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과 사랑으로 ‘우리의 지팡이’ 세워야

[공감신문=조병수 프리랜서]

#1

삼십여 년 전의 기억으로 거슬러 가본다. 영국 런던에서 주말에 길가에다 주차하면서 열쇠를 차 안에 둔 채 문을 잠갔던 적이 있었다. 볼 일을 마치고 돌아와서야 그 사실을 깨닫고는, ‘아차, 이를 어쩌나’ 하고 당황하고 있을 때, 무슨 영화에서나 봄직한 헌칠한 영국경찰이 다가오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리고는 쓰고 있던 모자 안에서 포장용 나일론테이프 같은 것을 풀어내더니, 두 겹으로 접어서 차창 틈으로 밀어 넣고 눈깜짝할 사이에 잠금 장치를 풀었다.

낭패를 너무나 손쉽게 해결해 준 것이 고마워서 "생큐"를 연발하니까,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있으면 얘기하라"며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유유히 걸어갔다. 말끔하게 차려 입은 경찰의 정장모자에서 그런 테이프를 말아 넣고 다닌다는 사실이 신기했고, 또 그토록 의젓하게 움직이던 경찰이 그렇게 간결하고도 능숙하게 차문을 여는 기술을 가진 것도 놀라웠다.

그뿐만 아니라, "다음에 또 일이 있으면…" 이라며 맑은 미소를 날리며 떠나던 그 경찰관의 모습은 정말 상큼했다. 1829년 런던경찰청을 만든 로버터 필러 경의 이름을 따서 'Bobby'라는 애칭으로 불린다는 영국경찰의 기품과 멋을 직접 체험하고는, 두고두고 '경찰의 모습은 정말 저래야지'하는 관념을 가지게 되었다.

영국경찰

 

#2

또 한번 영국경찰의 모습에 매료되었던 경우는 교통사고 목격자로서 진술을 할 때였다. 어느 핸가 5월의 마지막 연휴에 지인 가족과 같이 영국 중서부지방으로 여행을 갔다가, 그 댁의 차가 추돌사고를 당한 적이 있었다.

갑자기 떠나자고 한 여행이라 숙소를 예약하지 못하고 갔더니, 연휴라서 방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빈방(vacancy)이 있을 만한 곳을 찾느라고 불빛 하나 없는 깜깜한 시골길에서 차를 돌리다가, 멀리서 과속으로 달려오던 차에 들이 받힌 것이다.

여행 간다고 트렁크에 아이스박스와 짐을 가득 실은 것이 충격완화작용을 한 덕분에 그 가족은 모두 별 탈이 없었지만, 그것으로써 그 여행은 끝이었다. 사고 난 자동차는 견인차에 실어서 보내고, 어린 애들까지 두 가족 7명이 한 차에 끼어서 타고 밤을 새워 다시 런던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며칠 뒤에 내가 살던 곳 관할 경찰관 한 명이 찾아왔다. ‘그 자동차 사고 당시의 목격자(witness)이니, 몇 가지 물어 볼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림을 그려가면서 사고 정황을 설명하면서, “깜깜한 시골길에서 앞에 차량이 서있는 불빛을 보고도 제동도 걸지 않고 들이닥친 것이나, 반대 차선에 전혀 차량이 없음에도 비켜가지 않은 것이 이해할 수 없다”고 진술했다.

아마도 사고지역의 경찰이 목격자인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경찰에게 의뢰해서 진술을 받아오게 한 것 같았다. 미소를 머금은 온유한 표정으로 끝까지 이야기를 듣고있던 그 경찰관에게 "내 영어 표현이 서툴러서 이해하기가 곤란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천만에, 나는 당신네 나라 말을 한마디도 못하는 데···"라면서 정중한 인사와 함께 떠나갔다.

