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트푸시로 벤더에게 비용 절감 압박, 해외공장 증설로 귀결될 것

[공감신문 김인영 기자] 현대자동차에서 하청을 받아 부품을 생산하는 한 업체의 사장이 이렇게 호소한 적이 있다.

“같은 공장에서 근무하는데, 현대자동차 노조원들과 우리회사 직원들 사이에 봉급 격차는 현격합니다. 거의 배에 가깝지요. 같은 대학, 같은 과를 나왔는데도 말이지요. 그런데 일은 우리 직원들이 더 많이 합니다. 이 격차를 어떻게 해소합니까. 우리 직원들의 봉급을 올려줘야 하는데, 그러면 채산성이 떨어집니다. 회사를 운영할수 없게 됩니다.”

현대자동차 노조가 14일에 실시한 찬반투표를 통해 올해 임금협상 2차 잠정합의안을 통과시켰다. 임금협상을 타결했으니, 파업이 중단되고 공장이 정상으로 가동하게 됐다. 일단 반가운 일이라고 생각할수 있다. 그럴까. 사상 최대 파업을 통해 자동차 조립공장의 임금은 더 올라갔고, 거기서 발생하는 채산성 악화는 중소 벤더들, 아웃소싱 회사들의 몫이다. 또한 두차례의 임금협상과 파업을 거치면서 생긴 상채기는 국내에서 공장을 짓지 않고 해외로 공장을 돌리는 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결국 국내에서 만들어질 일자리가 해외로 넘어가는 것이다.

지난 9월 30일 현대차 노조의 올해 임금협상 결렬에 따른 파업 장면. /연합뉴스

노조는 14일 전체 조합원 5만179명 대상으로 찬반투표를 한 결과, 투표자 4만5,920명(투표율 91.51%) 가운데 2만9,071명(63.31%) 찬성으로 잠정합의안을 가결했다고 밝혔다.

이번 찬반투표에 이르기까지 노조는 5개월 넘는 장기 교섭에다가 24차례에 이르는 줄파업을 벌였다. 노조는 지치다 못해 타협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파업을 할수록 무노동무임금으로 인해 잃는 것보다 얻어내는 것이 적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일 것이다.

표결에 붙여진 잠정합의안은 ▲기본급 7만2,000원 인상(기존 개인연금 1만원 기본급 전환 포함) ▲성과급 및 격려금 350% + 330만원 ▲전통시장 상품권 50만원 ▲주식 10주 지급 ▲ 조합원 17명 손해배상가압류 철회 등이다. 1차 잠정합의안보다 늘어난 것은 기본급 4,000원과 전통시장 상품권 30만원 등에 불과하다.

노사는 8월 24일에 1차 잠정 합의에 이르렀지만, 78.05%의 조합원 반대로 부결돼 재교섭을 벌였다. 결국 노조는 기본급 4,000원에 상품권 몇장 더 얻으려고 추석 이후 내리 파업을 벌였던 것이다.

회사측 손해는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회사는 올해 임협에서 노조의 24차례 파업과 12차례 특근 거부 등으로 생산 차질 규모의 누계가 14만2.000여 대에 3조1.000여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했다. 3조원이 넘는 차질은 1987년 노조 파업 역사상 최대 규모라고 한다.

협력업체의 손실도 크다. 지난 5일 현재 1차 협력업체의 손실은 1조4,000억원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더 불어났을 것이다. 2차, 3차 협력업체들까지 포함하면 손실규모는 더 커지고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면 피해금액은 천문학적으로 커진다.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중소기업회관에서 현대차 파업 등 경제 현안에 대한 중소기업계 간담회에서 이영 한국여성벤처협회 회장(왼쪽)이 중소기업계의 호소문을 낭독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나라 산업구조에서 협력업체로 구성된 중소업체들이 목소리를 내기는 어렵다. 참다 참다 못해 지난달 28일 중소기업중앙회등 15개 단체로 구성된 중소기업단체협의회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중기중앙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현대차 노조가 파업을 중단하지 않으면 제품 불매 운동을 검토하겠다"고 성토하기에 이르렀다.

