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호 프라랜서

[공감신문=송영호 프라랜서] 며칠전 잘 아는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았다. 다짜고짜 주소부터 부르라고 해서 순간 당혹스러웠으나, 해를 끼칠 친구가 아니라는 생각에 주소를 불러줬다. 주소를 불러주곤 그 연유를 물어보니 쌀을 보내준다는 것이다.

처가에서 품질이 좋기로 이름난 이천에서 벼농사를 짓는데... 작년 추곡수매가가 너무 낮아 수매를 포기했단다. 아는 사람을 통해 팔아 보려했지만 별 성과가 없어서 작년 나락이 거의 고스란히 남았단다. 어느덧 가을이 되어 들녘에는 누렇게 벼가 익어 가는데, 아직 창고와 빈방에는 작년 벼도 고스란히 쌓여 있는 상황인지라.... 일단 추가 구매가 가능할 만한 사람들을 골라 20키로씩 무료로 보낼 터이니 먹어보고 쌀 품질이 좋으면 자신을 통해 추가 구매를 해 달라는 얘기였다.

참 고마운 얘기였다. 금년도 기후가 좋고 태풍피해도 없어서 풍년이 예상된다는 보도도 나온다. 그런데 어쩌다가 여기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시대 식사 모습

예전에는 밥심이라는 얘기가 있듯이 밥공기도 컸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농사를 비롯한 육체노동을 하다 보니 사람들은 늘 허기가 졌다. 기름진 음식은 제사때나 명절에만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그래서 밥을 고봉으로 주는 걸 인심이라 생각하며, 밥이라도 배불리 먹으면 든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식생활도 참 다양해졌다. 다양한 음식을 먹다 보니 밥먹는 횟수도 줄고, 밥공기의 크기가 많이 줄었다.

쌀 소비도 자연스레 줄어 식량 자급률이 100%가 넘는 유일한 주요 작물이 됐다. 예전에는 풍년이라는 보도가 나오면 적잖이 안심이 됐다. 적어도 굶지는 않겠구나 하는....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세계최다 FTA체결국답게 외국산 쌀도 단계별로 수입자유화의 과정을 거치게 됐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쌀도 소비를 못하는 판인데 수입까지 하게 돼서 매년 더 재고가 쌓이게 됐다.

정부에서는 쌀 소비방안을 고민한 끝에 쌀 재고를 줄이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을 내 놓았다. 그 방안이 품질이 낮은 오래된 비축미를 가축사료를 사용하고, 기아국가들에게 구호품으로 더 제공한다는 것이다. 또 쌀 가공식품들을 더 개발하여 소비를 촉진하겠다는 것이다. 가축사료로 사용하는 것은 아직도 쌀을 주식으로 삼고 있는 국민정서가 용납지 않는다. 구호품으로 제공하는 것은 운송, 가공 과정에서 보관하는 것 보다 비용이 더 많이 든다. 쌀 가공식품을 더 개발한다는 얘기는 쌀 대책이 나올 때 마다 언제나 되풀이 되는 얘기다. 설령 이러한 방안들이 모두 정부 대책으로 채택된다 해도 매년 쌓여가는 재고를 막기에는 미봉책일 뿐이다.

쌀의 품질을 높여야 된다. 내가 20년 전에 일본에 출장 다녔을 때 일본 밥맛은 기가 막혔다. 요즘으로 따지면 아주 고가에 팔리는 일부 브랜드 쌀 밥맛과 안남미의 정도의 차이라 할까? 왜 우리는 이런 밥맛이 안 날까 라는 생각도 했지만, 그 당시에는 밥맛에 대한 변별력도 없었고 배불리 먹는 것이 최고라 생각했기에 일본 밥이라 그런가 했을 뿐이다. 요즘 들어서 쌀 품종에 따른 밥맛의 차이가 생기는 것을 알게 됐다. 지금은 다양한 고급 쌀에 대한 수요도 충분하니 만큼 더 고급브랜드화 하여 농민들의 소득을 보전해야 한다.

또한 절대농지를 줄여 다른 용도로 활용하게 해야 한다. 농촌인구가 날로 고령화되고 있다. 지금도 시골에 가면 농사지을 사람이 없어 묵히며 농사직불금만 타는 땅이 부지기수다. 하지만 절대농지라는 규제에 묶여 다른 용도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절대 농지의 규제를 풀어 개발이 가능케 하면 좀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까?

내가 아는 지인중 한분은 옛사람들이 들으면 불호령이 떨어지고 천벌을 받을거라는 얘기를 하며 조심스럽게 ‘논에다 골프장을 지으면 어떨까’ 라고 얘기했다. 그러면 골프장에서 취업하여 부족한 농가소득도 보전하자는 얘기를 했다.국민 정서로는 용납 못하겠지만 충분히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부에서도 논에 벼농사를 짓지 않으면 소득을 보전해 주는 농사직불금 제도를 통해 벼농사를 짓는 논을 줄여 나가는 노력을 하고 있다.

하나 농사를 천명으로 알고 농사짓는 농민들의 인식을 바뀌는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다. 작년에 추곡수매에 응하지 않은 친구 처갓집도, 금년에도 똑같은 고민을 할 것이다. 농협에서 하는 추곡수매를 하자니 일괄수매가라 그동안의 생산원가도 못 미치고.... 또 이천쌀이라는 자부심과 품질이 아깝고.....

그렇다고 추곡수매를 포기하면 판로가 막혀 금년 같은 일이 일어날 텐데 하는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전북 익산시 농민들이 지난 20일 오전 수확을 앞둔 오산면 남전리 논의 벼를 트랙터로 짓이기고 있다. /연합뉴스

가을 들판에 벼가 익어갈수록 그 고민은 더 커지고 있다.

정부에서도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함으로써 풍년에는 더 기뻐하는 황금들판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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