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지해수칼럼니스트] 빨래. 빨래는 굉장히 철학적인 행위다. 나는 기분이 안 좋을 적마다 빨래를 돌린다. 빨래를 하면 무언가 기분이 나아지는 기분이 든다. 나 한 사람치의 빨래를 돌리는데 매주 그 양이 다르다. 이불 빨래 빼고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빨래를 돌리는 것 같다. 얌전하게 집에 있던 날이 많았던 주에는 빨래 물높이를 중간으로 해놓고 돌린다. 물론 나가서 논 날이 많은 주에는 양이 많다. 그래서 빨래 양을 보며, 아 내가 저번 주는 이렇게 살았구나, 정리를 하게 된다.
빨래를 다룬 작품들도 꽤 많이 있다. 나만 이런 생각을 하고 사는 게 아니었다. 대표적인 창작 뮤지컬로 자리를 잡은 <빨래>, 그리고 내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대학로에서 오픈런으로 공연했던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이하 오세습)이라는 연극도 있었다. <오세습>에서는 한 사람의 인생도 깨끗하게 세탁해야 된다고 말한다.
사실 나는 아주 게으르고 정리정돈 하는 것에 서툰 편이었다. 그러나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지 독립해서 살아보니 알겠더라. 청소나 빨래는 돈 들지 않고, 주어진 내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행위였다. 물론 좀 더럽히고 사는 것도 불편하지 않았지만 정돈을 하고 사는 것도 꽤 수고롭지만 멋진 행위인 것 같다.
소설 <신기생뎐>에 나왔던 이런 구절이 떠오른다. 남자들이 평생 철이 안 드는 이유는 살림을 안 해봐서라고.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게 살림이라고. 거기 등장인물이 수 십 년된 마룻바닥을 닦으며 하는 말이다. 맞다. 정말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다. 겨우 나 하나 사는 데도 이렇게 어지럽히고 살다니!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다는 데 나는 천방지축 인간이구나, 싶다. 우리네 어머님들은 아침 먹고 점심 밥 준비하시고, 점심 먹으면 저녁 밥 준비하면서 사셨다. 그 중간 중간 둘 셋씩 있는 아이들이 어지럽힌 거 치우면서. 대단한 노동이 아닐 수 없다. 그런다고 누가 알아주기라도 하면 몰라, 당연한 줄로만 알지.
빨래 중에 빨래, 빨래의 꽃은 이불 빨래다. 나는 호텔 베딩에 있는 그 뽀송뽀송 무겁고 약간은 까슬까슬한 느낌을 너무 좋아한다. 여독을 쫙 풀어줄 것 같은 그런 느낌! 어서 나를 안아줘, 라며 안기고 싶은 침대. 사실 침대는 그 자체만으로는 굉장히 건조한 느낌의 구조물이다. 하지만 뽀송뽀송 깨끗한 침구를 입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것으로 바뀌어 버린다. 이불을 빨 때면 그래서 기분이 좋다. 그런 순간을 선사해줄 것만 같아서.
빨래는 나 혼자만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내일 저 옷을 빨아야 돼, 내일 모레 꼭 입을 거야' 할 때가 많다. 어떤 옷들은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산 것들이다. 데이트 약속이 생기면 난 꼭 저 옷을 입겠어, 하는 거다. 그럴 때도 기분이 좋다. 어쩌면 그 옷에 베인 냄새들은 그 장소와 순간들을 기억하게 만드는데, 빨래는 그걸 지우개처럼 지우는 행위이기도 하다. 하지만 때로는 어떤 새로운 만남을 위한 나의 준비가 되기도 한다.
인간은 의복을 입고 생활한다. 부끄러워서, 또 우리는 털이 없으니 피부를 보호하려고. 세탁을 하는 행위는 나의 몸을 닦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다. 아마 우리가 옷을 입지 않고 생활했더라면 우리가 얼마나 더러운 존재인지 스스로 놀랄 것이다. 옷에게 감사해야한다.
빨래를 돌리고 말리고 개고. 다시 꺼내서 더럽히고. 헤어질 줄 알면서도 만나서 사랑에 빠지는 것과 빨래는 똑같다. 빨래는 옷을 깨끗하게 만들어주고 사랑은 내 마음을 순수하게 만들어준다.
청소보다 빨래는 우리 삶에 가장 가까이 닿아있다. 영화 <하녀>에서 안주인(서우 분)은 남편이 하녀(전도연 분)와 외도했다는 사실을 알자 이렇게 말한다. "내 빤스 빠는 년이랑!" 그만큼 밀접한 '년'이랑 남편과의 외도가 얼마나 황당했을까.
어제 돌린 이불 빨래가 말라가는 중이다. 조금 더 두터운 이불로 갈아타야할 것 같다. 날씨가 추워서 무릎이 으슬으슬 시리다. 빨리 저기로 안겨 쉬고 싶다. 두터운 이불은 마르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햇빛도 좀 쐬서 살균도 하고 건강해져서 오려무나. 또 내가 더럽혀줄 테니!
나이가 먹을수록 피부 거죽이 늘어지고 빛을 잃어가게 된다. 그럴수록 좋은 소재의 옷을 입어야한다고 생각한다. 디자인보다 소재! 소재가 좋은 옷을 입는 다는 것은 그것의 관리가 까다로워진다는 뜻이다. 세탁소 갈 일이 더 많아질 테지. 누군가 대신 해준다하더라도, 그래도 속옷이라도 내 손으로 빨고 싶다. 빨래를 할 때면 정말 삶을 사는 기분이니까. 빨래는 대단하다.