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수 에세이] 추억여행②…30년만의 해후(邂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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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수 에세이] 추억여행②…30년만의 해후(邂逅)
  • 조병수 칼럼
  • 승인 2016.10.04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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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에 살던 영국부인과 감격적 재회! - 스치는 인연도 소중히 여겨야

[공감신문=조병수 프리랜서] 영국에 도착한 다음날 오후에, 30여년 전에 살던 뉴몰든(New Malden)과 서비튼(Surbiton)지역의 집 주변을 살펴보러 갔다. 인터넷이 발달해서 가끔씩 지도검색에 나오는 인공위성 사진으로 주변을 살펴보곤 했지만, 가족들의 대화에 가끔씩 나오는 추억 속의 집들과 주변 환경을 그 당시에는 태어나지 않았던 둘째 아이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던 곳이었다.

런던 남서부에 있는 뉴몰든 쪽으로 가는 길에, 리치몬드 파크(Richmond Park)와 그 공원 안에 있는 이사벨라 식물원(Isabella Plantation)도 둘러보았다. 런던 왕실공원 중 최대규모로서 과거 왕실 사냥터로 썼다는 명성답게 2,360에이커에 달한다는 광활한 초원에 사슴 떼가 노닐고 온통 무성한 고사리가 지천으로 널려있던 그 공원은, 30여년 전에 그곳을 들른 이방인에게는 너무나 인상적이었고 큰 충격이었다.

당시 살던 집과 가까워서 틈날 때마다 그 시원한 초원 길을 드라이브 삼아 드나들었고, 런던을 찾은 친구들이나 직원들을 안내하면 다들 경탄하던 공원이기도 했다.

영국을 떠난 후에도 가끔씩 사진앨범에서, 나들이하며 사슴들 가까이서 찍은 모습들과 이사벨라 가든으로 불리던 그 정원의 꽃 길에서 찍은 사진들을 볼 때면, 언젠가 다시 한번 가보리라고 생각했던 곳이었다.

오랜만에 찾는 곳이라 동서남북을 분간하기도 힘들었다. 그래도 공원길을 찾아 들어가면서 멀리서 움직이는 사슴 떼를 보기도 하고, 또 식물원의 꽃 길을 따라 걷는 내내 남모르는 감회가 무럭무럭 솟아올랐다. 어린 딸아이를 올려놓고 사진을 찍던 그 나무그루터기를 찾다가 그냥 엇비슷한 나무 밑동을 찾아내고는 행복해 하기도 하고, 여기저기 옛적에 거닐던 길의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그날 그 공원에서 아이들이 찍어준 사진을 보다가, 정말 오랜만에 편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는 나 스스로도 놀랐다. 결국 모든 것이 마음에서 나온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었다.

그렇게 그 공원의 신선한 공기와 그 하늘의 푸르름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눈을 시원하게 만들고, 내 가슴 깊숙이 내려와 상쾌함을 안겨다 준 것이다.

<1985년 1월의 리치몬드파크의 겨울풍경>

딱 30년 만이었다. 처음 외국에 나와서 1년반 정도 살다가 집주인이 돌아온다고 해서 떠났던 바로 그 집 앞 길가에 섰다. 길 건너로 베벌리공원을 바라보며 서있는, 전형적인 영국의 연립주택(semidetached house)이다. 첫 해외생활의 설렘과 낯선 문화의 경험이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서인지는 모르지만, 꼭 다시 한번 와보고 싶은 곳이었다.

큰딸과 아내도 마음이 먹먹한 모양이었다. 전과 달리, 많아진 차들이 길 양편으로 즐비하게 늘어서 있으나, 그 집과 그 앞의 공원은 여전했다. 큰딸이 노닐던 공원 안의 놀이터에도 가보았다. 그 딸이 살그머니 아빠와 엄마의 손을 꼭 잡는다. 둘째 아이도 늘 말로만 듣던, 엄마 아빠가 살던 영국의 주택과 공원 풍경을 보며 덩달아 감격스러워했다.

그날따라 그곳의 하늘은 어찌 그리도 곱고 푸르던지···. 5월하순 늦은 오후의 햇살아래 주변거리와 공원을 거닐면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기억을 더듬으며 감회에 젖었다. 그리고는 전에 살던 집 부근에 세워둔 차로 돌아왔을 때, 아내가 그 집 앞으로 다가가서 이리저리 살피며 문 앞을 서성거렸다. 아마도 선뜻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갓난아이 데리고 낯선 외국 땅에서 와서 몸으로 부딪히며 생존을 배우며 정착했던 곳이니, 금방 발길을 돌리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그 옆집 쪽으로 다가서며 문 앞을 기웃거린다. 아마도, 같은 또래의 아기를 키우며 왕래하던 이웃집 부인을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던 아내가 갑자기 그 옆집 울타리 문을 열고 들어서서 현관문을 두드렸다. 영국의 여름철이 해가 늦게 져서 그렇지, 그래도 저녁시간이 다되어가던 때라서 결례가 될 텐데, 미처 말릴 겨를도 없었다.

