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해수] 칼럼니스트=한 살 더, 먹는다. 개인적으로 올해는 작년만큼 다사다난하진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던 시간이었다. 올해 얻은 것 중에 버리고 싶은 것들도 많다. 부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하는 것, 게으름, 나태함... 이전의 나에게 없던 단점들도 정말 많이 생겼다. 확실한 건 작년보다 올해의 난, 별로인 사람이라 느끼는 것이다.

이런 나는 오히려 더욱 사랑이 하고 싶어졌다. 나는 사랑받는 것엔 어느 정도 자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었다. 일단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어야 그럴 자격이 생긴다고 착각 아닌 착각을 했었다. 자기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을 가질 정도로 성실하게 삶을 사는 사람이, 자신도 사랑하며 타인에게도 사랑받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거다.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니 당시의 나는 누군가가 필요치 않았던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의 삶 자체가, 나 혼자서도 너무 탄탄한 느낌이었다. 여기 누가 껴들어서 날 거들어주거나 토닥여주고 싶었을까? 아무도 필요하지 않는데. 빈틈이 없었다.

그런 나는 요즘 허점투성이가 되고 나서야,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깨닫고 있다. 무슨 큰 일이 있던 건 아니지만 삶을 바라보는 태도 자체가 매우 크게 달라졌다. 내가 어디까지 나약해질 수 있는지를 바라보며, 또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까지 변할 수 있는지 바라보는 과정은 내 인생에 있어서 앞으로도 절대 잊지 못 할 공부가 되었을 거다.

어느 날 친구가 나에게 ‘넌 남자 볼 때 뭐 봐?’라고 물었다. 그리고 난 예전과 전혀 다른 대답을 하고 있었다. 예전의 나는 ‘리듬감 좋은 남자’라고 대답했을 거다. 실제로 현란하게 춤을 잘 춘다는 느낌보다는 리듬 잘 타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곤 한다. 어딘가 모르게 여유로워 보이는 태도가 매력적으로 느껴지나 보다. 이에 대한 칼럼을 쓴 적도 있으니까.

지금도 ‘리듬감’이 중요하긴 하지만, 난 친구에게 ‘그 사람이 밑바닥에서 하고 있을 행동’이라 대답했다. 실제로 내가 요즘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궁금해 하는 것이다. 

어른들이 하는 말이 있다. 사람은 사계절을 다 겪어봐야 한다고. 처음에 만나면 잘 보이기 위해 내숭도 부릴 수 있고, 또 반대로 어떤 이들은 초반에 경계심이 강해서 마음을 잘 안 열기도 한다. 

남녀가 함께 시간을 겪다보면 각자의 일이 잘 되어 축하해 줄 일이 생기기도 한다. 대부분 이런 시간이 많이많이 생기길 바라며 연애를 한다. 당연한 것 아닌가! 상대방의 삶을 축복해주며, 또 나로 인해 뭔가 그런 일이 더 많이 생기길 바라는 건 말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사실, 그 반대의 상황이다.

디에고와 나, 프리다 칼로
디에고와 나, 프리다 칼로

나는 내가 좋아했던 사람이 너무 힘들어하는 과정을 지켜본 적이 있었다. 갑자기 벌어진 일이었고 그는 큰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나는 그 옆에서 해줄 수 있는 것들을 했다. 일단 옆에 있어주었고 그 다음엔 나도 정신이 없어서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때 우리에겐 1분 1초가 매우 고통스럽게 흘러가는 시간이었는데 지금에 와보니 정말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가물가물하다. 그만큼 상황에 매우 몰입해있던 것 같다. 

나는 당시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나를 챙기려는 그 사람의 모습을 보았었다. 아직도 그 사람을 생각하면 그 기억이 잊히질 않는다. 이른바 ‘잘 나갈 때’- 그가 행복하고 여유로운 상태라면, 주변 사람 누구에게라도 친절하게 잘 대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게다가 나처럼 자신을 좋아하는 여자에게 굳이 못해줄 이유가 없지 않나. 중요한 건 그 반대의 상황이라는 거다. 그때 나를 어떻게 대하는 지가, 지금 나에겐 더욱 중요해졌다. 

아마도 내가 지금 심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상태라 더욱 그렇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요즘 나의 모든 것들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갖는다. ‘이런 나도 좋아해줄 수 있어?’라는 물음에 누군가가 ‘괜찮다’고 해주길 바라는 것이다. 거의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은 나의 이런 모습도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한다. 물론 나 역시도, 상대방의 그러한 모습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할 거다.

가장인 아버지의 경제 사정이 안 좋아지며 이혼을 선택하는 가족들은 예나 지금이나 꽤 있다. 나는 내 연애가, 또는 나의 결혼이 이런 결말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그의 밑바닥을 보고 싶은 거다. 
 나는 그가 고통을 견뎌하는 과정을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인가?
 그가 고통을 견뎌하는 과정을, 나는 받아들일 수 있는가?
 나는 그런 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인가?
 다시 그가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진심으로 바라는가.

올해엔 정말 부정적인 것들을 많이 얻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누군가를 볼 때에 ‘리듬감’대신 ‘밑바닥’을 보고 싶어 한다는 것만으로도, 스스로가 정말 많은 발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자화상, 프리다 칼로
자화상, 프리다 칼로

‘사랑’이나 ‘연애’에 대한 글을 정말 오랜만에 써보는 것 같다. 그래도 ‘지해수 칼럼’이 처음 독자분들에게 인기를 얻었던 건 사랑/연애 테마 주제의 글이었는데, 최근엔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글감이 없던 안타까운 시간의 연속이었다. 아니, 썼더라도 정말 아프고- 또 아픈 이야기들이었을지도. 

2020년엔 나도- 또 독자 여러분도 행복할 수 있는 시간이었으면 한다. 밑바닥을 다 보여줄 수 있는 사람과, 저 위에서만 행복할 수 있는 비정상적으로 동화 같은 2020년이 되셨으면 한다. 바라는 거야 뭐든 어때? 신데렐라처럼 호박마차를 만들어달라는 것도 아닌데! 나도 매일 기도할 것이다, 사랑받고 사랑하는 하루하루가 되게 해달라고- 여러분도 그러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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