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 정확히 예측한 경제 전문가
“유럽 재정위기 해결 위해서는 유럽중앙은행의 돈 풀기와 유로존 통합 강도 높이기 병행돼야”
 
유로존의 재정위기 확산에 따른 유럽계 은행들의 자금공급여력 축소로 중동지역 금융시장에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금융기관의 역할이 점차 커지고 있다. 지난 1976년 설립 이후로 대한민국의 수출기업의 동반자로 함께 해 온 한국수출입은행은 이와 같은 글로벌 경기침체를 극복하고, 올해를 ‘무역 2조 달러시대’로 향하는 원년으로 삼기 위해 은행 설립 이래 최대 규모인 70조원의 금융을 제공할 계획이다. 지난해 4월 취임한 배선영 감사는 이와 같은 한국수출입은행의 도약을 위해 힘을 보태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왔다.
지난해 “천재 경제 관료의 금융계 복귀”라고 평가받으며 화려하게(?) 취임한 그는 그간 한국수출입은행의 쇄신과 변화에 기여하고 있다.
경남 함양 출신인 그는 서울대 경제학과 재학시절부터 소문이 자자했다. 스승인 조순 교수(전 부총리)가 “유학을 갔다 와 서울대 교수가 되라”는 권유를 건넬 정도로 그는 번뜩이는 감각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더불어 석사 논문으로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즈의 화폐론인 ‘유동성선호이론’을 반박하는 논문을 발표했고, 최우수 졸업 논문상을 받기도 했다.
졸업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유학기회가 찾아왔으나 그는 “박사는 석사로는 공부가 모자랄 때 하는 것인데, 석사를 마치고 나서도 경제학자로서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기 때문에 박사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며 유학길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 1980년 행정고시(24회)에 응시해 최연소로 합격했다. 또 2년 뒤인 1982년에는 외무고시에 합격해, 고시 2관왕의 영예를 안았다. 이어 지난 1983년부터 재무부 국제금융국· 증권국, 재정경제원 감사관실 등 경제 관료로 일하며 ‘경제통’이라는 애칭을 갖기도 한 그는 DJ정권 시절 대통령 경제비서실에 근무하기도 했다.
이후 수원여대 교수와 한양대 산업경영대학원 겸임교수 등을 지내며 연구에 매진한 그는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를 다룬 <시장의 비밀>이라는 저서를 펴내며 경제학자로도 이름을 떨치고 있다. 금융계에서는 그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시작뿐만 아니라 그 후의 진행과정까지도 정확하게 예측한 거의 유일한 경제학자”로 평가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나라와 글로벌 경제 전반에 대해서 탁월한 식견을 가지고 있다.
본지는 지난 6월 26일, 그와 직접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화두는 역시 그간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어 온 유럽재정위기 문제에 관한 것이었다. 다음은 그와의 인터뷰를 정리한 내용이다.
 
 
-얼마 전 유럽 재정위기를 합종연횡(合從連橫)의 관점에서 분석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먼저 합종연횡에 대한 자세한 설명부터 부탁드리겠습니다.
“잘 아시겠습니다만, 중국 전국시대 때 ‘전국7웅’(戰國七雄)이라 불리는 일곱 강대국이 있었습니다. 그 시대 중엽의 지도를 보면, 일곱 나라 중 초강대국인 진(秦)나라가 왼쪽에 자리하고, 그 오른쪽에 나머지 6국이 위에서부터 연 · 제 · 조 · 위 · 한 · 초의 순서로 대략 세로로 늘어서 있었습니다. 전국시대의 판도를 뒤흔든 것은 진나라였습니다. 오늘날의 섬서성 지역에서 흥기한 진나라는 귀족세력 억제, 농업생산 장려, 군사공로자 우대 등의 개혁정책을 추진하는 한편, 곡창지대가 많은 지금의 사천성 일대를 선점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쌓은 막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욱일승천의 기세로 주변국을 잠식해 들어갔습니다. 이에 6국은 좌불안석이 됐고 때문에 소진(蘇秦)이라는 책략가의 건의를 채택했습니다. 진나라에 맞서 힘을 합치기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양새가 지도상에서 세로, 즉 종으로 합쳐지는 형태여서 그 방책은 ‘합종책’(合縱策)이라고 불렸습니다. 6국간에 합종의 약속이 굳게 지켜진 시기에는 진나라가 감히 동진(東進)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연횡책은 어떤 것입니까?
“라이벌은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입니다. 소진에게는 하필 자신과 동문수학한 장의(張儀)가 그 라이벌이었습니다. 장의는 불우한 시절에도 ‘내게는 세 치 혀만 남아 있으면 된다’라고 호언하던 인물이었는데, 마침내 진나라에 기용됐습니다. 그의 계책에 따라 진나라는 6국 중 어리숙하고 욕심 많은 나라를 골라 자신과 연대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나머지 5국의 땅을 빼앗으면 나눠주겠다고 약속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가로, 즉 횡으로 연대하는 모양새를 보여, ‘연횡책’(連衡策 여기서의 衡은 橫과 같다)으로 일컬어졌습니다. 당장의 이익에 눈이 먼 나라들은 차례로 연횡에 응했고, 그러다 결국 6국 모두 점점 쇠약해지며 진나라에 병탄된 것이지요.”
 
