책회의를 열었다는 얘기가 없다. 산업은행은 한진해운에 연결한 플러그를 뺐다.

환자가 법원으로 이송됐다. 응급환자였다. 법원은 패스트트랙을 적용할 회사라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 파산부는 법정관리 신청 하루만인 지난 1일 오후 7시 한진해운에 대해 회생절차를 개시했다. 패스트트랙을 적용할 경우 이르면 10일, 보통은 한달 걸리는 결정을 하룻만에 결정한 것이다. 초특급 스피드다. 다른 응급환자를 제치고 한진해운을 빨리 중환자실에 넣은 것이다. 대주주가, 채권은행이 처방을 미루다가 응급환자는 초죽음이 돼서 실려온 것이다.

1일 부산항 신항 한진해운부두에 배가 접안하는 선석이 비어 있다. /연합뉴스

이 환자가 살아날까. 법원은 한진해운을 살려낼수 있을까.

파산법원의 마인드는 긍정적이다. 김정만 서울중앙지법 파산수석부장판사는 “지금은 회사의 회생 이외에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산업은행은 청산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했다.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최웅영 서울중앙지법 공보판사는 “파산 보도는 성급한 판단”이라고 잘라 말했다.

STX조선에서도 그랬다. 산업은행을 비롯해 국책은행이 38개월동안 무려 4조원을 퍼붓고도 살려내지 못했다. 국책은행들은 더 이상 살려낼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법원에 환자를 보냈다. 그때도 은행은 청산가치가 높다고 했다. 그런데 법원은 회생절차를 밟았다. 법원의 판단은 은행과 대주주에게 경종을 울렸다. 법원 관계자는 “STX조선이 뒤늦게 회생절차를 신청한데는 채권단의 오판이 크게 작용했다”고 지적했다. 채권단이 자율협약을 체결하지 않고 곧바로 법정관리를 신청했더라면 4조원 이상의 자금을 들이지 않고 살릴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번 한진해운에서도 법원은 채권단과 대주주에게 한마디 했다. 법원은 한진해운 선박이 세계 곳곳에서 압류되는 상황을 "아쉬운 부분"이라고 평가했다. 김정만 판사는 "이런 상황에 대비해 회생 절차를 개시하거나 재산보전처분이 되면 즉시 외국에서도 승인받도록 준비를 충분히 해야 했는데 그게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는 갑잡스런 결과였다. 채권단은 대주주 또는 한진그룹이 2,000억~3,000억 정도 더 낼 것으로 믿었다. 대주주측도 채권단이 조금은 양보할줄 믿었다. 팽팽한 기싸움을 하다가 국내 1위 해운사는 갑작스럽게 응급실에 들어갔다. 마음의 준비, 절차상 준비도 못했다. 전세계 항구에서 한진 배는 입항거부, 압류를 당했다. 국가 체면이 말이 아니다. 화주들은 발을 동둥 굴렀다. 다른 배를 잡아야 하는데 운임이 폭등했다. 운임을 더주더라다도 스케줄을 맞출수 없다. 해외 전시회에 보낼 모델 제품은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국내는 물론 세계 물류시장에 대란이 벌어졌다. 한진해운이 북미항로에 차지하는 비중이 7.8%. 물류 병목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이제 공은 법원에 넘어갔다. 한진해운의 생사여탈권은 법원이 쥐고 있다. 법원이 대주주다. 김정만 판사가 회장이고, 석태수 관리인이 사장이다. 조양호 회장과 대한항공의 주주권은 박탈됐다. 채권단도 영향력이 없다.

