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실명제’의 첫 등장부터 ‘악플방지법’이 나오기까지…

[공감신문] 권지혜 기자=사회생활이 ‘실제로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 국한되던 시대는 지났다. 인터넷이라는 디지털 사회가 생겨나며 현대인들은 24시간 사회생활을 하게 됐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부엌에서 요리를 하다가도, 자려고 침대에 누웠다가도 사회에 뛰어들 수 있다. 시간이나 체력 소모도 필요 없다. 엄지손가락만 움직이면 오늘 본 스포츠경기에 대해 얘기할 사람들, 같은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을 바로 찾을 수 있다.

실제 사회에서는 말하기 전 많은 것을 고려하게 된다. 설령 이것이 옳은 말이라는 확신이 있어도 나의 사회생활을 고단하게 만들 수 있다면 말을 아끼게 된다. 하지만 디지털 사회에서는 다르다. 인터넷상에서는 익명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실제 사회에서처럼 많은 것을 염려하지 않고 자유롭게 의견을 표출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자유가 책임질 필요가 없는 자유라는 데 있다.

본래 자유라는 것은 ‘내가 전적으로 책임 짐’에서 온다.

부모님 슬하에서 자랄 때는 식사 메뉴 선택에 있어 자유롭지 못하다. 어차피 메뉴의 최종 결정권은 부모님에게 있기 때문에, 치킨을 먹고 싶어도 허락을 못 받으면 끝이다.

부모님 품을 벗어나 독립을 하게 되면, 매일 치킨을 시켜 먹든 말든 그건 내 자유다. 그 치킨값을 다 지불할 수만 있다면.

자유란 그런 것이다.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자신이 지는 것. 보통 그 책임은 금전적 문제와 직결된다. 하지만 말하는 것은 돈이 들지 않는다. 이것이 문제다.

인터넷에서 의견을 표출하는 데는 돈이 들지 않고, 심지어 사람들은 내가 나인지도 모르기 때문에 말에 대한 책임도 질 필요가 없다. 그래서 ‘악플러’들이 생겨났다.

한때는 악플이 ‘악성 댓글’, ‘악의적 댓글’ 정도로 가볍게 여겨졌으나 악플로 인해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사이버 범죄의 일종으로 취급 받게 됐다. 이에 인터넷 익명제를 없애고 실명제를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인테넷상 익명의 자유, 이대로 보장돼도 될까? 오늘 시사공감에서는 ‘인터넷 실명제’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인터넷 실명제

‘인터넷 실명제’라는 말은 2004년에 처음 등장했다. 이 때 ‘공직선거법’에는 주민등록번호로 실명을 확인한 사람만 인터넷 언론사 게시판에 글을 쓸 수 있도록 조치하라는 내용이 담겼고, 이후 2007년에 '일일방문자수 20만 이상'의 포털사이트 게시판은 실명이 확인돼야 글을 쓸 수 있게 하는 일명 '일반게시판 실명제'가 의무 도입됐다.

이에 국민들은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이유는 실명제가 국민들의 정치 비판과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2008년, 배우 故최진실 씨의 극단적 선택이 인터넷의 루머와 악플들로 인한 것이라는 결론이 나오면서 인터넷 실명제 도입이 국회에서 본격 추진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역시 반발에 부딪혔고 2012년 헌법재판소는 "본인확인제는 익명으로 자신의 사상이나 견해를 표명하고 전파할 익명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면서 재판관 전원 일치로 위헌을 판결했다.

‘인터넷 실명제 도입’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이미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결을 받았었기 때문에 법으로 규정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 해외 SNS에는 적용할 방법이 없다는 것 등 실명제 도입을 부정적으로 전망하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네티즌의 도덕심과 자발적 자정 노력에 기대기에는 악플이 너무 심각한 범죄로 자리 잡았다는 도입 촉구의 목소리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온라인 댓글 실명제 도입에 대한 국민 여론 조사 결과 / 리얼미터 제공

인터넷 실명제 도입을 촉구하는 목소리들

지난달 16일 리얼미터가 발표한 국민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7명이 온라인 댓글 실명제 도입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총 응답자 중 인터넷 댓글 실명제 도입을 찬성한다는 응답이 69.5%로, 반대한다는 응답(24.0%)의 세 배에 가까운 것으로 집계됐다.