그저 내 말만 듣고는 진술인 서명도 요구하지 않고 떠났는데, 그 뒤로 아무런 이야기가 없었던 것을 보면서 “확실히 영국사회는 사람의 말을 귀하게 여긴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경찰서로 와라, 진술서에 서명해라”고 하는 그런 불편함이 없는 것이, 그 시대 우리에게 익숙했던 문화와는 큰 차이라고 여겨졌다.

 

#3

그로부터 20여 년의 세월이 흐른 후, 약속 때문에 홍은동의 그랜드힐튼 호텔로 가는 길이었다. 그전에 자주 지나다녔던 길이라 쉽게 찾을 수 았다고 생각하고 홍은동 네거리 쪽으로 가보니, 그동안 주변이 많이 변해 있어서 조금은 어리둥절했다. 어디 표지판이라도 찾을 수 있나 두리번거려 보았지만, 지하철 역이나 네거리 쪽 아무 곳에서도 호텔표시가 되어 있지 않았다.

어려운 분과의 약속이라 시간은 촉박하고, 만일 네거리에서 조금 떨어져 있으면 택시라도 타야 할 것 같아서 누군가에게 물어보려고 하는데, 마침 네거리 횡단보도에서 신호조작을 하고 있는 젊은 교통경찰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다가가서, “부근에 힐튼호텔이 있을 텐데, 여기서 많이 멀어요?"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제가 지방에서 파견 나와서 잘 모르는데요”라고 대답하면서, 하는 일이 바쁜 듯이 그냥 비켜가 버렸다. 말은 공손했지만, 한마디라도 더 걸칠 틈을 내주지 않았다. 멋쩍고, 조금은 공허한 웃음을 날리며 근처 약국에 들어가서 물어보았다.

"큰길 따라 저쪽으로 500미터정도만 가면 있어요."

잰 걸음으로 걸어가면서도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이해할 수 있는 일이라고 이해를 하려고 했지만, 무언가 마음에 걸렸다.

 

#4

그 즈음의 어느 날, 서울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성수역 쪽으로 가고 있을 때였다. 약간은 앳된 경찰제복의 젊은이가 손에 무슨 서류들이 담긴 쇼핑백 같은 것을 들고 서있다가, 서너 발걸음 건너편 사람이 내리면서 자리가 비니까, 잠시도 주저하지 않고 성큼 가서 앉더니 백 속에서 뭔가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

보통의 젊은이들은 자리가 비더라도 선뜻 잘 앉지를 않는데, '저 경찰관은 많이 피곤한 모양이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무슨 서류를 저리 열심히 보는가 싶어서 유심히 보았더니, 무슨 자격시험관련 책을 보며 열심히 외우고 있었다.

평일 점심시간 직전이라 서있는 사람도 별로 많지 않았으니, 경찰제복을 입은 젊은이가 빈자리에 앉는 것을 탓할 이유는 없다. 그리고 제법 성실해 보이는 젊은이가 책을 보며 단어 같은 것을 외우는 자세를 보면 훌륭한 청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아, 이건 아닌데···’ 라는 생각이 솟아 오른 것은 왜일까?

제복을 입고 있으니 분명 근무시간 중 일 것이고, 아직 앳되어 보이니 그 신분이 짐작은 갔다. 그러나, 무슨 사유에서인지는 몰라도 많은 사람이 오가는 전철로 이동해야 할 경우라면, 나름대로 최소한의 ‘제복의 기품’을 보여 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5

몇 해 전이다. 용인 수지중학교 쪽으로 향하는 편도 2차선 도로의 버스정류장 바로 앞에 차 한대가 ‘용감하게’ 주차해 있었다. 그 차 때문에 일차선 쪽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아파트단지 입구로 좌회전하려는 차들과 진행하려는 차들이 뒤섞이고, 정류장을 벗어나려는 버스들과 엉겨서 크게 혼잡스러웠다.

그 부근을 걸어가다가, 마침 경광등을 번뜩이며 지나가는 경찰차가 보이길래 손짓을 해서 세웠다. “저 차를 좀 치우게 하거나 제재를 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라고 말했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걸작이었다.

