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도처에서 발생하는 사태를 타산지석 삼아 비상수칙 알아두자

[공감신문=조병수 프리랜서] 2001년의 가을, 지금으로부터 15년전 그날. 9월11일 화요일 아침시간은 평소와는 달리 출근시간에 유난히 길이 많이 막혔다. 뉴저지에서 조지 워싱턴 다리를 건너서 맨하튼 섬의 동쪽 해안도로인 프랭클린 D. 루즈벨트 이스트 리버 드라이브 (FDR Drive)를 따라 내려오는데, 차들이 거의 거북이 걸음을 하고 있었다.

긴급차량들의 사이렌과 경적소리가 점점 더 잦아지고, 늘어선 차들이 틔어주는 틈을 타고 무서운 기세로 남쪽으로 달려가는 모습들이 심상치 않았다. 혹시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서 라디오를 틀었더니, ‘비행기가 세계무역센터빌딩(1World Trade Center: North Tower)과 충돌했다’는 이야기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무슨 경비행기가 충돌한 것처럼 이야기를 전하는데, 거리의 사이렌 소리에다가 흥분한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뒤섞여 요란스러웠다.

조금씩 움직이는 차들 틈으로 간신히 46가 파크 애비뉴에 있는 사무실 근처에 다다랐을 때는 벌써 오전 9시를 넘기고 있었다. 그 때 또 다른 비행기가 세계무역센터 쌍둥이빌딩(2 WTC: South Tower)과 충돌하였다는 말이 라디오에서 터져나오면서 "오, 마이 갓!”을 연발하고 있었다.

사무실로 들어서면서, 바깥에 무슨 일이 생긴지도 모르고 일들을 시작하고 있는 직원들에게 “TV나 라디오를 들어보라. 세계무역센터에 무슨 일이 벌어진 모양이니 그 내용을 확인해보라”고 했다.

그리고는 그날 오전 10시에 내방하기로 한 KPMG회계사들과의 면담자료를 챙기고 있으려니까, 한 직원이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달려와서 “워싱턴의 국방부가 피격을 당했다. 공격을 받고 있다”는, 무슨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소식을 전하는 것이었다.

약속시간에 찾아온 분들에게 바깥상황을 전해주며 “다음에 이야기 하자”고 돌려 보내는 참에, 쌍둥이빌딩(2WTC)이 무너지고 있고, 어디서는 비행기가 추락했다는, 정말 장난 같은 황당한 이야기들이 계속 전해졌다.

건물 밖에는 굉음을 내는 비행기 소리가 저공 비행하는 듯이 가까이서 들리고, 거리에는 사이렌 소리로 마치 전쟁영화 같은, 공포 분위기 그 자체였다. 미국에 있으면서 맨해튼 상공에서 굉음의 전투기 소리 같은 것을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그 당시 42층에 있는 사무실 바깥으로 전투기가 마치 저공 비행하듯이 날아다니는 소리는 정말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지난 2001년 9.11 테러 당시 세계무역센터에서 시민들이 서로 부축해 걸어나오고 있다. /AP=연합뉴스

그리고 또다시, 세계무역센터빌딩(1WTC)이 무너진다는 소식과 미국 전역이 공격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들이 긴박하게 전해지는 가운데, ‘맨해튼이 공격을 받으면 위험하니 건물 밖으로 대피하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전에 같이 근무하다가 퇴직한 동료가 “맨하튼 시내가 공격받을 것 같다니까 빨리 대피하라”고 염려하는 전화를 걸어오기도 했다.

그러나 우선 정확한 상황파악이 먼저였다. 사무실에 있던 직원들에게 사태를 좀더 정확히 파악해보도록 하고 거리로 내려와 보았더니,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늘 자동차와 사람으로 붐비던 시가지와 거리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모든 도로가 사람들로 빼곡히 들어차있고, 모두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하늘에는 분주히 오가는 전투기들의 굉음이 들려오고···.

그 광경을 보면서, 어릴 적 본 적이 있는 펄 벅(Pearl S. Buck)의 대지(大地, The Good Earth)라는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그 영화 속의 다른 것은 다 잊어버렸어도, 하늘을 뒤덮은 메뚜기 떼와 수 많은 사람들이 공포에 질려 마구 몰려다니던 장면만은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 그날 그 파란 하늘아래 맨해튼의 고층빌딩 사이에 발 디딜 틈도 없이 몰려나와서, 하늘만 쳐다보며 전율에 떨고 있던 뉴요커들의 모습에서 그 영화 장면이 떠오른 것이다.

정말 조용히, 정말 모든 사람들이, 빌딩 사이로 열린 그 청명한 가을 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인산인해란 이런 것을 두고 이야기 하는 것이리라. 다만 그런 전대미문의 공포감 속에서도 도로를 가득 메운 모두가 질서 있고, 모두가 조용하게 하늘만 쳐다보고 있던 그 광경이 마치 정지화면처럼 나의 뇌리에 박혔다.