법정관리는 대주주, 채권자, 임직원 모두의 희생을 강요한다. 채권·채무가 동결되고, 모든 운영자금은 관리인에 의해 통제된다. 구조조정이 단행된다. 임직원에 대한 감원이 단행된다. 불요불급한 자산은 매각된다. 관계인 집회를 거쳐 채권이 대폭 깎인다. 해외 선주의 용선료는 얼마나 받을지 모른다. 용선료 협상을 질질 끌던 선주들도 낭패를 겪게 됐다. 항만 정박료도 깎인다. 그동안 돈을 빌려줬던 채권은행도 빌려준 돈의 상당한 액수를 받지 못한다.

부채를 다 털어내면 한진해운은 새주인을 맞게 된다. 현대상선과 합병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 될 전망이다. 이미 정부가 운을 뗐다. 정은보 금융위 부위원장은 “현대상선이 한진해운의 선박, 영업, 네트워크, 인력 등 우량자산을 인수해 최대한 경쟁력을 확보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은보 부위원장의 발언은 법정관리 개시 하루전에 나왔다. 회생이 결정됐으므로, 한진해운은 채무를 정리한후 법인과 남은 자산을 현대상선에 넘길 가능성이 크다. 용선을 돌려주면 한진해운에 남는게 거의 없다. 핵심자산 대부분을 (주)한진 등 한진그룹 계열사에 넘겼다. 이들 자산이 한진그룹의 것인지, 한진해운의 것인지를 법원이 다시 판단할 것이다. 가장 큰 자산은 해외영업망이다. 40년간 쌓아온 영업망은 돈으로 살수 없는 자산이다. 세계 7위의 한진해운은 해와 화주들과 방대한 영업망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화주들과 탄탄한 관계를 맺어온 핵심인력을 현대상선이 채용하면 경쟁력을 살릴 수 있다. 한진해운이 보유한 우량한 용선이나 사선도 인수할수 있다. 법원이 이들 우량자산의 가치를 평가해 현대상선에 매각하고, 그 대금으로 채권자들에게 일정비율로 할인한(헤어커트) 채무를 갚게 된다. 현대상선은 국책은행이 대주주이므로 국영회사나 다름없다. 한진해운의 남은 자산을 현대상선에 합쳐 거대한 국영선사를 만드는 셈이다. 정부에 의한 일종의 해운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1+1=1.5」의 방식이 적용된다. 그후 한진해운을 훕수한 현대상선을 누군가에 매각해야 한다. 이 기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대우조선은 10년이 넘도록 산업은행 품속에 있다.

이제 시작이다. 법원이 한진해운을 살릴지는 미지수다. 산업은행 품에 안긴 현대상선이 살아날지도 또한 미지수다. 세계해운경기가 바닥을 쳤다고 하지만, 앞으로 상당기간 침체를 이어간다는 게 중론이다. 주인이 바뀌었다. 한진해운은 법원이 주인이고, 현대상선의 주인은 은행이다. 법률적 판단과 국가 정책에 의해 두 회사의 향방이 정해지게 된다. 두 회사가 살아나 합병을 하기까지의 성공여부는 외부여건보다도 회사의 임직원들의 노력이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약과 처방을 제공해도 살려는 의지가 없는한 환자는 회생할수 없다. 한국 해운산업의 미래는 현대상선, 한진해운의 임직원들의 노력에 달렸다.

지금 국내 해운업을 살릴 때다. 우리나라는 섬나라나 다름없다. 반도 국가이지만, 남북간엔 왕래가 차단됐다. 해양으로 진출해야 한다. 박정희 대통령때 국적선 확보 정책은 그런 맥락이었다. 자국 상선대가 부족한 미국은 걸프전때 남의 나라 배(한국 국적선)로 탱크를 실어야 했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자 현대상선 배를 투입하는 것을 보면 국적선사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구조조정에 많은 희생을 치러야 한다. 채권은행들은 돈을 떼인다. 두 회사의 임직원중에 상당수는 직장을 잃게 된다. 부두회사는 하역료, 접안료등을 깎인다. 이런 희생을 겪으면서 우리는 뭔가를 얻어야 한다. 새롭게 국적선사를 재탄생시키는 방법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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