파업으로 인한 공장 중단도 문제이지만, 현대자동차 근로자들의 임금이 더 오를 경우 협력업체들의 채산성이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깔려 있다.

지난해 현대차 직원의 연간 1인 평균 급여(남녀 포함)는 9,600만 원으로 중소기업의 연간 급여 3,363만 원보다 3배 가까이 많다. 대기업 평균 연봉 6,544만 원과 비교해도 현대차 급여는 3,000만 원 이상 많다.

중소기업청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대기업 임금 대비 중소기업 임금 비율은 61.6%다. 대기업 임금이 100원이라면 중소기업 임금이 61.6원에 그친다는 의미다. 사상 최대 임금 격차(비율 62.0%)를 기록했던 지난해 보다 격차가 더 벌어졌다.

현대자동차가 임금 코스트 상승에 따른 원가 부담을 협력업체에 전가한다면, 협력업체는 더 살기 어려워진다. 박성택 중소기업중앙회장은 "현대차는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 임금 격차를 야기한 주범"이라며 "임금 격차로 청년 일자리 미스 매치 현상이 발생하는 데다 고용 불안 상황도 심화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주영섭 중소기업청장도 최근 "우리나라 대기업의 경우 현대자동차 급여가 일본 도요타보다 15% 정도 높고, 현대중공업 임금은 일본의 대표적인 조선소보다도 15%~20% 높다"면서, "대기업은 지속 성장이 가능한 수준으로 임금을 책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대자동차 임금 코스트 압박은 국내 투자 기피로 나타난다.

현대자동차가 국내에 공장을 짓지 않은지 오래다. 1998년 이후 해외에서만 공장을 짓는다. 국내 노동력이 고임금이고, 생산성이 낮기 때문이다. 현지 판매를 확대하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그만큼 일자리가 줄어든다. 대기업들의 해외공장 건설은 국내 고용시장을 악화시키는 이유중 하나다.

현대자동차는 1996년 아산공장을 건설한 이후 국내에서 공장신증설을 일체 하지 않았다. 그 기간에 해외에서만 11개의 공장을 지었다. 현대차 관계자는 "해외공장 대비해 국내공장은 생상성과 임금경쟁력 측면에서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며 "게다가 해마다 되풀이되는 과도한 임금인상 요구와 노조파업은 생산과 임금경쟁력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대차에 따르면 2014년 6월 말 기준 국내 공장(울산·전주·아산)의 HPV(차 한 대 생산에 투입되는 총 시간·Hour Per Vehicle)는 26.8시간으로 해외공장 7곳과 비교해 가장 높다.

2005년 준공한 미국 앨라배마 공장의 14.7시간에 비해 국내 공장이 2배 가까이 높다. 체코 노소비체 공장(2009년 준공)은 15.3시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2010년 준공) 16.2시간, 중국 베이징 공장(1공장 2002년, 2공장 2008년, 3공장 2012년 준공) 17.7시간이다. 또 브라질 상파울루 공장(2012년 준공) 20시간, 인도 첸나이 공장(1공장 1998년, 2공장 2008년 준공) 20.7시간, 터키 이즈미트 공장(1997년 준공) 25시간으로 각각 집계됐다. HPV는 생산의 질에 대한 측정지표로 전 세계 자동차 제조사의 생산설비, 관리효율, 노동생산성 등 제조 경쟁력을 평가하는 지표다. HPV가 낮을수록 생산성이 우수하다.

현대차의 영업이익률은 계속 줄어 드는 추세다. 2011년 현대차의 영업이익률은 10.3%였는데, 5년 사이에 올해 상반기엔 6.6%로 반토막 수준이다. 글로벌 경영환경이 악화되고 코스트가 올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임금코스트가 더 올라갔기 때문에 그 비용증가는 어딘가로 불똥이 튈 것이다. 결국 장기 협상과 파업에서 회사도, 노조도 이기지 못한 것이다. 현대자동차 임금협상 타결이 반갑게 다가 오지 않은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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