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 언론, 한진배에 갇혀 자본주의 부조리와 싸우는 영국 아티스트에 초점

[공감신문 김인영 기자] 한진해운 사태에 관해 외국 언론들이 가장 초점을 맞추고 있는 인물이 누구일까.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일까, 최은영 한진해운 전회장일까? 국내언론에선 두 전현직 대주주에 관심이 높다. 하지만 해외 언론의 포커스는 레베카 모스(Rebecca Moss)라는 런던 출신 아티스트에 맞춰져 있다. 나이 25세. 그의 스토리는 미국의 일간지 월스트리트 저널은 물론 CNN머니, 인터넷 경제지 쿼츠, 영국의 BBC, 텔레그라프, 캐나다의 밴쿠버선에서 관심을 가지고 취재했다.

그는 아직 유령선을 타고 있다. 그 배는 언제 내릴지 모른채 어느 항구도 받아주지 않은 상태에서 바다에 떠돌고 있다. 기상악화 때문이 아니다. 해적들의 공격을 받았거나 장비 불량 때문도 아니다. 원인은 파산 때문이었다.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로 인해 그녀가 탄 유령선은 험한 바다에 떠돌고 있는 것이다.

그의 사연은 기구하다. 그는 캐나다의 액세스 갤러리가 모집한 예술창작 활동에 응모해 선발됐다. 2,000여명의 응모자 가운데 4명이 선발됐고, 그중 한사람이었다. 그는 화물선을 타고 뱅쿠버에서 상하이까지 가면서 작품을 구상하고 연출하는 일을 부여받았다.

레베카 모스는 회사의 지원으로 8월 23일 오전 뱅쿠버에서 ‘한진 제네바’에 올라 탔다. 상하이 도착 예정일은 9월 15일. 6만8,000톤의 컨테이너선은 시속 24노트로 항해했다.

그가 한진 제네바에 승선한 후 1주일이 지난 8월 31일,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 발생했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를 신청한 것이다. 배는 일본 근처에 도착했다. 일본의 어느 항구에서도 한진 배를 받아주지 않았다. 선장은 독일인이었다. 일본 항만당국의 허가 없이 배를 댈수도 없거니와, 설령 배를 대더라도 압류를 해버리니, 댈수도 없었다.

레베카는 ‘바다에서의 23일’(23 Days at Sea)라는 프로그램을 위해 한진 제네바호를 탔다. 그가 계획한 작품에는 청개구리 복장을 하고 물웅덩이에서 스카이콩콩을 타는 불합리한 장면이 나온다. 그가 소속한 갤러리의 작품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현재로선 그는 선박에 억류돼 있는 것이나 다름없어 작품을 이어나갈수 없는 상태다.

바깥 세상과의 유일한 창구는 희미한 무선 인터넷이 연결될 때마다 자신의 SNS를 통해 배 위의 생활을 공개하는 일이다. 그는 지난 12일 트위터로 소식을 전했다. “아직 한진 제네바에서 기다리고 있다. 꼼짝 없이, 통신조차 못한채 한주를 더 기다려야 하나?”

그는 프랑스 철학자 알베르 까뮈가 말한 부조리(absurd)와 싸우고 있다. 언제, 어느 항구에 정박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외로움과 긴장감의 불합리한 세계에 그는 존재한다.

그가 처한 부조리한 세계는 세계적인 대형 해운회사가 본국인 한국에서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만들어 졌다. 그후 수십척의 한진해운 배를 타고 있는 수백여명이 오도가도 못하는 상태에 빠졌다. 접안이나 연료 구입을 위한 돈을 지불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으로 항구에서 먼 바다에 떠돌고 있는 것이다. 한진해운 본사는 채권자들에게 선박 압류를 못하도록 노력한 덕택에 일부는 접안을 했지만....

선원 일부는 떠돌이 선박을 ‘유령선’(ghost ships)라고 부른다. 갑자기 부조리한 세상을 만난 레베카에게는 감정적 변화가 생겨났다. 그는 뱅쿠버선지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분노와 불신 사이의 감정을 오락가락하고 있다. 나는 말못하는 벙어리 신세다“라고 말했다.

이 프로그램을 주도한 뱅쿠버의 영화감독 킴벌리 필립스에 따르면 대양 한가운데서 선박을 타는 일은 레베카의 작업에 ‘대단한 기회’ 였다. 필립스는 CNN머니와의 인터뷰에서 “그녀의 승선은 이번 프로그램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었다. 일상생활의 틀에서 벗어나 시간을 보내고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해상화물의 글로벌 구조를 보려는 려는 시도였다”고 말했다.

상하이를 향하는 한진 제네바의 운명은 다른 한진 선박처럼 불투명하다. 독일인 선장은 “배 위에 탄 모든 사람이 식량과 물을 아끼라”고 말했다고 레베카는 전했다.

레베카는 처음엔 한진해운 소식을 들었을 때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BBC는 전했다. 일본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다른 곳으로 가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13일이 지났다. 그녀는 무기력감과 좌절감을 느꼈다고 한다.

레베카가 가장 원하는 것은 자신을 포함해 선원들이 언제 배에서 내릴지를 명확하게 아는 것이라고 BBC가 전했다. 하지만 이순간에도 한진 제네바는 언제, 어디서 정박할지 아무도 모르고 있다.

까뮈는 ‘시지프스의 신화’에서 그리스 신화의 한 대목을 소개한다. 시지프스는 신의 벌을 받고 평생 무거운 돌을 산정상까지 옮기는 벌을 받았다. 그가 돌을 정상에 옮겨 놓으면 떨어지고, 다시 그 돌을 옮기는 부조리한 일을 거듭했다. 하지만 그의 벌은 운명이고, 그것은 자신이 만들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시지프스는 고통을 운명을 받아들였다. 레베카는 자본주의라는 부조리한 세계가 만든 환경에 갇혀 고통을 받지만, 자신이 풀려난 이후 이 경험을 작품에 생생하게 그려 넣겠다고 말한다. 레베카는 밴쿠버 선 인터뷰에서 “이 배가 처한 곤경이 나의 여행의 초점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프로그램을 감독하는 필립스는 레베카가 곤경한 것에 매우 고통스러워한다. 그는 “불안한 자본주의의 심연에 한 작가가 빠져 있는 것도 걱정스럽지만, 그와 비슷한, 또는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한 선원들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레베카 모스 /페이스북

 

한국에선 추석연휴라 대부분의 기업과 금융기관이 쉰다. 5천만 한국인들이 민족의 명절을 쉬는 동안에 한진해운의 선박들은 아직도 항구를 찾지 못해 전세계 바다를 떠돌고 있다. 조양호 회장이 일부 사재를 내놓았지만, 모든 한진 배를 정박시키는데는 턱도 없이 모자란다. 언제까지 바다에 떠돌지 모르는 상황이다. 미증유의 상황을 겪고 있는 아티스트 레베카의 스토리는 바로 우리 선원들이 겪고 있는 현실이다.

한진 제네바호
저작권자 © 공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