아내 가까이에 서있던 둘째 아이가 그쪽으로 다가가는 사이에 그 집 문이 열리면서 한 영국인 부인이 나왔다. 무언가 서로 몇 마디 주고 받더니 그만 난리가 났다. 옆집의 그 부인이 여전히 그 집에 살고 있었고, 오래 전 한해 남짓 옆집에 살았던 그 한국여인과 딸아이를 기억하고 있었다. 엄청 반가워 하면서 모두들 집안으로 들어오라는 손짓을 보낸다. 순식간에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이제는 어엿한 숙녀로 변한 그 꼬마아이와, 우리가 영국을 떠난 이후에 태어난 둘째 딸을 소개하며 근황과 안부를 나누었다.

“이 동네에서 이사 간 후 서비튼에서 2년간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후로는 미국으로 왔다갔다하며 살다 보니 안부도 못 전하고 이렇게 세월을 보냈네요. 아이들에게 옛날 살던 곳을 다시 보여주고 싶어서 30년만의 추억여행을 왔습니다. 영국 분들은 이사를 잘 안가는 것 같아서 혹시나 하고 용기를 내어 문을 두드렸더니, 뜻밖에도 이렇게 다시 만나 볼 수 있어서 너무나 반갑습니다.”

“아직도 여기 살고 있는지 물어봐 주어서 고맙습니다. 언어소통도 힘들 텐데 갓난 어린아이를 데리고 다른 문화를 배우며 아이를 양육하는 용감한 여인이라고 생각했었어요. 저희도 그때 그 아들 밑으로 딸이 태어났고, 모두 장성해서 이제는 따로 살고 있습니다. 남편이 아직 런던으로 출퇴근하고 있기 때문에 당분간 이사계획은 없어요.”

그리고는 어릴 때 양쪽 집 아이가 같이 놀던 모습이 담긴 사진첩을 꺼내와서 보여주었다. 우리도 그 사진을 앨범에 보관하고 있지만, 잠깐 스쳐갔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옆집 한국아이와 찍은 그 사진을 포함해서 자녀들의 어릴 적 사진들이 단아하게 정돈된 앨범이었다.

나로서는 그 집 안에는 처음으로 들어가본 셈이다. 작고 아담하나 정갈하게 정돈된 거실과,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가족들의 사진과 액자들은 마치 무슨 박물관에라도 온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아름답게 가꾸어 놓은 뒤뜰 정원은 차라리 한 폭의 그림이었다.

19세기 영국의 계관시인인 알프레드 오스틴(Alfred Austin)이 “당신의 정원을 보여준다면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 줄 수 있다(Show me your garden and I shall tell you what you are.)”고 말했었다는 의미를 깨우칠 수 있을 만큼,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고 있었다. 연녹색으로 가득 찬 그 소담한 뒤뜰 공간이, 늦은 오후의 햇빛과 어우러져 숨이 막힐 듯한 환상적인 색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렇게 30년 전의 이웃을 갑작스레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감동으로 같이 사진을 찍고 연락처를 나누면서, 모든 것을 아끼고 잘 가꾸는 영국인의 생활패턴과, 우아하고 격조 있게 인생을 가꾸어가는 옛 이웃의 평화로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동네를 떠나는 차 안에서 덩달아 같이 감격해 하던 둘째 아이의 입에서도 ‘와, 대박이다!’라는 탄성이 나왔다. 주저하지 않고 이웃집 문을 두드린 엄마의 용감함 덕분에, 우리 가족을 기억하는 영국인을 만나게 되고 그네들의 생활상을 둘러볼 기회도 가졌으며, 또한 자기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아빠와 엄마, 언니가 살던 영국의 동네를 둘러볼 수 있었으니, 그 아이 또한 감동이 컸을 것이다.

<리치몬드파크 이사벨라식물원>

여행에서 돌아온 후 아내가 그 부인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30년만에 당신을 다시 만날 수 있어서 너무나 벅찼습니다. 그날 저녁 파크뷰(Parkview)길가에 서 있을 때, 당신이 여전히 그곳에 살고 있는지 물어보지 않고는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습니다.

