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선 부의장 사회로 추경안 본희의 처리 합의

[공감신문 김대호 기자] 정세균 국회의장이 이제야 야당 국회의원이 아니고, 국회의장임을 깨달은 것 같다. 2일 국회의장실을 항의방문한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에게 "추가경정예산안의 본회의 처리가 무산된 데 대해 국민께 송구하고 유감이다. 새누리당 의원들의 문제제기에 대해 무겁게 받아들인다"는 내용의 입장표명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이에 정진석 원내대표는 '국민께 송구하고 유감이다'는 대목에서 '국민께'라는 표현을 제외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정 의장이 거절했다는 후문이다. 문구야 어찌되건, 정세균 국회의장이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다.

정 의장은 지난 1일 제20대 정기국회 개회식에서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문제와 사드 배치 결정 과정에 비판적 입장을 밝혔다. 정의장은 당일 자신의 개회사를 두고 새누리당이 반발하는 것에 대해 "정파의 입장이 아닌 국민의 뜻을 말한 것"이라먀. "국회의장으로서 지적할 것은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당인 새누리당의 항의는 의외로 거셌다. 새누리당은 모든 국회일정을 보이코트했다. 조윤선, 김재수 장관 내정자에 대한 청문회도 불참하고, 추가경정예산안 표결을 위한 본회의도 거부했다.

정치인들은 흔히 자신의 발언을 국민의 뜻이라고 말한다. 정의장도 그렇게 말했다. 국민들 가운데 정의장과 생각을 같이하는 사람도 일부는 있다. 그러나 동조하지 않는 사람이 더 많을수 있다. 사드 배치를 원하는 국민들이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이다. 국방의 문제는 사전협의를 하지 않는 것이 많은 나라의 관례다. 세계 최대 핵보유국인 미국에서 어디에 핵무기와 방어시설이 배치돼 있는지를 아는 사람이 극소수다. 핵시설을 공개하는 나라는 없다. 적어도 국가지도자라면 그런 정도는 알아야 한다. 여당출신이건, 야당출신이건 국방의 문제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 국회의장이 그런 민감한 사안에 특정 정파의 주장을 받아들이며 ‘국민의 뜻’이라고 했다. 정확하게 표현했어야 했다. “일부 국민의 생각‘일 뿐이다.

국회의장은 관례적으로 당적을 포기한다. 중립의 의무를 지키라는 취지다. 여당과 야당이 극한적인 대치를 할 때 중재하고 말려야 할 입장에 서있다. 그런 위치에서 편파적으로 움직였다.

새누리당이 강하게 반발하자 정세균 의장은 궁지에 몰린 것 같다. 사과의 방법과 어투에 신경을 쓰는 지점으로 물러났다. 골든타임을 이유로 추경안의 시급성을 주장하는 새누리당이 국회를 보이코트하도록 만든 원인을 제공했다.

정 의장이 한발 물러서면서 파국은 하루만에 수습되는 양상이다. 2일 오후엔 새누리당 최다선의원인 서청원의원과 독대하며 탈출구를 찾았다고 한다. 8선 의원인 서 의원이 해법 마련을 위해 정 의장에게 면담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자리에서 서 의원은 ▲추경안 처리시 본회의 사회권 이양 ▲개회사에 대한 공식 사과 ▲재발 방지 방안 마련 등 3가지 조건을 정 의장에게 제시했다고 한다. 전날부터 새누리당 의원들이 국회에서 농성을 벌이고, 정 의장 집무실을 찾아 물리적 충돌까지 빚어지는 등 분위기가 격앙되자 정치 원로로서 나선 것이다.

합의점은 11조 원 규모의 추가경정 예산안을 이날 중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고, 본회의 사회는 국민의당 소속 박주선 국회 부의장이 보기로 했다. 대신에 정 의장이 5일 예정된 본회의에서 이번 사태에 대한 입장만 밝히고 사회를 보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는 얘기도 있다.

며칠 있으면 추석이다. 2일 추경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서민들에게 지원될 돈이 풀리지 않는다. 막다른 골목에서 정 의장이 한발 물러선 것이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2일 오후 국회에서 여야 3당 원내대표를 면담하고 있다. 왼쪽부터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 정세균 국회의장,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 /연합뉴스

정세균 국회의장은 이날 오후 국회의장실에서 여야 3당 원내대표와 국회 정상화에 합의한뒤 기자간담회를 열어 “결산안, 추경안, 대법관 임명동의안 등 현안들이 매우 급한데 제 때 처리되지 못해 의장으로서 매우 큰 책임감을 느꼈다"며 "국민 여러분께 걱정을 끼쳐드려서 송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 의장은 "국민 여러분을 생각하면 이런 현안들을 하루도 미룰 수 없어서 제가 결단했다"며 "그래서 국회가 정상화됐다"고 밝혔다.

어쨌든 정세균 국회의장은 20대 국회 첫단추부터 체면을 구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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