-중·고교 시절 세계사 시간에나마 잠시 배웠던 합종연횡의 의미를 이제 제대로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이런 합종연횡의 관점에서 유럽 재정위기를 분석하신 것이 어떤 내용인지 알려주신다면.
현대의 세계지도를 보면, 대서양을 중심으로 왼편에는 초강대국 미국이 자리하고, 오른편에는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대략 세로로 늘어서 있습니다. 묘하게도 진나라 및 6국의 위치와 흡사합니다. 유럽 열국(列國)은 경제적으로 미국에 맞서기 위해 합종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 결과 유로화를 단일통화로 사용하는 유로존이 창설됐습니다. 이 합종책은 성공할 것이었습니다. 다음의 문제만 없었다면 말입니다.”
 
-유로화체제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단순화해서 말씀 드리면, 유로/달러환율은 유로존 17개국 전체의 대(對)미국 수출총액과 수입총액 양자를 균형 시키는 수준에서 결정됩니다. 그런데 그 환율수준에서 수출경쟁력이 높은 독일은 대미흑자를 누리고, 그 경쟁력이 낮은 그리스는 대미적자를 겪게 됩니다. 역내 교역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경상수지 적자로 달러화나 유로화가 부족해진 그리스의 정부나 금융기관들이 그것이 넘치고 있는 독일 측에 손을 내밀어 그것을 빌려 오게 됩니다. 이렇게 독일로부터 그리스로의 자본이동이 일어남에 따라, 두 나라에서 공히 ‘통화량 그대로, 물가 그대로, 수출 그대로, 수입 그대로’의 상태가 지속됩니다. 그리하여 ‘독일의 흑자균형과 그리스의 적자균형’이라는 불균형이 장기적으로 지속됩니다. 예전이었다면 마르크화의 절상이나 드라크마화의 절하로 교정되었을 불균형이 말입니다. 독일은 고성장과 채권국으로서의 지위 강화를 구가할 수 있고, 그리스는 저성장과 외채누적에 직면하게 됩니다. 유럽재정위기는 바로 이런 메커니즘에 의해 발생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유로존의 장래와 유럽 재정위기의 향후 전망에 대해서 어떻게 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유로화체제의 최대수혜국은 바로 독일입니다. 그런 만큼 독일은 유로존의 유지에 공을 많이 들일 것입니다. 그래서 유럽재정위기도 일단은 독일과 그 영향력 하에 있는 유럽중앙은행(ECB)이 계속 나서서 미봉할 것입니다. 사실 이 전망은 제가 이미 2009년 중에 내놓고 이후 지금까지 일관되게 유지해 온 것입니다. 제 책과 지난해 8월의 신문기고문을 통해서도 밝힌 바 있습니다. 유로존에서 점점 쇠약해질 나라들은 어디일까요? 그리스 및 그와 비슷한 나라들입니다. 그러나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유로존 탈퇴’까지도 고려해야 할 이 나라들은, 온실에서 나오기 싫어 독일의 연횡책을 기꺼이 받아들이려 할 것입니다. 그래서 유로존 자체는 미국에 맞선 합종의 산물이지만,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독일은 진나라처럼 점점 강성해지는 반면 그리스 등은 독일에 의존하는 연횡을 하며 점점 쇠약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전망은 올해 4월에 신문기고문을 통해 내놓기도 했었습니다. 이 전망들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적중해 왔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상단기간 이상 유효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동안 폴 크루그먼, 제프리 삭스, 누리엘 루비니 같은 경제학자들은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는 시간문제이며, 빠르면 2012년 6월에도 일어날 수 있다”라는 취지로 예언해 왔고, 그 밖에도 적지 않은 경제전문가들이 그리스의 탈퇴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는 말처럼 쉽게 이뤄질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설사 최근의 그리스 총선에서 ‘탈퇴 불사’를 외치는 급진파가 승리했더라도, 그리고 향후 그 탈퇴를 부추길 요인들이 또 발생하더라도, 사정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설명의 편의상 그리스의 협상 상대방을 유로존의 맹주인 독일로 대표시키기로 하겠습니다. 만일 그리스가 독일의 지원 없이 일방적으로 유로존 탈퇴를 결행한다면, 다음과 같은 혹독한 과정이 그리스를 기다릴 것입니다. 그리스의 중앙은행은 예전처럼 드라크마화를 발행하기 시작하고, 정부는 일정시한까지는 유로화와 드라크마화 사이의 고정 환율 환전을 보장한 상태에서 국민들이 두 통화를 함께 사용하는 것을 허용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 시한이 지나면 드라크마화만을 법정통화로 인정하고 환율이 시장수급에 따라 변동하도록 내버려 두겠지요. 드라크마화 시대가 다시 시작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현실에 있어 이 과정들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은 전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어떤 문제 때문인가요?
