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독식제도, 여론조사론 예측불가…트럼프, 오하이오에서 우세

[공감신문 김인영 기자] 1990년대말 뉴저지에서 자동차를 타고 펜실베이니아, 오하이오, 미시건, 인디애나, 위스콘신을 다녀온 적이 있다. 특히 미국 자동차산업의 본고장 디트로이트는 폐허에 가까웠다. 일제차가 밀려들고 미국 자동차 산업은 경쟁력을 잃었다. 필자가 자동차 여행을 한 지역이 ‘러스트 벨트’(rust belt. 녹슨 공업단지)라고 불린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한때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던 미국 중서부 일대가 제조업이 쇠퇴하면서 폐허가 된 것이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났다. 디트로이트의 인구는 2000년에서 2015년까지 15년 사이에 인구가 30% 가까이 감소했다. 필자가 디트로이트를 다녀왔갔을때보다 더 낙후해 진 것이다.

미국의 러스트벨트는 뉴욕주 북부에서 오대호 사이의 낙후한 공업지대를 말한다. 미국이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것은 강한 제조업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 일대의 공장에서 전투기와 탱크, 대포, 실탄을 대량생산해 미군과 연합군에 제공했기 때문에 인류 최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세계 패권을 쥐었다. 하지만 한때 세계 최대였던 공업벨트는 1980년대에 쇠락하기 시작했고, 21세기 들어 황폐화했다.

21세기 들어 15년간(2000~2015년) 러스트벨트 인구는 급감했다. 이 기간 인구감소율을 보면 ▲디트로이트(미시건) 28.8% ▲개리(인디에나) 24.9% ▲플린트(미시건) 21.3% ▲영스타운(오하이오) 21.2% ▲사기노(미시건) 20.1% ▲클리블랜드(오하이오) 18.8% ▲데이튼(오하이오) 15.4% ▲나이애가라폴스(뉴욕) -12.2% ▲버팔로(뉴욕) -11.9%….

미국 대선을 20여일 앞두고 러스트 벨트가 반란을 일으키고 있다.

가장 최근의 여론조사인 몬마우스 대학이 유권자 805명을 상대로 14~16일 실시한 4자 가상대결에서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이 라이벌인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를 12%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힐러리는 50%의 지지율을 기록한 반면 트럼프는 38%에 그쳤다. 여론조사 결과 힐러리와 트럼프의 격차가 더 커진 셈이다. 여성 비하발언, 각종 스캔들 등으로 트럼프의 대중적 인기가 급격히 떨어지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주목할 사실은 러스트 벨트의 중심지 오하이오의 변화다. CNN이 오하이오 주 유권자 1,009명을 상대로 10∼15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트럼프가 48%로, 44%에 그친 힐러리를 앞섰다. 오하이오는 CNN이 꼽은 최대 격전지로, 오하이오 승자가 백악관에 입성한다는 게 미국 대선의 공식이다. 이 결과가 나오자 언론이 일방적으로 힐러리를 지지한다며 불만은 품던 트럼프는 트위터에 "CNN의 새 여론조사가 막 나왔다. 모든 언론의 '(나에 대한) 암살' 이후 나온 대단한 수치다“고 반겼다.

여론 조사는 샘플과 조사시점, 방법에 따라 다르게 나온다. 하지만 여론의 추세를 가늠하는데는 유용하다.

CNN 조사에 앞서 오하이오 주 볼드윈월레스 대학이 유권자 1,152명을 상대로 9∼12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힐러리는 43%의 지지를 얻어 34%에 그친 트럼프를 압도적으로 눌렀다.

비슷한 시기에 발표한 월스트리트저널등의 여론조사에서 오하이오는 트럼프(42%)와 힐러리(41%)이 박빙의 승부를 펼쳤다. 에머슨대 조사에서 오하이오에서 힐러리(45%)과 트럼프(43%)의 지지율이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CBS뉴스의 경합주 집계를 보면 힐러리가 46%의 지지율로 트럼프(42%)를 4%포인트 차이로 눌렀다.

2008년과 2012년에 버락 오바마 민주당후보를 밀어주었던 오하이오에서 트럼프 지지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러스트 벨트의 여론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여론조사가 맞다면, 러스트 벨트 유권자들이 서서히 트럼프로 이동하고 있음이 감지된다.

러스트벨트 지역은 전통적으로 민주당 영토였다.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노동운동을 약화시켜 제조업을 회생시키려고 했고, 민주당은 가난한 노동자의 대변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빌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의 민주당 정권이 들어섰지만, 미국 제조업은 더 힘을 잃었다. 믿었던 민주당 대통령들이 자유무역협정(FTA)를 체결하는 바람에 외국산 제품이 밀려들어왔고, 노동자의 일자리를 잃게 했다는 트럼프의 주장이 먹혀들어갔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세력이 백인, 노동자, 고졸 이하 학력이라는 사실은 미국 제조업의 반란을 의미한다.

