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후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김대중 정부 곤혹

[공감신문 김인영 기자] 9·11 테러 이후 조지 부시 행정부는 전쟁 수행, 치안 강화, 경기 진작을 위해 ‘강한 정부’로 이행했다. 미국인들이 보복 전쟁을 강력하게 지지하는데다 추가 테러를 방지하기 위한 치안 강화를 요구했다. 게다가 그동안 경기 둔화로 적자를 내온 기업들이 테러 참사 이후 연방정부에 경기부양과 동시에 구제금융을 요구하며, 정부의 직접 개입을 요구했다. 이같은 분위기에 편승해, 부시 행정부는 정부 조직을 확대하고, 재정 지출을 확대하는등 정부 기능을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공습을 단행한 직후 부시 대통령은 조국안보국(Office for Homeland Security)을 신설, 펜실베이니아 주지사로 있던 톰 리지를 워싱턴으로 불러 국장 취임 선서를 받았다. (이 조직은 1년후 조국안보부로 확대개편됐고, 톰 리지는 장관으로 승진했다.) 신설 조직은 연방수사국(FBI)와 중앙정보국(CIA), 항공안전국등을 총괄하는 공룡 조직으로, 테러와 싸우기 위한 통합 전략을 수립하는데, 부시 대통령은 백악관과 여러 기관에서 요원을 차출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이 테러 직후인 2001년 9월 20일 미 의회 상하양원 합동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작은 정부’에서 ‘강한 정부’로 전환

예산 정책에서 부시 행정부는 집권 초기에 연방 예산을 줄여 납세자에게 돌려준다는 원칙을 세웠으나, 테러 참사와 경기 침체를 맞아 400억 달러의 피해복구 및 전쟁비용, 150억 달러의 항공산업 구제금융자금을 지원했다. 게다가 750억 달러의 추가 경기부양 계획과 600억 달러의 감세계획을 추진했다.

2000년에 연방정부 재정은 사회보장비를 제외할 경우 겨우 10억 달러 밖에 흑자를 내지 못한 상황에서 부시 행정부가 이 처럼 막대한 정부자금을 지출하려면 재정 적자를 내거나 사회보장기금을 털수 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부시 대통령은 ▲전쟁 ▲경기침체 ▲비상시국의 경우 재정적자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과거 공화당의 레이건, 부시(아버지) 행정부는 정부 규제를 과감히 완화했고, 민주당의 클린턴 행정부는 불필요한 재정 지출을 축소, 균형 예산을 이룩했다. 이처럼 지난 20년 동안 정당과 상관없이 미국 행정부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며 장기 호황의 틀을 구축해왔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테러 참사와 전쟁, 불황이라는 세가지 악재가 동시에 터져나오는 비상시국을 맞아 부시 행정부는 강한 정부로 선택한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이듬해인 2002년 1월 29일 상하 양원 합동회의에서 9·11 이후 미국의 정책 방향을 명백히 밝히고, 북한을 악의 국가로 규정했다. 테러후 처음으로 가진 부시 대통령의 상하 양원 합동회의에서 가진 국정연설은 테러와의 전쟁을 북한 등 대량파괴무기 보유국으로 확전하고, 재정 적자를 감수하면서 경기부양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그는 전국에 생중계된 연설에서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국가들이 세계에서 가장 파괴적인 무기들로 미국을 위협하도록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들 정권이 대량 파괴무기 개발을 시도,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악의 축(Axis of evil)’을 이루고 있다"고 규정했다.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

부시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아프가니스탄 공격으로 와해된 알카에다 또는 탈레반 세력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면서, 대량 파괴무기 보유국으로 북한을 비롯해 이라크와 이란과 함께 3개국을 ‘악의 축’으로 지목했다. 그는 악의 축 국가 가운데 북한을 가장 먼저 언급하면서 “인민을 굶주리게 하면서 미사일과 대량살상무기로 무장하고 있는 나라”라면서 “이들 정권이 대량 파괴무기 개발을 시도, 세계평화를 위협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테러와의 전쟁은 이제 시작일뿐”이라고 전제, “위험이 가중되고, 가까워질때 미국은 사건이 발생하기를 기다리지 만은 않을 것”이라고 밝혀 ‘악의축’에 대한 선제 공격론을 처음으로 언급했다. 이로써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 이어 다음 공격 목표가 북한, 이라크, 이란 중 하나의 나라가 될 것임을 예고했고, 그 중 첫 순서가 이라크였다. 한 전쟁을 끝내면 다음 전쟁을 준비하고, 그 전쟁이 종식되면 또다른 전쟁 목표를 찾는 것이 테러 이후 부시 행정부의 모습이다. 부시 대통령의 미국은 항시 전시체제를 유지하면서 아프가니스탄, 이라크를 노리고, 그 다음 타깃이 한반도를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강한 톤으로 경고한 것은 그동안 남북 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려던 행정부내 기류를 원점으로 되돌린 것으로, 앞으로 북-미 관계나 남북한 관계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날 것임을 예고했다. 게다가 ‘햇볕정책’의 이름으로 대북한 포용정책을 추진하던 한국의 김대중 정부에게는 큰 타격이었다. 취임 직후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회의적’인 견해를 밝힘으로써 햇볕정책에 대한 한-미 공조에 틈이 생긴 이후 북한을 ‘악의축’으로 규정한 국정 연설은 그후 한반도 안정에 먹구름을 몰고 왔다.

뉴욕에 소재하는 코리아 소사이어티(Korea Society)의 도널드 그레그 회장(전 주한 미국대사)는 “한국은 정권이 변해도 대미 정책에 큰 변화가 없는데,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이 클린턴에서 부시로 넘어가면서 크게 변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2002년 2월 20일 한국을 방문중인 조지 부시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그해 열리는 월드컵경기 의복을 선물받고 웃고 있다. /백악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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