“유로화 대비 드라크마화의 가치는 유예기간이 끝나면 곧바로 반 토막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며, 더구나 정부와 중앙은행은 유예기간 중 드라크마화를 유로화로 바꾸려는 국민들의 수요에 응할 수 있는 재원은커녕 국채를 상환할 재원조차 바닥난 상태에 이미 처하게 됩니다. 그리스의 국민들은 이런 사실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조건 유로화현금을 확보하고자 할 것입니다. 유로화예금도, 은행이 파산하거나 정부가 동결조치를 내려 버리면 소용이 없으므로 그것을 모두 현금으로 인출하려 할 것입니다. 이제 뱅크런이 시작됩니다. 파산하는 은행이 속출하고, 정부로서는 실제로 예금동결조치를 취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금융시스템이 마비되면서 그리스경제는 얼어붙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는 탈퇴하기도 쉽지 않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습니다. 그리스의 순탄한 탈퇴를 위해서는 독일의 지원이 필수적입니다. 그리스정부에게 구제금융을 제공해 주는 것에 더해 그리스국민을 대상으로 환전 및 예금보호를 보장해 주기까지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남녀의 경우에도 결혼할 때보다는 이혼할 때에 수습하고 처리해야 할 일이 더 많고 복잡하기 마련이지 않습니까. 유로존에 있어서도 가입보다는 탈퇴가 한결 더 어렵습니다. 그리스는 정이 식어 이혼을 하려 해도 경제력 있는 독일이 선뜻 재산분할을 해 주지 않는다면 대문을 박차고 나갈 수 없습니다. 독일은 혼인유지 시보다 합의이혼 시에 훨씬 더 돈이 많이 들어간다는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에게 떼어 주는 것 말고도 유로존 전체의 동요를 막기 위해 또 얼마나 많은 비용을 부담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할 것입니다. 그래서 독일은 가능한 한 그리스의 탈퇴를 지원하지 않으려 할 것입니다. 그리스는 독일과 한 지붕 아래에서 별거를 해야 하는 입장에 처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유럽 재정위기의 해법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단기대책에 대해 먼저 언급하겠습니다. 현 단계에서 위기가 심각해진다면, 유럽 중앙은행이 또다시 과감하게 돈을 풀어야 합니다. 특히, 유사시 재정위기국이 기존국채의 상황이나 금융기관 구조조정을 위해 발행하는 국채를 유럽중앙은행이 전량 인수해 주는 방안 등을 시행해야 합니다. 재정위기국 측에서도 자구 노력을 기울여야 함은 물론이지요. 이렇게 미봉하는 과정에서 세월이 흘러 세계경제가 회복국면에 들어서게 되면 유럽 재정위기는 한숨 돌리게 될 것입니다. 장기적으로는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입니다. 유로존 통합의 강도를 재정통합 이상의 수준까지 높이든지, 아니면 그리스와 같이 수출경쟁력이 낮은 나라들의 탈퇴를 허용 및 지원하든지, 양자택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후자의 과정이 진행될 경우, 유로존의 축소개편은 불가피해질 것 입니다. 하지만 그리스 같은 나라들은 필사즉생(必死則生)의 각오로 임한다면, 탈퇴 후 상당기간 동안에는 자국통화의 가치급락 등으로 고통을 겪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활력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단기대책으로 유럽중앙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해 과감하게 돈을 풀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그렇게 하면 인플레이션이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닌지 궁금합니다만.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 내면 머지않아 반드시 인플레이션이 온다고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졸저 <시장의 비밀>에서 제시한 저의 이론을 따르면 위기상황에서는 본원화폐계수(本源貨幣係數 base money coefficient)라는 것이 높거나 높아지는데, 그런 상황에서는 중앙은행이 돈을 많이 찍어 내더라도 인플레이션이 심해지지 않습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중앙은행(FRB)과 유럽중앙은행 등이 여러 차례 천문학적인 돈을 찍어 냈지만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오지 않은 것이 제 이론을 입증해 줍니다. 물론, 제가 제시한 대책은 남용되어서는 안 되고, 세계경제가 회복되는 시점에서는 적절한 통화환수 조치 내지 출구전략을 후속시켜야 합니다.”
 
<배선영 감사>
-1960년 2월 2일 출생
-성동고 졸업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서울대 대학원 경제학 석사
-제24회 행정고시 합격(최연소 수석)
-제16회 외무고시 합격
-재정재무부 국제금융국·증권국
-재정경제원 감사관실
-대통령 경제비서실
-새천년민주당 정책위부의장
-한양대, 수원여자대 겸임교수
-現 한국수출입은행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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