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부문 분사해 해운에 집중…한국 선대 살릴 전략 고민할 때

[공감신문 김인영 기자] 덴마크의 머스크 라인은 세계 최대 해운회사다. 전세계 컨테이너물량의 15~20%를 수송한다. 이 회사는 세계 2위인 스위스 MSC와 2M이라는 해운동맹을 맺고 세계 물동량의 35%를 차지하며 세계시장을 좌지우지해왔다.

머스크는 세계 해운시장 주도권을 이용해 치킨 게임을 벌였다. 컨테이너선 대형화, 선복량 증대를 선도했고, 경쟁 해운사들이 머스크를 벤치마킹하며 따라갔다. 세계 선복량이 과잉에 처하자 머스크는 운임 하락을 주도했다. 올해 2분기 해상운임을 24% 끌어내린 것도 머스크였다. 머스크는 수익률 제로까지 운임을 내리며 싸움을 걸었다. 머스크 이외의 모든 선사가 적자의 늪에 허우적거렸다. 사우디 아라비아가 미국 세일가스를 죽이기 위해 국제유가를 반도막 이하로 떨어뜨린 것처럼 머스크는 경쟁사를 죽여야 산다는 게임의 논리를 적용했다. 전세계 해운회사들이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에 빠졌다. 물론 머스크도 힘든 기간을 보내야 했다.

가장 먼저 죽은 곳이 한국이다. 한진해운이냐, 현대상선이냐의 순서가 문제였다. 국적 해운사도 머스크를 따라 빚을 내 선복량을 늘렸고, 그러다가 머스크가 주도하는 운임 하락의 역풍을 맞았다. 결국 한진해운은 파산(법정관리)의 길을 갔고, 현대상선의 경영권은 은행으로 넘어갔다.

국내 해운업계에서는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는 머스크의 의도대로 된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이 견해에는 타당성이 있다고 본다. 몇년 전부터 머스크가 1만8.000개 컨테이너를 싣는 초대형선을 잇따라 발주하며 운임인하 경쟁에 불을 당겼을 때 중국 등 다른 나라 정부는 자국 선사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해 초대형선을 확보하도록 해주었지만 우리 두 선사는 자기의 힘으로 선박을 늘렸다. 그것은 결국 부채의 힘이었다. 하지만 머스크가 주도하는 게임에서 한국 선사들은 패했고, 막대한 부채는 파산의 수렁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최대 수혜자는 머스크였다. 머스크는 일시적으로 화물 운임이 폭등하는 바람에 이득을 챙겼고, 한진해운의 주력인 미주와 유럽노선 물량을 대량 흡수했다. 부산항 컨테이너 물량중 1위를 차지하던 한진해운·현대상선 국적선대의 비중이 급락하고, 그 대신에 머스크와 동맹의 비중이 급증하며 선두를 차지했다. 이제 머스크 없으면 부산항이 움직이지 못할 상황이 됐다.

머스크라인의 컨테이너선 /EPA=연합뉴스

국적선대를 파산으로 몰아넣은 머스크도 성할리 없다. 상대방을 죽이기 위해선 자신의 팔다리가 잘리는 각오는 해야 한다. 머스크는 자구책의 일환으로 획기적인 조치를 단행했다. 이른바 분사(spin-off)다. 비주력 업종을 잘라내 본업인 해운에 충실하겠다는 취지다.

머스크의 모기업은 A.P. 묄러-머스크 그룹이다. 아버지 피터 머스크 묄러와 그의 아들 아놀드 피터 묄러가 1904년에 창업한 이 덴마크 최대 그룹은 전형적인 가족 기업이다.

A.P. 묄러-머스크 그룹은 지닌 22일 그룹을 해운과 석유부분으로 분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그룹은 해운부분인 머스크라인이 매출의 60%를 차지하고 석유시추 및 채굴, 유조선등 석유관련 부분이 40%를 점유한다. 머스크그룹은 "석유 관련 사업을 그룹에서 분리해 운송과 물류 전문회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떨어져 나가는 석유부분은 매각하거나 다른 회사와 합병하는 방식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

머스크는 운송과 석유 부문이 매우 다르며 양쪽 모두 경쟁적인 환경에 처했다면서 "분리를 통해 각각의 시장에 집중할 수 있다"고 구조 개편의 이유를 설명했다. 해운 업계는 공급 과잉과 무역 둔화 속에 컨테이너 운임이 운영비를 건지기 어려운 수준으로 폭락해 고전하고 있다.

운송에서는 머스크라인과 APM터미널, 담코를 한 회사 구조에서 여러 브랜드로 운영해 시너지를 낼 계획이다. 석유 사업은 향후 발전을 위해 다른 해법이 필요하다면서 조인트벤처나 합병, 상장 등의 방법이 있을 수 있다고 제시했다. 해결책은 24개월 안에 찾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머스크는 그동안 은행이나 슈퍼마켓 체인의 지분 등 비핵심 자산을 매각했으며 비용을 절감해왔다.

머스크 그룹은 구조개혁이 단기전략이 아니라 장기전략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해운 운임과 국제유가 하락은 단기적인 것이지만, 112년 된 회사가 앞으로 100년을 더 살아남기 위한 장기 전략을 준비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머스크는 해운에 중심을 두되, 앞으로 신조선 발주는 가급적 자제하고 치킨게임에서 진 회사의 인수에 집중할 것임을 밝혔다. 외신에서는 머스크가 한진해운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분석기사도 나온다.

세계 1위 컨테이너 선사 머스크 소속 컨테이너선 맥키니 몰러(MC-Kinney Moller)호가 부산항 신항 PNC터미널에 입항했다. 이 배는 약 6m짜리 컨테이너를 1만8천개나 실을 수 있다. 대우조선해양에서 만들었으며 총 톤수 16만5천t, 길이 399m, 폭 59m, 높이 73m로 축구장 4개를 합친 크기와 비슷하다. /연합뉴스

세계 1위 머스크의 조치 이면에는 아직 치킨 게임이 끝나지 않았다는 시각이 깔려 있다. 몇 개 선사는 더 죽어야 세계 해운시장이 살아날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 장기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석유부분을 잘라내 자본을 축적한다는 전략이다. 머스크가 주도하는 게임이 상당한 기간 지속될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많은 해운 전문가가 있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에도 해운 전문가들을 고용했다. 그들은 매일 각국의 해운정보를 챙겼다. 하지만 머스크 따라하기에 바빴다. 자신들이 죽는줄도 모르면서... 머스크의 치킨게임 전략이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간과했다. 알았어도 대처하기엔 늦었을 것이다.

우리 두 컨테이너 선사는 치킨게임에서 졌다. 경영의 실패일수도 있고, 정부의 지원이 모자라서일수도 있다. 또는 채권단의 무리한 독촉 때문이라고 핑계댈수도 있다. 하지만 진 것만은 사실이다. 남은 것은 법정관리에 들어간 한진해운, 은행 소유로 넘어간 현대상선을 어떻게 구조조정해 국제경쟁에 살아남게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다. 세계 시장을 보며 판단하는 눈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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