 

맨해튼을 무대로 하는 영화 같은 배경에다가 비행기의 굉음, 사이렌 소리, 온통 인파로 뒤덮인 도로, 점심시간이 되어도 길가의 식당 안이 텅 비어 있던 그 장면들···, 2001년 9월 11일, 그날 오전의 맨해튼 중심가는 그랬다.

그리고 불과 5km정도 거리에 있는 세계무역센터는 엄청난 인명피해를 가져오며 무너져 내렸고, 그 도시 전체는 그냥 그렇게, 어디서 또 무슨 일이 벌어질 지 모르는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

바로 눈 앞에서 벌어지는 장면들이었고, 그 시각에 내가 그런 엄청난 역사적 사건의 현장근처에 서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이제 어떻게 하지?’라는 절박함이 어깨를 짓눌렀다. ‘이 순간의 선택이 생사를 가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 전쟁이 나면 바로 이런 분위기이겠구나, 이렇게 그냥 휩쓸려가는 것이겠구나’하는 허허로움이 가슴을 저며왔다.

9.11 테러 참사 당시 텅빈 FDR드라이브

미국 땅에서 일하면서 이런 돌발 상황이나 위기에 대비한 비상대비계획이란 생각조차 해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인명피해는 없어야겠기에, 동부와 서부지역의 영업부서들에 전화를 걸어서 상황탐문과 함께 "각 소속장 판단 하 영업단축 및 직원귀가조치"와 "대피 시 상황보고" 등 두 가지 사항을 전달했다. 그리고는 사무실에서 전전긍긍하고 있던 현지직원들을 퇴근시키고, 본국에서 파견된 책임자들만 사태추이와 상항파악을 위해서 남았다.

오후 들어 시간이 흐르면서 일찍 사무실을 빠져 나온 인파들이 거리에 넘치고, 터널이나 다리가 봉쇄되거나 통제되면서 극심한 교통혼잡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져 왔다. 맨해튼에서 외곽으로 연결된 다리를 사람들이 걸어서 건너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남아있는 우리는 어떻게 이 도시를 탈출할 수 있을 지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대도시 맨해튼이 텅 비어가는 것을 느끼는 불안감 속에서도, 서울 본점에다가 동향과 조치사항들을 종합해서 알리고 제일 마지막으로 대피하겠다는 생각으로 퇴근을 미루고 있었다. 먼저 대피한 다른 부서 동료들은 뉴저지로 연결된 조지 워싱턴 다리가 통제되어서, 북쪽으로 45km나 떨어진 태판지 다리를 건너가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오전처럼 무선통신이 어려워질지도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내부 인터라넷 망을 점검하면서 영업부서들의 최종상황을 취합하는 사이에 서울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9·11사태가 한국에서는 어제 저녁 뉴스 시간대라서 거의 실시간으로 중계되었다. 오늘 아침 예정된 임원회의에 상황보고를 하려고 하니 빨리 보고서를 보내달라.”

 

‘사태개요, 쌍둥이 빌딩내의 한국계 증권사 등 금융기관 동향, 맨해튼 남쪽 통행제한, 공항·항구 폐쇄, 일부 지하철 운행 중단, 교량 통제, 뉴욕증권거래소 폐장, 전화불통지역 회복 중, 직원가족·시설피해 없음, 뉴욕지역 직원 오전 근무 후 귀가조치, LA지역 공공시설 경계강화(정상근무), 통신수단(인트라넷, SWIFT) 정상유지, 전산부문 정상가동 및 데이터 백업 조치’ 등…

그때까지 파악된 내용을 전송했다.

 

그리고는 남아있던 책임자들과 차를 타고 시가지를 벗어나는데, 그렇게 붐비던 저녁 무렵의 도심지가 그날만은 황량함을 지나,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느낌을 주었다. 과연 맨해튼을 벗어나서 집들이 있는 뉴저지 주로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 지를 걱정하면서, 우여곡절 끝에 집에 도착했다.

TV에서는 말 그대로 온통 난리였다. 루돌프 줄리아니 시장이 화면에 나와서 ‘내일 출근을 하지 말라’는 권고방송을 계속 내보내고, 사건관련 보도도 계속되고 있었다. 맨해튼으로 통하는 교량과 터널, 대중교통수단이 다 통제된다니 다음날 아침 출근은 불가능했다. 시장이 직접 ‘내일 뉴욕으로의 출근을 하지 말라’고 하니까, 현지직원들은 출근하지 않도록 조치했다.

하지만 본국에서 나온 책임자들만이라도 나가서 ‘우리의 직장을 지켜야 된다’는 생각을 굳히고 있었다. 맨해튼 중심부의 빌딩 숲 속, 요충지라 할 수 있는 그랜드센트럴 역이 지척에 있는 우리 사무실의 위치는 추가테러가 벌어진다면 아주 위험성이 높은 지역이었고, ‘모든 뉴욕금융시장 시스템이 마비가 되고, 뉴욕 시에서는 모두들 출근을 하지 말라고 하는데도 뭐 하러 그렇게 나갔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비상시 영업현장 상황파악 및 대처’라는 책임감이 그런 용기를 내게 만들었던 것 같다.