"주차위반은 시나 구청에서 하는 것입니다."

그 말만을 남기고 훌쩍 떠나가는 그 경찰차의 뒷모습을 지켜보면서, 한참 동안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것은 주차위반도 되겠지만, 그 차로 인한 병목현상으로 큰 혼잡을 빚고 있었으니, '현장에서 우선 조치부터 하고 난 후에 관할을 따져도 따져야 할 것이 아닌가' 싶었다.

하지 않아도 될 이유부터 먼저 생각하고, 성가신 표정을 애써 감추면서 지나쳐버리고, 제복의 긍지조차 잠깐씩 잊은 듯이 보이던 모습들을 보면서, 마음 한 켠에 아쉬움이 일었다.

 

#6

얼마 전 송도신도시의 한 네거리에서, 경찰관이 위반차량을 단속하며 스티커를 발부하고 있었다. 그곳은 중앙분리화단이 제법 넓어서 노란색 신호에 서지 않고 진입하면 충돌사고의 위험이 많은 지역이었는데, 아마도 거기서 적발된 것 같았다.

그런데 단속을 당한 차에서 여인이 화를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경찰관 쪽으로 달려들려 하고 있고, 일행인듯한 남자가 말리며 제지하는, 그런 희한한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몇 걸음 떨어져 서있는 경찰관은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묵묵히 스티커 철에 무엇인가를 적고 있고···.

가까이 지나가다가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어서, 그만 그 남녀 쪽을 향해서 “그러면 안돼요”라고 묵직하게 한마디를 건네고야 말았다. 어쨌던 위반이 있었으니 제지를 받았을 테고, 이의가 있으면 그에 따른 절차를 밟으면 될 텐데, 질서유지를 책임지는 경찰관을 향한 그 용감무쌍한 모습은 ‘정말 아닌 것’ 이었다.

경찰이 차를 세우게 하면 경찰이 다가와서 지시가 있을 때까지 두 손을 핸들 위에 놓고 가만히 있지 않으면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르는 미국처럼은 아니더라도, ‘제복에 대한 존중’이 있어야 그들의 긍지도 생기고, 이 사회의 질서가 바로 서는데 도움이 되지 않겠나 싶다.

<효자동 삼거리의 야경>

 

#7

무더위가 한풀 꺾인 9월의 첫 주말 저녁에 효자로를 따라 경복궁 돌담을 한 바퀴 돌았다. 같이 산책에 나선 아내가 효자동 길가에 서있던 경비 근무자에게 “전에 이 근처에 살았었는데, 몇 십 년 만에 이곳을 걸어본다”고 하니까, 그 근무자가 “그때는 이곳이 어땠어요?”라고 물으면서 부근에 있는 “청와대 사랑채도 낮 시간에 한번 가보시라”고 알려주었다.

어둠이 내려 깔리는 경복궁의 돌담 길과, 전에는 접근하기조차 어렵게 느껴지던 청와대 앞길을 걸으면서, 남방셔츠차림으로 경계를 늦추지 않는 늠름한 자세 속에서도 미소를 지으며 공손히 대하는 근무자들을 보게 되었다.

‘우리도 이렇게 변했고, 또 변하고 있구나’하는 것을 느끼게 된 아주 유쾌한 산책이었다.

 

그러고 보니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렸다"고 하는 말이 정말 맞는 것 같다. 그렇게 ‘변화와 좋은 느낌’을 받고 난 며칠 후, 출근시간 대에 우연히 지나던 서초3동 사거리 횡단보도에서 보행자들과 같이 건너가며 보호하고 인사를 나누는 경찰관의 모습도 아주 진솔하고 좋아 보였다. 수고하는 그분에게 살짝 눈인사를 날려 보내며,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먼저 존중하고 사랑하면 우리도 좋은 결과들이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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