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만 보면서, 섣부른 판단은 말아야

[공감신문=조병수 프리랜서] 몇 달 전 이 여행을 계획하면서 짧은 기간 동안 어떻게 여정을 잡아야 할지를 고민하다가 이런 원칙을 세웠다. 영국을 처음 방문하거나 거의 기억이 없다는 딸들을 위해서 대부분 가본 곳들이지만 다시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내가 미처 가보지 못한 곳 중에서 꼭 가보고 싶은 곳도 몇 군데 끼워 넣기로 했다. 그러면서, ‘요즈음 입장료도 비싼데, 런던주변의 관광명소는 여러 차례 가보았으니 너희들만 들어가는 걸로 하자’고 했더니, 돌아오는 딸들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그럴 것 같으면 저희들끼리 갔다 오지, 뭐 하러 가족이 같이 여행을 갑니까? 우리가족의 가치(family value), 한 사람은 모두를 위하고 모두는 한 사람을 위한다.(One for all, all for one)!”

 

19세기 프랑스 소설가 알렉상드르 뒤마 페르의 소설 『삼총사』에 나온다는 구호까지 들먹이는 그런 고마운 마음들 덕분에 런던 땅을 다시 밟게 되었으니, 그 옛날 해외근무를 처음 시작하면서 밤낮없이 헤매던 그 런던지점 자리를 찾아가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중에 지점이 이전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 당시에는 시티에 있는 영국중앙은행(Bank of England) 근처의 베이징홀 스트리트(Basinghall Street)에 위치하고 있었다. 내가 걸어 다니던 그 사무실 주변이라도 어떻게 변했는지, 여전한지 한번 보고 싶었다.

시내구경을 하던 토요일저녁 땅거미가 질 무렵에야 틈을 내서 예전의 기억을 더듬어 나갔다. 워털루(Waterloo)역과 시티(City)구역을 바로 연결하는 지하철 뱅크(Bank)역을 지나서 영국중앙은행 건물 벽을 따라가다가 베이징홀 스트리트라는 표지가 붙은 골목을 찾긴 했으나, 일방통행이어서 부득이 차를 돌려야 했다.

‘내비’가 시키는 대로 이리저리 돌아가는데, 도중에 공사 중인 곳이 있어서 몇 번을 돌아도 ‘도돌이표’였다. 어쩌다 그 길을 찾아 들어도 온통 낯설기만 해서 두리번거리다가는 또 다른 길로 접어들곤 했다. 주소를 기억해 내지 못하고 도로이름과 영국중앙은행 쪽에서 걸어가던 기억만 믿고 찾아 나섰으니, 안 해도 될 그런 수고를 한 것이다.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수도 없고 또 다음날이면 다른 일정들을 계획하였으니 마음이 급했다. 그래서 전철역에서부터 영국중앙은행 옆을 거쳐서 걸어가던 옛 기억을 제대로 다시 더듬어 가보기로 하고 차에서 내렸다. 아내와 둘째는 시차와 강행군 일정에 지쳐서인지 벌써 차 안에서 곯아떨어졌고, 아빠의 마음을 헤아린 큰 애만 사진기를 들고 나를 따라 나섰다.

“그래 저기 저 코너에 일본계 은행이 있었지. 현지인 직원들이 대리석 벽면 하단을 광 내고 있었던 그 건물이야. 어, 지금은 은행이 아니네…”

“맞아, 저 건너편에 파이프담배 팔던 가게가 있었는데 안보이네. 아니, 저기쯤이 지점이 있던 곳일 텐데 건물이 옛모습이 아니네. 저 출입구 유리문의 각도는 비슷한데 건물이 아니야. 이게 어떻게 된 것이지?”

“어, 저기 길드홀(Guildhall)이 있네. 그 앞에 있던 식당에 가려면 한참 걸어간 것 같았는데 바로 저기네. 어찌된 셈이지? 길이 새로 뚫렸나? 아무리 그래도 저 도로에서 꺾어 들어오면 이 정도에 지점 건물이 있었던 것이 확실해. 아무래도 건물을 헐고 새로 지었는가 봐…”

옛 직장 터를 찾아서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중얼거리는 아빠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했는지, 옛날 지점 위치인듯한, 지은 지 오래되지 않은 듯이 보이는 ‘시티센터(The City Centre)’라고 씌어있는 건물 앞에 서있는 아빠를 향해서 큰딸이 이리저리 셔터를 눌렀다.

<런던 길드홀 앞 The City Center>

 

서울로 돌아와서, 나보다 나중에 귀국했던 동료에게 런던지점이 이전했던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그 근방에서 로마시대 유적이 발굴되어서 그랬다"는 얘기를 듣고서야 비로소 의문이 풀렸다. 그러고 보니 오래된 기억의 자락에서 언젠가 그런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기도 했다. 세월이 흐르며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것이다.

좀더 내용을 알고 싶어서 인터넷으로 관련자료와 옛 주소 등을 검색해봤다. 1411년 중세상인조합의 사교장으로 지어진 길드홀 옆에 길드홀 미술관(The Guildhall Art Gallery)이 세워진 것은 1885년이었고, 2차대전당시 독일의 공습으로 파괴된 것을 재건하던 1985년에 그 일대에서 로마의 원형경기장 유적지를 발견하였다고 한다.

런던인구가 2~3만명이었던 로마지배시절에 7천명이상의 관중이 앉을 수 있는 목재의자가 있고, 외부의 길이가 100미터에 그 폭이 85미터나 되는 원형경기장 유적을 발굴하고 개발하느라고, 지점이 들어가 있던 그 건물은 헐리고 나중에 1평방마일의 런던 시티구역을 소개하는 시티센터(The City Centre)건물로 바뀐 모양이었다.

 

영국의 역사는 켈트족(Celts)과 함께 시작되었고, 쥴리어스 시저(Julius Caesar)가 기원전 55년과 54년에 영국을 두 차례 원정한 뒤 영국과 로마 세계의 접촉이 증가되었다. 서기 43년 로마의 침공(Roman Invasion)에서 정점을 이루며, 서기 409년경까지 로마의 지배가 이어졌다고 한다.

그러니 영국에 대한 로마지배의 초기 즈음인 서기 70년경에 지어져서, 동물들의 싸움 쇼나 범죄자들의 처형장소로 쓰이고, 간혹 전문 검투사들의 공연이 있었다고 하는 그 원형경기장(London’s Roman Amphitheatre)이 있었다고 하는 곳 위에서 3년넘게 근무하였다는 사실이 묘한 느낌으로 다가선다.

더구나 몇 십 년 만에 그 자리를 다시 찾아갔을 때만해도 그 주변에 그런 사실들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한참을 어리둥절했었으니, 정말 사람 산다는 것이 우스워진다.

 

그렇게 내 추억의 장소에 얽혀있는 긴 역사의 흐름을 잠깐이나마 훑어보면서, 그 도도한 세월의 흐름 속에 한낱 티끌보다 작은 이 시간과 나에 대해 되돌아보게 된다. 그저 나에게 보이는 것만 보고, 내가 보는 것만 아는 것뿐일 텐데….

지금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도 모르고, 바로 옆도 모른 채 살아가는 처지에, 제 조금 아는 것만 믿고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되겠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저작권자 © 공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