미국 옵서버 폴리틱스라는 매체는 “왜 민주당 지지지역인 러스트 벨트가 트럼프에게 넘어갈 것인가”라는 기사를 게재하면서 펜실베이니아주 앰브리지라는 도시의 분위기를 보도했다. 그곳은 오랫동안 민주당을 지지해왔다. 노조는 민주당과 커넥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이 곳에 트럼프 깃발로 뒤덮였다.

트럼프는 소득세 미납과 음담패설이 폭로되고 2차 TV 토론을 벌인후 이 곳을 찾아왔다. 트럼프는 여론이 그를 등졌지만 러스트벨트 지역인 웨스트버지니아,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를 이기면 승산이 있다고 믿었다.

철교 생산공장이 폐쇠된 이후 영락한 앰브리지는 더 이상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들은 트럼프가 그들에게 일자리와 산업 재건이라는 답을 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 트럼프는 앰브리지 주민들에게 미국 제조업의 퇴조는 민주당의 자유무역주의, 곧 FTA 체결에 있다고 주장했고, 이들 조약을 폐기하겠다고 약속했다. 트럼프가 성희롱 발언과 여성 스캔들로 비난받아도 앰브리지의 유권자들은 이런 이슈엔 별 관심이 없다. 그냥 TV 코미디쇼 정도로 치부한다. 중요한 건 그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줄 지도자가 필요하다. 트럼프는 그 약속을 지켜줄 것으로 믿고 있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트럼프는 미국 언론이 그의 추문을 보도하면 할수록, 러스트 벨트에 매달린다. 그는 하루가 멀다 하고 한미 FTA를 비판하고 있다. 지난 8일 디트로이트에서 "힐러리는 이 도시와 이 나라의 일자리와 부를 빼앗아간 무역협정들을 지지했다"면서 "그녀는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서명한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을 지지했고,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지지했다"고 말했다. 이어 "힐러리는 일자리를 죽이는 한국과의 무역협정(한미FTA)을 지지했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도 지지했다"고 지적했다.

러스트벨트에서 트럼프가 한국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가 러스트벨트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이 된다면, 한미 FTA를 시범적으로 뜯어고치겠다고 나설 것이 분명하다.

쇠락한 미국 공업지역에서 힐러리보다 트럼프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여론 조사에서도 미시간과 일리노이, 위스콘신, 오하이오 등에서 트럼프는 승리하거나 선전하고 있고, 힐러리는 일리노이를 겨우 건졌으나 미시간과 위스콘신 등은 패배했다. 경제 불평등과 일자리 감소 등 열악한 경제 상황에 대한 분노와 정치개혁 열망이 겹친 결과다.

평소 자유무역 지지론자인 힐러리도 러스트벨트가 넘어가면 트럼프가 당선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국무장관 시절 찬성했던 TPP에 '반대'로 돌아서는 등 보호무역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미국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대선 후보 /연합뉴스

미국 대통령 선거는 승자독식제도가 채택된다. 미국 대통령 선거는 우리나라처럼 유권자들의 직접투표로 당선자를 결정하는 제도가 아니다. 그래서 여론조사는 별 의미가 없다. 전국 득표율보다 주별 득표율이 중요하다. 2000년 앨 고어 민주당 호보가 조지 부시 전대통령에게 전국 득표수에서 33만표나 앞섰지만, 선거인단 확보에서 지는 상황을 맞았다.

2016년 대선도 현재로선 힐러리가 압도적이다. 하지만 경합주(swing state)가 어떻게 되는지에 따라 수많은 변수가 전개된다. 경합주로 분류되는 곳은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 버지니아, 노스캐롤라이니, 플로리다 등이다. 이중 러스트벨트가 많다. 한때 미국의 힘을 자랑하던 제조업 지역의 불만이 이번 대선의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여론 조사와 달리 개표결과가 나오는 브래들리 효과(Bradley effect)도 무서운 변수다. 매일 터져나오는 추문, 세금문제, 막말, 외국의 반발 등으로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지지도가 낮게 나오지만, 실제 투표에서 그와 달리 나올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 그럴 가능성이 있다. 한국에서의 4·13 총선,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도 여론조사와 결과가 달리 나온 적이 있다.

이렇게 본다면 11월 미국 대선은 아직도 예측 불가다. 흥미진진한 전개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와 가장 밀접한 나라의 선거라는 점에서 냉철하게 결과를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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