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지갑 찾아준 경찰관…한·일 갈등 불구, 일본에 배울 점 많아

[공감신문=조병수 프리랜서] 작년 10월, 일본에서 근무했던 직장 선배의 안내로 몇몇 동료들 부부가 다카야마(高山)를 거쳐 일본의 알프스라고 불리는 중부산악국립공원을 둘러보러 나섰다. 나고야(名古屋) 중부국제 공항에서 차를 빌려 두 시간 남짓 달려서, 에도(江戶)시대의 상가(商家)모습이 잘 보존되어있는 거리라는 다카야마 산마치(三町)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려던 아내가 갑자기 "손 지갑이 없다"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모두들 놀라서 차 안팎을 이리저리 찾으면서 물어보니까,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내릴 때 가방이 쏟아졌는데, 그때 미처 못 챙긴 것 같다”는 것이다. 이름도 모르는 간이휴게소인데다가, 그로부터도 30분이상 달려왔으니, 되돌아 가볼 수도 없었고 또 가본다 한들 찾을 수도 없을 터였다.

여권은 따로 넣어두어서 다행이었으나, 용돈조로 나와 나누어서 보관하던 얼마간의 엔화와 한국 돈, 그리고 신용카드 등이 사라진 것이다. 돈도 아깝지만, 아내는 큰 딸이 얼마 전에 선물했다는 손 지갑을 잃어버렸다고 안타까워했다.

새벽부터 움직여서 도착한 첫 목적지에서 막 일정을 시작하려는 때에, 일행들의 여행분위기에 부담을 주게 되는 것도 속이 상했다.

애써 착잡한 심정을 감추며, 에도시대의 관공서라는 진야 (陣屋)와 옛 거리 주변을 둘러보고는, 잠시 틈을 타서 한국의 카드회사로 분실신고를 하려고 전화를 걸었다.

비싼 국제전화를 쓰고 있는데, 무어라고 녹음되어 흐르는 안내 말이 그리도 길고 많은지···. 그리고는 이리저리 음성지시를 하라고 했다가 다시 원위치하며 ARS로 돌리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한참을 기계음과 씨름을 한 후에야 겨우 상담원과 통화가 이루어졌는데, 다행히 '다른 사용기록은 없다'는 대답에 큰 걱정은 덜었다.

그 몇 마디만 전하면 되는 간단한 분실신고 정도는 처음부터 상담원이 받으면 될 텐데, 뭣 하러 그렇게 갑갑한 기계음으로 계속 돌려야만 연결이 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언제부터인가 수많은 회사들이 고객의 전화응대에 그 비슷한 방식을 쓰고 있는데, 그것은 아무래도 고객보다는 회사나 직원편의 중심의 사고라고 여겨진다. 그리고 글로벌 시대라는 요즈음에는 우리나라에 거주하거나 체류하는 외국인들도 많은데, 과연 그들이 그런 통화절차들을 거쳐서 필요한 문의나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겠는지도 한번쯤 생각해 볼일이다.

<다카야마 산마치-전통보존거리>

그렇게 카드문제를 정리하고, 어둠이 내리는 산길을 달려서 히라유(平湯)의 온천여관에 도착한 후, 주인에게 “지갑을 분실했다고 경찰에 신고해달라”고 부탁했다. 선진국이니까 혹시나 누가 주어서 신고를 했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와 함께, 쉽지는 않겠지만 나중에 여행자보험 보상신청을 위해서라도 신고해 둘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였다.

여장을 풀고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경찰이 여관으로 온다”는 전갈이 왔다. 다카야마 시내 쪽으로 한 20분정도 떨어진 곳에서 어두운 산길을 타고 달려온다니, 조금은 미안하면서도 신기하기도 했다. 일본말을 할 줄 아는 선배와 함께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으니까 훤칠한 키에 준수한 모습의 경찰관이 들어서는데, 그의 겸손한 자세가 인상적이었다.

인사를 나눈 후에 우리가 라운지 소파에 앉으니까, 차 탁자 건너편 바닥에 한 쪽 무릎을 꿇고 앉아서 서류를 작성하려 했다. 황급히 만류하며 소파 한 켠에 앉도록 권하긴 했지만, 외국인여행객이 ‘지갑 하나 잃어버렸다’고 한다고 밤중에 먼 산길을 달려와서는 정중한 자세로 눈높이를 상대편보다 낮추려고 노력하고 있는 그 모습은, ‘아, 일본이라는 나라가 이렇게 움직이는구나’하는 강한 인상을 안겨주었다.

