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국회서 ‘IT노동자 직장갑질 피해사례’ 발표회 열려...폭언·폭행·성범죄 등 뿌리 깊어

13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IT노동자 직장갑질 및 폭행피해 사례보고' 발표회 / 윤정환 기자

[공감신문] 윤정환 기자=“과로와 괴롭힘으로 인한 탈진과 번아웃으로 힘들어하던 제 동생은 크게 좌절하며 올해 1월 3일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과로자살은 삶을 끝내고 싶은 게 아니라 일이 주는 고통을 끝내고 싶은 것입니다”

13일 오전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 주최로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IT노동자 직장 갑질·폭행사례’ 발표회에서 살인적 과로로 동생을 잃은 장향미 씨의 증언이다.

양진호 사태를 계기로 국내 IT업계에 만연한 각종 폭언·폭행 및 비인간적 처우를 고발하기 위해 열린 이번 발표회에서는 다양한 피해사례가 쏟아졌다.

장향미 씨의 동생 장민순 씨가 국내 ‘에듀테크’ 산업의 대표기업으로 꼽히는 에스티유니타스(ST Unitas)에서 2년 8개월간 근무한 결과는 세상과 이별이었다.

장향미 에스티유니타스 직장괴롭힘 피해자 장민순 씨 유족이 13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IT노동자 직장갑질 및 폭행피해 사례보고' 발표회에서 증언 중이다. / 윤정환 기자

장 씨는 “회사는 근로기준법을 무시한 채 월 69시간 연장근무, 29시간의 야간근무를 전제로 포괄임금제를 맺고 별도 수당 없이 일 12시간 이상 장시간 노동을 직원에게 강요했다”고 고발했다.

그러면서 “동생은 근무하는 기간 동안 거의 1년 이상 연장근로 제한한도를 초과했다”며 “계속되는 야근과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로 공황장애와 우울증, 건강악화까지 얻었다”고 호소했다.

장 씨는 “직장 상사는 4명이 소화해야 할 업무를 동생에게 부여하고 채식주의자인 동생에게 고기를 강요하고 업무일지에 자아비판, 반성문 작성 등 비인간적 대우를 일삼았다”며 “과로와 괴롭힘으로 지쳐버린 동생은 올해 1월 3일 하직했다”고 했다.

농협정보시스템에서 2년 반 동안 8770시간 과로해 폐를 잘라낸 양도수 씨는 이직한 하이마트에서 또다시 폭언·폭행 등 갑질행위를 겪었다.

양 씨는 “하이마트 쇼핑몰 IT관리자로 재직 중 백 모 팀장과 허 모 매니저에게 양진호 동영상처럼 수십명의 동료들이 보는 앞에서 온갖 욕설과 폭언·폭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양도수 롯데하이마트 폭행피해자가 13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IT노동자 직장갑질 및 폭행피해 사례보고' 발표회에서 증언 중이다. / 윤정환 기자

그는 해당 문제를 사측에 제기했고, 하이마트 측은 가해자 2명을 지방으로 좌천시키고 다시는 원복시키지 않을 것을 약속했다. 하지만 불과 6개월 만에 가해자들은 원래 직위로 복귀했고, 피해자 집 앞을 서성이는 등 위협을 가했다.

특히 양 씨는 “백 모 팀장이 직원에게 ‘내가 니 똥꾸녁까지 핥아 줘야 하냐 개새끼야’라는 욕설을 내뱉는 걸 봤다”며 “그는 제가 근무하기 시작한 2014년부터 지속적으로 협력업체 직원에게 폭언한 것으로 유명했다”고 증언했다.

이는 IT업계 피해사례 중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올해 이철희 의원이 IT노조와 함께 실시한 ‘IT업계 노동실태조사’에 따르면 이같은 갑질사례는 업계 전반에 퍼져있다.

실태조사 결과 근로기준법에 따라 주 40시간을 보장받는다는 응답자는 전체 503명 중 12.4%에 불과했고, 주 52시간을 초과근무한다는 응답자는 25%를 넘었다. 불법파견·하도급 근무 형태가 50%에 달했으며, 5년 미만 경력자의 62.2%는 평균 연 소득 3000만원 미만으로 집계됐다.

설문응답자 23.26%는 상사에게 언어폭력을, 20.28%는 위협·굴욕적 행동을 당했다고 응답했다. 신체적 폭력, 왕따 및 괴롭힘, 성희롱·성폭력을 당했다는 응답자도 존재했다.

피해자 중 과반 이상은 최근 1년 사이 자살을 한 번이라도 생각했다고 답했다. 매일 자살을 생각한다는 사람은 19명, 실제 자살을 시도했다는 자는 14명에 달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이 13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IT노동자 직장갑질 및 폭행피해 사례보고' 발표회에서 인사말 중이다. / 윤정환 기자

이철희 의원은 “현장에서 절박한 목소리가 나오는데 정부와 정치권이 제대로 대답해주지 못한 데에 큰 책임감을 느낀다”며 “지금이라도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효과적인 제도적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노웅래 의원은 “더 이상 폭행·폭력 등 갑질을 수수방관하거나 좌시하면 안 되고 할 말은 하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며 “국회 내 계류 중인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조속히 통과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난 9월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을 신설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여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개정안은 직장 내 괴롭힘을 ‘직장 내 지위 등 우위를 이용해 다른 근로자에게 고통을 주거나 업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정의했다.

하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일부 의원들의 반대에 막혀 계류 중이다. 자유한국당 등 일부 야당은 ‘직장 내 괴롭힘’이 불명확하다는 주장으로 법안 통과를 막고 있다. 상임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법안이 법사위에서 발목을 잡히는 경우는 드물다.

지난 2013년 이래 직장 내 괴롭힘을 막기 위해 발의된 법안은 10여건에 달하지만 아무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양진호 사태를 계기로 IT업계를 비롯한 각계의 갑질행위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는 만큼 법적·제도적 안전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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