찬성 여론은 거의 모든 지역, 연령층, 이념성향, 정당지지층에서 대다수로 나타났다.

'인터넷 실명제' 도입을 촉구하는 국민청원들 / 청와대 누리집 캡쳐
'인터넷 실명제' 도입을 촉구하는 국민청원들 / 청와대 누리집 캡쳐

이런 결과를 입증하듯 인터넷 실명제 도입을 촉구하는 국민청원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14일 故설리 씨가 세상을 떠난 후 네티즌들은 그가 생전에 악플로 인해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는 것에 공분했다.

15일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인터넷 실명제 의무화를 건의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글에서 청원인은 “인터넷 상에서 가면을 쓰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우리는 그들로 인해 우리가 아끼고 응원하는 사람들을 여럿 잃었다.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모든 인터넷 사이트와 커뮤니티 등에서 인터넷 실명제를 의무화 하도록 법안 개정을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바”라고 말했다.

해당 청원은 지난 14일 629명의 동의를 얻고 종료됐으나, 그 후 오늘까지 ‘인터넷 실명제 도입 촉구’를 주제로 7건의 청원이 더 올라와 있는 상태다.

가수 윤딴딴의 인스타그램글 캡쳐
가수 윤딴딴의 인스타그램글 캡쳐

연예인들의 악플러를 향한 일침들

유명인들은 대중의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똑같은 말과 행동에도 누군가는 즐거워하는가 하면 누군가는 불쾌감을 표현하기도 한다. 미디어를 통해 노출되는 모습은 하나부터 열까지 평가받는다. 말이 좋아 평가지, 조금이라도 지적할 부분이 있으면 살벌한 맹비난의 장이 펼쳐진다.

‘국민 호감’ 이미지를 가진 연예인조차도 악플을 받는다. 연예인은 악플에 가장 많이 시달리는 만큼, 악플로 고통받은 이의 마음에 가장 공감하고 분노할 수 있는 사람이다.

지난 24일, 가수 구하라 씨의 비보가 전해지자 동료 연예인들의 악플러를 향한 일침이 이어졌다.

가수 윤딴딴은 25일 인스타그램을 통해 “어젯밤 또 가슴 아픈 소식이 들려왔다”며 “혹시나 악플로 힘들어하시는 분이 이 글을 보게 된다면 가슴 쫙 펴라. 당신의 인생은 그 사람들보다 훨씬 가치 있다. 계속 악플을 다는 분들은 천벌을 두려워하며 사시길”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가수 솔비 역시 SNS를 통해 “10년 전과 지금,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고 변화될 수 없었다는게 참 비통합니다. 대한민국의 많은 연예인들은 악플이란 범죄로 인한 고통을 번번히 호소했습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악플러들은 가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인권 보호라는 선처 아래 몸을 숨겼고, 그런 공격을 받는 연예인들은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소리 한번 못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댓글 문화만의 탓일까요? 그 구조를 계속 방관해 오던 많은 미디어와 포털사이트를 포함한 매체들에게 묻고 싶네요”라며 사회에 물음을 던졌다.

이제는 익명의 자유에도 확실한 책임을 지워야 할 때다. / 게티이미지뱅크

사람의 자발적 윤리의식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주지만, 언제나 우리를 충격에 빠트리는 것은 소수의 비윤리적 행위다. 이 소수에게서 사회를 지켜내기 위해 새로운 법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

특히 사람 이름을 붙인 법들이 그런 특징을 가진다. 김용균법, 민식이법 등 기존의 법으로는 사회의 비윤리적 행태를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리는 사건이 발생하고 나면, 희생자를 기리며 그의 이름을 딴 법이 새로 만들어진다.

현재 국회에는 ‘설리법’이라 불리는 ‘악플방지법’이 계류돼 있다.

방종에 가까운 익명의 자유는 더 이상 개인의 윤리 의식에 맡길 수 없는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인터넷 실명제를 완벽하게 도입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이제는 익명의 자유에도 확실한 책임을 지워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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