큰 딸에게는 그 아이가 어렸을 적 살던 곳을 다시 보여주고, 영국을 처음 가보게 된 둘째 아이에게는 부모님이 예전에 살던 곳을 보여주고 싶어서 떠난 추억여행이었습니다. ···

저희가 런던에 살던 시절을 회상할 때면 훌륭한 이웃인 당신을 떠올리곤 했습니다. 그때 베풀어주신 친절은 잊을 수가 없지요. 당신은, 어린아이를 키우는 이웃 외국인에게는 큰 위안이었습니다. 갑작스런 방문에도 불구하고 환대해주어서 고맙습니다···”

그랬더니 그 부인으로부터 “이태리로 휴가 갔다 오느라고 답변이 늦었다”면서 회신이 왔다.

“···저희가 파크뷰에 아직 살고 있는지 물어주어서 너무나 기쁩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서 당신을 만나고, 당신의 모험적인 삶에 대해 들을 수 있고, 또 당신의 사랑스런 딸들을 만날 수 있어서 아주 좋았습니다. 당신은 그 두 딸들이 자랑스럽겠어요.

저희가 가족사진앨범을 볼 때 당신네 가족, 그리고 저희 아들과 함께 놀려고 옆집에서 온 작은 여자아이에 대해 얘기하곤 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젊은 여인이 된 그 아이를 보고, 또 당신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도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내 생각엔 당신의 딸들도, 외국에서 아이를 기르고 새로운 언어를 배우며 다른 문화를 잘 극복하며 지내는 등 아주 용감한 일을 한 당신을 자랑스러워해야 할 것입니다···”

<런던 근교 뉴몰든의 주택가 전경>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어느 날 차를 타고 가면서 우연히 지난 여행이야기가 나오자, 아내에게 ‘그 때 어떻게 그 영국 부인하고 가까이 지나게 되었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아내의 답변이 이랬다.

“어느 날 집 뒷마당의 잔디를 깎아야 되는데 연장을 몰라서 가위로 풀을 베고 있었다. 옆집에서 이를 지켜보았는지, 그 부인이 자루가 길게 달린 잔디 깎는 가위를 가져다 주면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했었다.

그 뒤로는 지역 가정의(home doctor)를 선정하는 방법도 가르쳐주고, 또 큰 딸이 중이염으로 고생할 때는 직접 우리 집으로 찾아와서 가정의를 거쳐서 큰 병원으로 가는 방법도 알려주었으며, 운전면허를 따기 전이라 차를 몰 수 없던 나를 태워서 아이들 유아원 보내는 방법들을 친절하게 안내해주기도 했었다.”.

1980년대 초반에는 대부분의 영국사람들이 한국이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도 잘 모르는 상황이었고, 그 부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현지물정을 잘 모르는 이방인 이웃이 낯선 타국 땅에서 고전하는 모습을 보고는, 같은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로서 여러모로 많은 도움을 준 모양이었다.

그러면서 서로 친해져서, 수시로 아내가 그 집 문을 두드리고, 그쪽에서도 불러서 차(茶)를 나누기도하며 가깝게 지냈다고 한다. 그 당시 직장 일에 파묻혀 지내던 나는, 간혹 그 댁 분들과 마주치면 목례 정도만 나누던 기억만 있을 뿐, 그렇게 많은 교류가 있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렇게 한 일년 반 동안 바로 옆집에서, 오전의 티 브레이크(tea break)나 오후 시간의 애프터눈 티(afternoon tea)를 같이 나누고, 아이들끼리 같이 어울리는 모습도 지켜보면서 인연을 만들던 사이였다. 그런데 어느 날 홀연히 이사를 가버리고 난 후로는 전혀 연락도 없던 한 동양여인과 그 가족이, 삼십 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저녁 무렵에 갑자기 현관문을 두드리며 “누구의 엄마 계시냐?”고 물었으니 많이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을 기억하고 그렇게 서로 반가운 인사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은, 서로에게는 외국인이던 어머니들이 간직한 특별한 기억들과 함께, 어느덧 인생을 초연하게 바라볼 수 있는 연륜의 성숙함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예상치 못했던 갑작스런 해프닝이었지만, 참으로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어준 만남이었다. 사람이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인연이란 어떤 것인지, 또 우리가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수많은 인연들이 스쳐 지나갔다. 좋은 인연 나쁜 인연, 그리고 지금도 내 주변에서 같이 인생을 나누며 살아가는 많은 인연들이 있다. 흘러가는 어느 인연하나 소홀히 해서는 안될 소중한 만남들이란 것을 새삼 되새기게 만들어준 추억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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