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주주와 채권은행, 생색만…돈 떼이지 않으려 현금성 자산 최우선 담보

[공감신문 김송현 기자] 산업은행이 대기업에 500억원 여신을 주면서 이렇게 생색내기는 처음인 것 같다. 수천억을 넘어 수조원씩 퍼부어대던 국책은행이 언제부터 이렇게 쪼잔해졌나. 조건도 덕지덕지 붙였다. 다른 채권보다 먼저 회수하는 조건, 대한항공이 지원한 돈으로 모자라는 부분만 지원하는 조건등... 앞서 대우조선이나 STX조선에도 이렇게 엄격한 관리하에 대출했더라면 오늘의 사태를 미연에 방지할수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한진해운이 생사의 기로에 처하게 되자, 대주주인 대한항공과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말이 지원이지 가장 먼저 회수하는 조건의 대출이다. 대한항공 600억원, 산업은행 500억원인데, 한진해운의 매출채권을 담보로 하고 있다. 법정관리 하의 한진해운이 물건을 수송하고 받는 운임을 우선 변제받는 조건이다. 브릿지론 성격의 단기자금인 셈이다.

 

22일 산업은행은 한진해운의 매출채권(나중에 받을 운송료)을 선순위담보로 잡아 최대 500억원을 지원하는 방안을 확정했다. 산업은행은 한진해운에 크레딧라인(한도대출)을 개설해 자금이 필요한 경우 지원할 방침이라고 한다. 이 방침이 실행된다는 보장은 없다.

우선 한진그룹이 내놓은 1,100억원으로 최대한 하역 문제를 풀어보고, 그래도 부족하다면 보조하겠다는 것이다. 한진해운의 매출채권이 회수되면 500억원까지는 산업은행이 먼저 회수하고, 그다음부터 대한항공이 회수하는 방식이다. 앞서 대한항공은 21일 저녁 긴급 이사회를 열어 한진해운 매출채권을 담보로 60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채권단 관계자는 "산업은행 지원금을 맨 마지막에 투입하되, 거둬들이는 것은 맨 먼저 하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지금 전세계 해상에 떠있는 한진해운 소속 선박에 실려있는 화물의 매출채권은 2,000억원 가량으로 추산된다. 운임 대부분이 배송지까지 운송을 마쳤을 때 받는 후불이기 때문에 하역을 완료하면 매출채권의 절반 이상은 회수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산업은행의 한진해운 지원은 대한항공 이사회의 600억원 지원 결정 이후 불과 하루도 지나지 않아 발표됐다. 그간 물류난 해소를 한진그룹이 책임지고 풀어야 한다고 강조해 온 정부와 채권단이 추가 지원의 '명분'을 확보하고 신속하게 움직임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산업은행이 최대 500억원을 지원하면, 한진그룹과 대주주의 지원을 포함해 한진해운은 총 1,600억원을 지원받을 수 있게 된다. 내용을 뜯어보면 조양호 회장 400억원과 최은영 전회장 100억원등 500억원만 사재 출연에 따른 순수한 지원이고, 대한항공 600억원, 산업은행 500억원은 자금회전용 대출이다. 따라서 현재 실려있는 화물을 풀어 운임을 받아 급한 빚을 갚은후 한진해운은 또다시 한푼 없는 막막한 상태가 된다.

급한 불은 껐지만, 한진해운이 살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막막하다. 자산을 매각해 운용자금을 쓴다고 해도 당장 돈이 돌아오지 않는다. 직원들 봉급은 줘야 한다. 회사 신뢰가 실추됐기 때문에 화물을 구하기도 힘들고, 설사 배에 실었다고 해도 다음번 하역료와 부대비용은 어떻게 마련할지.... 수술대 위에 중환자, 숨은 이어놨지만, 그다음에 어떻게 살릴지 앞이 캄캄할 뿐이다.

최상목 기획재정부 차관(왼쪽 세번째)이 22일 서울 여의도 한국수출입은행에서 열린 '한진해운 관련 합동대책 9차 T/F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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