그 경찰관이 떠나고 난 뒤에, 통역을 도와주던 선배가 “경찰관과의 대화 중에 ‘지갑을 마지막으로 보거나 사용한 게 언제냐’고 묻더라"고 했다. '사안에 접근하는 관점이 우리네 일반인들하고는 다르구나'하고 느끼는 순간, 얼핏 ‘한적한 휴게소의 차 밑에 굴러 떨어진 것이 아니라, 비행기안이나 출입국 수속하는 곳 , 또는 공항 내 다른 곳에서 잃어버렸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스쳐갔다.

그래서, 여행분위기를 해칠까 봐 크게 내색도 못하고 있는 아내의 마음을 생각해서, 한참 있다가 지나가는 말투로 넌지시 물어보았다. "지갑을 마지막으로 만진 게 언제요?”

“비행기안은 아니고 입국심사대 앞에서 여권을 꺼내고 다시 집어넣었으니, 휴게소에서 잃어버린 것이 확실해요.”

그러면서도 뭔가 석연치 않아 하는 것도 같고, 비행기안에서 지갑을 만지는 모습을 내가 본 적도 있으니, '혹시 비행기 안이나 입국장에서 떨어뜨렸다면 다시 찾을 가능성이 더 높아지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어쨌던 잃어버린 것은 그만 포기하기로 하고 남은 여정을 진행했다. 귀국할 때 공항에 가서 한번 물어나 보겠다는 일말의 희망은 남겨놓은 채···.

 

<중부산악국립공원 가미코지(上高地) 풍경>

그렇게 4박5일의 일정을 마치고 출국 2시간을 남겨두고 나고야 공항에 되돌아왔을 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일행에게 양해를 구하고 먼저 공항안내데스크로 갔다.

“지갑 주운 것 신고된 것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면 입국심사대와 비행기에서 신고된 것은 없습니까?” “그것은 관할이 다르니, 세관과 항공사에 각각 물어 보아야 합니다.”

난감했다. 내친 김에 부탁을 이어갔다.

“항공사에는 탑승수속하면서 물어보겠지만, 입국심사대쪽은 내가 일본말도 못하고 어디가 어딘지 모르니 당신이 좀 도와줄 수 없겠습니까?”

그랬더니 뜻밖에도 선뜻 전화기를 들어서 어디론가 수소문하는 것이었다. 그녀가 통화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지갑의 종류와 내용물, 그리고 한국운전면허증의 이름을 영어와 한글, 한자로 써 주었다.

그런데 그 안내원이 일본말로 통화하는 내용을 알아듣지 못하였지만, 그 표정과 어감으로 봐서는 분명히 무언가 좋은 소식이 있는 것 같았다. 통화를 끝낸 안내원이 마치 본인의 일처럼 기뻐하면서 낭보를 전해주었다.

“그 지갑을 경찰이 보관하고 있대요. 잘됐어요. 공항에서 10분거리의 경찰서로 가보세요.”

“고맙습니다. 그런데 내가 이 주변 위치를 전혀 모릅니다. 그리고 비행기 출발시간이 다되어 갑니다. 다른 방법이 없겠습니까?”

“저쪽으로 가면 공항 내 파출소가 있어요. 거기로 가면 도와줄 것입니다.”

감사하고도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지만, 아직 탑승수속도 못했는데 비행기 출발시간이 한 시간 반정도 밖에 남지 않아서 마음이 급했다. 중간중간 물어가며 경찰관 3명이 있는 공항파출소 같은 곳으로 찾아갔다. 안내데스크에서 적어준 참조번호를 제시했더니, 약도를 보여주면서 “경찰서로 가보세요”라는 것이었다.

“동서남북도 모르고 일본말도 못합니다. 더구나 탑승수속 시간이 다되어서 움직일 수 없으니 누구 시켜서 좀 가져다 줄 수 없겠습니까?”고 순간적으로 억지를 부려보았다. 그때, 영어로는 소통이 잘 안 되는 젊은 경관 대신에 뒤편에서 상급자인 듯한 경찰관이 다가오더니, 간단한 영어로나마 “저 경찰관을 시켜서 가져다 줄 테니, 체크인부터 하고 30분 후에 여기로 다시 오세요”라고 했다.

