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권의 지배력에서 결정적 차이점 드러나

[공감신문 김인영 기자] 그러면 미국은 로마 제국인가. 저널리스트 마틴 워커(Martin Walker)씨가 규정했듯이 제4 로마제국인가. 미국의 극우 보수주의자들은 자신의 나라가 로마 제국이라고 착각할지 모르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미국은 로마 제국과 다르고, 로마 제국이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미국은 ‘세계 유일의 슈퍼파워’이며, 프랑스의 외무장관 위베르 베르딘(Hubert Verdine)이 좀더 강력한 표현으로 사용한 ‘하이퍼파워(hyperpower)’일 뿐이다. 동서 냉전시절엔 슈퍼파워가 미국과 소련등 둘이었다. 둘중 하나가 무너지면서 미국은 ‘마지막 남은 슈퍼파워(the last remaining superpower)’인 것이다. 중국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지만, 미국과 대적할 단계는 되지 못한다.

제국주의는 식민지 또는 준식민지에 모국의 영향력을 직접적으로 행사한다. 로마 제국은 군대를 파견해 반란을 진압하고, 위임 통치자를 마음대로 교체하며, 통치를 강화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런 힘을 갖고 있지 못하다. 미국은 독일에 수만명의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지만, 독일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 독일 총선 과정에서 어느 장관이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정책을 아돌프 히틀러의 그것에 비유했지만, 미국은 아무런 행동을 취할수 없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끊임없는 유혈충돌을 벌이고 있지만, 미국은 양자간 대화를 중재할 수 있을뿐, 전쟁과 테러를 종식시킬 힘을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3월 26일 평택 해군 2함대사령부에서 열린 '제6주기 천안함 용사 추모식'에서 미 육군 2사단 부사단장 존 에번스(가운데) 장군과 2016년 독수리(FE) 훈련을 함께한 미해군 15전대장 크리스토퍼 스위니 대령 등 미군들이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로마는 점령지를 초토화시키고, 패배한 적군을 몰살시키고, 백성들은 노예로 만들어 버렸다. 지중해의 해양국가 카르타고는 한때 기름진 옥토였으나 로마군이 입성하면서 바닷물을 끌어들여 폐허로 만들었다.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카르타고의 자취를 찾을수 없는 것은 로마군의 잔혹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에 비해 왕녀인 클레오파트라가 여러 로마장수들의 품에 안기면서 로마에 고분고분했던 이집트는 그나마 백성과 문화를 유지할수 있었다. 항복해서 명령에 따르면 살려주고, 저항하면 완전히 없애버리는 그야말로 야만의 제국이었던 것이다. 역사가 타키투스(Tacitus)는 “그들은 폐허로 만들고, 그것을 평화라고 불렀다”고 썼다. 로마 제국에 의한 평화, 즉 팍스 로마나(Pax Romana)는 한마디로 군사력에 의한 평화였다. 동맹국이나 우방 따위는 없었고, 적이냐, 지배냐의 양자택일만이 있었다. 로마는 북에는 게르만족, 동에는 훈족, 서에는 페르시아족과의 싸움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군사력을 유지해야 했다. 로마는 그 군사력의 한계점에서 영토의 일부를 잃고, 동서로 분리하면서 쇠퇴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로마 제국과 미국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바로 주권에 대한 지배력이다. 미국은 2,000년 전의 로마만큼 넒긴 하지만, 다른 나라의 주권을 침해하지 못하는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알카에다 테러세력과 탈레반 정권을 와해시키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에 엄청난 양의 폭탄을 투하, 초토화시켰지만, 그곳을 미국령으로 만들지 못했다. 다만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의 친미정권을 세웠을 뿐이다. 이라크를 공격해, 사담 후세인 대통령을 제거시키는 계획은 이라크를 점령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친미 정권을 수립하겠다는 것이다.

로마제국은 자신의 영토에 마음대로 군대를 이동시켜 지배했지만, 미국은 그렇지 못하다. 현지 정부가 미군이 필요없다면 떠나야 한다. 미국은 1990년대초에 필리핀 정부의 요청으로 수빅만 해군과 클라크 공군기지를 철수해야 했으며, 파나마 운하 점령지를 내주어야 했다.

로마 제국의 황제는 전쟁의 영웅이며, 원로원이라는 고위정치집단에 의해 선출된다. 하지만 미국 대통령은 전쟁 영웅이 아니며, 복잡한 선거 절차에 의해 선출된다. 미국의 대통령을 로마 황제에 비교할 수 없다.

미국은 또 로마제국과 달리 우방국에 경제적 지원을 하고, 적대국에 대해서도 적대감을 순화시키기 위해 경제적 도움을 준다. 북한 경수로 사업에 미국이 개입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한때 친미 정권이었고, 오사마 빈 라덴이 미국 중앙정보국(CIA)으로부터 훈련을 받았지만 반미로 돌아섰다. 그러나 반미주의자였던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시장 경제를 도입하고, 미국에 대화를 제의한 것은 사뭇 다른 양상이었다. 미국이 지나치게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할 때 더 많은 무력을 유지함으로써 그 결과로 로마의 길을 걸을 가능성이 커진다.

홍콩의 마지막 영국 총독을 마치고, 유럽연합(EU)의 대외관계 담당 집행위원을 맡았던 크리스 패튼(Chris Patten)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에 대해 이렇게 걱정했다.

“미국은 아주 위험한 본능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이 군사력에 의존해, 대외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 우방을 선택적으로 판단하게 된다.”

미군 훈련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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