아무튼 밤늦게 동료들과 통화를 하다가, 갑자기 ‘허드슨강을 건너는 배는 움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뉴저지 쪽 링컨터널 입구 조금 북쪽에 있는 위호켄의 임페리얼 부두(Port Imperial)에서 맨해튼의 미드타운/39번가 쪽으로 통행하는 배가 있는데, 그것을 중단한다는 소식은 없었다. 그래서 다음날 아침엔 거기로 가서 출근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뉴스를 살피고 서울 본점과도 연락을 하다 보니 잠을 잘 겨를이 없었다. 겨우 한 시간 정도 눈을 붙이고는, 본국책임자들을 태워서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마주 보이는 뉴저지 쪽 선착장에 도착했더니 마침 배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날 아침, 그 선착장에서 맨해튼으로 출발하는 배에 오르는 사람들은 모두가 심각하다 못해 사뭇 결연한 표정들이었다. 우리 팀 말고도 몇몇 한국사람들이 보였다. '한국인들은 참 용감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 와중에 나도 모르게 실소를 머금기도 했다.

그리고 눈을 들어 오른쪽 아래 다운타운의 쌍둥이빌딩이 있던 곳을 바라보니, 그 자리가 휑하니 비어 있었다. 그전날 일어난 일들이 실제상황이란 것을 절감하게 되었다. 그렇게 모두들 말없이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른 아침 허드슨 강의 상큼한 강바람이 온몸을 휘감아가면서 또 한번의 전율을 느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사무실에 나가서 상황을 확인하고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조치들은 해야 된다’는 무슨 사명감 같은 것이 전신을 퍼져나갔다. 미국사람들도 위험하다고 출근하지 않는 데 왜 그렇게 기를 쓰고 가려고 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만용’이 아니었나 싶지만, 그때는 ‘그래야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9.11 테러당시 뉴욕시민들이 하늘을 처다보며 망연자실하고 있다.

아무튼 맨해튼 내 모든 대중교통이 올 스톱 되어 있을 테니, 일단 배로 건너가서 사무실까지는 걸어서 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배에서 내려서 보니, 맨해튼 42가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버스 편은 움직이고 있어서 큰 다행이었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텅 비어 황량한 시가지를 내다보고 있으려니까, 마치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영화촬영 세트장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인적조차 없는 거대한 세트장을 관광버스를 타고 내다보고 있는 것 같이 착각할 정도였다.

웬만하면 50층이 넘는 고층건물들로 가득 찬 맨해튼 중심부의 인적 없는 도로를 가로지르고 걸어서, 경비근무자만 있는 텅 빈 건물에 도착했다. 그리고 다시금 영업점들의 동향과 사태의 추이를 파악하다가, 아침에 오던 길을 되돌아 나왔다.

수시로 상공을 날아다니는 전투기 굉음과 비상 사이렌 소리 속에서, 고층건물을 빠져 나온 수 많은 군중들이 도로를 가득 메운 채 하늘을 바라보며 공포에 떨던 그 시가지였다. ‘그렇게 붐비던 시가지가 오늘은 이렇게 인적조차 없는 데, 혹시 다른 테러나 비상사태가 생기면 어떻게 하나?’하는 막연한 불안감 조차도 입밖에 꺼내지도 못하고, 그 난리통에 그렇게 위험을 무릅쓰고 직장을 지키며 맡은바 소임을 다해준 동료들이 정말 고마웠다.

 

주재국의 대도시 전체가 완전히 마비되는 상황 속에서 책임감 하나로 자리를 지키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해마다 여름철이면 우리나라에서는 을지훈련을 한다는 소식이 뉴스에 오른다. 세계 도처의 테러발생 소식과 사드(THAAD) 배치논란, 북한의 무기개발소식까지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올해도 예외 없이 그 훈련이 있다고 했다. 

직장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들이나 세대들에게는 거리에서 접하게 되는 민방공대피훈련 정도나 관련이 되는 것 같은데, 궁금해서 인터넷을 찾아보았다. 그제서야 어느 블로그에 “전국 민방공대피훈련”이라는 말과, “비상시 국민행동요령”이라는 설명들이 붙어있는 것을 보게 된다. 대피소도 "스마트폰 앱이나 국민안전처 홈페이지를 찾아서 사전에 '발'로 직접 확인해보라"고 씌어있었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사용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는 부족해 보였다. 

하물며 동네 영화관을 가도, 영화상영 전에 비상대피로 안내영상이 나가는데, 내가 눈 여겨 살펴보지 못한 탓인지는 몰라도, 흘러 넘치는 방송채널 어디에서도 비상시 행동수칙이나 대피장소, 요령 등을 사전에 교육하거나 안내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사회불안을 조장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해마다 9월이 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가득 메운 채 속절없이 가을 하늘을 쳐다보며 공포에 떨고 도시를 탈출하던 오래 전 그 도시에서의 기억들을 떠올리게 된다. 지금도 세계도처에서 벌어지는 유사한 사태들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서, 우리도 모두 비상시에 대비한 행동수칙하나라도 제대로 알아두고, 또 알려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뉴욕 맨해튼 9.11 기념관 그라운드 제로는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동판으로 둘러싸여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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