고맙기 그지없었다. 멋진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어이없는 이런 억지부탁이 받아들여지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한국으로 우송해달라고 해야 할 형편이었다.

그렇게 해서 거의 마지막 즈음에 우리부부의 탑승수속을 마치고, 약속한 시간을 기다리며 일행들과 '지갑을 찾게 된 경위와 기쁨’을 나누고 있었다. 그때 경찰서로 갔던 경찰관이 밀봉한 봉투 하나를 들고 다가와서 “파출소로 같이 갑시다”라고 했다. 지갑을 가지고 오다가 대합실에 서있는 나를 보고는 데리러 온 것이다.

반환절차는 간단했다. 밀봉된 지갑을 건네주며 “이 지갑이 맞습니까? 내용물을 확인하세요”라고 하더니, '이상 없이 인수했다'는 서류 서명과 여권 복사로 ‘끝’이었다. 금액이 얼마인지, 유실물에 대한 보상 같은 말을 운위할 분위기도 아니었다. 그저 “생큐”라는 말 밖에는···.

그런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던 나에게는 진한 감동이 밀려들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심심찮게 미담(美談)들이 지상에 오르내리지만, 타국 땅에서 직접 이런 경험을 하게 되니 남다른 감동으로 다가왔다.

<가미코지 다시로이케 연못>

여행 틈틈이 우리 부부의 기분을 풀어주려는 듯이 수시로 “어딘가에서 있을 수 있을 것”이라고 위로해주던 동료들에게 미안해서 “귀국 후에 밥이나 한번 사겠다”고 했었는데, 여행의 마지막 순간에 극적 반전이 일어난 것이다. 이제는 잃어버린 지갑과 돈을 찾은 기쁨을 나누기 위한 '해피엔딩'축하모임으로 바뀌게 되었다.

잃어버렸던 그대로 다시 손에 쥔 것이 감사하고도 신기한 마음에, “여행 내내 찜찜한 기분을 주어서 여러분에게 미안했지만, 이렇게 해서 일본의 문화체험을 할 기회를 만들어 드린 것 아니냐”며 우스개소리도 해보았다.

나중에 상황을 다시 정리해보니, 입국심사대 앞에서 신고서 뒷면의 기재사항을 추가로 쓰려고 여권을 꺼내면서 떨어뜨린 모양인데, 그것이 누군가에 의해서 고스란히 공항 경찰서에 밀봉 보관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산간마을 여관까지 밤길을 올라와서 신고서를 받아가던 경찰, 체크인 할 시간이 부족하다며 대신 경찰서에 가서 가져다 달라는 외국인을 위해 손수 가져다 주던 경찰, 자기 관할이 아닌데도 이리저리 전화로 탐문해서 잊어버린 물건의 소재를 알아내 주고 자기 일 처럼 반가워하던 안내데스크 직원, 이런 것이 이루어지는 나라, 그것이 일본의 한 모습이라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 여행에서 새삼 놀란 것이 ‘깨끗함과 질서’였다. 닷새간을 돌아다녀도 길거리나 주택가를 막론하고 어디 종이조각하나 나뒹구는 것을 보지 못했다. 일행 중 한 분이 국립공원 내 식당에서 종업원에게 ‘쓰레기 버릴 곳’을 물으니까 “없다, 가져가라"는 대답을 들었다고도 했다. 여행 막바지에 나고야 시내를 달리다가, 고가차도밑 분리대모양의 화단에 프라스틱 음료수병이 한두개 버려져 있는 것을 본 아내가 '심봤다'라며 신기해 할 정도로 모든 곳이 깨끗했다.

고속도로에서는 추월차선으로 갔다가 바로 주행차선으로 복귀하고, 도심에서도 나란히 줄을 서서 달리는 모습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끼어들기, 급차선변경 같은 것은 구경할 수도 없었다. 거리를 메운 차들은 거의 다 소형차들이고, 정지선을 반듯하게 지키면서 차분하게 진행하고 있는 것도 아주 인상적이었다. 

   

우리일행이 일본여행을 하고 있는 사이에, 한·중·일 정상회담에 이어서 한일 정상회담이 오래 만에 열렸다는 기사가 대서특필 되고 있었다. 그 이후로도 많은 갈등과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런 여러 가지 갈등들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이웃나라인 일본으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할 점도 많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해준 가을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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